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초대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시려고 사랑하시는 아들을 보내셨습니다(복음).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도다.
◎ 알렐루야.
복음
<하느님께서 아들을 보내신 것은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3,16-21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
하느님의 외아들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심판은 이러하다. 빛이 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였다.
그들이 하는 일이 악하였기 때문이다.
악을 저지르는 자는 누구나 빛을
미워하고 빛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자기가 한 일이 드러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진리를 실천하는 이는 빛으로 나아간다.
자기가 한 일이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드러내려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하느님, 이 거룩한 제사로 한 분이시며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과 저희를 하나 되게 하셨으니,
하느님께서 진리의 빛이심을 저희가 삶으로 증언하게 하소서.
우리 주…….
영성체송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뽑았으니,
너희는 가서 열매를 맺어 그 열매가 언제나 남아 있게 하여라.”
알렐루야.
영성체 후 묵상
선은 선한 것을 다른 곳에 베풀려는
성향을 본성으로 지닌다고 합니다.
선하신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좋은 것을
전해 주시려고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하십니다.
급기야 사랑하시는 외아들마저 보내십니다.
아브라함의 사랑하는 아들 이사악을 위해서는
따로 양을 마련해 두시면서,
당신께서는 사랑하시는 아들을 인간들을 위하여
기꺼이 희생 제물로 내놓으십니다.
정말 알아듣기 어려운 하느님의 큰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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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1 말씀연구
이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앞 부분의 말씀을 알아야 합니다. 니고데모와의 대화에서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방법은 “물과 성령으로 새로 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새로 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니고데모는 예수님께 의문을 제기하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구약의 구리뱀 사건에 비추어서 당신이 어떤 분이신가를 설명해 주시고,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한 방법이 무엇인가를 말씀해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느님 아버지께 이르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의 죽음을 통해 열어 놓으신 구원의 길. 세상과 인간에 대한 사랑 때문에 당신의 아들을 내어 주신 하느님 아버지. 사랑으로 길을 마련하시고, 그 사랑에로 초대하시는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 “예”하고 응답해야 합니다.
광야에서 하느님께 불순종한 백성들이 불 뱀에 불리게 되어 죽게 되었을 때, 구리 뱀을 쳐다본 사람들이 생명을 얻게 된 것처럼, 죽을 운명을 지닌 우리 인간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입니다.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성령의 권능을 통하여 다시 태어남이 어떻게 이루어지는 가를 설명하십니다. “사람의 아들은 높이 들려야 한다.” 이 말씀의 배경에는 민수기에 나오는 사건 이야기가 있습니다(민수21,4-9). 광야에서 당신께 불평을 일삼는 이스라엘 백성을 벌하시려고, 야훼께서는 그들에게 치명적인 불 뱀을 보내십니다. 그러나 백성들의 회개와 그들을 위한 모세의 간구를 들으시고 야훼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구리뱀을 만들어 장대에 높이 매달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다음 불뱀한테 물린 이스라엘 사람은 누구나 장대 위에 높이 매달린 구리뱀을 쳐다보기만 하면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아들이 높이 들려짐을 구리뱀이 높이 들려짐과 비교하십니다. 높이 들려진 구리 뱀은 쳐다보는 사람들에게 육체적인 생명을 가져다주었습니다. 높이 들려진 사람의 아들은 신앙을 가지고 쳐다보는 사람들에게 구원의 원천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십자가에 높이 매달리실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의 원천에 참여하는 것은 그 원천인 사람의 아들이 높이 들려졌음을 믿음으로써 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세상으로 파견하신 성령으로 다시 태어난 우리는 지금 여기서 영원한 생명인 하느님의 생명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종말론적인 하느님 나라에서 만물과 만사가 그 종말을 고하게 될 먼 미래의 가능성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그 생명이 현존하는 것입니다.
