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배들을 뭍에 대놓고는 모든 것을 버리고 그분을 따랐다

 

그들은 배들을 뭍에 대놓고는 모든 것을 버리고 그분을 따랐다


<말씀연구>


허탕친 어부들이 있습니다. 밤새 고기를 잡으려고 했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한 사람들. 실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준비과정이었습니다. 저도 낚시를 가면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올 때가 많은데 이때는 이런 말씀을 인용해서 핑계를 대야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좌우지간 오늘 어부들이 예수님께 잡히게 되는 과정을 살펴 봅시다.




1  군중이 예수께로 밀려와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있었던 일이다. 예수께서는 겐네사렛 호숫가에 서 계셨다.  2  예수께서 보시니 배 두 척이 호숫가에 대어 있었고, 어부들은 거기서 나와 그물을 씻고 있었다.


회당과 호숫가. 어느 곳이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기에 좋은 곳일까요? 물론 회당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 회당은 예수님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안다는 사람들. 똑똑하다는 사람들. 백성의 지도자라는 사람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회당은 좁아서 당신의 말씀을 전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호숫가는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고, 많은 이들에게 말씀을 전할 수 있는 곳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부들이 그물을 씻고 있는 것을 보십니다. 고기잡이를 마치고 정리하는 그들을 보게 되는데 그들 중의 한 사람인 시몬의 배에 오르십니다.




3  예수께서는 그 (두 척) 중의 하나인 시몬의 배에 오르신 다음, 뭍에서 조금 저어 나가라고 그에게 요청하셨다. 그리고 자리를 잡고 배에서 군중들을 가르치셨다.


예수님께서 오르신 배는 시몬의 배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시몬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분은 시몬의 집에 계셨었고, 그의 장모를 고쳐 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시몬의 손님이셨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시몬에게 당신과 사람들을 위한 손님 접대를 요구하십니다. 시몬도 예수님을 알고 있었다. 시몬은 예수님의 치유 능력을 알고 있었고, 예수님의 말씀에서 힘을 느꼈습니다. 시몬이 부르심을 받자 곧 예수님을 따랐다면, 우리는 이것이 조심스럽게 준비되어 있었음을 유념해야 합니다. 그러기에 하느님의 힘찬 말씀은 인간적인 방법으로 인간을 붙잡으셨던 것이다.


  그런데 루가복음에서 다른 공관복음서들과 달리 관심을 집중하고 있는 또 한 가지 점은 부르심과 전교사명의 예고에 대한 전 장면을 통해 나타나고 있는 베드로의 ‘우위성’에 관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군중들을 가르치시기 위해 택하신 것이 그의 배입니다(3절). 예수께서 더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치라고 명한 것도 베드로입니다(4절). 밤새도록 헛수고를 한 후에 예수의 ‘말씀’에 대한 신앙을 선언한 장본인도 베드로입니다(5절). 그리고 또한 기적이 있은 뒤 놀라움에 차서(9-10절 참조)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하면서 예수님께 대한 신앙을 고백하는 것도 베드로입니다:“주님, 저는 죄인입니다. 저에게서 떠나주십시오”(8절). 마지막으로 예수께서 다른 사람들에 앞서 당신을 따르라고 부르신 것도 베드로입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너는 이제부터 사람들을 낚을 것이다”(10절). 또한 여기서 주목할 수 있는 한 가지 사실은 루가 복음사가가 실제로는 예수님께서 좀더 나중에 붙여주시게 된(루가 6,14 참조) 베드로라는 이름을 앞서 사용하고 있는 점이다(8절). 이 모든 사실은 의심할 여지도 없이 그리스도의 구원계획 안에서 베드로가 차지하고 있는 특별한 역할이 어떤 것인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오늘날도 그리고 언제까지나 항상 예수께서 군중들을 가르치시고 그 기적의 고기잡이를 행하시는 것은 베드로의 배 안에서 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 베드로 없이는 전교사명이 있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어떤 사람들이-가톨릭 신자들 가운데서도-베드로를 교회일치를 이루는데 있어서 제일 큰 ‘장애물’이라고 단언하는 것은 이상한 일입니다. 오히려 루가복음의 내용에 따르면 ‘다른 또 하나의 배는 베드로를 통해 이루어진 기적적인 고기잡이의 도움으로 가득 채워지게 됩니다.’ 그리하여 두 배가 다 ‘가라앉을 정도가’(7절)됩니다. 모든 사람이 기뻐하고 만족할 만큼 풍성한 고기잡이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베드로의 배를 향해 가야 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4  그분은 말씀을 그치고 시몬에게 말씀하셨다. “깊은 데로 저어 나가서 당신네 그물을 쳐 (고기를) 잡으시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이 명령은 베드로를 군중들 및 배에 타고 있던 다른 어부들과 갈라놓은 결과를 낳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시몬에게 다른 사람에 대한 우선권을 주셨습니다. 세 개의 그물로 된 긴 저인망(4-5백 야드 정도)은 깊은 바다에서 고기를 잡는 데 사용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그물을 치기 위해서는 적어도 네 사람이 있어야 했습니다. 예수님의 명령은 베드로의 믿음을 시험하는 것이었습니다.



