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


성 바오로 미키와 동료 순교자 기념일(2/6)


    바오로 미키 성인은 1564년에서 1565년 사이에 일본 무사의 아들로 태어나 예수회 대학에서 교육을 받았습니다. 1580년 예수회원이 된 성인은 복음을 선포하여 큰 성과를 이루었으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가톨릭 박해 때 25명의 동료들과 함께 체포되어 1597년 2월 5일 나가사키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순교하였습니다. 그는 1862년 성인 반열에 올랐습니다.
    말씀의 초대
    예수님께서는 호수 건너편 겐네사렛 땅에까지 가셔서 병자들을 고쳐 주십니다(복음).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예수님께서는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백성 가운데에서 병자들을 모두 고쳐 주셨도다. ◎ 알렐루야.
    복음
    <예수님께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53-56 그때에 예수님과 제자들은 호수를 건너 겐네사렛 땅에 이르러 배를 대었다. 그들이 배에서 내리자 사람들은 곧 예수님을 알아보고, 그 지방을 두루 뛰어다니며 병든 이들을 들것에 눕혀, 그분께서 계시다는 곳마다 데려오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마을이든 고을이든 촌락이든 예수님께서 들어가기만 하시면, 장터에 병자들을 데려다 놓고 그 옷자락 술에 그들이 손이라도 대게 해 주십사고 청하였다. 과연 그것에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거룩한 순교자들을 기억하여 드리는 이 예물을 받으시고, 주님의 종인 저희가 언제나 주님의 이름을 찬미하게 하소서. 우리 주…….
    영성체송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너희는 내가 여러 시련을 겪는 동안 나와 함께 있어 준 사람들이니, 나는 너희에게 나라를 주노라. 너희는 내 나라에서 내 식탁에 앉아 먹고 마시리라.”
    영성체 후 묵상
    성전은 하느님께서 계시는 곳입니다. 하느님을 만나는 곳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살아 있는 성전이셨습니다. 예수님에게서 병자들은 하느님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계시지 않는 곳은 더 이상 성전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고 질책하신 사건을 기억하면서, ‘기도하는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조심해야겠습니다.
    영성체후 기도
    하느님, 거룩한 순교자들을 통하여 십자가의 오묘한 신비를 밝혀 주셨으니, 저희가 이 제사로 힘을 얻어 그리스도를 충실히 따르며, 세상 구원을 위하여 형제들과 함께 열심히 일하게 하소서. 우리 주…….
 
저녁노을(모니카)
 



♬ Canto Gregoriano-Salve Festa D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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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성 바오로 미키와 동료 순교자 기념일(2/6)


      바오로 미키 성인은 1564년에서 1565년 사이에 일본 무사의 아들로 태어나 예수회 대학에서 교육을 받았습니다. 1580년 예수회원이 된 성인은 복음을 선포하여 큰 성과를 이루었으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가톨릭 박해 때 25명의 동료들과 함께 체포되어 1597년 2월 5일 나가사키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순교하였습니다. 그는 1862년 성인 반열에 올랐습니다.
      말씀의 초대
      예수님께서는 호수 건너편 겐네사렛 땅에까지 가셔서 병자들을 고쳐 주십니다(복음).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예수님께서는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백성 가운데에서 병자들을 모두 고쳐 주셨도다. ◎ 알렐루야.
      복음
      <예수님께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53-56 그때에 예수님과 제자들은 호수를 건너 겐네사렛 땅에 이르러 배를 대었다. 그들이 배에서 내리자 사람들은 곧 예수님을 알아보고, 그 지방을 두루 뛰어다니며 병든 이들을 들것에 눕혀, 그분께서 계시다는 곳마다 데려오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마을이든 고을이든 촌락이든 예수님께서 들어가기만 하시면, 장터에 병자들을 데려다 놓고 그 옷자락 술에 그들이 손이라도 대게 해 주십사고 청하였다. 과연 그것에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거룩한 순교자들을 기억하여 드리는 이 예물을 받으시고, 주님의 종인 저희가 언제나 주님의 이름을 찬미하게 하소서. 우리 주…….
      영성체송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너희는 내가 여러 시련을 겪는 동안 나와 함께 있어 준 사람들이니, 나는 너희에게 나라를 주노라. 너희는 내 나라에서 내 식탁에 앉아 먹고 마시리라.”
      영성체 후 묵상
      성전은 하느님께서 계시는 곳입니다. 하느님을 만나는 곳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살아 있는 성전이셨습니다. 예수님에게서 병자들은 하느님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계시지 않는 곳은 더 이상 성전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고 질책하신 사건을 기억하면서, ‘기도하는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조심해야겠습니다.
      영성체후 기도
      하느님, 거룩한 순교자들을 통하여 십자가의 오묘한 신비를 밝혀 주셨으니, 저희가 이 제사로 힘을 얻어 그리스도를 충실히 따르며, 세상 구원을 위하여 형제들과 함께 열심히 일하게 하소서. 우리 주…….
     
