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러운 영아,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연중 제 4주간 월요일(1/30)


    본기도
    다윗은 예언자 나탄이 전한 하느님의 말씀대로 재앙을 겪습니다. 아들 압삽롬에게 쫓겨나 요르단으로 달아납니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악령이 들린 자를 고쳐 주십니다. 주님께서 악령들이 들어가도록 허락하신 돼지 떼는 호수에 빠져 죽게 됩니다(복음).
    말씀의 초대
    예수님께서는 “잠잠해져라. 조용히 하여라!”는 한마디 말씀으로 호수에 이는 거센 돌풍을 잠재우십니다(복음).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우리 가운데에 큰 예언자가 나타났도다.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찾아오셨도다. ◎ 알렐루야.
    복음
    <더러운 영아,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1-20 그때에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은 호수 건너편 게라사인들의 지방으로 갔다. 예수님께서 배에서 내리시자마자,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 무덤에서 나와 그분께 마주 왔다. 그는 무덤에서 살았는데, 어느 누구도 더 이상 그를 쇠사슬로 묶어 둘 수가 없었다. 이미 여러 번 족쇄와 쇠사슬로 묶어 두었으나, 그는 쇠사슬도 끊고 족쇄도 부수어 버려 아무도 그를 휘어잡을 수가 없었다. 그는 밤낮으로 무덤과 산에서 소리를 지르고 돌로 제 몸을 치곤 하였다. 그는 멀리서 예수님을 보고 달려와 그 앞에 엎드려 절하며, 큰 소리로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 당신께서 저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하느님의 이름으로 당신께 말합니다. 저를 괴롭히지 말아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더러운 영아,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하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 하고 물으시자, 그가 “제 이름은 군대입니다. 저희 수가 많기 때문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 자기들을 그 지방 밖으로 쫓아내지 말아 달라고 간곡히 청하였다. 마침 그곳 산 쪽에는 놓아 기르는 많은 돼지 떼가 있었다. 그래서 더러운 영들이 예수님께, “저희를 돼지들에게 보내시어 그 속으로 들어가게 해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예수님께서 허락하시니 더러운 영들이 나와 돼지들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이천 마리쯤 되는 돼지 떼가 호수를 향해 비탈을 내리 달려, 호수에 빠져 죽고 말았다. 돼지를 치던 이들이 달아나 그 고을과 여러 촌락에 알렸다. 사람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려고 왔다. 그들은 예수님께 와서 마귀 들렸던 사람, 곧 군대라는 마귀가 들렸던 사람이 옷을 입고 제정신으로 앉아 있는 것을 보고는 그만 겁이 났다. 그 일을 본 사람들이 마귀 들렸던 이와 돼지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들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그러자 그들은 예수님께 저희 고장에서 떠나 주십사고 청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시자, 마귀 들렸던 이가 예수님께 같이 있게 해 주십사고 청하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허락하지 않으시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집으로 가족들에게 돌아가, 주님께서 너에게 해 주신 일과 자비를 베풀어 주신 일을 모두 알려라.” 그래서 그는 물러가,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해 주신 모든 일을 데카폴리스 지방에 선포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사람들이 모두 놀랐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아버지, 교회가 드리는 이 제사를 굽어보시고, 저희가 성자의 영광스러운 수난 신비에 믿음으로 참여하게 하소서. 우리 주…….
    영성체송
    주님은 나의 목자, 나는 아쉬울 것 없어라. 푸른 풀밭에 나를 쉬게 하시고 잔잔한 물가로 나를 이끄시네.
    영성체 후 묵상
    돼지 떼들이 몰살당하도록 내버려 두신 예수님의 뜻을 제대로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오늘날 돼지들이나 닭들이 구제역이나 조류 독감으로 몰살당하는 경우를 봅니다.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는 일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악의 세력에 대항하여 싸우신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우리도 주님의 편이 되어 악의 세력과 투쟁해야 할 사명을 지닙니다. 어떤 희생을 각오하고서라도 악을 물리쳐야 합니다. 악은 또 다른 악을 부르기 때문입니다.
    영성체후 기도
    주님, 저희가 성체로 힘을 얻고 감사하며 자비를 바라오니, 성령의 힘으로 저희 삶을 변화시켜 주소서. 우리 주…….
 