군중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예수님을 에워싸고 있었습니다(2절). 예수님께서 강둑에서 좀 떨어져서 ‘배에서 군중들을 가르치셨다’(3절). 그 다음에 계속되는 기적적인 고기잡이의 장면도 온통 ‘말씀’의 ‘능력’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예수님께서는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쳐 고기를 잡아라’하셨습니다. 시몬은 ‘선생님, 저희가 밤새도록 애썼지만 한 마리도 못 잡았습니다. 그러나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니 그물을 치겠읍니다’하고 대답한 뒤 그대로 하였더니 과연 엄청나게 많은 고기가 걸려들어 그물이 찢어질 지경이 되었습니다”(4-6절).




기적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말씀’의 창조적이고도 전폭적인 ‘힘’에 의해서 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말씀을 선포하시는 그리스도와 그 말씀을 믿는 베드로의 이중적 차원에서 이루어집니다. 만일 베드로가 그리스도의 ‘말씀’을 반신반의하면서 믿지 않았다면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점은 그리스도의 구원사업에 협력하기 위한 복음화 활동의 근원성을 깨닫는 데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내용입니다. 즉 복음이 선포되고 믿어짐으로써 구원이 가능케 된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복음은 그것을 선포하는 사람에 의해 철저히 믿어지고 생활되어야 하며 그 다음에 그것을 듣는 사람에 의해서도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오직 그렇게 될 때에만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의 사람 낚는 고기잡이는 풍성한 결과를 가져오는 기적을 이룰 수 있습니다.




5  그러자 시몬은 대답하여 “스승님, 저희가 밤새도록 애썼지만 한 마리도 못 잡았습니다. 그러나 스승님께서 말씀하시니 제가 그물을 치겠습니다” 하였다.


고기잡이들의 오랜 경험에 비추어 볼 때, 그 시간에 그물을 치는 것은 쓸모없는 일이었습니다. 고기가 가장 많이 잡히는 밤을 온통 지새우면서도 한 마리도 건져 올리지 못하였다면 하물며 아침나절에 고기가 잡힐 가능성이라곤 전혀 없었던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부르시고 선택하실 때에 조건 없는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인간은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마리아가 지녔던 믿음과 희망이었으며, 아브라함이 믿은 것도 이러한 희망에서였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권위가 있으며 따라서 그 말씀에는 인간적인 노력으로는 달성할 수 없는 것을 성취할 힘이 있다는 것을 시몬은 깨달았습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니…..” 그리고 스승의 명에 따라 베드로가 보인 믿음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베드로의 일행은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엄청나게 많은 고기를 잡았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아무런 표징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못 잡으면 보상 해줘유!”“우리가 고기 잡는 것을 무엇으로 보증하시겠어요?” 이런 말을 하지 않습니다. 구원은 믿음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여러 가지 표징들로써 인간의 믿음을 강하게 해 주십니다.




6  그러고는 그대로 했더니 그들은 물고기를 엄청나게 많이 잡아 그물이 찢어질 정도였다.  7  그래서 다른 배에 있는 동료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자기들을 도와 달라고 하였다. 그러자 그들이 와서 배 두 척을 가득 채우니 배들이 가라앉을 지경이었다.


대박입니다. 두 척의 배가 가라앉을 정도의 고기. 예수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비록 처음에는 무모해 보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의 말씀에 “예”하고 응답한 결과는 대박이었습니다.




8  시몬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예수의 무릎 앞에 엎드려 “제게서 떠나 주십시오. 저는 죄인입니다, 주님” 하고 말하였다.  9  베드로와 또한 그와 함께 있던 모든 사람은 잡은 물고기의 양이 엄청나서 두려움에 휩싸였던 것이다.


루가는 ‘시몬“이라는 이름을 단독으로는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 이름에 ”베드로“, ”바위“라는 이름을 대동시킵니다. 시몬이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자신의 믿음의 입장을 표명한 바로 그 때에,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것이다“(마태 16,18)라는 약속과 ”네가 나에게 다시 돌아오거든 형제들에게 힘이 되어 다오“(22,32)라고 하신 예수님의 요청, 그리고 그가 받은 사목직(요한 21,15이하)의 기초가 놓여진 것입니다.