    저녁노을(모니카)
     
    
    
    
    ♬ Canto Gregoriano-Salve Festa Dies
    
    
    
    
    

  2. user#0 님의 말:

     

    오늘 예수님께서는 겐네사렛에서 많은 이들을 치유해 주십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알아보고 자신의 병을 고치려 하지 않고, 주변의 앓고 있는 사람들을 데려오기 위해 분주합니다. 뛰어 다닙니다. 나는 누구를 위해 신앙생활 합니까(뛰어다닙니까)? 나를 위해서입니까? 아니면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을 위해서입니까?


    53 그들은 호수를 건너 겐네사렛 땅에 이르러 배를 대었다.

    배가 닿은 곳은 겐네사렛입니다. 겐네사렛은 갈릴래아 수도 티베리아와 예수님의 활동 근거지 가파르나움 사이에 있는 평원입니다. 이 평야는 길이 5키로, 폭 1키로 반으로 인구밀도가 높았습니다. 이 평야는 낙원이라 할 만큼 기름졌고, 그 곳에서 나오는 과실의 맛이 뛰어났다고 합니다. 그 맛이 얼마나 좋았던지 랍비들은, 종교행사보다 그 과일을 먹기 위해 축일에 모여들지나 않을까 염려하여 예루살렘에서는 그 과일을 팔지 못하게 했다고도 합니다.


    54 그들이 배에서 내리자 사람들은 곧 예수님을 알아보고,

    예수님께서 배에서 내리시자 사람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았습니다. 위대한 기적가가 온 것을 알았기에 예수님을 바라보는 그들의 얼굴은 기쁨으로 가득 찼을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여서 기뻐했다기 보다는 그들에게 베풀어질 은혜를 생각하면서 기뻐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도 언젠가는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받아들일 날이 있겠지요. 신앙은 한 순간에 커 나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나를 위해서 예수님을 필요로 하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예수님을 위해서 내가 예수님께 해 드릴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되지요. 노력을 하면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야 만이 신앙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는 것 같습니다.



    55 그 지방을 두루 뛰어다니며 병든 이들을 들것에 눕혀, 그분께서 계시다는 곳마다 데려오기 시작하였다.

    사람들은 “뛰어다닙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계실 때,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 도움을 받을 수 있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이들을 들것에 눕혀서 예수님께로 데려왔습니다. 사랑이 많으신 예수님께서는 결코 그들을 외면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56 그리하여 마을이든 고을이든 촌락이든 예수님께서 들어가기만 하시면, 장터에 병자들을 데려다 놓고 그 옷자락 술에 그들이 손이라도 대게 해 주십사고 청하였다. 과연 그것에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

    유다인들은 흰 실과 푸른 실을 꼬아서 옷자락 네 곳에 달았습니다. 이는 신명기 22,121); 민수15,38-392)의 규정을 따른 것인데, 그 취지는 하느님의 계명을 상기하

       너희는 몸에 두를 겉옷 자락 네 귀퉁이에 술을 만들어 달아야 한다.(신명기22,12)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일러라. 그들에게 말하여, 대대로 옷자락에 술을 만들고 그 옷자락 술에 자주색 끈을 달게 하여라. 그리하여 너희가 그것을 볼 때마다, 주님이 모든 계명을 기억하여 실천하고, 너희 마음이나 눈이 쏠리는 것, 너희를 배신으로 이끄는 것에 끌리지 않도록 하는 술이 되게 하여라.(민수15,38-39)


