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도 믿음이 없느냐?

 

 


예수님과 함께 있음에도 불구하고 풍랑이 거세게 달려들자 제자들은 겁을 먹고 있습니다. 어부들이 겁을 먹을 정도였다면 얼마나 심한 풍랑이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자 예수님의 배에 올라타서 함께 풍랑 속으로 들어가 봅시다.




23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시자 제자들도 그분을 따랐다.


예수님께서는 카파르나움에서 백인 대장의 믿음을 보시고 그의 병든 종을 고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베드로 사도의 장모를 열병에서부터 치유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많은 병자를 고쳐 주셨습니다. 그렇게 당신의 일을 하시려고 이번에는 배에 오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배로 건너편으로 가실 것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피곤한 몸을 배에 실었습니다.




24 그때 호수에 큰 풍랑이 일어 배가 파도에 뒤덮이게 되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주무시고 계셨다.


 겐네사렛 호수는 길이가 20KM, 폭이 10KM로서 서북 혹은 남서풍이 여기로 불어오면 거센 풍랑이 일게 됩니다. 풍랑에 익숙한 어부들이었지만 심한 풍랑 속에서 겁을 먹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주무시고 계십니다. 대자연의 혼란 중에서도 고요히 잠들어 계신 하느님의 아들과 당황하여 어쩔 줄 모르는 이 가냘픈 제자들의 모습은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무척 힘드셨을 것입니다. 수많은 병자를 치유하시려니 지치실 대로 지치셨을 것이다. 그러니 배에 오르시자 마자 그렇게 주무셨고, 누가 업어 가도 모를 만큼(큰 풍랑이 일어 배가 흔들리면 안 일어날 사람이 없을테니) 그렇게 곤하게 주무시고 계셨던 것이다.




그런데 풍랑은 왜 일어났을까? 물론 바람이 부니 그렇게 풍랑이 일어났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강아지가 주인을 만나면 반가워서 어쩔 줄 모르고 이리 뛰고, 저리 뛴다. 강아지는 반가움의 표현이다. 마찬가지로 호수도 그러지 않았을까요? 예수님께서 자신의 위로 지나가시니 반가워서 그렇게 요란하게 예수님께 표현한 것은 아니었을까요?


좌우지간 풍랑이 얼마나 거셌는지 어부였던 제자들이 겁에 질려 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깨우면서 부르짖고 있습니다.


25 제자들이 다가가 예수님을 깨우며, “주님, 구해 주십시오. 저희가 죽게 되었습니다.” 하였다.


주님은 주무시고 계신데 제자들은 겁을 먹고 있으니…그런데 재미있는 사실 하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다에서는 제자들이 훨씬 더 능숙한 사람들 입니다. 그들의 삶의 자리가 바다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자신들이 헤쳐 나갈 생각은 하지 않고 주님을 붙들고 매달립니다. 그런데 그들의 두려움 속에는 그것을 헤쳐 나아갈 방법을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들은 알고 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상황을 바꿔 주시리라는 것을. 그렇지 않았다면 “예수님! 그동안 즐거웠습니다. 이제 이렇게 우리 죽게 되는 것 같습니다…”라고 해야 하지 않았을까요?


바다의 전문가들이 세상의 전문가에 자문을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26 그러자 그분은 “왜 겁을 내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하고 말씀하셨다. 그런 다음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셨다. 그러자 아주 고요해졌다.


예수님의 첫 대답은 부드러운 꾸지람이었습니다. 아마도 피곤한 눈을 비비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을 것 같습니다.


“뭐가 걱정이여. 나도 너희들이랑 같이 있잖느냐?


내가 누구냐? 설마 내가 너희들 버리고 배신을 때리겠냐?


나 아까니 병자들 고치느라고 고생하는 것 봤지?…


바다야..조용히 좀 하거라. 나 무지 피곤하다…”


그래도 제자들이 믿음이 없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믿음이 없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작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작은 믿음만으로는 하느님의 아들에 대한 믿음으로서는 턱없이 모자란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도 믿음이 없느냐? 왜 그렇게 겁이 많으냐?”라는 말씀은 오늘 나에게도 하시는 말씀입니다. 모든 것을 내 뜻대로만 해결하려고 하고, 예수님께는 청하지 않는 나. “혹시 그분이 안 들어 주시면 어떻게 하지?” 하는 의구심과 “설마 그분이 들어주시려고…”하는 불신체념이 더 크게 자리 잡고 있는 나. 그런 나에게 예수님께서는 나의 신앙을 키우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27 그 사람들은 놀라워하며 말하였다. “이분이 어떤 분이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 제자들은 당황했습니다. 말씀 한마디에 풍랑이 잔잔한 호수로 바뀌었으니 말입니다. 어부들은 바다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 바다가 예수님의 말씀 한마디에 잔잔한 호수로 바뀌니 얼마나 놀랬겠습니까?




 내 삶 안에서 그런 경우는 어떤 경우가 있을까요? 성당 다니지 않겠다던 배우자가 갑자기 성당에 다니겠노라고 선언할 때, 얼마나 당황하겠습니까?




부족한 믿음으로 무엇인가를 청했는데 그분께서 들어주시면 얼마나 당황하겠습니까? 그 당황 속에는 자신의 불신에 대한 죄스러움도 포함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능력을 뛰어넘는 예수님 앞에서 “내가 줄은 참 잘 섰지…,”하는 기쁨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감사의 마음으로 앞으로는 굳게 믿을 것을 다짐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3.함께 생각해 봅시다


1. 어려움 속에서 일을 해결하려 할 때 나는 그분께 도움을 청합니까? 아니면 나 스스로 행하고 되지 않으면 포기해 버립니까? 주님께서 들어주신다는 체험이 있습니까?




2.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으신 분입니다. 그런데 그분은 제자들의 청을 결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믿음이 약하다고 크게 탓하지 않으시고 더 키우라고 행동으로 보여 주고 계십니다. 혹시 내 신앙이 커 가는데 있어서 계기가 된 사건이 있었습니까?






이 글은 카테고리: 지난 묵상 보기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