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막달레나는 주님의 부활을 처음으로
알려 준 주님의 여성 제자입니다.
주님께서 수난을 겪으실 때 십자가 죽음의
현장에도 함께 있었던 여인으로 나타납니다.
확인할 길은 없지만, 오빠 라자로와
언니 마르타와 함께 베타니아에서 살았던
마리아와 동일 인물로 여겨집니다.
우리는 복음에서 주님의 시신이나마 모셔 가려 했던,
주님에 대한 성녀의 극진한 사랑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성녀에 대한 공경은 12세기부터
시작되어 서방 교회에 널리 퍼졌습니다.
말씀의 초대
마리아 막달레나는, 비록 돌아가신 주님이시지만
그분을 보려고 무덤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무덤이 빈 것을 알고
시신이나마 찾아보려고 애를 씁니다.
결국 그의 노력은 헛되지 않고
살아 계신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복음).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말하여라, 마리아, 길에서 무엇을 보았는가?
살아 계신 그리스도의 무덤을,
부활하신 분의 영광을 나는 보았노라.
◎ 알렐루야.
복음
<왜 우느냐? 누구를 찾느냐?>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0,1-2.11-18
주간 첫날 이른 아침, 아직도 어두울 때에
마리아 막달레나가 무덤에 가서 보니,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었다.
그래서 그 여자는 시몬 베드로와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였다.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었다.
그렇게 울면서 무덤 쪽으로 몸을 굽혀 들여다보니
하얀 옷을 입은 두 천사가 앉아 있었다.
한 천사는 예수님의 시신이 놓였던
자리 머리맡에, 다른 천사는 발치에 있었다.
그들이 마리아에게 “여인아, 왜 우느냐?” 하고 묻자,
마리아가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누가 저의 주님을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나서 뒤로 돌아선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다.
그러나 예수님이신 줄은 몰랐다.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여인아, 왜 우느냐? 누구를 찾느냐?” 하고 물으셨다.
마리아는 그분을 정원지기로 생각하고,
“선생님, 선생님께서 그분을 옮겨 가셨으면
어디에 모셨는지 저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모셔 가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 “마리아야!” 하고 부르셨다.
마리아는 돌아서서 히브리 말로 “라뿌니!” 하고 불렀다.
이는 ‘스승님!’이라는 뜻이다.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아직 아버지께 올라가지 않았으니
나를 더 이상 붙들지 마라. 내 형제들에게 가서,
‘나는 내 아버지시며 너희의 아버지신 분,
내 하느님이시며 너희의
하느님이신 분께 올라간다.’ 하고 전하여라.”
마리아 막달레나는 제자들에게 가서
“제가 주님을 뵈었습니다.” 하면서,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하신 이 말씀을 전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독생 성자께서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의
사랑이 넘치는 봉사를 인자로이 받아들이셨듯이,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를 기념하며
봉헌하는 이 예물도 기꺼이 받아들이소서. 성자께서는…….
영성체송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다그치니,
살아 있는 이들이 이제는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자기들을 위하여 돌아가셨다가 되살아나신 분을 위하여 사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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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 저의 주님을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긴 병에 효자가 없다는 말이 실감이 나는 요즈음 2년 전부터 서너 달에
한번 정도 돌아가 실 것 같은 친정아버지로 인해 놀라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백수는 아니지만 86세의 고령이라 이제는 사실만큼 사셨다는
생각에 고생하지 않고 돌아 가셧으면 하는 마음이 들 때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런 저의 마음이 진정으로 부모를 생각하기보다는 저의 이기심 때문이라는
사실을 남동생부부를 보면서 깨닫게 되니 얼마나 부끄러운지…….
