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차
Ⅰ. 序論
Ⅱ. 本論
1. 舊約의 안식일
1) 안식일의 起源
2) 안식일의 意義
(1) 創造 사업의 기념
(2) 拘束 사업의 기념
3) 안식일의 聖ㅐ守
2. 新約의 안식일
1) 예수와 안식일
(1) 안식일 論爭
(2) 안식일의 주인이신 메시아
2) 初代敎會와 안식일
3. 안식일에서 주님의 날로의 變遷
1) 주님의 날의 語源的 考察
2) 안식일에서 주님의 날로의 변천 動機
3) 안식일과 주님의 날의 關係
4. 주님의 날의 歷史的 考察
1) 初代敎會
2) 니체아 공의회 以前(A.D.100-325)
3) 니체아 공의회 以後(A.D.325-바티칸 공의회)
4) 바티칸 公義會
Ⅲ. 結論
Ⅰ.서론
세상의 모든 그리스도 신자들은 주님의 날을 지키는 것을 의무로 여긴다1).
따라서 신자들은 주님의 날마다 함께 모여 말씀을 듣고 빵을 나누던 사도시대의 전통에 따라서 미사에 참여하고 그날을 성일(聖日)로 보내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신앙생활과 사회적인 삶을 조화시키지 못한 채 살아가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임을 고백하게 된다.
신앙생활을 단지 초월적인 神의 영역으로만 생각하고 사회적인 삶만이 오직 현실적인 삶의 영역이라고 선을 그어 놓고 생활하는 이분법적인 삶의 모습이 이러한 결과를 낳게 된다.
또한 참된 신앙을 찾기보다는 가정과 사회에 마음을 쓰며 신앙을 단지 그러한 욕구들을 충족시키는 수단으로 생활하기 때문에 주님의 날을 올바르게 지키지 못하고 주님의 날을 주말의 일부요, 단순히 쉬는 날이라고만 생각하고 있는 이들은 신앙의 핵심을 깨닫지 못한 채 주님의 날의 의무만을 부담스러워 하여 주님의 날을 너무나 쉽게 지나치거나 단지 의무감에 미사만 참여하는 등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물질문명의 발달로 인하여 하느님께로 돌려야할 흠숭과 경배를 잊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주님의 날의 올바른 정립은 하느님의 나라를 이땅에서 실현하고자 하는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과제 일 것이다.
그래서 본고에서는 주님의 날에 대한 신학적 고찰을 위해, 주님의 날의 근원적 기원인 안식일의과의 비교 연구를 통해 주님의 날의 의미를 고찰하고자 한다.
첫장에서는 , 구약성서 안에 나타난 안식일의 기원과 의미를 살펴보고
둘째장에서는, 이러한 안식일을 예수께서는 어떻게 준수하셨는지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의 안식일 사건을 중심으로 살펴보고 예수의 죽음과 부활이후 초대교회에 나타난 안식일의 준수 모습을 보게 된다.
세 번째 장에서는, 초대교회 때부터 지켜지기 시작한 주님의 날의 의미와 안식일에서 주님의 날로의 변천동기 그리고 안식일과 주님의 날의 관계를 초대교회 특별히 사도 바오로를 중심으로 살펴보고
마지막 장에서는, 초대 교회 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주님의 날이 성수 되어온 모습을 성 교회의 거룩한 증인들인 교부들의 증언과 공의회의 가르침을 중심으로 살펴보게 된다.
끝으로 결론에서는 이러한 주님의 날을 우리가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의 문제를 다루게 될 것이다.
Ⅱ. 본론
1. 舊約의 안식일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왜 주님의 날에 하느님을 예배하는가?
이 문제는 유대인의 안식일을 먼저 논하지 않고는 대답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스도교 신자가 유대인의 안식일을 합당한 예배일로 지키는 예는 거의 없다. 그 반면 많은 수가 매 주 첫날을 그리스도교의 안식일로 생각하고 있다. 주님의 날을 안식일과 아주 다른 날로 이해하려는 사람들까지도 유대인의 주 시간 분배법에 따라 매 7일마다 하루를 예배일로 지키고 있다.2)
이러한 사실에서 우리는 안식일과 주님의 날은 어떠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가?의 문제에 접근하게 된다.
따라서 이 문제를 논하기에 앞서 본장에서는 구약에 나타나는 안식일의 기원과 의미를 먼저 살펴보고자 한다.
1) 안식일의 起源
안식일(Shabbath 히 תבשׁ) 원래는 1주의 마지막 날로 동사 샤밧「Shӑbat:중지하다, 삼가다. 그치다, 종결하다, 끝나다」에서 유래한 명사형, 동사로서는 이차적으로, ‘안식하다. 쉬다’의 뜻으로 쓰이고 있다.「출애 21,19; 레위 26,34-35」)3)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외견상으로 가장 돋보이고 또 여러 면에서 의미를 가진 제도로 불리워 왔다. 안식일에 관한 율법은 구약성서의 모든 부분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이것은 구약성서의 다른 계명이 가지지 못한 폭넓은 증거라 할 수 있다.4)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식일은 아직도 그 기원이나 7일 1주의 기원에 대해서는 일치된 의견이 없다.5)
전통적인 입장에서는, 시간을 일주일씩 나누는 방법은 역사와 함께 시작된 것으로 본다.
