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에게 가서 너희가 보고 들은 것을 전하여라


십자가의 성 요한 사제 학자 기념일(12/14)


    십자가의 성 요한은 1542년 스페인 아빌라의 폰티베로스에서 출생하였습니다. 1563년 가르멜회에 입회하였고 1567년에 사제로 서품되었습니다. 예수의 성녀 데레사와 함께 가르멜회 개혁 운동에 앞장섰고, 이로 인해 많은 시련을 겪어야 했습니다. 한편 성인은 「영혼의 어둔 밤」 등과 같은 탁월한 영성 서적들을 저술하기도 하였습니다. 1591년 우베다에서 세상을 떠났고, 1726년 교황 베네딕토 13세에 의해 시성되었습니다.
    말씀의 초대
    예수님께서는 요한의 제자들에게 자신이 하느님께로부터 파견되어 ‘오시기로 되어 있는 분’ 이라는 사실을, 눈먼 이들이 보고, 죽은 이들이 살아나고, 가난한 이들이 복음을 듣게 된다는 이사야의 예언을 통해 암시하고 있습니다(복음).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기쁜 소식을 전하는 사람아, 너의 목소리를 한껏 높여라. 보라, 주 하느님께서 권능을 떨치며 오신다. ◎ 알렐루야.
    복음
    <요한에게 가서 너희가 보고 들은 것을 전하여라.>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7,18ㄴ-23 그때에 요한은 자기 제자들 가운데에서 두 사람을 불러 주님께 보내며,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하고 여쭙게 하였다. 그 사람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말하였다. “세례자 요한이 저희를 보내어,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하고 여쭈어 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질병과 병고와 악령에 시달리는 많은 사람을 고쳐 주시고, 또 많은 눈먼 이를 볼 수 있게 해 주셨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요한에게 가서 너희가 보고 들은 것을 전하여라. 눈먼 이들이 보고 다리저는 이들이 제대로 걸으며, 나병 환자들이 깨끗해지고 귀먹은 이들이 들으며, 죽은 이들이 되살아나고 가난한 이들이 복음을 듣는다.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이는 행복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전능하신 아버지, 십자가의 성 요한을 기억하여 바치는 이 예물을 받아들이시고, 저희가 거행하는 주님 수난의 신비를 거룩한 생활로 드러내게 하소서. 우리 주…….
    영성체송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영성체후 기도
    하느님, 성 요한 사제에게 십자가의 신비를 기묘하게 밝혀 주셨으니, 저희가 성체로 힘을 얻고 언제나 그리스도와 하나 되어, 교회 안에서 모든 이의 구원을 위하여 일하게 하소서. 우리 주…….
 
저녁노을(모니카) 




♬ 3.sanctus-monastic chants-christdesert(Benedi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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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에게 가서 너희가 보고 들은 것을 전하여라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십자가의 성 요한 사제 학자 기념일(12/14)


      십자가의 성 요한은 1542년 스페인 아빌라의 폰티베로스에서 출생하였습니다. 1563년 가르멜회에 입회하였고 1567년에 사제로 서품되었습니다. 예수의 성녀 데레사와 함께 가르멜회 개혁 운동에 앞장섰고, 이로 인해 많은 시련을 겪어야 했습니다. 한편 성인은 「영혼의 어둔 밤」 등과 같은 탁월한 영성 서적들을 저술하기도 하였습니다. 1591년 우베다에서 세상을 떠났고, 1726년 교황 베네딕토 13세에 의해 시성되었습니다.
      말씀의 초대
      예수님께서는 요한의 제자들에게 자신이 하느님께로부터 파견되어 ‘오시기로 되어 있는 분’ 이라는 사실을, 눈먼 이들이 보고, 죽은 이들이 살아나고, 가난한 이들이 복음을 듣게 된다는 이사야의 예언을 통해 암시하고 있습니다(복음).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기쁜 소식을 전하는 사람아, 너의 목소리를 한껏 높여라. 보라, 주 하느님께서 권능을 떨치며 오신다. ◎ 알렐루야.
      복음
      <요한에게 가서 너희가 보고 들은 것을 전하여라.>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7,18ㄴ-23 그때에 요한은 자기 제자들 가운데에서 두 사람을 불러 주님께 보내며,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하고 여쭙게 하였다. 그 사람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말하였다. “세례자 요한이 저희를 보내어,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하고 여쭈어 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질병과 병고와 악령에 시달리는 많은 사람을 고쳐 주시고, 또 많은 눈먼 이를 볼 수 있게 해 주셨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요한에게 가서 너희가 보고 들은 것을 전하여라. 눈먼 이들이 보고 다리저는 이들이 제대로 걸으며, 나병 환자들이 깨끗해지고 귀먹은 이들이 들으며, 죽은 이들이 되살아나고 가난한 이들이 복음을 듣는다.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이는 행복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전능하신 아버지, 십자가의 성 요한을 기억하여 바치는 이 예물을 받아들이시고, 저희가 거행하는 주님 수난의 신비를 거룩한 생활로 드러내게 하소서. 우리 주…….
      영성체송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영성체후 기도
      하느님, 성 요한 사제에게 십자가의 신비를 기묘하게 밝혀 주셨으니, 저희가 성체로 힘을 얻고 언제나 그리스도와 하나 되어, 교회 안에서 모든 이의 구원을 위하여 일하게 하소서. 우리 주…….
     