저녁노을(모니카) 



♬ 9,Kyrie ll Fons Bonitatis[Tropus]-베네딕도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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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러운 영아,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연중 제 4주간 월요일(1/30)


      본기도
      다윗은 예언자 나탄이 전한 하느님의 말씀대로 재앙을 겪습니다. 아들 압삽롬에게 쫓겨나 요르단으로 달아납니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악령이 들린 자를 고쳐 주십니다. 주님께서 악령들이 들어가도록 허락하신 돼지 떼는 호수에 빠져 죽게 됩니다(복음).
      말씀의 초대
      예수님께서는 “잠잠해져라. 조용히 하여라!”는 한마디 말씀으로 호수에 이는 거센 돌풍을 잠재우십니다(복음).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우리 가운데에 큰 예언자가 나타났도다.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찾아오셨도다. ◎ 알렐루야.
      복음
      <더러운 영아,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1-20 그때에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은 호수 건너편 게라사인들의 지방으로 갔다. 예수님께서 배에서 내리시자마자,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 무덤에서 나와 그분께 마주 왔다. 그는 무덤에서 살았는데, 어느 누구도 더 이상 그를 쇠사슬로 묶어 둘 수가 없었다. 이미 여러 번 족쇄와 쇠사슬로 묶어 두었으나, 그는 쇠사슬도 끊고 족쇄도 부수어 버려 아무도 그를 휘어잡을 수가 없었다. 그는 밤낮으로 무덤과 산에서 소리를 지르고 돌로 제 몸을 치곤 하였다. 그는 멀리서 예수님을 보고 달려와 그 앞에 엎드려 절하며, 큰 소리로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 당신께서 저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하느님의 이름으로 당신께 말합니다. 저를 괴롭히지 말아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더러운 영아,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하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 하고 물으시자, 그가 “제 이름은 군대입니다. 저희 수가 많기 때문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 자기들을 그 지방 밖으로 쫓아내지 말아 달라고 간곡히 청하였다. 마침 그곳 산 쪽에는 놓아 기르는 많은 돼지 떼가 있었다. 그래서 더러운 영들이 예수님께, “저희를 돼지들에게 보내시어 그 속으로 들어가게 해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예수님께서 허락하시니 더러운 영들이 나와 돼지들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이천 마리쯤 되는 돼지 떼가 호수를 향해 비탈을 내리 달려, 호수에 빠져 죽고 말았다. 돼지를 치던 이들이 달아나 그 고을과 여러 촌락에 알렸다. 사람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려고 왔다. 그들은 예수님께 와서 마귀 들렸던 사람, 곧 군대라는 마귀가 들렸던 사람이 옷을 입고 제정신으로 앉아 있는 것을 보고는 그만 겁이 났다. 그 일을 본 사람들이 마귀 들렸던 이와 돼지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들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그러자 그들은 예수님께 저희 고장에서 떠나 주십사고 청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시자, 마귀 들렸던 이가 예수님께 같이 있게 해 주십사고 청하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허락하지 않으시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집으로 가족들에게 돌아가, 주님께서 너에게 해 주신 일과 자비를 베풀어 주신 일을 모두 알려라.” 그래서 그는 물러가,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해 주신 모든 일을 데카폴리스 지방에 선포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사람들이 모두 놀랐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아버지, 교회가 드리는 이 제사를 굽어보시고, 저희가 성자의 영광스러운 수난 신비에 믿음으로 참여하게 하소서. 우리 주…….
      영성체송
      주님은 나의 목자, 나는 아쉬울 것 없어라. 푸른 풀밭에 나를 쉬게 하시고 잔잔한 물가로 나를 이끄시네.
      영성체 후 묵상
      돼지 떼들이 몰살당하도록 내버려 두신 예수님의 뜻을 제대로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오늘날 돼지들이나 닭들이 구제역이나 조류 독감으로 몰살당하는 경우를 봅니다.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는 일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악의 세력에 대항하여 싸우신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우리도 주님의 편이 되어 악의 세력과 투쟁해야 할 사명을 지닙니다. 어떤 희생을 각오하고서라도 악을 물리쳐야 합니다. 악은 또 다른 악을 부르기 때문입니다.
      영성체후 기도
      주님, 저희가 성체로 힘을 얻고 감사하며 자비를 바라오니, 성령의 힘으로 저희 삶을 변화시켜 주소서. 우리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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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user#0 님의 말:

     

    예수님께서는 마귀 들린 사람을 치유해 주십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나는 마귀 들린 사람의 치유를 생각하게 되는지, 돼지가 죽어서 입은 경제적 손실을 생각하게 되는지 한번 내 자신을 들여다보면서 어떤 것을 참된 이익으로 생각하면서 살아가고 있는지 생각해 봅시다.


    그때에

    1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은 호수 건너편 게라사인들의 지방으로 갔다.

    게라사는 갈릴래아 호수 동남쪽으로 55km 떨어진 도시로서 그리스 문화의 영향을 크게 받은 요르단 유역 열 도시 가운데 하나였다. 그런데 게라사는 돼지들을 갈릴래아 호수에 빠져죽었다고 얘기하기에는 호수에서 너무 떨어져 있기에 마태오 복음사가는 호수에서 동남쪽으로 불과 10km 떨어진 “가다라”로 전해준다. 그러나 가다라 읍 역시 호수에서 너무 멀기에 이스라엘 지리에 정통한 오리게네스(185-254년경)는 “게르게사”로 고쳤다. 게르게사는 호수 동쪽 물가에 자리 잡은 작은 마을이고 그 남쪽으로 5리 떨어진 곳에 벼랑이 있기 때문에 오늘 말씀과 잘 어울리는 장소였다.