창세 2,2-3에 의하면 안식일의 휴식과 함께 세계 창조가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성수에 대해 조금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있으며 출애굽기 이전에는 안식일 제도에 대해서 한마디의 언급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안식일을 기억하라”고 명령하신 이유를 미루어 보아 제3계명은 에집트의 노예생활의 속박아래서 하느님의 백성이 한동안 잊어버리고 있었던 관계를 회복하라는 명령으로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6)
이러한 전통적인 입장과는 달리 비평적인 학자들은 이스라엘 역사에 대한 연구를 통해 안식일의 기원을 밝히고자 했다.
먼저, 고대 근동지방 문헌에서 7일 단위가 나타나고 있음을 주목한다. 라가쉬(Lagash)의 구데아(Gudea)는 동(東) 닌누(Ninnu)성전 건축을 7일 축제로 경축하고 있고 길가메쉬의 서사시에서는 길가메쉬가 엔커두(Enkidu)의 죽음을 7일간 애도하고 있으며 우투나피슈팀(Utnapishtim)은 그의 배를 제7일에 완공하고 있다. 홍수를 몰고 오는 바람이 6일 동안 불다가 제7일에 잠잠해지는 등 ‘7일’은 문학이나 종교 의식에서 완성의 시간을 상징하는 구실을 하여 제 7일에 생기는 일은 흔히 사건의 절정을 의미했다.7)
그러나 이 증거는 정반대의 관계를 가르쳐주고 있다. 말하자면 7수가 가진 그 자체의 태고적 의미는 시간의 7중 구분에서 유래된 것이다. 그러나 태양과 달을 포함한 일곱 혹성에 관해 말한다면 이 숫자는 바빌론의 천문학이 후기에 만들어낸 것이라 할 수있다. 그렇지만 일곱째의 혹성이 존재하였다는 사실을 가지고 일주일 중 마지막 날이 왜 이스라엘에 의해 숭상을 받게 되었는가 하는 문제를 설명할 수는 없는 것이다.8)
어떤 사람들은 장날이 가장 근사한 유래라고 보았다 왜냐하면, 이날은 로마의 경우를 포함하여 여러 문화권에서 4,5,6,8일 간격으로 반복되었기 때문이다. 장날에 농민들은 들일을 쉬고 물물교환, 장사, 놀이집회에 관여했다. 장사를 하는 상인들은 물품을 운반해야 했으므로 이 가정에는 난점이 있었는데, 수많은 성서 구절이 안식일에 장사하는 것을 한탄하거나 금하고 있기 때문이다.(아모 8,5; 에레 17,19-27; 느혜 13,15-22)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식일은 장날과 관련하여 시작되었고 추후에 강력한 집단이 상행위를 억제하거나 금하는 방법으로 안식일 준수를 체계화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 다른 가정은 아카드, 우가리트, 히브리 문학 가운데서 ‘7일’의 상징적인 역할에 주목하는 것이다. 메소포타미아 홍수 서사시에서 상징되어 있듯이 이것은 히브리 문학에서는 그러하다.(창세 7,4-8, 10-12) 길가메쉬가 7일간 애통했듯이 요셉도 그렇게 했으며, 욥의 친구들도, 길르앗의 야베스 거인들도 그렇게 했다. (무교절, 초막절, 혼인잔치(출애23,15; 신명 16,13-15)7일은 완전한 시간의 강한 상징이었다. 이스라엘이 이 상징을 중간의 시간 단위로 선택하여 제7일을 완성의 날이요 성스러운 날로 삼았음직하다. 그러나 이 가정도 추측의 범위를 넘어서지는 못한다.9)
이밖에도 많은 가설들이 있지만 정확하게 안식일의 기원을 말하기는 어려움이 있다. 따라서 안식일의 의의에 대한 연구를 통해 안식일의 기원을 좀더 상세히 알 수 있을 것이다.
2) 안식일의 意義
안식일의 의의에 관한 문제는 안식일의 기원에 관한 문제와 상호 관련되어 있다. 따라서 본 장에서는 구약성서 안에 나타난 안식일의 의의를 출애굽기에 나타난 창조사업의 기념(출애 20,8-11)과 신명기에 나타난 구속사업의 기념(신명5,15)을 통하여 알아보고자 한다.