15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의 새로운 탄생의 섭리적 수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례의 의무를 가르쳐 주신 다음, 십자가의 희생 제물의 필요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세례가 지니는 구원적인 효과도 구세주의 수난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것이라고 명백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런 까닭에 구세주이신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은 구원의 필수 조건이라고 결론을 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①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② 이러한 새로운 생명은 사람이 세례를 받음으로써 얻어집니다. ③그것은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속죄의 죽음으로 사람이 얻게 된 것입니다. ④그리스도의 속죄의 제물의 효과에 대한 믿음이 구원의 필수 조건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는 것은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16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단죄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보내신 것이 아니라 구원하시기 위해서 당신의 외아드님을 보내셨습니다.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나를 극진히 사랑하셔서” 즉 사랑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심판자로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분은 우리를 심판하러 오시는 것이 아니라 구원하러 오셨기 때문입니다.
17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그런데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한 가지 조건이 있다. 그것은 바로 믿음입니다. 믿는 이들, 그리고 믿지 않는 이들. 구원을 얻기 위한 단 하나의 수단인데 그것을 얻을 것인가? 아니면 잃은 것인가는 나의 선택에 달린 것입니다. 즉, 빛(예수님)에 대한 나의 태도가 구원을 결정합니다. 빛을 버린다는 것은 진리의 요구에 따라 사는 삶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리를 행하는 사람은 아무런 두려움 없이 빛을 향해 가까이 나아가고, 빛의 비추임 안에서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 빛 안에서 사는 삶….바로 내가 살고 있는 삶입니다.
18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 하느님의 외아들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믿는 이들, 그리고 믿지 않는 이들. 구원을 얻기 위한 단 하나의 수단인데 그것을 얻을 것인가? 아니면 잃은 것인가는 나의 선택에 달린 것입니다. 믿는 것이 훨씬 유익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믿음은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닙니다.
19 그 심판은 이러하다. 빛이 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였다. 그들이 하는 일이 악하였기 때문이다.
빛(예수님)에 대한 나의 태도가 구원을 결정합니다. 빛을 버린다는 것은 진리의 요구에 따라 사는 삶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리를 행하는 사람은 아무런 두려움 없이 빛을 향해 가까이 나아가고, 빛의 비추임 안에서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 빛 안에서 사는 삶…,
20 악을 저지르는 자는 누구나 빛을 미워하고 빛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자기가 한 일이 드러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악을 저지르는 사람은 그 행위가 드러나길 바라지 않습니다. 그러니 자신을 보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기도하지도 않습니다. 기도를 하면 자신의 모든 것들이 떠 오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백성사가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주님은 내가 어둠속에 숨어 살길 원치 않으시고, 털어 버리고 다시 시작하길 바라십니다.
21 그러나 진리를 실천하는 이는 빛으로 나아간다. 자기가 한 일이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드러내려는 것이다.”
진리를 실천한다는 것은 내 삶이 흠도 티도 없다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부족하지만, 매번 넘어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족한 모습을 주님께 인정하고 고개를 숙이는 것입니다. 용서를 청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를 통해 하느님의 일이 세상에 전해질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3.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예수님께서는 니고데모에게 당신의 수난과 죽음을 예고하십니다. 예수님을 믿는 다는 것. 그것은 먼저 예수님께서 왜 이 세상에 오셨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나를 위해 하신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2. 빛과 어두움. 참으로 좋은 표현입니다. 어두움에 있을 때는 빛 속으로 나아가길 거부하는 나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빛 속에 있을 때는 어두움 속으로 들어가길 원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나 자신에게 있어서 빛과 어두움의 경계는 어디입니까? 빛에 드러내기 싫은 부분은 어떤 부분입니까?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1 말씀연구
이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앞 부분의 말씀을 알아야 합니다. 니고데모와의 대화에서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방법은 “물과 성령으로 새로 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새로 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니고데모는 예수님께 의문을 제기하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구약의 구리뱀 사건에 비추어서 당신이 어떤 분이신가를 설명해 주시고,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한 방법이 무엇인가를 말씀해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느님 아버지께 이르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의 죽음을 통해 열어 놓으신 구원의 길. 세상과 인간에 대한 사랑 때문에 당신의 아들을 내어 주신 하느님 아버지. 사랑으로 길을 마련하시고, 그 사랑에로 초대하시는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 “예”하고 응답해야 합니다.
