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성주간 화요일(4/11)


    말씀의 초대
    예수님께서는 유다와 베드로의 배신을 예고하십니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서로 사랑할 것을 명하십니다(복음).
    복음 환호송
    ◎ 그리스도님, 찬미와 영광 받으소서. ○ 저희 임금님이신 주님, 주님께서는 아버지께 순종하셨나이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순한 양처럼 십자가에 못 박히러 끌려가셨나이다. ◎ 그리스도님, 찬미와 영광 받으소서.
    복음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닭이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21-33.36-38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식탁에 앉으셔서] 마음이 산란하시어 드러내 놓고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제자들은 누구를 두고 하시는 말씀인지 몰라 어리둥절하여 서로 바라보기만 하였다.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 예수님 품에 기대어 앉아 있었는데, 그는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였다. 그래서 시몬 베드로가 그에게 고갯짓을 하여,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사람이 누구인지 여쭈어 보게 하였다. 그 제자가 예수님께 더 다가가, “주님, 그가 누구입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빵을 적셔서 주는 자가 바로 그 사람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그리고 빵을 적신 다음 그것을 들어 시몬 이스카리옷의 아들 유다에게 주셨다. 유다가 그 빵을 받자 사탄이 그에게 들어갔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유다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하려는 일을 어서 하여라.” 식탁에 함께 앉은 이들은 예수님께서 그에게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아무도 몰랐다. 어떤 이들은 유다가 돈주머니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예수님께서 그에게 축제에 필요한 것을 사라고 하셨거나, 또는 가난한 이들에게 무엇을 주라고 말씀하신 것이려니 생각하였다. 유다는 빵을 받고 바로 밖으로 나갔다. 때는 밤이었다. 유다가 나간 뒤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제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되었고, 또 사람의 아들을 통하여 하느님께서도 영광스럽게 되셨다. 하느님께서 사람의 아들을 통하여 영광스럽게 되셨으면, 하느님께서도 몸소 사람의 아들을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이제 곧 그를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얘들아, 내가 너희와 함께 있는 것도 잠시뿐이다. 너희는 나를 찾을 터인데, 내가 유다인들에게 말한 것처럼 이제 너희에게도 말한다.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올 수 없다.’”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께 “주님, 어디로 가십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다. 그러나 나중에는 따라오게 될 것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베드로가 다시 “주님, 어찌하여 지금은 주님을 따라갈 수 없습니까? 주님을 위해서라면 저는 목숨까지 내놓겠습니다.” 하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나를 위하여 목숨을 내놓겠다는 말이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닭이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주님의 가족이 거룩한 제사에 참여하여 드리는 이 예물을 자비로이 굽어보시고, 풍성한 결실을 거두게 하소서. 우리 주…….
    영성체송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친아드님마저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내어 주셨도다.
    영성체 후 묵상
    사랑 가운데 배신당하지 않으리라고 보장된 사랑이 있습니까? 배신을 각오하고 베풀어지는 주님의 사랑은 도대체 어떤 사랑입니까? 우리는 오늘 두 사람의 배신을 봅니다. 유다 그리고 베드로. 그런데 왜 유다는 절망의 세계로 빠져 들고, 베드로는 회개할 수 있었을까요? 절망과 희망, 그것은 마침내 우리에게 남겨진 선택이 아닐까요?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도 용서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은 영원히 변함없이 보장되어 있습니다.
    영성체후 기도
    주님, 저희가 성체를 받아 모시고 자비를 간구하오니, 현세에서 저희를 길러 주시는 이 성사로써 영원한 생명을 얻어 누리게 하소서. 우리 주…….
 
저녁노을(모니카)
 




♬ Veni Creator Spiritus-베네딕도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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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에 1개의 응답

  1. user#0 님의 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하신말씀에……
    꼭 저에게 하신말씀같아 슬픕니다
    언제나 당신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행동으로 실천하지 못하는 자신
    하루에도 몇번 씩이나 당신을 배반할 때도 있으니…..
    아니!
    세 번이 아니라 삽십 번씩도 배반할 때가 많으니……….

