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가톨릭 교도 Altkatholiken

구가톨릭 교도   舊~敎徒  Altkatholiken


  구가톨릭교는 하나의 종교 단체로서, 1871년 제1차 바티칸 공의회를 반대하여 설립되었다. 특히 제1차 바티칸 공의회가 선언한 교황의 무류성에 반대하는 입장을 고수하였다. 구가톨릭교 설립 후 즉시 당시 독일의 학계에서 명망을 누리고 있던 다수의 신학 교수들이 구가톨릭교로 개종하였다. 구가톨릭교는 1871년 독일의 뮌헨(Munchen)에서 있었던 구가톨릭 교도 hgl의에 그 설립의 기원을 두고 있다. 1872년 독일의 쾰른(Koln)에서 개최된 제2차 회의는 주교직의 설정을 결의하였다. 그 당시 독일 제국의 재상이었던 비스마르크(Bismarck)의 승인을 얻어 1873년 7월 4일 브레슬라우(Breslauer)의 교수였던 라인켄스(Josef Hubert Reinkens)를 주교로 선출하였다. 라인켄스는 로테르담(Rotterdam)에서 얀세니즘(Jansenismus)의 색채를 강하게 드러내고 있는 주교 하이캄프(Heykamp v. Deventer)에 의해 주교직에 서임되었다. 구가톨릭교는 각 연방 지역에 국가 교회를 설립하였다.


  구가톨릭 교도들은 하느님, 창조, 삼위일체, 그리스도, 구원 등 그리스도교의 주요 교리를 거의 그대로 수용하였다. 교황의 수위권은 단지 역사적인 의미로만 인정하였다. 즉 교황은 단지 동일한 지위를 누리는 사람들 가운데 첫 번째 사람(Primus inter Pares)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1870년 제1차 바티칸 공의회가 결정한 교황의 무류성에 대해서는 거부하는 태도를 견지하였다. 주교직 그리고 사제직의 성사적 특성은 본질적으로 인정했고, 아울러 성사들을 가톨릭적인 의미로 해석하였다. 뿐만 아니라 연옥에 대한 교리와 죽은 자를 위한 기도의 필요성도 인정하였다. 단지 성지 순례, 성화 공경 그리고 성인들의 유해 공경은 배척하였다. 전례는 처음부터 모국어로 거행하였다. 교회 내의 보편적인 사안에 대해서는 성직자와 평신도로 구성되는 시노드가 최고의 결정권을 행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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