    유다인들이 보기에 게라사는 이방인 지역이라 불결한 곳이고, 무덤 역시 불결한 곳이다. 그리고 불결한 짐승인 돼지를 기르기 때문에 또 한번 불결한 곳이다.


    2 예수님께서 배에서 내리시자마자,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 무덤에서 나와 그분께 마주 왔다.

      이 사람은 더러운 악령에게 사로 잡혀 있으므로 결국 사회에서 추방되어 무덤 사이에서 살게 된 것이다. 그러다가 배에서 내리시는 예수님을 만나게 된 것이다. 사람들은 그를 보면 두려워했지만 예수님은 그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더러운 악령에 들린 사람이 예수님을 두려워하게 될 것입니다.


    3 그는 무덤에서 살았는데, 어느 누구도 더 이상 그를 쇠사슬로 묶어 둘 수가 없었다.

    그가 무덤에 살았다는 것은 공동체에서 추방되었다는 것입니다. 마귀들린 사람이 공동체에서 함께 살기란 어렵습니다. 게다가 어느 누구도 그를 통제할 수가 없었습니다. 쇠사슬도 그에게는 통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4 이미 여러 번 족쇄와 쇠사슬로 묶어 두었으나, 그는 쇠사슬도 끊고 족쇄도 부수어 버려 아무도 그를 휘어잡을 수가 없었다.

    마귀 들린 사람은 족쇄와 쇠사슬을 끊을 힘이 없습니다. 하지만 군대라는 마귀는 이 사람 안에서 커다란 힘을 발휘하여 자신이 거처하고 있는 사람이 힘을 쓸 수 있도록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이 사람의 삶은 비참 그 자체가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5 그는 밤낮으로 무덤과 산에서 소리를 지르고 돌로 제 몸을 치곤 하였다.

    그렇게 괴로움에 지친 그는 고통에 몸부림치면서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을 것입니다. 또한 그는 그렇게 사느니 죽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돌로 제 몸을 치곤 하지 않았을까요? 좌우지간 악령에 들린 그 사람의 삶은 비참 그 자체인 것입니다. 그런 사람을 보았으니 예수님께서 그냥 지나치실 리가 없던 것입니다.


    6 그는 멀리서 예수님을 보고 달려와 그 앞에 엎드려 절하며,

    더러운 악령 들린 사람은 예수님을 보고 달려와 예수님 앞에 엎드려 절하였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악령을 다스리는 권능을 갖고 계신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7 큰 소리로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 당신께서 저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하느님의 이름으로 당신께 말합니다. 저를 괴롭히지 말아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마귀(더러운 영)들은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마귀는 광야에서 유혹할 때는 “만일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시거든…”하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분명히 고백하고 있습니다.

    마귀는 지금 내가 이 사람을 괴롭히고 있는 것과 당신의 일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괴롭히지 말아 달라고 청하고 있습니다.

    마귀는 몰라도 한참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소외되고, 불쌍하고, 마귀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구원하러 오셨다는 것을…,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마귀가 하느님의 이름으로 예수님께 말하는 것입니다. 구마 귀신을 내쫓을 때 흔히 “하느님의 이름으로 너에게 명한다”는 주문을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마귀는 구마자의 주문 흉내를 내고 있습니다. 아마 전에 많이 당한 마귀가 아닌가 생각도 됩니다.(^^)


    8 예수님께서 그에게 “더러운 영아,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하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약하고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의 편입니다. 한번도 고통 속에 있는 사람들을 외면하신 적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더러운 악령에 시달리는 사람을 불쌍히 여기시고, 악령에게 나가라고 명령하셨던 것입니다.


    9 예수님께서 그에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 하고 물으시자, 그가 “제 이름은 군대입니다. 저희 수가 많기 때문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예수님께서는 마귀의 이름을 물으십니다. 흔히 귀신의 정체를 파악해야만 귀신을 추방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런 구마사가 아니기에 물으실 필요도 없으십니다. 그분의 말씀 한마디로 세상이 창조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늘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귀신의 이름을 물으십니다.

    마귀는 자신의 이름을 군대라고 답했습니다. “대부대”라고도 번역했는데 이것은 원문의 레기온을 번역한 것입니다. 레기온은 라틴어 레기오의 음역입니다. 레기오는 6년 명 단위의 로마군 부대를 가리킵니다. 그러니 게라사의 미친 사람에게는 호전적인 로마군 부대와 같은 마귀들이 무수히 달라붙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 그 사람은 얼마나 비참했을까요?