(1) 창조사업의 기념
창조 기사는 “하느님께서는 엿새 날까지 하시던 일을 다 마치시고 이렛날에는 모든 일에서 손을 떼고 쉬셨다.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을 새로 지으시고 이렛날에는 쉬시고 이날을 거룩한 날로 정하시어 복을 주셨다”(창세 2,2-3)라는 말씀으로 끝맺는다. 이 말씀은 출애굽기 20,8-11에서 모세가 백성에게 십계명을 말씀할 때 특별히 제3계명을 지켜야 할 이유로서 제시되어있다.10)
하느님의 안식일 준수에 대한 명령이 담겨있는 십계명은 출애굽기에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켜라”(출애 20,8)하고 기록되어 있다. 성서 본문은 계속해서 그 이유를 설명하며 하느님께서 하신 일을 상기시킨다. “하느님께서 엿새동안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드시고, 이레째 되는 날 쉬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안식일을 축복하시고 거룩한 날로 삼으신 것이다.(출애 20,11)
계명은 무엇을 하라고 명령하기에 앞서, 무엇을 기억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하신 웅대하면서도 근원적인 일, 곧 창조에 대한 기억을 일깨우는 촉구이다. 그러한 기억은 인간의 모든 신앙생활에 활기를 불어넣어 인간이 휴식하도록 부름 받은 날을 충만하게 하여야 한다. 그리하여 휴식은 신성한 가치를 얻게된다.11)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켜라(출애 20,8)하고 선언되는 하느님의 계명에서 하느님께 봉헌된 날을 거룩하게 자기의 생명을 봉헌하며 자유로이 창조주께 의존하고 있음은 안식하도록 도와주는 수단이며 창조주의 사업에 협조하며 그분의 은총을 받아들이도록 부름 받고 있음을 인식하게 하는 수단이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휴식”을 기리는 가운데 인간은 자신을 발견한다.12)
그래서 모든 피조물은 창조주가 안식하는 ‘일곱째날’을 맞이하여 안식하게 되었고, 하느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사람은 특별히 이날을 첫날로 맞이하게 됨으로써 그 어떤 일보다 최우선적으로 하느님의 안식에 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참된 평화를 먼저 누리게 되는 영광을 얻은 것이다. 이것은 사람이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기에 앞서 하느님의 안식에 참여하여 기쁨과 안식을 누림으로서 엿새동안 대 사명의 임무를 수행하면서 일곱째 날의 안식을 바라보는 소망을 하느님이 준 것이다.13)
하느님은 6일동안 노동을 하셨다. 이제는 완성된 사업이 정돈되어 있다. 하느님이 완성된 피조물을 직접 살펴보시며 하루를 휴식한 다음에야 비로소 인간이 노동하는 첫날이 시작된다. 초대교회가 제7일 대신에 첫날을 휴일로 지내는 것은 하느님에게서 해방을 받고 인생을 선물로 받아 사는 사람에게는 한 주간이 휴일로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일주일은 휴일에서 시작한다.14)
안식일의 휴식과 관련하여 하느님께서 하신 놀라운 일에 대한 ‘기억’의 주제가 발견되는데, 이 ‘기억’이 하느님께 대한 감사와 찬미로 가득차 살아있는 한 주님의 날에 인간에 누리는 휴식은 완전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15)
하느님의 휴식(창세 2,3)과 이집트를 탈출한 백성이 약속의 땅에 들어갔을 때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휴식(출애 33,14; 신명, 3,20; 여호 21,44; 시편 95,11)에 대한 주제는, 그리스도께서 부활을 통하여 들어가신 결정적인 “안식일 휴식”(히브 4,9참조)에 비추어서 신약성서에서 다시 읽혀지고 있다. 하느님의 백성은 그리스도를 모범으로 자녀다운 순종으로 노력함으로써 이와 같은 휴식에 들어가도록 부름 받았다.(히브 4,3-16참조)16)
(2) 구속사업의 기념
구약성서 안에 나타나는 안식일의 또 다른 의미는 구속사업으로 서의 기념이다.
신명기 5,15은 “너희는 에집트에서 종살이하던 일을 생각하여라, 너희 하느님 야훼가 안식일을 지키라고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면서 안식일을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 사건과 연결시킨다. 이 안식일은 강하신 손과 팔로 에집트의 종살이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여 주신 하느님의 대 구속사업을 기념하는 날인 것이다.17)
이로써 휴일의 근거는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해방시켜 주셨다는 그들의 근본적인 신앙고백에 속하는 것이었다.
제7일마다 이스라엘은 이것을 기억해야 되었다. 자기의 하느님은 해방자이셔서, 강팍한 노예 소유자들을 마음대로 처리하였으며 자기 백성을 압제하려고 달려드는 모든 권세자들보다 더 강하실 것이다.
초대교회가 휴일을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회상과 결부시켰을 때에, 인간의 해방자는 어떤 권력자나 어떤 죽음에도 더 이상 정복되지 않는다. 예수의 속죄 행위를 볼 때에 어떠한 행동의 의무도 인간을 더 이상 괴롭힐 수가 없고, 어떠한 과오도 인간을 고발할 수 없으며 지난 주간의 불충분한 행동과 미완성도 인간을 규탄하지 못한다. 오히려 안식일은 모든 것에서의 해방을 얻게된다.18).
안식일은 이스라엘이 에집트에서의 노예생활로부터 구원받은 것을 기념하는 날이기 때문에 이스라엘을 구출하신 하느님과 특별한 관계를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안식과 예배는 서로 연관되고 구속의 기념으로서의 안식일은 이스라엘을 다른 민족과 구별하는데 기여한다.19)
신명기 5,15과 출애굽 20,11에 나타난 본문상의 차이점과 그 의의를 보게되면, 하나는 구속자로서의 하느님이 하신 일을 기념하고 다른 하나는 창조자로서의 하느님이 하신 일을 기념하고 있다. 그러나 이두 형식의 제3계명이 그 역사와 내용에 있어서 아무리 상이점이 있다 하더라도 이 가운데 근본적인 모순이 내포되어 것은 아니다.