    그런데요 주님!
    마음은 당신을 언제나 사랑하고 믿는다고 하면서도 왜 그렇게
    변할 때가 많으니 참 어렵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것 또한 만만치 않고….
    더구나 요즈음은 봉사는 고사하고 주일마저도 거룩하게 지내지 못할 때도
    있음을 고백합니다
    주일이나 평일이나 대축일 때나……
    그저 하루하루가 바쁘고 정신없이 지내고 있으니 당신을 생각하는 것조차
    잊을 때도 있음을 고백합니다
    어쩌면 복음묵상을 하지 않는다면 냉담도 할 것같은 생각이 드니
    이렇게 엉터리라도 당신께 투정도 하고 고백도 하고 사정도 하는 이 시간이
    없다면 저의 신앙생활은 벌써 끝날 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드니
    그나마 복음묵상을 하면서 잠시동안이라도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며 성찰하는
    시간을 갖을 수있다는 것이 다행입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슬퍼하시는 것같은 당신의 마음이 바로 저의 마음 같아 위로가 되기도 합니다
    죄송하기도하고 …..
    하지만 오늘복음에서 당신께서
    세 번이나 배반할 것이라는 말씀을 깊이 새기며
    그동안의 저의 신앙생활을 반성합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언제나 다짐으로 끝나며 실천하지 못하는 저의 나쁜 습관이
    고쳐지기를 바라며 당신께서 저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셨으면 하는
    바랩을 가져봅니다
    언제나 저에게 속고 계시는 당신께 죄송하지만…….
    미워도 다시한번……
    아니! 언제까지라도….
    저에게 속고 또 속으실지라도 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니!
    봐 주시리라고 굳게 믿습니다
    아멘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묵상하며

  2. user#0 님의 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하신말씀에……
    꼭 저에게 하신말씀같아 슬픕니다
    언제나 당신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행동으로 실천하지 못하는 자신
    하루에도 몇번 씩이나 당신을 배반할 때도 있으니…..
    아니!
    세 번이 아니라 삽십 번씩도 배반할 때가 많으니……….

    그런데요 주님!
    마음은 당신을 언제나 사랑하고 믿는다고 하면서도 왜 그렇게
    변할 때가 많으니 참 어렵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것 또한 만만치 않고….
    더구나 요즈음은 봉사는 고사하고 주일마저도 거룩하게 지내지 못할 때도
    있음을 고백합니다
    주일이나 평일이나 대축일 때나……
    그저 하루하루가 바쁘고 정신없이 지내고 있으니 당신을 생각하는 것조차
    잊을 때도 있음을 고백합니다
    어쩌면 복음묵상을 하지 않는다면 냉담도 할 것같은 생각이 드니
    이렇게 엉터리라도 당신께 투정도 하고 고백도 하고 사정도 하는 이 시간이
    없다면 저의 신앙생활은 벌써 끝날 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드니
    그나마 복음묵상을 하면서 잠시동안이라도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며 성찰하는
    시간을 갖을 수있다는 것이 다행입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슬퍼하시는 것같은 당신의 마음이 바로 저의 마음 같아 위로가 되기도 합니다
    죄송하기도하고 …..
    하지만 오늘복음에서 당신께서
    세 번이나 배반할 것이라는 말씀을 깊이 새기며
    그동안의 저의 신앙생활을 반성합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언제나 다짐으로 끝나며 실천하지 못하는 저의 나쁜 습관이
    고쳐지기를 바라며 당신께서 저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셨으면 하는
    바랩을 가져봅니다
    언제나 저에게 속고 계시는 당신께 죄송하지만…….
    미워도 다시한번……
    아니! 언제까지라도….
    저에게 속고 또 속으실지라도 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니!
    봐 주시리라고 굳게 믿습니다
    아멘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묵상하며

  3. user#0 님의 말:

    오늘 복음 말씀에서는
    수차례 암시되었던 대로 유다의 속마음이
    폭로 됨과 동시에 그는 공회를 향해 떠나감을 봅니다.