    저녁노을(모니카) 
    
    
    
    
    ♬ 3.sanctus-monastic chants-christdesert(Benedict)
    
    
    
    
    

  2. user#0 님의 말: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이는 행복하다.”

    주님!

    어제는 TV에서 개신교목사님께서 설교 중에 하느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손을 들어보라는 말씀에 설교를 듣던 신자들 거의가 손을 들으니 목사님께서
    모두들 거짓말쟁이라며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라고 하시니 모두들 웃엇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의 그 말씀에 저의 가슴이 찔렸습니다
    거짓말 장이가 바로 저라는 사실이 부끄러웠습니다
    입으로는 언제나 당신을 사랑한다고 했지만 당신을 사랑하기는 고사하고
    당신의말씀을 듣지 않으며 의심까지 할 때도 많았던 자신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이는 행복하다.”

    하신말씀에 얼마나 가슴이 찔리는지………
    사실 요즈음은 당신을 사랑히기는 커녕 당신을 찬미하며 기도하는 시간이 한 시간도
    되지 않은 자신을 생각해보니 제가 당신을 믿기는 한 것인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했습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당신께 의심을 품지 않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하신말씀을 믿으며 당신의 자녀로써
    부끄럽지 않은 신앙인이 되어야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당신의 자녀라면 적어도 당신을 의심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당신의 지녀라면 당신의자녀답게 신앙생활을 해야한다고….
    다짐을 했습니다

    주님!
    당신을 사랑하는 저의 이런마음이 변하지않도록 도와주십시오
    당신의말씀을 믿어야겠다는 마음이 변하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주님!
    저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십시오
    아멘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이는 행복하다.”

    묵상하며

  3. user#0 님의 말: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이는 행복하다.”

    주님!

    어제는 TV에서 개신교목사님께서 설교 중에 하느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손을 들어보라는 말씀에 설교를 듣던 신자들 거의가 손을 들으니 목사님께서
    모두들 거짓말쟁이라며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라고 하시니 모두들 웃엇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의 그 말씀에 저의 가슴이 찔렸습니다
    거짓말 장이가 바로 저라는 사실이 부끄러웠습니다
    입으로는 언제나 당신을 사랑한다고 했지만 당신을 사랑하기는 고사하고
    당신의말씀을 듣지 않으며 의심까지 할 때도 많았던 자신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이는 행복하다.”

    하신말씀에 얼마나 가슴이 찔리는지………
    사실 요즈음은 당신을 사랑히기는 커녕 당신을 찬미하며 기도하는 시간이 한 시간도
    되지 않은 자신을 생각해보니 제가 당신을 믿기는 한 것인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했습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당신께 의심을 품지 않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하신말씀을 믿으며 당신의 자녀로써
    부끄럽지 않은 신앙인이 되어야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당신의 자녀라면 적어도 당신을 의심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당신의 지녀라면 당신의자녀답게 신앙생활을 해야한다고….
    다짐을 했습니다

    주님!
    당신을 사랑하는 저의 이런마음이 변하지않도록 도와주십시오
    당신의말씀을 믿어야겠다는 마음이 변하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주님!
    저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십시오
    아멘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이는 행복하다.”