    10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 자기들을 그 지방 밖으로 쫓아내지 말아 달라고 간곡히 청하였다.

    마귀는 자신들을 쫓아내지 말아 달라고 간곡히 청을 합니다. 그는 지옥보다는 사람을 괴롭히면서 사는 것이 훨씬 더 행복했나 봅니다.


    11 마침 그곳 산 쪽에는 놓아기르는 많은 돼지 떼가 있었다.

    그런데 지옥으로 가기 싫은 마귀들은 돼지들에게 눈을 돌립니다. 유다인은 돼지를 기를 수가 없었습니다. 마귀 들린 사람이 살던 곳은 거의 이교도들만이 살고 있었습니다. “비슷한 것끼리는 서로 좋아 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12 그래서 더러운 영들이 예수님께, “저희를 돼지들에게 보내시어 그 속으로 들어가게 해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마귀는 이방인 지역이 살기에 적합한 곳이어서인지 그곳을 떠나려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마귀(더러운 영들)는 자신들이 살기에 적합한 돼지들에게로 옮겨가고 싶다고 말을 합니다. 왜 마귀가 돼지 속으로나 들어가게 해 달라고 원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지옥에 가기보다는 이 세상에 사는 것이 마귀에게는 하나의 위안이었다고 해석한 학자도 있습니다. 그런데 마귀는 살아 있는 돼지 속으로 들어가고 싶었으나 뜻밖에도 그 돼지가 빠져죽었기 때문에 거기에서도 나오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습니다.


    13 예수님께서 허락하시니 더러운 영들이 나와 돼지들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이천 마리쯤 되는 돼지 떼가 호수를 향해 비탈을 내리 달려, 호수에 빠져 죽고 말았다.

    소, 당나귀, 산양, 양 등을 아침마다 목자에게 맡기는 습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2,000마리라는 많은 가축이 한데 모여 있었을까? 하고 의심을 품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그럽게 허락을 하십니다. 그런데 돼지 떼는 바다로 돌진하여 물에 빠져 죽게 됩니다. 어떤 이는 마귀가 사람으로부터 떨어져 나올 때는 무엇인가 물질적인 손해를 끼치기에 그것을 하나의 발악이라고 말하는 학자도 있습니다.


    구마자가 추방령을 내릴 때 마귀더러 짐승에게로 옮겨가라는 말을하는 사례가 있었습니다. 그리스 구마사화에서는 구마자가 귀신더러 “황소 머리로 들어가라. 거기서 고기를 처먹어라. 거기서 피를 빨아라…,”라고 하는 사례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마귀들은 거처를 잘 못 옮긴 것 같습니다. 돼지들에게 붙으면 좋으려니 했겠지만 돼지들이 미쳐서 죄다 익사했으니 마귀들은 큰 실수를 한 것입니다.


    14 돼지를 치던 이들이 달아나 그 고을과 여러 촌락에 알렸다. 사람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려고 왔다.

    돼지를 치던 사람은 이 놀라운 광경을 보고 고을과 여러 촌락에 알렸습니다. “큰일 났습니다. 돼지들이 갑자기 미쳐서 다 빠져 죽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일의 주동자는 바로 예수님이십니다…,”사람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려고 왔습니다.


    15 그들은 예수님께 와서 마귀 들렸던 사람, 곧 군대라는 마귀가 들렸던 사람이 옷을 입고 제정신으로 앉아 있는 것을 보고는 그만 겁이 났다.

    사람들은 군대라는 마귀가 들렸던 사람이 제정신으로 돌아온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하지만 기뻐하지는 않습니다. 쇠사슬로도 통제가 안 되었던 그 사람이 제정신으로 돌아왔지만 오히려 그들은 겁이 났던 것입니다.


    16 그 일을 본 사람들이 마귀 들렸던 이와 돼지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들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그런데 왜 예수님께서는 마귀를 돼지 떼 속으로 들어가도록 허락하셔서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셨을까요? 이런 질문을 수업 시간에 한 학생이 신부님께 했습니다. 그러자 그 신부님께서는 그 학생을 쳐다보지도 않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저 사람은 사람보다는 돼지가 더 중요한가 보지?”

    “인간이 무엇이기에 아니 잊으시나이까? ”라는 시편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17 그러자 그들은 예수님께 저희 고장에서 떠나 주십사고 청하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자신들의 마을 사람 하나를 살렸다는 것은 결코 기뻐하지 않고, 자신들이 입은 경제적 손실만을 걱정하면서 예수님께 떠나 달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무서워서 다니지도 못했던 길을 이제는 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코 반가워하지 않습니다. 어떤 것이 이익인지, 어떤 것이 손해인지는 잘 생각해 봐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것이 이익일까요?  사람을 살리는 것이 이익일까요? 재물을 살리는 것이 이익일까요? 물질적인 손해를 보더라도 영적으로 충만해 질 수 있다면 그것이 이익일까요? 손해일까요?

