복음에 나타난 마리아

1. 듣는 여인
마리아는 하느님의 말씀을 들었다. 천사를 통해 전달된 하느님의 메시지를 듣고 순종하여 받아들였다. 엘리사벳의 축복과 즈가리야의 노래를 들었다. 마리아는 천사의 말과 인간의 말을 듣고 곰곰히 생각하는 여인이었습니다.(루가 1, 29) 곰곰히 생각한다는 것은 숙고한다는 뜻입니다. 단순히 자기 감정대로 행동하는 여인이 아니라 말씀을 가슴에 새겨 듣고 이성적인 판단에 자신을 맡기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2. 은총을 가득히 받은 이(루가 1, 28)
이 천사의 인사말씀은 오늘날 성모송에서 계속되고 영원히 계속될 마리아에 대한 찬미와 축복의 인사입니다. 이 지상에서 마리아보다 더 큰 은총을 받은 여인이 있습니까? 하느님을 아들로 낳을 수 있다는 특은을 받은 여인 그러기에 성모님은 “이제로부터 만세가 나를 복되다 일컬으리니”하고 자신의 미래를 노래했습니다.

3. 주께서 함께 계시는 분(루가 1, 28)
하느님과 함께 사는 삶은 우리 크리스챤 생활의 가장 큰 자랑입니다. 그냥 함께 사는 것만이 아니라 그 분을 태중에 품고 기르시는 완전히 하나된 삶을 살으셨던 성모님의 삶은 “태중의 아들 예수 또한 복되시도다.”라는 엘리사벳의 감탄어린 축하의 의미를 더 깊이 깨닫게 해줍니다. 이로써 여인의 태가 생명을 잉태하고 기르는 단순한 의미에서 태가 하니라 하느님의 아들을 잉태하고 기르는 거룩한 성전이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인의 태는 성모님을 통하여 거룩한 성전의 역할을 시작합니다. 이제 여인들의 태는 거룩하게 축성된 하느님의 성전임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여러분의 태는 거룩합니다. 하느님께서 여러분의 태속에 은총으로 잉태시킨 아기가 “편하게 살고 싶다”는 이기심이나 “부양능력이 없다”는 무책임 때문에 그 축성된 거룩한 태가 살인의 현장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4. 성령을 받으신 분
“성령이 너에게 내려 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감싸 주실 것이다.”(루가 1, 35)
하느님의 메시지 안에는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께서 마리아 안에 작용하심을 볼 수 있습니다. 평범한 시골 처녀 마리아에게 내린 이 축복은 두렵고 떨리는 일로 여겨집니다. 마리아는 몹시 당황하였고(루가 1, 29), 천사는 “두려워 하지 말라.”고 달랩니다. 구약에서는 “하느님을 두려워 하는 것이 지혜의 시초”(전도서 12, 13-14)라고 가르칩니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하느님을 흠숭하는 인간에게 하느님은 무한히 자비로운 사랑과 은총을 마련해 주십니다. 인간의 힘으로 불가능한 것이 하느님의 전능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합니다. 처녀 마리아가 어머니가 되는 동정녀 수태의 순간도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5. 하느님의 아들을 낳으신 분
“그러므로 태어나실 그 거룩한 아기를 하느님의 아들이라 부르게 될 것이다.”(루가 1, 35)
교회는 공식으로 성모 마리아께 “천주의 성모”라는 호칭으로 부르도록 가르칩니다. 천사의 예고에 따라 그분은 하느님의 아들을 낳으셨고 젖먹여 기르셨으며 예수님의 구원사업에 끝까지 동참하신 분입니다. 그분은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은 안 되는 것이 없다.”(루가 1, 37)는 말씀을 믿고 따랐습니다.