    묵상하며

  4. user#0 님의 말:

     

    나바태아인의 침략 위협을 받은 헤로데 안티파스는 동쪽 국경을 굳게 지키려고 그들의 왕 아레타 4세의 딸과 정략결혼을 했습니다. 그러나 자기의 이복 동생 헤로데 필립보를 찾아 갔을 때 계수요, 조카벌인 헤로디아를 만나 자기와 결혼하자고 유혹을 했습니다. 허영심에 가득 찬 헤로디아는 인륜을 저버리고 곧 승낙을 했습니다. 이것을 알게 된 아레타의 딸은 쫓겨날 비참한 운명을 비하려고 스스로 친정으로 돌아갔고, 헤로디아는 필립보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딸 살로메를 안티파스의 양녀로 삼아 데리고 갔습니다.

    패륜의 이 한 쌍은 추문을 만들어 냈습니다. 이들의 행위는 간통이요, 가정파괴요, 용서할 수 없는 악행이었습니다. 요한은 이것을 솔직하게 꼬집어 주었습니다. 세례자의 이 비난은 안티파스에게 아물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입혔고, 또 허영심 때문에 패륜의 길을 걷는 헤로디아에게는 복수심을 뿌리박게 했습니다. 하지만 어떠한 위협이나 협박도 세례자 요한의 입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세례자 요한을 감옥에 가두었던 것입니다. 감옥에서 그는 예수님께 제자들을 보냈습니다.


    그때에 18 요한은 자기 제자들 가운데에서 두 사람을 불러

    19 주님께 보내며,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하고 여쭙게 하였다.

    세례자 요한이 제자들을 시켜 물어 보게 한 질문은 당연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메시아의 사자로서 그분의 길을 닦아 놓다가 감옥에 갇히게 된 메시아의 사자. 그는 메시아에 대한 행적을 감옥에서 남들의 말을 통해서 들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왜 예수님께 제자들을 보냈는가?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인지 아닌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제자들을 보냈을까? 아니면 왜?


    1. 세례자 요한은 자기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하여 제자들을 보냈다.

    괴로움을 참은 힘이 쇠약해질 때에는, 성인들에게도 불안이 생기는 일이 있다. 걸려 넘어지지 않는다 해도 그 때 받는 고민은 크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서도 하늘을 향하여 고민의 외침을 하셨는데 하물며 세례자 요한은 오죽했겠는가?

    요한의 제자들은 예수님께  “선생님이 이스라엘이 기대하고 있는 메시아”인가 아닌가를 물었다. 요한이 의심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었다. 메시아로서 지니신 그 사명이 나타내시는 방법에 대해 의심을 품고 있었던 것 같다. 선구자에게도 사람으로서의 약점이 있다. 그의 뛰어난 덕을 완성시키기 위해, 하느님은 신비가로 하여금 고통으로 정화하시는 그 시련의 길을 지나가게 하셨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데도 문제는 있다.

    단순한 초초함에서라면 “선생님, 언제 메시아로서 나타나실 작정이시옵니까?” 하고 물어 보게 하지 않았을까?

    아니면 “당신은 그리스도이시니 그것을 명백히 보여 주십시오” 해야 하지 않았을까?

    따라서 이것은 아니라는 결론이 나온다.


    2. 제자들을 위해 보냈다.

    이것은 힐라리오가 처음으로 제창한 주장이다. 요한 금구, 아우구스띠노, 예로니모, 토마스 아퀴나스,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등이 이것을 지지했다.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말했다.
    “스승을 몹시 존경하고 있었던 요한의 제자들은, 요한의 입으로 그리스도에 대한 말을 듣고 놀랐으며, 예수님께 대해서 요한은 증명을 하였지만, 예수님 자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자기들끼리 말다툼을 하였을 것이다. 그래서 세례자 요한은 그들을 예수님께 보냈다. 내가 의심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너희가 깨닫도록 가 묻고 오너라….내가 언제나 말하고 있던 사실을, 예수님 자신에게 직접 들어 보기 위해. 너희들은 선구자의 말을 들었지만 그것을 심판자의 말씀으로 확인하고 오라…”라고. 그러니까 제자들은 요한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의심을 풀기 위해서 간 것이다. 즉 세례자 요한이 의심해서가 아니라 제자들을 위해서 보낸 것이라는 것이다.