    려는 것이었습니다. 신령한 사람은 치유능력을 지니고 있으며, 그 능력은 접촉을 통해서도 옮겨간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부정한 사람과 접촉하면 그 불결이 전염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께서는 병자들을 모두 고쳐주십니다. 그런데 참된 믿음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병을 고쳐 달라는 부탁이나, 예수님의 치유 능력을 믿는다는 고백에 나타난 것이 나의 신앙의 전부는 아닙니다. 신앙은 말이 없고 단순합니다. 신앙은 외적인 동작을 좋아하고 그분의 옷자락을 만지기를 좋아하며, 그로써 자기 마음속에 있는 것을 모두 표현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신앙의 언어를 들으시고 이해하십니다. 우리도 그렇게 내 몸으로 신앙을 표현해야 할 것입니다. 미신적인 행위로 하지 말고, 말로만 하는 신앙이 아니라 행동으로 옮기는 신앙생활을 해야 할 것입니다.


    3.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지금 내 앞에 예수님께서 걸어가신다면 나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어떤 청을 드리겠습니까? 아니면 예수님 수고하신다고 식사나 기타 편의를 제공하려 하겠습니까?


    2. 예수님께 믿음을 가지고 다가선 사람들은 모두 구원을 받았습니다. 만일 내가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다면 나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내 믿음대로 될 것이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치유되었을까요? 아니면 의심 때문에 그대로일까요?

  3. user#0 님의 말:

     

    오늘 예수님께서는 겐네사렛에서 많은 이들을 치유해 주십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알아보고 자신의 병을 고치려 하지 않고, 주변의 앓고 있는 사람들을 데려오기 위해 분주합니다. 뛰어 다닙니다. 나는 누구를 위해 신앙생활 합니까(뛰어다닙니까)? 나를 위해서입니까? 아니면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을 위해서입니까?


    53 그들은 호수를 건너 겐네사렛 땅에 이르러 배를 대었다.

    배가 닿은 곳은 겐네사렛입니다. 겐네사렛은 갈릴래아 수도 티베리아와 예수님의 활동 근거지 가파르나움 사이에 있는 평원입니다. 이 평야는 길이 5키로, 폭 1키로 반으로 인구밀도가 높았습니다. 이 평야는 낙원이라 할 만큼 기름졌고, 그 곳에서 나오는 과실의 맛이 뛰어났다고 합니다. 그 맛이 얼마나 좋았던지 랍비들은, 종교행사보다 그 과일을 먹기 위해 축일에 모여들지나 않을까 염려하여 예루살렘에서는 그 과일을 팔지 못하게 했다고도 합니다.


    54 그들이 배에서 내리자 사람들은 곧 예수님을 알아보고,

    예수님께서 배에서 내리시자 사람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았습니다. 위대한 기적가가 온 것을 알았기에 예수님을 바라보는 그들의 얼굴은 기쁨으로 가득 찼을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여서 기뻐했다기 보다는 그들에게 베풀어질 은혜를 생각하면서 기뻐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도 언젠가는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받아들일 날이 있겠지요. 신앙은 한 순간에 커 나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나를 위해서 예수님을 필요로 하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예수님을 위해서 내가 예수님께 해 드릴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되지요. 노력을 하면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야 만이 신앙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는 것 같습니다.



    55 그 지방을 두루 뛰어다니며 병든 이들을 들것에 눕혀, 그분께서 계시다는 곳마다 데려오기 시작하였다.