    예수님은 이미 오래전부터
    유다의 배신을 예지하고 계셨으며
    이제 유다의 가식과 탐욕은
    더 이상 시간을 끌 필요가 없는 시점에 다다랐음을 느껴봅니다.

    주님!
    근 3년동안 동거동락했던
    그가 배신을 품은체 함께 생활했다는 것에 대해서 곰곰히 생각해 봤습니다.
    교회의 공동체안에서 살다보면 여전히 유다스같은 사람이 암적인 존재로 자라고 있음을 봅니다.
    그런 인간이 바로 공동체 속에 가라지이겠지요.

    좌우지간
    그가 떠난후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해 긴 작별의 말씀을 시작하십니다.
    여기에서 예수님은 당신의 고난과 영광을 미리 알리시며
    제자들도 새 계명으로 서로 사랑하라고 당부의 말씀을 남기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위해 목숨까지 바칠수 있다는 베드로에게
    닭이 울기전에 3번이나 배반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
    유다와 베드로의 모습을 통해 저를 바라봤습니다.
    저도 두 사람의 모습을 다 가지고 살아갑니다.
    베드로처럼 제 편의에 따라 모든 것을 할수 있는 양 장담을 부리기도 하고
    유다처럼 생각과 말과 행위로 주님에게서 멀어지기도 합니다.
    이렇게 인간이기에 저 역시 선과 악의 양면성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갈등하고 힘들어하며 살아가지요.

    주님!
    과거를 돌아보고 당신앞에 나아가면 베드로처럼 순교하는 영광을 얻을 것이겠지요.
    유다처럼 악의 유혹에 빠져 회개하지 않는다면 영원히 죽을겁니다.
    유다가 당신을 배신한 후 회개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주님!
    요즘 사람들한테 질문받는 문제가 있습니다.
    유다가 없었다면 누가 예수님을 팔아 넘겼냐고…
    분명 선택된 누군가가 있어야 하느님의 뜻을 이룰수 있지 않냐고 합니다.
    그러기에 그도 희생자요,인간구원에 한몫을 했다고 합니다.
    그는 악의 역활자로 선택되어진 자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얘기한다면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준것에 대해 얘기를 할까 싶습니다.
    그럼 자유의지라는게 뭘까요…
    외부의 구속이나 제약을 받지 않고
    제 스스로 어떤 목적을 세우고 실행할 수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일겝니다.
    그러기에 선과 악을 선택하고 구별하는 것도
    하느님 몫이 아닌 자신의 몫이라는 것이겠지요.
    그러므로 유다 역시 자신이 선택한 길이었다는 것입니다.

    그가 하느님이 선택한 희생자라고 한다면
    하느님이 당신 아들을 세상에 보낼 필요도 없겠지요.
    그냥 하느님 마음대로 필요할때마다
    유다같은 악한 인간 하나 만들어서 이용하고 없애면 되겠지요.
    그리고 선한 인간만 만들어서 남기면…ㅎㅎㅎ
    그러면 되지 않나요?

    자유를 줬는데
    되려 유다의 배신행위가 당신의 작품이라고 핑계를 댑니다.
    이것이 주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실수 밖에 없는
    원죄의 모습이 아니고 뭘까 싶습니다.
    악은 요상한 논리를 만들어 당신을 거부하게 만듭니다.
    넘어가지 말아야 겠지요.

    주님!
    이렇게 요상한 논리에 흔들리는 마음도 유다의 모습일 것 입니다..
    어떠한 말이라도 흔들리지 않고 성주간을 맞이하여
    저의 과거에 못된 습성과 생활 태도를 벗어던지고
    참되게 당신을 따라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4. user#0 님의 말:

    오늘 복음 말씀에서는
    수차례 암시되었던 대로 유다의 속마음이
    폭로 됨과 동시에 그는 공회를 향해 떠나감을 봅니다.