    프란치스코 살레시오는 이렇게 말했다. “세례자 요한은 자기의 제자들이, 예수님보다도 자신을 더 숭상할까 두려워한 나머지, 자기로부터 떠나게 하려고 하였던 것이다…예수님께 가르침을 받으면 좋으리라 생각하여 제자들을 보냈다…”

    요한복음 3,25-26에 보면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질투심을 품고 있었던 것 같다.

    25  그런데 요한의 제자들과 어떤 유대인 사이에 정결례를 두고 논쟁이 벌어졌다.

    26  그래서 그들은 요한에게 가서 “랍비, 요르단강 건너편에서 당신과 함께 있었고 또 당신이 증언한 바 있는 그분이 이젠 세례를 베푸는데 모두 그분에게로 가고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이때 세례자 요한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분은 커져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합니다(30절)”이것을 제자들이 깨닫기 못했기에 죽음을 앞둔 세례자 요한이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낸 것이다.



    3. 예수님 자신을 위해서 보냈다.

    인간 행동의 동기와 목적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제자들을 보낸 것은 그들이 직접 예수님께 가르침을 받도록 하려 한 것 만이었다고 간단히 말할 수많은 없다. 즉 요한은 제자들의 믿음을 굳게 하는 동시에 예수님의 메시아성을 명확히 선언하는 것이었다. 요한이 무엇보다도 갈망하고, 무엇보다도 명예로 여기고 있었던 것은, 예수님을 메시아로서 사람들에게 인정시키는 일, 그것  뿐이었다. 메시아의 사자로서의 사명을 충실하게 수행하고자 한 것이다.

    요한은 자신의 제자들 뿐 아니라 일반 대중을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으로 이끌기 위해 메시아성의 선언을 청했을 것이다.  요한의 믿음이 흔들리고 있다든가, 또 그가 불안에 빠져 있었다고 하는 해석은 복음서에서는 추리될 수가 없다.

    만일 요한이 불신에 의해서 제자들을 보냈다면 제자들을 보낸 다음 하신 요한에 대한 칭찬은 결국 조롱이 되고 만다. 하지만 그것은 조롱이 아니라 칭찬이었다. 그 무엇으로 보답하기 어려운 칭찬이었다.


    20 그 사람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말하였다. “세례자 요한이 저희를 보내어,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하고 여쭈어 보라고 하셨습니다.”

    요한은 감옥에 있으면서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일들을 들었습니다. 병자들을 고쳐 주시고, 죄인을 용서하시고, 기적을 베푸시는 예수님에 대한 소식을…, 그 당시에는 메시아를 “오시기로 되어 있는 분”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요한은 제자들을 위해, 그리고 예수님을 위해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냅니다. 제자들의 믿음을 위해서, 그리고 메시아아의 사자로서의 역할을 위해.

    21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질병과 병고와 악령에 시달리는 많은 사람을 고쳐 주시고, 또 많은 눈먼 이를 볼 수 있게 해 주셨다.


    2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요한에게 가서 너희가 보고 들은 것을 전하여라. 눈먼 이들이 보고 다리 저는 이들이 제대로 걸으며, 나병 환자들이 깨끗해지고 귀먹은 이들이 들으며, 죽은 이들이 되살아나고 가난한 이들이 복음을 듣는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설명하지 않으시고 그저 “너희가 듣고 본 대로 요한에게 알려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듣고 본 대로 바로 예수님은 메시아이심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문득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과연 나는 듣고 본 것을 알리는가? 보지도 않고, 듣지도 못했으면서 그저 부풀려서 말하기만을 좋아하는가? 상대방을 좋은 말로 칭찬하는 것은 참 어렵습니다. 하지만 상대방을 비방하거나 안좋게 말하는 것은 너무도 쉽습니다. 나는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하신 일들을 말씀하십니다. 소경이 보고 절름발이가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해지고…, 이것은 메시아의 시대가 기적의 시대라고 예언한 예언자의 말을 성취시키고 있는 것이며(이사야 26,19 “죽은 자”, 29,18-19 “귀머거리, 가난한 자”, 35,5 “소경과 귀머거리”, 61,1 “억눌린 자”), 메시아 시대에 일어날 일들을 눈으로 보면서 예수님께서 바로 메시아이심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이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물었던 것입니다. 분명히 예수님의 행적은 메시아가 확실한데 자신은 지금 감옥에 갇혀 있으니 제자들을 위해서 말씀해 달라는, 제자들에게 확신을 달라는 그런 요청입니다.