    사람들은 “뛰어다닙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계실 때,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 도움을 받을 수 있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이들을 들것에 눕혀서 예수님께로 데려왔습니다. 사랑이 많으신 예수님께서는 결코 그들을 외면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56 그리하여 마을이든 고을이든 촌락이든 예수님께서 들어가기만 하시면, 장터에 병자들을 데려다 놓고 그 옷자락 술에 그들이 손이라도 대게 해 주십사고 청하였다. 과연 그것에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

    유다인들은 흰 실과 푸른 실을 꼬아서 옷자락 네 곳에 달았습니다. 이는 신명기 22,121); 민수15,38-392)의 규정을 따른 것인데, 그 취지는 하느님의 계명을 상기하

       너희는 몸에 두를 겉옷 자락 네 귀퉁이에 술을 만들어 달아야 한다.(신명기22,12)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일러라. 그들에게 말하여, 대대로 옷자락에 술을 만들고 그 옷자락 술에 자주색 끈을 달게 하여라. 그리하여 너희가 그것을 볼 때마다, 주님이 모든 계명을 기억하여 실천하고, 너희 마음이나 눈이 쏠리는 것, 너희를 배신으로 이끄는 것에 끌리지 않도록 하는 술이 되게 하여라.(민수15,38-39)


    려는 것이었습니다. 신령한 사람은 치유능력을 지니고 있으며, 그 능력은 접촉을 통해서도 옮겨간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부정한 사람과 접촉하면 그 불결이 전염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께서는 병자들을 모두 고쳐주십니다. 그런데 참된 믿음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병을 고쳐 달라는 부탁이나, 예수님의 치유 능력을 믿는다는 고백에 나타난 것이 나의 신앙의 전부는 아닙니다. 신앙은 말이 없고 단순합니다. 신앙은 외적인 동작을 좋아하고 그분의 옷자락을 만지기를 좋아하며, 그로써 자기 마음속에 있는 것을 모두 표현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신앙의 언어를 들으시고 이해하십니다. 우리도 그렇게 내 몸으로 신앙을 표현해야 할 것입니다. 미신적인 행위로 하지 말고, 말로만 하는 신앙이 아니라 행동으로 옮기는 신앙생활을 해야 할 것입니다.


    3.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지금 내 앞에 예수님께서 걸어가신다면 나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어떤 청을 드리겠습니까? 아니면 예수님 수고하신다고 식사나 기타 편의를 제공하려 하겠습니까?


    2. 예수님께 믿음을 가지고 다가선 사람들은 모두 구원을 받았습니다. 만일 내가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다면 나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내 믿음대로 될 것이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치유되었을까요? 아니면 의심 때문에 그대로일까요?

  4. user#0 님의 말:

    “예수님께서 그것에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당신이 좋아 스스로 성당 문을 두드려 교리를 받고 세례를 받았을때
    행복하고 기뻤던 것처럼……

    당신의 말씀을 믿고 가가호호 방문을 하며 당신의 말씀을 전하며
    당신께서 영생을 주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믿으라고….
    당신께서는 살아계시는 하느님이시라는 사실을 믿게 하려 외인들을
    권면하여 성당에 인도했던 예전처럼……..

    언제나 당신을 믿고 의지하겠다고 다짐을 했던 예전의 순수했던 저의
    마음이 변하지 않기를 …..

    당신께 기도드립니다
    당신께서는 손을 대시면 구원을 받을 것이라는 것을
    믿습니다!
    아니!
    믿겠습니다
    아니!
    믿고 싶습니다!
    당신이 좋아 스스로 성당 문을 두드렸던 예전의 그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당신께서는 저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시리라 믿습니다
    아멘

    “예수님께서 그것에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

    묵상하며

  5. user#0 님의 말:

    “예수님께서 그것에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당신이 좋아 스스로 성당 문을 두드려 교리를 받고 세례를 받았을때
    행복하고 기뻤던 것처럼……

    당신의 말씀을 믿고 가가호호 방문을 하며 당신의 말씀을 전하며
    당신께서 영생을 주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믿으라고….
    당신께서는 살아계시는 하느님이시라는 사실을 믿게 하려 외인들을
    권면하여 성당에 인도했던 예전처럼……..

    언제나 당신을 믿고 의지하겠다고 다짐을 했던 예전의 순수했던 저의
    마음이 변하지 않기를 …..

    당신께 기도드립니다
    당신께서는 손을 대시면 구원을 받을 것이라는 것을
    믿습니다!
    아니!
    믿겠습니다
    아니!
    믿고 싶습니다!
    당신이 좋아 스스로 성당 문을 두드렸던 예전의 그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당신께서는 저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시리라 믿습니다
    아멘

    “예수님께서 그것에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

    묵상하며

  6. user#0 님의 말:

    †주님! 당신을 찬미하도록 제 입술을 열어 주소서.