6. 순종하는 여인
이 말을 들은 마리아는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하고 대답하였다.(루가 1, 38) 마리아의 이 대답은 세상의 역사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하와의 불순종을 순종으로 바꾸고 첫 아담의 원죄로 인한 죽음의 징벌을 생명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죽음이 죽음이 아니오 영원한 생명으로 건너가는 전환점이 된 것입니다. Fiat voluntas tu a! 여인의 이 한마디가 하느님의 구원을 이 세상으로 들어오게 하는 실마리가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도 성모님을 닮아 우리의 말한마디가 나와 우리의 이웃에게 구원을 가져올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7. 봉사하는 여인 마리아
며칠 뒤에 마리아는 길을 떠나 걸음을 서둘러 유다 산골에 있는 엘리사벳을 찾아 갑니다.(루가 1, 39) 마리아는 아기를 못낳는 여인, 늙어서 출산의 고통을 감당하기 어려운 엘리사벳의 해산바라지를 위하여 걸음을 서둘러 머나먼 유다산골을 찾아간 것입니다. 당시 약혼자가 있던 마리아가 처녀 수태 고지를 받고 다른 고장으로 간다는 것은 얼마나 큰 오해의 소지를 불러 일으킬 수 있는지! 약혼자와 함께 있지 않은 기간에 아기를 잉태하여 배가 불러 돌아온다면 아무리 의인이라 하더라도 요셉에게 의심을 불러 일으킬 수 있는 조건이 충분히 채워집니다. 루가 복음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았지만 마태오 복음 1, 19에는 요셉이 마리아와 파혼을 할 생각까지 갖게 합니다. 그리고 당시의 율법은 처녀가 남편없이 아기를 갖게 되면 동네 사람들이 마을 밖으로 끌어내다가 돌로 쳐 죽이도록 되어있습니다. 요셉의 고민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사정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대해 변명조차 할 수 없었던 마리아의 초조한 심정과 고뇌를 천사의 개입으로 하는미께서 직접 요셉에게 해명해 주셨습니다. 요셉은 하느님말씀을 믿었고 의심의 지옥에서 놓여남으로써 요셉의 순종은 이 세상에 구세주를 탄생하게 하였습니다. 그가 반대하였다면 예수는 아마 이 세상에 태어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자신의 아기를 잉태했어도 생활에 여유가 생기면 낳자든가 아파트를 마련하면 낳자든가 하면서 그 아기의 출산을 반대하는 남자가 얼마나 많은 우리의 현실입니까? 요셉은 우리의 좋은 모범이십니다.

8. 노래하는 마리아
마리아의 노래는 오늘날 모든 수도자들이 저녁기도때마다 노래로 하느님께 바치는 찬가입니다. 레지오 마리애에서도 까떼나로 바치고 있지요? 이 노래에는 구약성서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가 있습니다. 남편의 극진한 사랑을 받았지만 자식이 없어 눈물로 한 세월을 보내던 한나가 기도로 얻은 아들 사무엘을 젖 떨어지자 마자 성전에 봉헌하면서 부른 감사 찬양 노래가 사무엘 상권 2, 1-10에 나오는데 성모님은 구약에도 능했고 시편도 훌륭하게 예수님께 가르치신 듯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십자가 상에서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시편의 노래들을 인용하셨기 때문입니다. 마리아의 노래는 한나의 노래보다 훨씬 수준이 높습니다. 그리고 만민 구원을 위한 하느님의 구세사를 이미 꿰뚫어 노래하고 있습니다. 마리아는 아마 예수를 기를 때 수 많은 시편을 노래로 가르쳤을 것입니다. 또한 자장가도 불렀을 것이고 ···.
우리 신앙의 찬미가 이 노래 가운데 골고루 다 들어 있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노래하는 여인의 목소리는 얼마나 아름다운가요. 인간의 애절한 사랑을 노래하는 많은 가수들의 노래가 사랑을 받듯이 오늘날 마리아의 노래는 많은 이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일깨워주고 감사와 찬양을 드리게 합니다.

9. 은총의 중재자 마리아
요한 복음 2장에서 보면 마리아는 가나안 혼인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만드는 예수의 첫기적을 불러온 장본인입니다. 잔치집에 술이 떨어져 낭패한 처지가 되었을 때 잔치집 일을 도와주고 있던 마리아가 예수께 그 딱한 사정을 알렸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어머니, 그것이 저에게 무슨 상관이 있다고 그러십니까? 아직 제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하고 어머니의 청을 거절 하였습니다. 그러나 성모님은 지혜롭게 처신하십니다. 하인들에게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대로 하여라.”하고 예수께서 기적을 일으킬 수 있도록 사람들을 준비시키십니다. 오늘날에도 마리아는 계속적인 발현을 통해 사람들을 준비시키고 회개하도록 촉구하고 계십니다. 처음 어머니의 청을 거절하였던 예수님도 결국은 어머니의 자상한 마음에 감동되어 당신의 때가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항아리에 가득한 물들을 포도주로 만들어 주십니다. 교회는 오늘날에도 마리아의 이러한 어머니다운 도움을 요청하도록 우리에게 권고하고 있습니다.