    기적은 메시아의 특징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못하시는 것이 없습니다. 나는 소경을 보게 하고 절름발이를 제대로 걷게 하며 나병환자를 고치지 못하지만 예수님께는 그것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엄청난 것을 예수님께서는 하고자만 하시면 아주 쉽게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바로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23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이는 행복하다.”

    의심을 품는다는 것은 발에 돌에 걸려 쓰러지거나 넘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걸림돌은 남이 쓰러질 기회가 되는 것이나 혹은 사람을 말합니다. 즉 예수님께 결려 넘어지지 않는 사람(“원수까지도 사랑해라”–“어렵지만 해보겠습니다”)은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은 행복하다고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요한의 제자들을 향한 이 말씀은 제자들을 흔들어 놓았을 것입니다. 예수님보다는 세례자 요한을 더 따랐던 그 사람들. 그들의 마음에는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은 요한보다 못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걸림돌입니다. 이제 요한의 제자들은 자신들의 좁은 마음을 버리고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아니 믿게 될 것입니다. 천천히 바뀌어 갈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많은 걸림돌들이 생겨납니다. 예수님께로 가는데 있어서 방해가 되는 것들이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나 또한 다른 어떤 사람에게는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수많은 걸림돌들을 물리치고 예수님께로 당당히 걸어가는 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3.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요한이 제자들을 예수님께로 보낸 이유에 대해서 다른 이들에게 이야기 해 줍시다.


    2. 행동으로 옮겨지는 믿음은 한 순간에 생겨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을 보고서 이제 서서히 예수님께로 향하게 될 것입니다. 나는 어떻습니까? 예수님께로 향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아직도 버티고 있습니까?


  5. user#0 님의 말:

     

    나바태아인의 침략 위협을 받은 헤로데 안티파스는 동쪽 국경을 굳게 지키려고 그들의 왕 아레타 4세의 딸과 정략결혼을 했습니다. 그러나 자기의 이복 동생 헤로데 필립보를 찾아 갔을 때 계수요, 조카벌인 헤로디아를 만나 자기와 결혼하자고 유혹을 했습니다. 허영심에 가득 찬 헤로디아는 인륜을 저버리고 곧 승낙을 했습니다. 이것을 알게 된 아레타의 딸은 쫓겨날 비참한 운명을 비하려고 스스로 친정으로 돌아갔고, 헤로디아는 필립보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딸 살로메를 안티파스의 양녀로 삼아 데리고 갔습니다.

    패륜의 이 한 쌍은 추문을 만들어 냈습니다. 이들의 행위는 간통이요, 가정파괴요, 용서할 수 없는 악행이었습니다. 요한은 이것을 솔직하게 꼬집어 주었습니다. 세례자의 이 비난은 안티파스에게 아물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입혔고, 또 허영심 때문에 패륜의 길을 걷는 헤로디아에게는 복수심을 뿌리박게 했습니다. 하지만 어떠한 위협이나 협박도 세례자 요한의 입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세례자 요한을 감옥에 가두었던 것입니다. 감옥에서 그는 예수님께 제자들을 보냈습니다.


    그때에 18 요한은 자기 제자들 가운데에서 두 사람을 불러

    19 주님께 보내며,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하고 여쭙게 하였다.

    세례자 요한이 제자들을 시켜 물어 보게 한 질문은 당연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메시아의 사자로서 그분의 길을 닦아 놓다가 감옥에 갇히게 된 메시아의 사자. 그는 메시아에 대한 행적을 감옥에서 남들의 말을 통해서 들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왜 예수님께 제자들을 보냈는가?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인지 아닌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제자들을 보냈을까? 아니면 왜?


    1. 세례자 요한은 자기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하여 제자들을 보냈다.