    예수님은 이미 오래전부터
    유다의 배신을 예지하고 계셨으며
    이제 유다의 가식과 탐욕은
    더 이상 시간을 끌 필요가 없는 시점에 다다랐음을 느껴봅니다.

    주님!
    근 3년동안 동거동락했던
    그가 배신을 품은체 함께 생활했다는 것에 대해서 곰곰히 생각해 봤습니다.
    교회의 공동체안에서 살다보면 여전히 유다스같은 사람이 암적인 존재로 자라고 있음을 봅니다.
    그런 인간이 바로 공동체 속에 가라지이겠지요.

    좌우지간
    그가 떠난후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해 긴 작별의 말씀을 시작하십니다.
    여기에서 예수님은 당신의 고난과 영광을 미리 알리시며
    제자들도 새 계명으로 서로 사랑하라고 당부의 말씀을 남기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위해 목숨까지 바칠수 있다는 베드로에게
    닭이 울기전에 3번이나 배반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
    유다와 베드로의 모습을 통해 저를 바라봤습니다.
    저도 두 사람의 모습을 다 가지고 살아갑니다.
    베드로처럼 제 편의에 따라 모든 것을 할수 있는 양 장담을 부리기도 하고
    유다처럼 생각과 말과 행위로 주님에게서 멀어지기도 합니다.
    이렇게 인간이기에 저 역시 선과 악의 양면성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갈등하고 힘들어하며 살아가지요.

    주님!
    과거를 돌아보고 당신앞에 나아가면 베드로처럼 순교하는 영광을 얻을 것이겠지요.
    유다처럼 악의 유혹에 빠져 회개하지 않는다면 영원히 죽을겁니다.
    유다가 당신을 배신한 후 회개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주님!
    요즘 사람들한테 질문받는 문제가 있습니다.
    유다가 없었다면 누가 예수님을 팔아 넘겼냐고…
    분명 선택된 누군가가 있어야 하느님의 뜻을 이룰수 있지 않냐고 합니다.
    그러기에 그도 희생자요,인간구원에 한몫을 했다고 합니다.
    그는 악의 역활자로 선택되어진 자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얘기한다면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준것에 대해 얘기를 할까 싶습니다.
    그럼 자유의지라는게 뭘까요…
    외부의 구속이나 제약을 받지 않고
    제 스스로 어떤 목적을 세우고 실행할 수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일겝니다.
    그러기에 선과 악을 선택하고 구별하는 것도
    하느님 몫이 아닌 자신의 몫이라는 것이겠지요.
    그러므로 유다 역시 자신이 선택한 길이었다는 것입니다.

    그가 하느님이 선택한 희생자라고 한다면
    하느님이 당신 아들을 세상에 보낼 필요도 없겠지요.
    그냥 하느님 마음대로 필요할때마다
    유다같은 악한 인간 하나 만들어서 이용하고 없애면 되겠지요.
    그리고 선한 인간만 만들어서 남기면…ㅎㅎㅎ
    그러면 되지 않나요?

    자유를 줬는데
    되려 유다의 배신행위가 당신의 작품이라고 핑계를 댑니다.
    이것이 주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실수 밖에 없는
    원죄의 모습이 아니고 뭘까 싶습니다.
    악은 요상한 논리를 만들어 당신을 거부하게 만듭니다.
    넘어가지 말아야 겠지요.

    주님!
    이렇게 요상한 논리에 흔들리는 마음도 유다의 모습일 것 입니다..
    어떠한 말이라도 흔들리지 않고 성주간을 맞이하여
    저의 과거에 못된 습성과 생활 태도를 벗어던지고
    참되게 당신을 따라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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