    ‘예수님께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

    예수님!
    이하루를 주신것에 감사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시간에 아니 저녁시간에 받은 저의 스트레스는 너무도 기막히고
    어떻게 풀어야할지 제 스스로도 너무도 감당하기 힘든 1시간 가까이 그 시간이
    지옥을 다녀온 기분이였습니다.
    어린친구한테 제가 왜 그런 대접을 받아야되었는지 너무도 속상했습니다.
    그렇다고 화를 낼 수도 없었구 그 상황을 자세히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그 때 받은
    저의 상처를 어떻게 치유해야되는지…
    情을 더 주는 아이여서인지 그 아이에게 더욱 실망을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아이와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는길에 잊어버리자고 머리를 흔들어버렸습니다.
    그아이는 아무 일없었다는듯이 행동하고 있을것입니다.
    집으로 돌아와 딸아이한테 상황이야기를 하면서 조금은 제 마음이 풀어졌고,
    지금은 이렇게 당신의 말씀을 읽으면서 구원을 받은느낌입니다.아니 구원을
    받았습니다.
    오히려 그 아이를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그아이의 상태를 파악못하고 제 기분만 앞서지않았나하는 후회도됩니다.
    이렇게 오늘도 아녜스는 당신의 구원을 받고있는지도 모릅니다.
    당신의 구원이함께하시기에…

  7. user#0 님의 말:

    †주님! 당신을 찬미하도록 제 입술을 열어 주소서.

    ‘예수님께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

    예수님!
    이하루를 주신것에 감사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시간에 아니 저녁시간에 받은 저의 스트레스는 너무도 기막히고
    어떻게 풀어야할지 제 스스로도 너무도 감당하기 힘든 1시간 가까이 그 시간이
    지옥을 다녀온 기분이였습니다.
    어린친구한테 제가 왜 그런 대접을 받아야되었는지 너무도 속상했습니다.
    그렇다고 화를 낼 수도 없었구 그 상황을 자세히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그 때 받은
    저의 상처를 어떻게 치유해야되는지…
    情을 더 주는 아이여서인지 그 아이에게 더욱 실망을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아이와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는길에 잊어버리자고 머리를 흔들어버렸습니다.
    그아이는 아무 일없었다는듯이 행동하고 있을것입니다.
    집으로 돌아와 딸아이한테 상황이야기를 하면서 조금은 제 마음이 풀어졌고,
    지금은 이렇게 당신의 말씀을 읽으면서 구원을 받은느낌입니다.아니 구원을
    받았습니다.
    오히려 그 아이를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그아이의 상태를 파악못하고 제 기분만 앞서지않았나하는 후회도됩니다.
    이렇게 오늘도 아녜스는 당신의 구원을 받고있는지도 모릅니다.
    당신의 구원이함께하시기에…