    괴로움을 참은 힘이 쇠약해질 때에는, 성인들에게도 불안이 생기는 일이 있다. 걸려 넘어지지 않는다 해도 그 때 받는 고민은 크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서도 하늘을 향하여 고민의 외침을 하셨는데 하물며 세례자 요한은 오죽했겠는가?

    요한의 제자들은 예수님께  “선생님이 이스라엘이 기대하고 있는 메시아”인가 아닌가를 물었다. 요한이 의심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었다. 메시아로서 지니신 그 사명이 나타내시는 방법에 대해 의심을 품고 있었던 것 같다. 선구자에게도 사람으로서의 약점이 있다. 그의 뛰어난 덕을 완성시키기 위해, 하느님은 신비가로 하여금 고통으로 정화하시는 그 시련의 길을 지나가게 하셨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데도 문제는 있다.

    단순한 초초함에서라면 “선생님, 언제 메시아로서 나타나실 작정이시옵니까?” 하고 물어 보게 하지 않았을까?

    아니면 “당신은 그리스도이시니 그것을 명백히 보여 주십시오” 해야 하지 않았을까?

    따라서 이것은 아니라는 결론이 나온다.


    2. 제자들을 위해 보냈다.

    이것은 힐라리오가 처음으로 제창한 주장이다. 요한 금구, 아우구스띠노, 예로니모, 토마스 아퀴나스,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등이 이것을 지지했다.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말했다.
    “스승을 몹시 존경하고 있었던 요한의 제자들은, 요한의 입으로 그리스도에 대한 말을 듣고 놀랐으며, 예수님께 대해서 요한은 증명을 하였지만, 예수님 자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자기들끼리 말다툼을 하였을 것이다. 그래서 세례자 요한은 그들을 예수님께 보냈다. 내가 의심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너희가 깨닫도록 가 묻고 오너라….내가 언제나 말하고 있던 사실을, 예수님 자신에게 직접 들어 보기 위해. 너희들은 선구자의 말을 들었지만 그것을 심판자의 말씀으로 확인하고 오라…”라고. 그러니까 제자들은 요한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의심을 풀기 위해서 간 것이다. 즉 세례자 요한이 의심해서가 아니라 제자들을 위해서 보낸 것이라는 것이다.

    프란치스코 살레시오는 이렇게 말했다. “세례자 요한은 자기의 제자들이, 예수님보다도 자신을 더 숭상할까 두려워한 나머지, 자기로부터 떠나게 하려고 하였던 것이다…예수님께 가르침을 받으면 좋으리라 생각하여 제자들을 보냈다…”

    요한복음 3,25-26에 보면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질투심을 품고 있었던 것 같다.

    25  그런데 요한의 제자들과 어떤 유대인 사이에 정결례를 두고 논쟁이 벌어졌다.

    26  그래서 그들은 요한에게 가서 “랍비, 요르단강 건너편에서 당신과 함께 있었고 또 당신이 증언한 바 있는 그분이 이젠 세례를 베푸는데 모두 그분에게로 가고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이때 세례자 요한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분은 커져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합니다(30절)”이것을 제자들이 깨닫기 못했기에 죽음을 앞둔 세례자 요한이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낸 것이다.



    3. 예수님 자신을 위해서 보냈다.

    인간 행동의 동기와 목적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제자들을 보낸 것은 그들이 직접 예수님께 가르침을 받도록 하려 한 것 만이었다고 간단히 말할 수많은 없다. 즉 요한은 제자들의 믿음을 굳게 하는 동시에 예수님의 메시아성을 명확히 선언하는 것이었다. 요한이 무엇보다도 갈망하고, 무엇보다도 명예로 여기고 있었던 것은, 예수님을 메시아로서 사람들에게 인정시키는 일, 그것  뿐이었다. 메시아의 사자로서의 사명을 충실하게 수행하고자 한 것이다.

    요한은 자신의 제자들 뿐 아니라 일반 대중을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으로 이끌기 위해 메시아성의 선언을 청했을 것이다.  요한의 믿음이 흔들리고 있다든가, 또 그가 불안에 빠져 있었다고 하는 해석은 복음서에서는 추리될 수가 없다.