광야에서 하느님께 불순종한 백성들이 불 뱀에 불리게 되어 죽게 되었을 때, 구리 뱀을 쳐다본 사람들이 생명을 얻게 된 것처럼, 죽을 운명을 지닌 우리 인간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입니다.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성령의 권능을 통하여 다시 태어남이 어떻게 이루어지는 가를 설명하십니다. “사람의 아들은 높이 들려야 한다.” 이 말씀의 배경에는 민수기에 나오는 사건 이야기가 있습니다(민수21,4-9). 광야에서 당신께 불평을 일삼는 이스라엘 백성을 벌하시려고, 야훼께서는 그들에게 치명적인 불 뱀을 보내십니다. 그러나 백성들의 회개와 그들을 위한 모세의 간구를 들으시고 야훼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구리뱀을 만들어 장대에 높이 매달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다음 불뱀한테 물린 이스라엘 사람은 누구나 장대 위에 높이 매달린 구리뱀을 쳐다보기만 하면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아들이 높이 들려짐을 구리뱀이 높이 들려짐과 비교하십니다. 높이 들려진 구리 뱀은 쳐다보는 사람들에게 육체적인 생명을 가져다주었습니다. 높이 들려진 사람의 아들은 신앙을 가지고 쳐다보는 사람들에게 구원의 원천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십자가에 높이 매달리실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의 원천에 참여하는 것은 그 원천인 사람의 아들이 높이 들려졌음을 믿음으로써 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세상으로 파견하신 성령으로 다시 태어난 우리는 지금 여기서 영원한 생명인 하느님의 생명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종말론적인 하느님 나라에서 만물과 만사가 그 종말을 고하게 될 먼 미래의 가능성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그 생명이 현존하는 것입니다.
15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의 새로운 탄생의 섭리적 수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례의 의무를 가르쳐 주신 다음, 십자가의 희생 제물의 필요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세례가 지니는 구원적인 효과도 구세주의 수난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것이라고 명백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런 까닭에 구세주이신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은 구원의 필수 조건이라고 결론을 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①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② 이러한 새로운 생명은 사람이 세례를 받음으로써 얻어집니다. ③그것은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속죄의 죽음으로 사람이 얻게 된 것입니다. ④그리스도의 속죄의 제물의 효과에 대한 믿음이 구원의 필수 조건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는 것은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16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단죄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보내신 것이 아니라 구원하시기 위해서 당신의 외아드님을 보내셨습니다.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나를 극진히 사랑하셔서” 즉 사랑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심판자로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분은 우리를 심판하러 오시는 것이 아니라 구원하러 오셨기 때문입니다.
17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그런데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한 가지 조건이 있다. 그것은 바로 믿음입니다. 믿는 이들, 그리고 믿지 않는 이들. 구원을 얻기 위한 단 하나의 수단인데 그것을 얻을 것인가? 아니면 잃은 것인가는 나의 선택에 달린 것입니다. 즉, 빛(예수님)에 대한 나의 태도가 구원을 결정합니다. 빛을 버린다는 것은 진리의 요구에 따라 사는 삶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리를 행하는 사람은 아무런 두려움 없이 빛을 향해 가까이 나아가고, 빛의 비추임 안에서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 빛 안에서 사는 삶….바로 내가 살고 있는 삶입니다.
18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 하느님의 외아들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믿는 이들, 그리고 믿지 않는 이들. 구원을 얻기 위한 단 하나의 수단인데 그것을 얻을 것인가? 아니면 잃은 것인가는 나의 선택에 달린 것입니다. 믿는 것이 훨씬 유익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믿음은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닙니다.