두 본문에서 안식일은 모두 거룩한 날이라고 하고 있다. 이것은 시간의 주인이신 계약자 하느님께 성별 되었다는 의미이다. 말하자면 그날에 대한 하느님과의 관계 때문에 거룩하게 되었다는 말이다.20)
두 본문을 하나로 합쳐서 생각할 때 창조와 구원을 하나로 묶는 단일한 신학적 시간 안에서 “주님의 날”의 의미를 밝혀준다.
그러므로 안식일 계명의 핵심은 단순히 일을 중단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이루신 놀라운 일을 경축하는 것이다. 또한 안식일은 하느님을 기억하고 경배하게 하는 데 그분은 우주를 창조하신 분이요, 이스라엘을 구속하신 하느님이라는 명백한 사실을 지적해 주는 것이다.21)
따라서 안식일의 의의는 우주를 창조하시고 인간을 만드신 분이 누구이며 이스라엘 백성을 그분이 어떻게 구속하셨고 어떻게 인도하셨는가를 잊지 않고 기억하며 하느님과 교제하면서 지킬 뿐만 아니라 육체적 휴식을 통하여 맛보는 안식을 경험하여 영원한 안식을 바라보게 하고 그 안식으로 들어가도록 하는데 있다. 이 영원한 안식을 위해 영원한 언약과 영원한 표징의 약속을 주신 것이다.22)
(3) 안식일의 聖守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서 안식일의 중요성은 아무리 과대 평가 해도 그것이 지나치다고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수세기 동안의 소란스러웠던 역사를 통해 그들은 히브리 민족답게 특징 지워준 것은 언제나 안식일이었기 때문이다.23)
안식일은 너무나 중요한 것이어서 이레 되는 날이면 모든 일에서 쉬는 그 성수 정신은 이스라엘 종교의 표지가 되어왔다. 하느님의 안식일을 더럽히는 것은 하느님에 대한 모욕, 즉 불경죄로 간주했으며 사형의 위협마저 내려져 있었다.24)
“너희는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 안식일은 거룩한 날이다. 이날을 범하는 자는 사형에 처해야 한다.”(출애 31,14)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Antiocus Epipanes,†,B.C.164)25)가 정열을 쏟아 안식일을 반대하고 나섰을 때 많은 자들이 그를 따라 신앙을 버리고 그날을 더럽혔지만 대부분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 주장에 동요하지 않았다.
또한 마카베오의 역사에 의하면, 그와 같은 반 안식일적 폭동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왕이 안식일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마카베오의 반란이 계속되는 동안에 어떤 경건한 유대인들은 옛날의 할라카를 따라 안식일에 무장을 하느니 보다 차라리 저항하지 않고 죽임을 택하기까지 하였다.26)
이처럼 유대인들에게 안식일은 그들의 삶에 절대적인 부분을 차지했다. 따라서 안식일의 율법을 더 철저하게 순종하기 위해 특별세칙들이 많이 만들어졌다. 이세칙들은 지엽적인 결의법에 명시되어있는데, 그러한 세법들이 시작된 사례를 구약성서에서 찾아볼 수 있게 된다.
백성들은 이레 되는 날에 만나를 거두지 못하게 되어있었고 처소에서 불도 피울 수 없었다.(출애 35,3) 또한 인도주의적 측면에서 집안일 하는 노예와 짐승에게 휴식을 취하고 기력을 회복할 시간이 주어졌다. 그리고 7년마다 땅에게도 안식이 주어졌는데 그해에 생산된 것은 자연스럽게 가난한 자들이 먹을 수 있었다.(출애23,10-11)27)
그러나 세월이 흐름에 따라 랍비들은 안식일을 위한 까다로운 규칙들을 많이 만들어 내는 데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예를 들면 주전자에 쏟아 넣기에 충분한 양의 포도주, 상처를 바를 정도의 물, 물통의 손잡이를 만들 수 있는 길이의 로프, 알파벳의 철자 두 개를 쓸 정도의 잉크를 가지고 다니는 사람은 범죄자로 인정되었다. 이것은 경건한 유대인이 부주의로 인해 과오를 범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계속 안식일에 관계된 할라카(Halaka:기록된 유전)를 많이 만들었던 것이다. 따라서 많은 문제들이 끊임없이 대두되었다.