  8. user#0 님의 말: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려니….
    예전에 영세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 아니!
    예비자교리를 받을 때부터일 겁니다
    성당에만 가면 그때는 새 성전을 건립할 때여서 조립식으로 가건물을 지어
    미사를 드리고 했는데 예비자교리를 받으면서 평일미사 한번도 거르지 않고
    성당에 가니 신자들이 저를 예비자인줄 모르고 구역회에 나오라고 하여
    구역회에 참석을 하니 그때 복음이 오늘복음말씀이었습니다
    구역자매님들이 돌아가면서 성서말씀을 읽고 느낀 점을 말하는데
    신부님께서 저에게 묵상소감을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때 제가 이렇게 말씀을 드린 기억이 납니다
    “제가 하느님을 믿지 않았다면….
    제가 천주교를 믿게 된 것은…..
    솔직히 아직은 …..
    하느님을 알지 못하지만……..
    제가 스스로 성당을 찾아가 예비자교리를 받는 까닭은…..
    저를 하느님께 인도해주신 분은 신부님도 아니고 수녀님도 아니고
    신자들도 아니고 바로 저의 어머니시라고 했습니다
    불교신자인 저의 어머니께서 제가 어릴 때부터 당신은 절에 다니시면서
    저를 주일이면 헌금을 주시면서 성당에 보내신 덕분에 그 기억이 나서
    성당에 다니기 시작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계시다는 믿음으로 스스로 성당을 찾아가서 교리를 받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아직은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하지만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면 하느님의
    사랑을 개달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성당에 다닌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신앙생활을 하니 힘들고 어려워도 참고 인내하게 되니
    제가 믿을 분은 하느님이라는 생각에 기쁘다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정말 기쁘고 행복했던 기억이 납니다
    하루하루가 얼마나 감사한지 예비자교리를 하면서도 외인권면을 했던 기억이……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그때의 저의 행복했던 기억이 영원하기를 기도해봅니다
    당신을 믿는 마음도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도…….
    지금보다 훨씬 컸던 그 때의 순수하고 맑았던 저의 마음이
    다시 올수 있도록 믿음을 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당신의 대리자라는 생각으로 신부님이나 수녀님들께도 공손하고 존경하는
    마음이 가득했던 영혼이 맑았었는데……..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자신을 성찰해보니 20여년이 지난 지금….
    예전에 순수하고 맑았던 저의 영혼은 어디에 저당을 잡혔는지
    세속에 찌 들은 보잘것없는 신앙가로 변해있는 저의 모습이 부끄럽습니다
    아이들이 아프면 신부님의 수단을 만지기만해도 낫게 될 것이라는 순수했던
    그때의 저의 모습이 그립습니다
    어렵고 고귀하다는 생각에 신부님의 얼굴조차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던
    순수했던 저의 모습이 그립습니다
    세속에 찌 들은 보잘것없는 아낙으로 변한 저의 모습이 부끄럽습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
    말씀을 깊이 새기며 예비자였을 때 순수하고 영혼이 맑았던 헬레나로
    기억해주셧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세속에 찌 들어 교만하고 오만한 이기심 가득한 헬레나는
    잊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을 영원히 사랑하는 헬레나
    당신을 사랑하여 당신을 믿는 헬레나로
    기억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은 사랑이시니까요
    아멘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

    묵상하며

    .

    ♬ 오 주 없인 살 수 없네


    
    
  9. user#0 님의 말: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려니….
    예전에 영세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 아니!
    예비자교리를 받을 때부터일 겁니다
    성당에만 가면 그때는 새 성전을 건립할 때여서 조립식으로 가건물을 지어
    미사를 드리고 했는데 예비자교리를 받으면서 평일미사 한번도 거르지 않고
    성당에 가니 신자들이 저를 예비자인줄 모르고 구역회에 나오라고 하여
    구역회에 참석을 하니 그때 복음이 오늘복음말씀이었습니다
    구역자매님들이 돌아가면서 성서말씀을 읽고 느낀 점을 말하는데
    신부님께서 저에게 묵상소감을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때 제가 이렇게 말씀을 드린 기억이 납니다
    “제가 하느님을 믿지 않았다면….
    제가 천주교를 믿게 된 것은…..
    솔직히 아직은 …..
    하느님을 알지 못하지만……..
    제가 스스로 성당을 찾아가 예비자교리를 받는 까닭은…..
    저를 하느님께 인도해주신 분은 신부님도 아니고 수녀님도 아니고
    신자들도 아니고 바로 저의 어머니시라고 했습니다
    불교신자인 저의 어머니께서 제가 어릴 때부터 당신은 절에 다니시면서
    저를 주일이면 헌금을 주시면서 성당에 보내신 덕분에 그 기억이 나서
    성당에 다니기 시작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계시다는 믿음으로 스스로 성당을 찾아가서 교리를 받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아직은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하지만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면 하느님의
    사랑을 개달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성당에 다닌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신앙생활을 하니 힘들고 어려워도 참고 인내하게 되니
    제가 믿을 분은 하느님이라는 생각에 기쁘다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정말 기쁘고 행복했던 기억이 납니다
    하루하루가 얼마나 감사한지 예비자교리를 하면서도 외인권면을 했던 기억이……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그때의 저의 행복했던 기억이 영원하기를 기도해봅니다
    당신을 믿는 마음도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도…….
    지금보다 훨씬 컸던 그 때의 순수하고 맑았던 저의 마음이
    다시 올수 있도록 믿음을 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당신의 대리자라는 생각으로 신부님이나 수녀님들께도 공손하고 존경하는
    마음이 가득했던 영혼이 맑았었는데……..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자신을 성찰해보니 20여년이 지난 지금….
    예전에 순수하고 맑았던 저의 영혼은 어디에 저당을 잡혔는지
    세속에 찌 들은 보잘것없는 신앙가로 변해있는 저의 모습이 부끄럽습니다
    아이들이 아프면 신부님의 수단을 만지기만해도 낫게 될 것이라는 순수했던
    그때의 저의 모습이 그립습니다
    어렵고 고귀하다는 생각에 신부님의 얼굴조차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던
    순수했던 저의 모습이 그립습니다
    세속에 찌 들은 보잘것없는 아낙으로 변한 저의 모습이 부끄럽습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
    말씀을 깊이 새기며 예비자였을 때 순수하고 영혼이 맑았던 헬레나로
    기억해주셧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세속에 찌 들어 교만하고 오만한 이기심 가득한 헬레나는
    잊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을 영원히 사랑하는 헬레나
    당신을 사랑하여 당신을 믿는 헬레나로
    기억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은 사랑이시니까요
    아멘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