지난 달에도 돌아가시는 줄 알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며칠동안 일어나지도 못하시던 아버지께서 바깥 불입은 하지 못하지만
집안에서는 거동을 하실 정도로 회복이 되셔서 한시름 놓았다는 생각에
간식만 몇 번 사다드리고 한동안 찾자 뵙지 않았는데 어제저녁
오랜만에 친정에 가니 지난 달 며칠동안만 차도가 있는 듯하시더니 그동안 계속
일어나지도 못하시고 대소변도 가리지 못할 정도로 고생을 하셨다는 것이엇습니다
저를 보시더니 반가워하시는 초췌해지신 아버지를 보니 죄송한 마음도 들었지만
고통 없이 하루빨리 하느님께 가셨으면 하는 마음이 변하지 않는 저의 이기적인 마음에
제 자신이 싫엇습니다
더구나 막내이면서도 부모님을 십여 년씩 모시고 살면서도 용돈과 아프실 때마다
영양제등 좋다는 것은 무엇이든지 사다 드리는 남동생부부를 보면서
미안 한마음도 들고 직장에서 나오는 체력단련비로 아버지께 비싼 홍삼까지
사드린 동생부부를 보면서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신앙인의 모습이 바로 남동생부부의
모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엇습니다
자신도 먹고 싶어도 비싸서 먹지 못한다는 홍삼올 늙으신 부모님께 사다 드리는
효성이 지극한 남동생 부부를 보면서 진정한 신앙인이란 바로 남동생 부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부끄러웠습니다
부모님께 받은 재산도 없는데 집을사서 부모님께 화장실이 있는 안방을 드리는
효성스러운 동생부부가 기특하기도 하고 하느님께 축복을 받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오늘입니다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 누가 저의 주님을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말씀을 깊이 새기며 진정한 신앙인이란 겉 치례가 아닌
몸과 마음 모두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리아 막달레나처럼……
“ 누가 저의 주님을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묵상하며
“ 누가 저의 주님을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긴 병에 효자가 없다는 말이 실감이 나는 요즈음 2년 전부터 서너 달에
한번 정도 돌아가 실 것 같은 친정아버지로 인해 놀라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백수는 아니지만 86세의 고령이라 이제는 사실만큼 사셨다는
생각에 고생하지 않고 돌아 가셧으면 하는 마음이 들 때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런 저의 마음이 진정으로 부모를 생각하기보다는 저의 이기심 때문이라는
사실을 남동생부부를 보면서 깨닫게 되니 얼마나 부끄러운지…….
지난 달에도 돌아가시는 줄 알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며칠동안 일어나지도 못하시던 아버지께서 바깥 불입은 하지 못하지만
집안에서는 거동을 하실 정도로 회복이 되셔서 한시름 놓았다는 생각에
간식만 몇 번 사다드리고 한동안 찾자 뵙지 않았는데 어제저녁
오랜만에 친정에 가니 지난 달 며칠동안만 차도가 있는 듯하시더니 그동안 계속
일어나지도 못하시고 대소변도 가리지 못할 정도로 고생을 하셨다는 것이엇습니다
저를 보시더니 반가워하시는 초췌해지신 아버지를 보니 죄송한 마음도 들었지만
고통 없이 하루빨리 하느님께 가셨으면 하는 마음이 변하지 않는 저의 이기적인 마음에
제 자신이 싫엇습니다
더구나 막내이면서도 부모님을 십여 년씩 모시고 살면서도 용돈과 아프실 때마다
영양제등 좋다는 것은 무엇이든지 사다 드리는 남동생부부를 보면서
미안 한마음도 들고 직장에서 나오는 체력단련비로 아버지께 비싼 홍삼까지
사드린 동생부부를 보면서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신앙인의 모습이 바로 남동생부부의
모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엇습니다
자신도 먹고 싶어도 비싸서 먹지 못한다는 홍삼올 늙으신 부모님께 사다 드리는
효성이 지극한 남동생 부부를 보면서 진정한 신앙인이란 바로 남동생 부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부끄러웠습니다
부모님께 받은 재산도 없는데 집을사서 부모님께 화장실이 있는 안방을 드리는
효성스러운 동생부부가 기특하기도 하고 하느님께 축복을 받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오늘입니다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 누가 저의 주님을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말씀을 깊이 새기며 진정한 신앙인이란 겉 치례가 아닌
몸과 마음 모두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리아 막달레나처럼……
“ 누가 저의 주님을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묵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