The Book of Damascus에는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진 소를 끌어내어서는 안되며 함정에 빠진 사람을 사다리나 밧줄이나 다른 연장을 가지고 도와서는 안 된다는 정도에까지 이르렀다.28)
이처럼 안식일은 점차적으로 참되게 지켜지지 못하였다. 참다운 의미에서 안식일 성수는 하느님께서 쉬셨기 때문에 아니라 하느님께서 일곱째 날을 축복하시고 거룩하게 하실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영원한 표징이요, 언약으로서 지켜야 하되 이스라엘 백성들이 철저하게 육신의 일을 위해서는 어떠한 일도 금하고 하느님과 그 나라만을 바라면서 육신과 영혼의 참 안식을 누려야 하는 것이다.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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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차
Ⅰ. 序論
Ⅱ. 本論
1. 舊約의 안식일
1) 안식일의 起源
2) 안식일의 意義
(1) 創造 사업의 기념
(2) 拘束 사업의 기념
3) 안식일의 聖ㅐ守
2. 新約의 안식일
1) 예수와 안식일
(1) 안식일 論爭
(2) 안식일의 주인이신 메시아
2) 初代敎會와 안식일
3. 안식일에서 주님의 날로의 變遷
1) 주님의 날의 語源的 考察
2) 안식일에서 주님의 날로의 변천 動機
3) 안식일과 주님의 날의 關係
4. 주님의 날의 歷史的 考察
1) 初代敎會
2) 니체아 공의회 以前(A.D.100-325)
3) 니체아 공의회 以後(A.D.325-바티칸 공의회)
4) 바티칸 公義會
Ⅲ. 結論
Ⅰ.서론
세상의 모든 그리스도 신자들은 주님의 날을 지키는 것을 의무로 여긴다1).
따라서 신자들은 주님의 날마다 함께 모여 말씀을 듣고 빵을 나누던 사도시대의 전통에 따라서 미사에 참여하고 그날을 성일(聖日)로 보내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신앙생활과 사회적인 삶을 조화시키지 못한 채 살아가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임을 고백하게 된다.
신앙생활을 단지 초월적인 神의 영역으로만 생각하고 사회적인 삶만이 오직 현실적인 삶의 영역이라고 선을 그어 놓고 생활하는 이분법적인 삶의 모습이 이러한 결과를 낳게 된다.
또한 참된 신앙을 찾기보다는 가정과 사회에 마음을 쓰며 신앙을 단지 그러한 욕구들을 충족시키는 수단으로 생활하기 때문에 주님의 날을 올바르게 지키지 못하고 주님의 날을 주말의 일부요, 단순히 쉬는 날이라고만 생각하고 있는 이들은 신앙의 핵심을 깨닫지 못한 채 주님의 날의 의무만을 부담스러워 하여 주님의 날을 너무나 쉽게 지나치거나 단지 의무감에 미사만 참여하는 등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물질문명의 발달로 인하여 하느님께로 돌려야할 흠숭과 경배를 잊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주님의 날의 올바른 정립은 하느님의 나라를 이땅에서 실현하고자 하는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과제 일 것이다.
그래서 본고에서는 주님의 날에 대한 신학적 고찰을 위해, 주님의 날의 근원적 기원인 안식일의과의 비교 연구를 통해 주님의 날의 의미를 고찰하고자 한다.
첫장에서는 , 구약성서 안에 나타난 안식일의 기원과 의미를 살펴보고
둘째장에서는, 이러한 안식일을 예수께서는 어떻게 준수하셨는지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의 안식일 사건을 중심으로 살펴보고 예수의 죽음과 부활이후 초대교회에 나타난 안식일의 준수 모습을 보게 된다.
세 번째 장에서는, 초대교회 때부터 지켜지기 시작한 주님의 날의 의미와 안식일에서 주님의 날로의 변천동기 그리고 안식일과 주님의 날의 관계를 초대교회 특별히 사도 바오로를 중심으로 살펴보고
마지막 장에서는, 초대 교회 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주님의 날이 성수 되어온 모습을 성 교회의 거룩한 증인들인 교부들의 증언과 공의회의 가르침을 중심으로 살펴보게 된다.
끝으로 결론에서는 이러한 주님의 날을 우리가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의 문제를 다루게 될 것이다.
Ⅱ. 본론
1. 舊約의 안식일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왜 주님의 날에 하느님을 예배하는가?
이 문제는 유대인의 안식일을 먼저 논하지 않고는 대답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스도교 신자가 유대인의 안식일을 합당한 예배일로 지키는 예는 거의 없다. 그 반면 많은 수가 매 주 첫날을 그리스도교의 안식일로 생각하고 있다. 주님의 날을 안식일과 아주 다른 날로 이해하려는 사람들까지도 유대인의 주 시간 분배법에 따라 매 7일마다 하루를 예배일로 지키고 있다.2)
이러한 사실에서 우리는 안식일과 주님의 날은 어떠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가?의 문제에 접근하게 된다.
따라서 이 문제를 논하기에 앞서 본장에서는 구약에 나타나는 안식일의 기원과 의미를 먼저 살펴보고자 한다.
1) 안식일의 起源
안식일(Shabbath 히 תבשׁ) 원래는 1주의 마지막 날로 동사 샤밧「Shӑbat:중지하다, 삼가다. 그치다, 종결하다, 끝나다」에서 유래한 명사형, 동사로서는 이차적으로, ‘안식하다. 쉬다’의 뜻으로 쓰이고 있다.「출애 21,19; 레위 26,34-35」)3)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외견상으로 가장 돋보이고 또 여러 면에서 의미를 가진 제도로 불리워 왔다. 안식일에 관한 율법은 구약성서의 모든 부분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이것은 구약성서의 다른 계명이 가지지 못한 폭넓은 증거라 할 수 있다.4)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식일은 아직도 그 기원이나 7일 1주의 기원에 대해서는 일치된 의견이 없다.5)
전통적인 입장에서는, 시간을 일주일씩 나누는 방법은 역사와 함께 시작된 것으로 본다.