10. 십자가의길을 함께 걸으시는 어머니 마리아
사순절 동안 우리는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칩니다. 제 4처에서 “예수와 성모 서로 만나심을 묵상합시다.”하는 부분이 있는데 우리는 아들이 가장 고통스러울 때 함께 계시는 어머니 마리아를 만납니다. 제 3처에서 십자가를 지고 가시다가 비틀거리고 넘어지는 예수를 다시 일어서게 하는 힘은 어머니를 만남으로서 얻어집니다. 우리가 고통으로 넘어져 울 때 우리 곁에 계시는 성모님은 어머니의 사랑으로 우리를 그 고통에서 일어나게 하십니다. 그분은 예수와 함께 끝까지 갈바리아 산으로 오르셨고 십자가 밑에서 통곡하며 아들의 시신을 받아 안으셨습니다. 죽음의 순간까지 우리와 함께 계시는 마리아의 사랑은 우리의 주검까지도 받아 안아주시는 어머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혼자만이 슬픈 것이 아니라 함께 고통을 겪어주고 함께 울어주는 어머니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예수께서 숨을 거두실 때 말씀하셨습니다.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11. 부활과 승천의 어머니
예수께서 안식일 다음날 무덤을 찾아간 여인들에게 나타나신 장면을 눈여겨 봅시다.
요한 20장을 보면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가보니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고 제자들이 확인하였을 때는 예수의수이가 흩어져 있고 예수의 머리를 싸맸던 수건은 한곳에 잘 개켜져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허탈한 마음으로 숙소로 돌아갔습니다. 다른 복음들도 모두 빈 무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마태오 28, 1-8; 마르 16, 1-8; 루가 24, 1-12)
그런데 요한 20, 11-18절을 보면 무덤밖에 서서 울고 있던 마리아가 몸을 굽혀 무덤속을 들여다 보니 흰옷을 입은 두 천사가 앉아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천사가 “왜 울고 있느냐?”하고 물었습니다. 마리아는 행방불명이 된 예수의 시체를 찾고 있다고 대답합니다. 대답을 하고 뒤를 돌아 보았더니 예수께서 거기에 서 계셨다(요한 20, 13)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때 예수는 과연 어딜 다녀오신 것일까요? 성모님은 다른 사람들이 예수의 무덤을 찾아가고 시체가 없어졌다고 이리저리 뛰어 다닐 때 편하게 어딘가에서 주무시고 계셨을까요? 제자들 보다도 막달라 마리아보다도 더 많은 슬픔을 겪으신 어머니가 아들의 무덤을 떠났겠습니까? 가장 사랑하는 아들의 죽음을 더 슬퍼했을 성모님께서요. 이건 일종의 추정이지만 부활하고 제일 처음 예수님은 어머니를 만나셨고 그래서 막달라 여자 마리아나 제자들이 왔을 때 무덤은 비어 있었다고 한다면 아주 틀린교리라고 반박하시겠습니까? 저는 부활의 현장에 어머님이 계셨을 것으로 믿습니다. 탄생과 죽음의 순간에 함께 계셨던 성모님께서 부활의 순간에서만 제외 되었다고 보십니까?
교회의 오랜 전통적 가르침인 성전에 따르면 하느님께서는 마리아를 예수님처럼 죽은 후에 승천시켰다고 합니다. 그것은 교회의 믿을 교리에 속하며 2천년동안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그것을 믿고 있습니다. 교회 또한 교황님의 회칙으로 이 교리를 확정하였습니다. 교회으 ㅣ축일 중에 성모님의 축일이 가장 많은 것도 이러한 신자들의 믿음에 기인하리라 봅니다.

12. 우리의 어머니 마리아
승천하신 마리아는 수세기에 걸쳐 계속 사람들에게 발현하시어 회개를 촉구하고 하느님께 돌아오라고 하소연 하고 계십니다. 예수께서 십자가 상에서 유언으로 남기신 “이 분이 네 어머니시다.”, “어머니 이 사람이 당신의 아들입니다.”이 말씀 때문에 마리아는 우리의 어머니십니다. 또한 그분은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끊임없이 중재자의 역할을 하고 계십니다. 세상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계시겠다고 약속하신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함께 성모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회개하여라. 그리고 하느님의 사랑에로 돌아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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