    예수님께 떠나가 달라고 청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재산의 소유를 소외된 사람들과 노예화된 사람들의 해방보다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의 태도입니다. 무엇보다도 하느님께서는 사람이 살기를 바라십니다. 사람의 생명보다 다른 것을 더 귀중히 여기는 사회는 예수님을 배격하는 사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을 살리시기 위해 몸소  사람이 되셨다는 것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18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시자, 마귀 들렸던 이가 예수님께 같이 있게 해 주십사고 청하였다.

    마귀 들렸던 사람은 이제 자유로워 졌습니다. 그동안 무수한 시련을 당하고, 사람들로부터 외면을 당했습니다. 가족들에게까지 버림을 받아 무덤 사이가 그의 집이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해방시켜준 예수님과 함께  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19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허락하지 않으시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집으로 가족들에게 돌아가, 주님께서 너에게 해 주신 일과 자비를 베풀어 주신 일을 모두 알려라.”

    예수님께서는 악령에 시달리던 사람의 청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집에 돌아가, 주님께서 너에게 해 주신 일과 자비를 베풀어 주신 일ㅇㄹ 모두 알려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즉 복음의 메시지를 이교도 가족들에게 선포하라고 당부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을 따르는 삶입니다.


    20 그래서 그는 물러가,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해 주신 모든 일을 데카폴리스 지방에 선포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사람들이 모두 놀랐다.

    이제  그는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는 자신에게 해 주신 예수님의 놀라우신 일을 전하기 시작합니다. 모든 사람들은 놀랄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 그들은 예수님을 만나길 바라게 될 것이고, 또 기회가 주어진다면 예수님을 믿고 따르게 될 것입니다.


    3.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신앙생활을 하면서 내가 생각하는 이익과 손해는 어떤 것이 있습니다.



    2. 내 자녀가 그렇게 심한 병에 걸려 있다면 나는 돼지 2000마리를 포기하겠습니까? 아니면 돼지 2,000마리를 끌어안고, 자녀를 포기하겠습니까?



  3. user#0 님의 말:

     

    예수님께서는 마귀 들린 사람을 치유해 주십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나는 마귀 들린 사람의 치유를 생각하게 되는지, 돼지가 죽어서 입은 경제적 손실을 생각하게 되는지 한번 내 자신을 들여다보면서 어떤 것을 참된 이익으로 생각하면서 살아가고 있는지 생각해 봅시다.


    그때에

    1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은 호수 건너편 게라사인들의 지방으로 갔다.

    게라사는 갈릴래아 호수 동남쪽으로 55km 떨어진 도시로서 그리스 문화의 영향을 크게 받은 요르단 유역 열 도시 가운데 하나였다. 그런데 게라사는 돼지들을 갈릴래아 호수에 빠져죽었다고 얘기하기에는 호수에서 너무 떨어져 있기에 마태오 복음사가는 호수에서 동남쪽으로 불과 10km 떨어진 “가다라”로 전해준다. 그러나 가다라 읍 역시 호수에서 너무 멀기에 이스라엘 지리에 정통한 오리게네스(185-254년경)는 “게르게사”로 고쳤다. 게르게사는 호수 동쪽 물가에 자리 잡은 작은 마을이고 그 남쪽으로 5리 떨어진 곳에 벼랑이 있기 때문에 오늘 말씀과 잘 어울리는 장소였다.


    유다인들이 보기에 게라사는 이방인 지역이라 불결한 곳이고, 무덤 역시 불결한 곳이다. 그리고 불결한 짐승인 돼지를 기르기 때문에 또 한번 불결한 곳이다.


    2 예수님께서 배에서 내리시자마자,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 무덤에서 나와 그분께 마주 왔다.

      이 사람은 더러운 악령에게 사로 잡혀 있으므로 결국 사회에서 추방되어 무덤 사이에서 살게 된 것이다. 그러다가 배에서 내리시는 예수님을 만나게 된 것이다. 사람들은 그를 보면 두려워했지만 예수님은 그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더러운 악령에 들린 사람이 예수님을 두려워하게 될 것입니다.


    3 그는 무덤에서 살았는데, 어느 누구도 더 이상 그를 쇠사슬로 묶어 둘 수가 없었다.

    그가 무덤에 살았다는 것은 공동체에서 추방되었다는 것입니다. 마귀들린 사람이 공동체에서 함께 살기란 어렵습니다. 게다가 어느 누구도 그를 통제할 수가 없었습니다. 쇠사슬도 그에게는 통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4 이미 여러 번 족쇄와 쇠사슬로 묶어 두었으나, 그는 쇠사슬도 끊고 족쇄도 부수어 버려 아무도 그를 휘어잡을 수가 없었다.