창세 2,2-3에 의하면 안식일의 휴식과 함께 세계 창조가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성수에 대해 조금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있으며 출애굽기 이전에는 안식일 제도에 대해서 한마디의 언급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안식일을 기억하라”고 명령하신 이유를 미루어 보아 제3계명은 에집트의 노예생활의 속박아래서 하느님의 백성이 한동안 잊어버리고 있었던 관계를 회복하라는 명령으로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6)
이러한 전통적인 입장과는 달리 비평적인 학자들은 이스라엘 역사에 대한 연구를 통해 안식일의 기원을 밝히고자 했다.
먼저, 고대 근동지방 문헌에서 7일 단위가 나타나고 있음을 주목한다. 라가쉬(Lagash)의 구데아(Gudea)는 동(東) 닌누(Ninnu)성전 건축을 7일 축제로 경축하고 있고 길가메쉬의 서사시에서는 길가메쉬가 엔커두(Enkidu)의 죽음을 7일간 애도하고 있으며 우투나피슈팀(Utnapishtim)은 그의 배를 제7일에 완공하고 있다. 홍수를 몰고 오는 바람이 6일 동안 불다가 제7일에 잠잠해지는 등 ‘7일’은 문학이나 종교 의식에서 완성의 시간을 상징하는 구실을 하여 제 7일에 생기는 일은 흔히 사건의 절정을 의미했다.7)
그러나 이 증거는 정반대의 관계를 가르쳐주고 있다. 말하자면 7수가 가진 그 자체의 태고적 의미는 시간의 7중 구분에서 유래된 것이다. 그러나 태양과 달을 포함한 일곱 혹성에 관해 말한다면 이 숫자는 바빌론의 천문학이 후기에 만들어낸 것이라 할 수있다. 그렇지만 일곱째의 혹성이 존재하였다는 사실을 가지고 일주일 중 마지막 날이 왜 이스라엘에 의해 숭상을 받게 되었는가 하는 문제를 설명할 수는 없는 것이다.8)
어떤 사람들은 장날이 가장 근사한 유래라고 보았다 왜냐하면, 이날은 로마의 경우를 포함하여 여러 문화권에서 4,5,6,8일 간격으로 반복되었기 때문이다. 장날에 농민들은 들일을 쉬고 물물교환, 장사, 놀이집회에 관여했다. 장사를 하는 상인들은 물품을 운반해야 했으므로 이 가정에는 난점이 있었는데, 수많은 성서 구절이 안식일에 장사하는 것을 한탄하거나 금하고 있기 때문이다.(아모 8,5; 에레 17,19-27; 느혜 13,15-22)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식일은 장날과 관련하여 시작되었고 추후에 강력한 집단이 상행위를 억제하거나 금하는 방법으로 안식일 준수를 체계화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 다른 가정은 아카드, 우가리트, 히브리 문학 가운데서 ‘7일’의 상징적인 역할에 주목하는 것이다. 메소포타미아 홍수 서사시에서 상징되어 있듯이 이것은 히브리 문학에서는 그러하다.(창세 7,4-8, 10-12) 길가메쉬가 7일간 애통했듯이 요셉도 그렇게 했으며, 욥의 친구들도, 길르앗의 야베스 거인들도 그렇게 했다. (무교절, 초막절, 혼인잔치(출애23,15; 신명 16,13-15)7일은 완전한 시간의 강한 상징이었다. 이스라엘이 이 상징을 중간의 시간 단위로 선택하여 제7일을 완성의 날이요 성스러운 날로 삼았음직하다. 그러나 이 가정도 추측의 범위를 넘어서지는 못한다.9)
이밖에도 많은 가설들이 있지만 정확하게 안식일의 기원을 말하기는 어려움이 있다. 따라서 안식일의 의의에 대한 연구를 통해 안식일의 기원을 좀더 상세히 알 수 있을 것이다.
2) 안식일의 意義
안식일의 의의에 관한 문제는 안식일의 기원에 관한 문제와 상호 관련되어 있다. 따라서 본 장에서는 구약성서 안에 나타난 안식일의 의의를 출애굽기에 나타난 창조사업의 기념(출애 20,8-11)과 신명기에 나타난 구속사업의 기념(신명5,15)을 통하여 알아보고자 한다.