    만일 요한이 불신에 의해서 제자들을 보냈다면 제자들을 보낸 다음 하신 요한에 대한 칭찬은 결국 조롱이 되고 만다. 하지만 그것은 조롱이 아니라 칭찬이었다. 그 무엇으로 보답하기 어려운 칭찬이었다.


    20 그 사람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말하였다. “세례자 요한이 저희를 보내어,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하고 여쭈어 보라고 하셨습니다.”

    요한은 감옥에 있으면서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일들을 들었습니다. 병자들을 고쳐 주시고, 죄인을 용서하시고, 기적을 베푸시는 예수님에 대한 소식을…, 그 당시에는 메시아를 “오시기로 되어 있는 분”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요한은 제자들을 위해, 그리고 예수님을 위해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냅니다. 제자들의 믿음을 위해서, 그리고 메시아아의 사자로서의 역할을 위해.

    21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질병과 병고와 악령에 시달리는 많은 사람을 고쳐 주시고, 또 많은 눈먼 이를 볼 수 있게 해 주셨다.


    2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요한에게 가서 너희가 보고 들은 것을 전하여라. 눈먼 이들이 보고 다리 저는 이들이 제대로 걸으며, 나병 환자들이 깨끗해지고 귀먹은 이들이 들으며, 죽은 이들이 되살아나고 가난한 이들이 복음을 듣는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설명하지 않으시고 그저 “너희가 듣고 본 대로 요한에게 알려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듣고 본 대로 바로 예수님은 메시아이심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문득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과연 나는 듣고 본 것을 알리는가? 보지도 않고, 듣지도 못했으면서 그저 부풀려서 말하기만을 좋아하는가? 상대방을 좋은 말로 칭찬하는 것은 참 어렵습니다. 하지만 상대방을 비방하거나 안좋게 말하는 것은 너무도 쉽습니다. 나는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하신 일들을 말씀하십니다. 소경이 보고 절름발이가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해지고…, 이것은 메시아의 시대가 기적의 시대라고 예언한 예언자의 말을 성취시키고 있는 것이며(이사야 26,19 “죽은 자”, 29,18-19 “귀머거리, 가난한 자”, 35,5 “소경과 귀머거리”, 61,1 “억눌린 자”), 메시아 시대에 일어날 일들을 눈으로 보면서 예수님께서 바로 메시아이심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이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물었던 것입니다. 분명히 예수님의 행적은 메시아가 확실한데 자신은 지금 감옥에 갇혀 있으니 제자들을 위해서 말씀해 달라는, 제자들에게 확신을 달라는 그런 요청입니다.

    기적은 메시아의 특징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못하시는 것이 없습니다. 나는 소경을 보게 하고 절름발이를 제대로 걷게 하며 나병환자를 고치지 못하지만 예수님께는 그것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엄청난 것을 예수님께서는 하고자만 하시면 아주 쉽게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바로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23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이는 행복하다.”

    의심을 품는다는 것은 발에 돌에 걸려 쓰러지거나 넘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걸림돌은 남이 쓰러질 기회가 되는 것이나 혹은 사람을 말합니다. 즉 예수님께 결려 넘어지지 않는 사람(“원수까지도 사랑해라”–“어렵지만 해보겠습니다”)은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은 행복하다고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요한의 제자들을 향한 이 말씀은 제자들을 흔들어 놓았을 것입니다. 예수님보다는 세례자 요한을 더 따랐던 그 사람들. 그들의 마음에는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은 요한보다 못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걸림돌입니다. 이제 요한의 제자들은 자신들의 좁은 마음을 버리고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아니 믿게 될 것입니다. 천천히 바뀌어 갈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많은 걸림돌들이 생겨납니다. 예수님께로 가는데 있어서 방해가 되는 것들이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나 또한 다른 어떤 사람에게는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수많은 걸림돌들을 물리치고 예수님께로 당당히 걸어가는 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3.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요한이 제자들을 예수님께로 보낸 이유에 대해서 다른 이들에게 이야기 해 줍시다.


    2. 행동으로 옮겨지는 믿음은 한 순간에 생겨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을 보고서 이제 서서히 예수님께로 향하게 될 것입니다. 나는 어떻습니까? 예수님께로 향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아직도 버티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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