    마귀 들린 사람은 족쇄와 쇠사슬을 끊을 힘이 없습니다. 하지만 군대라는 마귀는 이 사람 안에서 커다란 힘을 발휘하여 자신이 거처하고 있는 사람이 힘을 쓸 수 있도록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이 사람의 삶은 비참 그 자체가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5 그는 밤낮으로 무덤과 산에서 소리를 지르고 돌로 제 몸을 치곤 하였다.

    그렇게 괴로움에 지친 그는 고통에 몸부림치면서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을 것입니다. 또한 그는 그렇게 사느니 죽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돌로 제 몸을 치곤 하지 않았을까요? 좌우지간 악령에 들린 그 사람의 삶은 비참 그 자체인 것입니다. 그런 사람을 보았으니 예수님께서 그냥 지나치실 리가 없던 것입니다.


    6 그는 멀리서 예수님을 보고 달려와 그 앞에 엎드려 절하며,

    더러운 악령 들린 사람은 예수님을 보고 달려와 예수님 앞에 엎드려 절하였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악령을 다스리는 권능을 갖고 계신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7 큰 소리로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 당신께서 저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하느님의 이름으로 당신께 말합니다. 저를 괴롭히지 말아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마귀(더러운 영)들은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마귀는 광야에서 유혹할 때는 “만일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시거든…”하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분명히 고백하고 있습니다.

    마귀는 지금 내가 이 사람을 괴롭히고 있는 것과 당신의 일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괴롭히지 말아 달라고 청하고 있습니다.

    마귀는 몰라도 한참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소외되고, 불쌍하고, 마귀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구원하러 오셨다는 것을…,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마귀가 하느님의 이름으로 예수님께 말하는 것입니다. 구마 귀신을 내쫓을 때 흔히 “하느님의 이름으로 너에게 명한다”는 주문을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마귀는 구마자의 주문 흉내를 내고 있습니다. 아마 전에 많이 당한 마귀가 아닌가 생각도 됩니다.(^^)


    8 예수님께서 그에게 “더러운 영아,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하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약하고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의 편입니다. 한번도 고통 속에 있는 사람들을 외면하신 적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더러운 악령에 시달리는 사람을 불쌍히 여기시고, 악령에게 나가라고 명령하셨던 것입니다.


    9 예수님께서 그에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 하고 물으시자, 그가 “제 이름은 군대입니다. 저희 수가 많기 때문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예수님께서는 마귀의 이름을 물으십니다. 흔히 귀신의 정체를 파악해야만 귀신을 추방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런 구마사가 아니기에 물으실 필요도 없으십니다. 그분의 말씀 한마디로 세상이 창조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늘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귀신의 이름을 물으십니다.

    마귀는 자신의 이름을 군대라고 답했습니다. “대부대”라고도 번역했는데 이것은 원문의 레기온을 번역한 것입니다. 레기온은 라틴어 레기오의 음역입니다. 레기오는 6년 명 단위의 로마군 부대를 가리킵니다. 그러니 게라사의 미친 사람에게는 호전적인 로마군 부대와 같은 마귀들이 무수히 달라붙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 그 사람은 얼마나 비참했을까요?


    10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 자기들을 그 지방 밖으로 쫓아내지 말아 달라고 간곡히 청하였다.

    마귀는 자신들을 쫓아내지 말아 달라고 간곡히 청을 합니다. 그는 지옥보다는 사람을 괴롭히면서 사는 것이 훨씬 더 행복했나 봅니다.


    11 마침 그곳 산 쪽에는 놓아기르는 많은 돼지 떼가 있었다.

    그런데 지옥으로 가기 싫은 마귀들은 돼지들에게 눈을 돌립니다. 유다인은 돼지를 기를 수가 없었습니다. 마귀 들린 사람이 살던 곳은 거의 이교도들만이 살고 있었습니다. “비슷한 것끼리는 서로 좋아 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12 그래서 더러운 영들이 예수님께, “저희를 돼지들에게 보내시어 그 속으로 들어가게 해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마귀는 이방인 지역이 살기에 적합한 곳이어서인지 그곳을 떠나려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마귀(더러운 영들)는 자신들이 살기에 적합한 돼지들에게로 옮겨가고 싶다고 말을 합니다. 왜 마귀가 돼지 속으로나 들어가게 해 달라고 원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지옥에 가기보다는 이 세상에 사는 것이 마귀에게는 하나의 위안이었다고 해석한 학자도 있습니다. 그런데 마귀는 살아 있는 돼지 속으로 들어가고 싶었으나 뜻밖에도 그 돼지가 빠져죽었기 때문에 거기에서도 나오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습니다.