시몬은 예수님에게서 발생한 하느님의 힘, 곧 기적을 직접 체험하였습니다. 이러한 체험은 그에게 자신이 죄 많고 보잘것없는 자라는 의식을 심어 주었습니다. 시몬은 지극히 거룩하시고 전적으로 “다르신 분”이신 하느님께 대한 두려움에 사로 잡혔습니다. 시몬은 예수님께 탄복하여 마음이 끌렸으나 자기는 죄 많은 자라는 의식 때문에 예수님을 멀리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리고 시몬은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함으로써 자신에게 관련된 이 기적 체험의 장엄함을 표현하였습니다.




그런데 저 같으면 “예수님! 이번에는 어디에다 그물을 던질까요? 우리 오늘부터 동업하지요? 50대 50으로 할까요? 아니면 예수님 7,저 3 해도 됩니다. 아마 뻔뻔스럽게도 그렇게 말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참으로 우리 신앙의 모범이십니다. 부족한 것을 인정할 줄 아는 신앙인의 모범이십니다. 그리고 청하기만 하는 신앙인이 아니라 그분의 영광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줄 아는 신앙인의 모범이십니다.




10  또한 제베대오의 아들들인 야고보와 요한도 그러하였는데, 그들은 시몬의 동업자였다.


뜻하지 않게 많은 고기가 잡힌 것을 보고 제베대오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은 놀라고 감탄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물을 끌어올리는 데에는 그들 외에 적어도 한 사람이 더 있었음이 틀림없지만 루가는 다만 이 세 사람에 대해서만 언급합니다. 시몬, 야고보, 요한, 이 세 사람은 예수님에 관한 지극히 비밀스런 계시들을 목격한 증인들로서 특권을 누린 사도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야이로의 딸을 소생시키셨을 때,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 때, 그리고 예수님께서 동산에서 고통에 잠기셨을 때 예수님과 함께 있었습니다.




이 때 예수께서는 시몬에게 말씀하셨다. “두려워하지 마시오. 이제부터 당신은 사람들을 낚을 것입니다.”


갈릴래아에서의 예수님의 초기 활동들은 시몬 베드로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을 배척하였습니다. 그러나 갈리래아의 변경 지대인 겐네사렛 호숫가에서 베드로는 예수님을 환영하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회당에서의 악령 추방, 베드로의 장모 치유, 그리고 베드로의 집에서 저녁 때 예수께서 행하신 많은 기적들은 모두 고기잡이 기적으로 집약되었습니다. 이제 베드로는 자신의 모든 옛 환경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섬기고 예수님의 능력에 찬 말씀에 봉사함으로써 하느님 나라를 위해 사람들을 낚는 어부가 될 것입니다.




11  그러자 그들은 배들을 뭍에 대놓고는 모든 것을 버리고 그분을 따랐다.


철저히 믿어진 복음만이 생활을 변화시킵니다. 마치 베드로와 제베대오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 그리고 여기서는 명백히 언급되고 있지 않지만 안드레아에게 있어서 일어났던 것처럼 생활을 변모케합니다. 이에 대해 루가복음사가는 오늘 복음 끝에서 강조합니다:“그들은 배를 끌어다 호숫가에 대어 놓은 다음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를 따라갔다”(11절). 새로운 생활의 시작은 예수님과 역사가 매순간순간 보여줄 미래를 향해 자신을 투신하기 위해 과거와 단절함으로써 이루어집니다. 과거의 고기잡이 기술은 그것이 요구하는 신체적인 자질 외에 윤리․도덕적 자질 즉 인내, 강인성, 주위의 위험에 대처할 능력, 희생정신 등으로 변모되어 남게 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그리스도를 충실히 따르는 모범적 예 입니다. 




“따른다는 것은 정해진 길을 다 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르심을 받고 행한 첫 걸음은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을 그의 과거 생활과 갈라놓는다. 이렇게 해서 따르라는 부르심은 즉시 새로운 상황을 만든다. 전의 위치에 머물러 있는 것과 따른다는 것은 서로 배타적인 두 개의 위치다.…예수님께서는 자기를 따르라고 부르시는 그 행위 자체로써 모든 것을 버리고 인간이 되신 하느님의 아들과 함께 가는 것 외에는 다른 어떤 ‘믿음’의 가능성은 없다고 하셨다.…신앙에로의 길은 그리스도의 부르심에 대한 ‘복종’을 거쳐야 한다. 그것은 절대로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예수의 부르심은 헛되게 되고 말 것이며 따라서 그러한 복종의 길을 거치지 않고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주장은 모두 헛소리가 되고 만다”




오늘 하루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의 뒤를 따라가 봅시다.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베드로 사도의 행동과 고백을 기억해 보면서 어떤 느낌이 드는지 함께 이야기 해 봅시다.




2. 버리고 떠난다는 말씀을 묵상해 보면서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나를 부르시고, 어떻게 응답하고 있는지 함께 이야기 해 봅시다.


이 글은 카테고리: 지난 묵상 보기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