19 그 심판은 이러하다. 빛이 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였다. 그들이 하는 일이 악하였기 때문이다.
빛(예수님)에 대한 나의 태도가 구원을 결정합니다. 빛을 버린다는 것은 진리의 요구에 따라 사는 삶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리를 행하는 사람은 아무런 두려움 없이 빛을 향해 가까이 나아가고, 빛의 비추임 안에서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 빛 안에서 사는 삶…,
20 악을 저지르는 자는 누구나 빛을 미워하고 빛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자기가 한 일이 드러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악을 저지르는 사람은 그 행위가 드러나길 바라지 않습니다. 그러니 자신을 보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기도하지도 않습니다. 기도를 하면 자신의 모든 것들이 떠 오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백성사가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주님은 내가 어둠속에 숨어 살길 원치 않으시고, 털어 버리고 다시 시작하길 바라십니다.
21 그러나 진리를 실천하는 이는 빛으로 나아간다. 자기가 한 일이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드러내려는 것이다.”
진리를 실천한다는 것은 내 삶이 흠도 티도 없다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부족하지만, 매번 넘어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족한 모습을 주님께 인정하고 고개를 숙이는 것입니다. 용서를 청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를 통해 하느님의 일이 세상에 전해질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3.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예수님께서는 니고데모에게 당신의 수난과 죽음을 예고하십니다. 예수님을 믿는 다는 것. 그것은 먼저 예수님께서 왜 이 세상에 오셨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나를 위해 하신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2. 빛과 어두움. 참으로 좋은 표현입니다. 어두움에 있을 때는 빛 속으로 나아가길 거부하는 나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빛 속에 있을 때는 어두움 속으로 들어가길 원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나 자신에게 있어서 빛과 어두움의 경계는 어디입니까? 빛에 드러내기 싫은 부분은 어떤 부분입니까?
†주님! 당신을 찬미하도록 제 입술을 열어 주소서.
‘하느님께서 아들을 보내신 것은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당신의 아들마저 저희를 위해서 보내신 그분의 뜻을 되새기옵니다.
우리는 과연 그만큼 사랑이란 단어를 실천하며 살고있는지…
혹시 받고만 있는것은 아닌지…
아님 받는것도 모르면서 안준다고 아우성은 아닌지…
이런저런 많은 생각을 떠오르게 하는 복음말씀에 오늘 보았던 파아란 하늘
과 따뜻한 오후의 햇살에 감사드리는 오늘이었습니다.
힘들지만 나름대로 긍정적인 생각을 갖게해주신 그분께 감사함을 느꼈던
오늘이었습니다.
저를 통해서 이왕이면 웃음, 행복바이러스가 감염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모 프로의 슬로건처럼 모든사람이 웃음을 찾는 그날까지말입니다.
아드님을 통하여 구원받는 그날까지말입니다. 아멘.
†주님! 당신을 찬미하도록 제 입술을 열어 주소서.
‘하느님께서 아들을 보내신 것은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당신의 아들마저 저희를 위해서 보내신 그분의 뜻을 되새기옵니다.
우리는 과연 그만큼 사랑이란 단어를 실천하며 살고있는지…
혹시 받고만 있는것은 아닌지…
아님 받는것도 모르면서 안준다고 아우성은 아닌지…
이런저런 많은 생각을 떠오르게 하는 복음말씀에 오늘 보았던 파아란 하늘
과 따뜻한 오후의 햇살에 감사드리는 오늘이었습니다.
힘들지만 나름대로 긍정적인 생각을 갖게해주신 그분께 감사함을 느꼈던
오늘이었습니다.
저를 통해서 이왕이면 웃음, 행복바이러스가 감염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모 프로의 슬로건처럼 모든사람이 웃음을 찾는 그날까지말입니다.
아드님을 통하여 구원받는 그날까지말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