    13 예수님께서 허락하시니 더러운 영들이 나와 돼지들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이천 마리쯤 되는 돼지 떼가 호수를 향해 비탈을 내리 달려, 호수에 빠져 죽고 말았다.

    소, 당나귀, 산양, 양 등을 아침마다 목자에게 맡기는 습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2,000마리라는 많은 가축이 한데 모여 있었을까? 하고 의심을 품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그럽게 허락을 하십니다. 그런데 돼지 떼는 바다로 돌진하여 물에 빠져 죽게 됩니다. 어떤 이는 마귀가 사람으로부터 떨어져 나올 때는 무엇인가 물질적인 손해를 끼치기에 그것을 하나의 발악이라고 말하는 학자도 있습니다.


    구마자가 추방령을 내릴 때 마귀더러 짐승에게로 옮겨가라는 말을하는 사례가 있었습니다. 그리스 구마사화에서는 구마자가 귀신더러 “황소 머리로 들어가라. 거기서 고기를 처먹어라. 거기서 피를 빨아라…,”라고 하는 사례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마귀들은 거처를 잘 못 옮긴 것 같습니다. 돼지들에게 붙으면 좋으려니 했겠지만 돼지들이 미쳐서 죄다 익사했으니 마귀들은 큰 실수를 한 것입니다.


    14 돼지를 치던 이들이 달아나 그 고을과 여러 촌락에 알렸다. 사람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려고 왔다.

    돼지를 치던 사람은 이 놀라운 광경을 보고 고을과 여러 촌락에 알렸습니다. “큰일 났습니다. 돼지들이 갑자기 미쳐서 다 빠져 죽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일의 주동자는 바로 예수님이십니다…,”사람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려고 왔습니다.


    15 그들은 예수님께 와서 마귀 들렸던 사람, 곧 군대라는 마귀가 들렸던 사람이 옷을 입고 제정신으로 앉아 있는 것을 보고는 그만 겁이 났다.

    사람들은 군대라는 마귀가 들렸던 사람이 제정신으로 돌아온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하지만 기뻐하지는 않습니다. 쇠사슬로도 통제가 안 되었던 그 사람이 제정신으로 돌아왔지만 오히려 그들은 겁이 났던 것입니다.


    16 그 일을 본 사람들이 마귀 들렸던 이와 돼지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들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그런데 왜 예수님께서는 마귀를 돼지 떼 속으로 들어가도록 허락하셔서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셨을까요? 이런 질문을 수업 시간에 한 학생이 신부님께 했습니다. 그러자 그 신부님께서는 그 학생을 쳐다보지도 않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저 사람은 사람보다는 돼지가 더 중요한가 보지?”

    “인간이 무엇이기에 아니 잊으시나이까? ”라는 시편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17 그러자 그들은 예수님께 저희 고장에서 떠나 주십사고 청하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자신들의 마을 사람 하나를 살렸다는 것은 결코 기뻐하지 않고, 자신들이 입은 경제적 손실만을 걱정하면서 예수님께 떠나 달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무서워서 다니지도 못했던 길을 이제는 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코 반가워하지 않습니다. 어떤 것이 이익인지, 어떤 것이 손해인지는 잘 생각해 봐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것이 이익일까요?  사람을 살리는 것이 이익일까요? 재물을 살리는 것이 이익일까요? 물질적인 손해를 보더라도 영적으로 충만해 질 수 있다면 그것이 이익일까요? 손해일까요?

    예수님께 떠나가 달라고 청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재산의 소유를 소외된 사람들과 노예화된 사람들의 해방보다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의 태도입니다. 무엇보다도 하느님께서는 사람이 살기를 바라십니다. 사람의 생명보다 다른 것을 더 귀중히 여기는 사회는 예수님을 배격하는 사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을 살리시기 위해 몸소  사람이 되셨다는 것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18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시자, 마귀 들렸던 이가 예수님께 같이 있게 해 주십사고 청하였다.

    마귀 들렸던 사람은 이제 자유로워 졌습니다. 그동안 무수한 시련을 당하고, 사람들로부터 외면을 당했습니다. 가족들에게까지 버림을 받아 무덤 사이가 그의 집이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해방시켜준 예수님과 함께  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19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허락하지 않으시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집으로 가족들에게 돌아가, 주님께서 너에게 해 주신 일과 자비를 베풀어 주신 일을 모두 알려라.”

    예수님께서는 악령에 시달리던 사람의 청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집에 돌아가, 주님께서 너에게 해 주신 일과 자비를 베풀어 주신 일ㅇㄹ 모두 알려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즉 복음의 메시지를 이교도 가족들에게 선포하라고 당부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을 따르는 삶입니다.


    20 그래서 그는 물러가,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해 주신 모든 일을 데카폴리스 지방에 선포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사람들이 모두 놀랐다.