(1) 창조사업의 기념
창조 기사는 “하느님께서는 엿새 날까지 하시던 일을 다 마치시고 이렛날에는 모든 일에서 손을 떼고 쉬셨다.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을 새로 지으시고 이렛날에는 쉬시고 이날을 거룩한 날로 정하시어 복을 주셨다”(창세 2,2-3)라는 말씀으로 끝맺는다. 이 말씀은 출애굽기 20,8-11에서 모세가 백성에게 십계명을 말씀할 때 특별히 제3계명을 지켜야 할 이유로서 제시되어있다.10)
하느님의 안식일 준수에 대한 명령이 담겨있는 십계명은 출애굽기에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켜라”(출애 20,8)하고 기록되어 있다. 성서 본문은 계속해서 그 이유를 설명하며 하느님께서 하신 일을 상기시킨다. “하느님께서 엿새동안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드시고, 이레째 되는 날 쉬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안식일을 축복하시고 거룩한 날로 삼으신 것이다.(출애 20,11)
계명은 무엇을 하라고 명령하기에 앞서, 무엇을 기억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하신 웅대하면서도 근원적인 일, 곧 창조에 대한 기억을 일깨우는 촉구이다. 그러한 기억은 인간의 모든 신앙생활에 활기를 불어넣어 인간이 휴식하도록 부름 받은 날을 충만하게 하여야 한다. 그리하여 휴식은 신성한 가치를 얻게된다.11)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켜라(출애 20,8)하고 선언되는 하느님의 계명에서 하느님께 봉헌된 날을 거룩하게 자기의 생명을 봉헌하며 자유로이 창조주께 의존하고 있음은 안식하도록 도와주는 수단이며 창조주의 사업에 협조하며 그분의 은총을 받아들이도록 부름 받고 있음을 인식하게 하는 수단이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휴식”을 기리는 가운데 인간은 자신을 발견한다.12)
그래서 모든 피조물은 창조주가 안식하는 ‘일곱째날’을 맞이하여 안식하게 되었고, 하느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사람은 특별히 이날을 첫날로 맞이하게 됨으로써 그 어떤 일보다 최우선적으로 하느님의 안식에 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참된 평화를 먼저 누리게 되는 영광을 얻은 것이다. 이것은 사람이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기에 앞서 하느님의 안식에 참여하여 기쁨과 안식을 누림으로서 엿새동안 대 사명의 임무를 수행하면서 일곱째 날의 안식을 바라보는 소망을 하느님이 준 것이다.13)
하느님은 6일동안 노동을 하셨다. 이제는 완성된 사업이 정돈되어 있다. 하느님이 완성된 피조물을 직접 살펴보시며 하루를 휴식한 다음에야 비로소 인간이 노동하는 첫날이 시작된다. 초대교회가 제7일 대신에 첫날을 휴일로 지내는 것은 하느님에게서 해방을 받고 인생을 선물로 받아 사는 사람에게는 한 주간이 휴일로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일주일은 휴일에서 시작한다.14)
안식일의 휴식과 관련하여 하느님께서 하신 놀라운 일에 대한 ‘기억’의 주제가 발견되는데, 이 ‘기억’이 하느님께 대한 감사와 찬미로 가득차 살아있는 한 주님의 날에 인간에 누리는 휴식은 완전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15)
하느님의 휴식(창세 2,3)과 이집트를 탈출한 백성이 약속의 땅에 들어갔을 때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휴식(출애 33,14; 신명, 3,20; 여호 21,44; 시편 95,11)에 대한 주제는, 그리스도께서 부활을 통하여 들어가신 결정적인 “안식일 휴식”(히브 4,9참조)에 비추어서 신약성서에서 다시 읽혀지고 있다. 하느님의 백성은 그리스도를 모범으로 자녀다운 순종으로 노력함으로써 이와 같은 휴식에 들어가도록 부름 받았다.(히브 4,3-16참조)16)
(2) 구속사업의 기념
구약성서 안에 나타나는 안식일의 또 다른 의미는 구속사업으로 서의 기념이다.
신명기 5,15은 “너희는 에집트에서 종살이하던 일을 생각하여라, 너희 하느님 야훼가 안식일을 지키라고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면서 안식일을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 사건과 연결시킨다. 이 안식일은 강하신 손과 팔로 에집트의 종살이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여 주신 하느님의 대 구속사업을 기념하는 날인 것이다.17)
이로써 휴일의 근거는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해방시켜 주셨다는 그들의 근본적인 신앙고백에 속하는 것이었다.
제7일마다 이스라엘은 이것을 기억해야 되었다. 자기의 하느님은 해방자이셔서, 강팍한 노예 소유자들을 마음대로 처리하였으며 자기 백성을 압제하려고 달려드는 모든 권세자들보다 더 강하실 것이다.
초대교회가 휴일을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회상과 결부시켰을 때에, 인간의 해방자는 어떤 권력자나 어떤 죽음에도 더 이상 정복되지 않는다. 예수의 속죄 행위를 볼 때에 어떠한 행동의 의무도 인간을 더 이상 괴롭힐 수가 없고, 어떠한 과오도 인간을 고발할 수 없으며 지난 주간의 불충분한 행동과 미완성도 인간을 규탄하지 못한다. 오히려 안식일은 모든 것에서의 해방을 얻게된다.18).
안식일은 이스라엘이 에집트에서의 노예생활로부터 구원받은 것을 기념하는 날이기 때문에 이스라엘을 구출하신 하느님과 특별한 관계를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안식과 예배는 서로 연관되고 구속의 기념으로서의 안식일은 이스라엘을 다른 민족과 구별하는데 기여한다.19)
신명기 5,15과 출애굽 20,11에 나타난 본문상의 차이점과 그 의의를 보게되면, 하나는 구속자로서의 하느님이 하신 일을 기념하고 다른 하나는 창조자로서의 하느님이 하신 일을 기념하고 있다. 그러나 이두 형식의 제3계명이 그 역사와 내용에 있어서 아무리 상이점이 있다 하더라도 이 가운데 근본적인 모순이 내포되어 것은 아니다.