    묵상하며

    .

    ♬ 오 주 없인 살 수 없네


    
    
  10. user#0 님의 말:

     

    겐네사렛에서 병자들을 고치시는 예수님

    53 그들은 호수를 건너 겐네사렛 땅에 이르러 배를 대었다.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신 후,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돌려 보내시고, 제자들은 먼저 겐네사렛으로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산에서 홀로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제자들에게로 돌아가십니다. 그런데 늦은 시간이라 배가 없으니 예수님께서는 물 위를 걸어서 가셨고, 제자들은 무척 놀랐습니다. 역풍을 만나 제자들은 고생하고 있었는데,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시니 바람이 멎었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호수를 건너 겐네사렛 땅에 이른 것입니다.


    54 그들이 배에서 내리자 사람들은 곧 예수님을 알아보고,

    예수님 일행이 배에서 내리자 사람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았습니다.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신 예수님, 병자들을 치유 하시는 예수님, 기적을 베푸시는 예수님, 사랑과 자비가 넘치시는 예수님. 이제 그들의 마음은 바빠지기 시작합니다.


    55 그 지방을 두루 뛰어다니며 병든 이들을 들것에 눕혀, 그분께서 계시다는 곳마다 데려오기 시작하였다.

    예수님을 알아 본 사람들은 뛰어다니기 시작합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 예수님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들을 예수님께로 데려오기 시작합니다.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들을 들것에 눕혀서 예수님께로 데려왔습니다.

    뛰어다니는 사람들, 들것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 그들이 그렇게 수고를 마다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만일 내가 그 자리에 있더라도 그렇게 뛰어 다녔을까요?

    그 모든 것은 환자들에 대한 사랑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뛰어 다니지 않습니다. 사랑이 없으면 들것을 들고 환자들을 데려오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믿었기에 환자들을 데려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런 능력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을 보았고, 알았고, 그리고 믿었기에 환자들을 데려오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다면 나 또한 그렇게 움직여야 합니다.


    56 그리하여 마을이든 고을이든 촌락이든 예수님께서 들어가기만 하시면, 장터에 병자들을 데려다 놓고 그 옷자락 술에 그들이 손이라도 대게 해 주십사고 청하였다. 과연 그것에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께서는 병자들을 모두 고쳐주십니다. 그런데 참된 믿음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병을 고쳐 달라는 부탁이나, 예수님의 치유 능력을 믿는다는 고백에 나타난 것이 나의 신앙의 전부는 아닙니다. 신앙은 말이 없고 단순합니다. 신앙은 외적인 동작을 하게 합니다. 신앙은 그분의 옷자락을 만지게 만들고, 그것만으로도 만족하게 만듭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마음을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는 것으로 표현하고 예수님께서는 그 언어를 이해하시고, 치유해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신앙의 언어를 들으시고 이해하십니다. 우리도 그렇게 내 몸으로 신앙을 표현해야 할 것입니다. 미신적인 행위로 하지 말고, 말로만 하는 신앙이 아니라 행동으로 옮기는 신앙생활을 해야 할 것입니다.