    이제  그는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는 자신에게 해 주신 예수님의 놀라우신 일을 전하기 시작합니다. 모든 사람들은 놀랄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 그들은 예수님을 만나길 바라게 될 것이고, 또 기회가 주어진다면 예수님을 믿고 따르게 될 것입니다.


    3.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신앙생활을 하면서 내가 생각하는 이익과 손해는 어떤 것이 있습니다.



    2. 내 자녀가 그렇게 심한 병에 걸려 있다면 나는 돼지 2000마리를 포기하겠습니까? 아니면 돼지 2,000마리를 끌어안고, 자녀를 포기하겠습니까?



  4. user#0 님의 말:

    “더러운 영아,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올 설날이 주일과 겹친데다 본당에서도 미사댓수가 줄어 주일미사를 빠지게 될까
    걱정을 했는데 타본당이었지만 미사에 참석을 하게되어 주일을 궐하지 않게되니
    얼마나 기쁜지 다른 어느 때보다 하느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더구나 이번 설날에는 딸아이가 없이 지낸다는 생각에 우울하기도 했는데
    새해 첫날 새벽에 아빠 엄마 건강하시라는 전화를 하는 딸아이의 밝은 목소리에
    모든 근심걱정이 사라지는 것같앗습니다
    딸아이에게도 덕담으로 건강하고 아빠엄마가 너를 많아 사랑한다는 말을 하니
    기뻐하는 딸아이의 모습이 보이는 것같앗습니다

    복음을 묵상하면서

    “더러운 영아,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하신말씀에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가끔씩은 하느님을 잊고 있을 때가 많은 저에게도
    예수님께서 “더러운 영아 헬레나에게서 나가라”하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듭니다
    제 안에 언제나 하느님께서 함께 계신다는 생각을 하면 갈등이 생기지도 않을텐데
    가끔식은 하느님께 대한 신뢰와 믿음이 부족하다보니 하느님의 뜻대로 보다는 제 뜻대로
    아니! 제 멋대로 행동할 때가 많으니 …….

    복음을 묵상하면서
    하느님의 자녀로써 그 분의 자녀답개
    그 분께서 원하시는 신앙생활을 하고싶은 마음입니다
    그 분께서 원하시는 신앙생활을…..
    제 뜻이 아닌 제 맛대로가 아닌…..
    하느님을 사랑하며 하느님을 신뢰하며 하느님께서 원하시는신앙인의 모습으로….
    제 안에 있는 시기 질투 겨만 이기심 게으름 모두를 버리고 싶은 오늘입니다
    하느니의 자녀답게 그 분께서 원하시는 신앙인의 모습으로 변화되기를 기도해봅니다

    “더러운 영아,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묵상하며

  5. user#0 님의 말:

    “더러운 영아,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올 설날이 주일과 겹친데다 본당에서도 미사댓수가 줄어 주일미사를 빠지게 될까
    걱정을 했는데 타본당이었지만 미사에 참석을 하게되어 주일을 궐하지 않게되니
    얼마나 기쁜지 다른 어느 때보다 하느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더구나 이번 설날에는 딸아이가 없이 지낸다는 생각에 우울하기도 했는데
    새해 첫날 새벽에 아빠 엄마 건강하시라는 전화를 하는 딸아이의 밝은 목소리에
    모든 근심걱정이 사라지는 것같앗습니다
    딸아이에게도 덕담으로 건강하고 아빠엄마가 너를 많아 사랑한다는 말을 하니
    기뻐하는 딸아이의 모습이 보이는 것같앗습니다

    복음을 묵상하면서

    “더러운 영아,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하신말씀에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가끔씩은 하느님을 잊고 있을 때가 많은 저에게도
    예수님께서 “더러운 영아 헬레나에게서 나가라”하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듭니다
    제 안에 언제나 하느님께서 함께 계신다는 생각을 하면 갈등이 생기지도 않을텐데
    가끔식은 하느님께 대한 신뢰와 믿음이 부족하다보니 하느님의 뜻대로 보다는 제 뜻대로
    아니! 제 멋대로 행동할 때가 많으니 …….

    복음을 묵상하면서
    하느님의 자녀로써 그 분의 자녀답개
    그 분께서 원하시는 신앙생활을 하고싶은 마음입니다
    그 분께서 원하시는 신앙생활을…..
    제 뜻이 아닌 제 맛대로가 아닌…..
    하느님을 사랑하며 하느님을 신뢰하며 하느님께서 원하시는신앙인의 모습으로….
    제 안에 있는 시기 질투 겨만 이기심 게으름 모두를 버리고 싶은 오늘입니다
    하느니의 자녀답게 그 분께서 원하시는 신앙인의 모습으로 변화되기를 기도해봅니다

    “더러운 영아,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묵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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