두 본문에서 안식일은 모두 거룩한 날이라고 하고 있다. 이것은 시간의 주인이신 계약자 하느님께 성별 되었다는 의미이다. 말하자면 그날에 대한 하느님과의 관계 때문에 거룩하게 되었다는 말이다.20)
두 본문을 하나로 합쳐서 생각할 때 창조와 구원을 하나로 묶는 단일한 신학적 시간 안에서 “주님의 날”의 의미를 밝혀준다.
그러므로 안식일 계명의 핵심은 단순히 일을 중단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이루신 놀라운 일을 경축하는 것이다. 또한 안식일은 하느님을 기억하고 경배하게 하는 데 그분은 우주를 창조하신 분이요, 이스라엘을 구속하신 하느님이라는 명백한 사실을 지적해 주는 것이다.21)
따라서 안식일의 의의는 우주를 창조하시고 인간을 만드신 분이 누구이며 이스라엘 백성을 그분이 어떻게 구속하셨고 어떻게 인도하셨는가를 잊지 않고 기억하며 하느님과 교제하면서 지킬 뿐만 아니라 육체적 휴식을 통하여 맛보는 안식을 경험하여 영원한 안식을 바라보게 하고 그 안식으로 들어가도록 하는데 있다. 이 영원한 안식을 위해 영원한 언약과 영원한 표징의 약속을 주신 것이다.22)
(3) 안식일의 聖守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서 안식일의 중요성은 아무리 과대 평가 해도 그것이 지나치다고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수세기 동안의 소란스러웠던 역사를 통해 그들은 히브리 민족답게 특징 지워준 것은 언제나 안식일이었기 때문이다.23)
안식일은 너무나 중요한 것이어서 이레 되는 날이면 모든 일에서 쉬는 그 성수 정신은 이스라엘 종교의 표지가 되어왔다. 하느님의 안식일을 더럽히는 것은 하느님에 대한 모욕, 즉 불경죄로 간주했으며 사형의 위협마저 내려져 있었다.24)
“너희는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 안식일은 거룩한 날이다. 이날을 범하는 자는 사형에 처해야 한다.”(출애 31,14)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Antiocus Epipanes,†,B.C.164)25)가 정열을 쏟아 안식일을 반대하고 나섰을 때 많은 자들이 그를 따라 신앙을 버리고 그날을 더럽혔지만 대부분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 주장에 동요하지 않았다.
또한 마카베오의 역사에 의하면, 그와 같은 반 안식일적 폭동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왕이 안식일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마카베오의 반란이 계속되는 동안에 어떤 경건한 유대인들은 옛날의 할라카를 따라 안식일에 무장을 하느니 보다 차라리 저항하지 않고 죽임을 택하기까지 하였다.26)
이처럼 유대인들에게 안식일은 그들의 삶에 절대적인 부분을 차지했다. 따라서 안식일의 율법을 더 철저하게 순종하기 위해 특별세칙들이 많이 만들어졌다. 이세칙들은 지엽적인 결의법에 명시되어있는데, 그러한 세법들이 시작된 사례를 구약성서에서 찾아볼 수 있게 된다.
백성들은 이레 되는 날에 만나를 거두지 못하게 되어있었고 처소에서 불도 피울 수 없었다.(출애 35,3) 또한 인도주의적 측면에서 집안일 하는 노예와 짐승에게 휴식을 취하고 기력을 회복할 시간이 주어졌다. 그리고 7년마다 땅에게도 안식이 주어졌는데 그해에 생산된 것은 자연스럽게 가난한 자들이 먹을 수 있었다.(출애23,10-11)27)
그러나 세월이 흐름에 따라 랍비들은 안식일을 위한 까다로운 규칙들을 많이 만들어 내는 데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예를 들면 주전자에 쏟아 넣기에 충분한 양의 포도주, 상처를 바를 정도의 물, 물통의 손잡이를 만들 수 있는 길이의 로프, 알파벳의 철자 두 개를 쓸 정도의 잉크를 가지고 다니는 사람은 범죄자로 인정되었다. 이것은 경건한 유대인이 부주의로 인해 과오를 범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계속 안식일에 관계된 할라카(Halaka:기록된 유전)를 많이 만들었던 것이다. 따라서 많은 문제들이 끊임없이 대두되었다.
The Book of Damascus에는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진 소를 끌어내어서는 안되며 함정에 빠진 사람을 사다리나 밧줄이나 다른 연장을 가지고 도와서는 안 된다는 정도에까지 이르렀다.28)
이처럼 안식일은 점차적으로 참되게 지켜지지 못하였다. 참다운 의미에서 안식일 성수는 하느님께서 쉬셨기 때문에 아니라 하느님께서 일곱째 날을 축복하시고 거룩하게 하실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영원한 표징이요, 언약으로서 지켜야 하되 이스라엘 백성들이 철저하게 육신의 일을 위해서는 어떠한 일도 금하고 하느님과 그 나라만을 바라면서 육신과 영혼의 참 안식을 누려야 하는 것이다.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