    손을 모으는 것, 무릎을 꿇는 것, 고개를 숙이는 것, 묵주를 손에 쥐고 사는 것, 성경을 가슴에 꼭 품는 것…, 이 모두가 신앙의 언어입니다.


    3.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예수님을 알아보고 환자들을 데려오기 위해서 뛰어 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안에서 내 모습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2. 예수님을 향한 내 마음은 어떻게 표현되고 있습니까? 입술로만 표현되고 있지는 않습니까? 나의 신앙의 언어는 어떤 것입니까?

  11. user#0 님의 말:

     

    겐네사렛에서 병자들을 고치시는 예수님

    53 그들은 호수를 건너 겐네사렛 땅에 이르러 배를 대었다.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신 후,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돌려 보내시고, 제자들은 먼저 겐네사렛으로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산에서 홀로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제자들에게로 돌아가십니다. 그런데 늦은 시간이라 배가 없으니 예수님께서는 물 위를 걸어서 가셨고, 제자들은 무척 놀랐습니다. 역풍을 만나 제자들은 고생하고 있었는데,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시니 바람이 멎었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호수를 건너 겐네사렛 땅에 이른 것입니다.


    54 그들이 배에서 내리자 사람들은 곧 예수님을 알아보고,

    예수님 일행이 배에서 내리자 사람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았습니다.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신 예수님, 병자들을 치유 하시는 예수님, 기적을 베푸시는 예수님, 사랑과 자비가 넘치시는 예수님. 이제 그들의 마음은 바빠지기 시작합니다.


    55 그 지방을 두루 뛰어다니며 병든 이들을 들것에 눕혀, 그분께서 계시다는 곳마다 데려오기 시작하였다.

    예수님을 알아 본 사람들은 뛰어다니기 시작합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 예수님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들을 예수님께로 데려오기 시작합니다.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들을 들것에 눕혀서 예수님께로 데려왔습니다.

    뛰어다니는 사람들, 들것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 그들이 그렇게 수고를 마다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만일 내가 그 자리에 있더라도 그렇게 뛰어 다녔을까요?

    그 모든 것은 환자들에 대한 사랑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뛰어 다니지 않습니다. 사랑이 없으면 들것을 들고 환자들을 데려오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믿었기에 환자들을 데려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런 능력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을 보았고, 알았고, 그리고 믿었기에 환자들을 데려오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다면 나 또한 그렇게 움직여야 합니다.


    56 그리하여 마을이든 고을이든 촌락이든 예수님께서 들어가기만 하시면, 장터에 병자들을 데려다 놓고 그 옷자락 술에 그들이 손이라도 대게 해 주십사고 청하였다. 과연 그것에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께서는 병자들을 모두 고쳐주십니다. 그런데 참된 믿음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병을 고쳐 달라는 부탁이나, 예수님의 치유 능력을 믿는다는 고백에 나타난 것이 나의 신앙의 전부는 아닙니다. 신앙은 말이 없고 단순합니다. 신앙은 외적인 동작을 하게 합니다. 신앙은 그분의 옷자락을 만지게 만들고, 그것만으로도 만족하게 만듭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마음을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는 것으로 표현하고 예수님께서는 그 언어를 이해하시고, 치유해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신앙의 언어를 들으시고 이해하십니다. 우리도 그렇게 내 몸으로 신앙을 표현해야 할 것입니다. 미신적인 행위로 하지 말고, 말로만 하는 신앙이 아니라 행동으로 옮기는 신앙생활을 해야 할 것입니다.

    손을 모으는 것, 무릎을 꿇는 것, 고개를 숙이는 것, 묵주를 손에 쥐고 사는 것, 성경을 가슴에 꼭 품는 것…, 이 모두가 신앙의 언어입니다.


    3.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예수님을 알아보고 환자들을 데려오기 위해서 뛰어 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안에서 내 모습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2. 예수님을 향한 내 마음은 어떻게 표현되고 있습니까? 입술로만 표현되고 있지는 않습니까? 나의 신앙의 언어는 어떤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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