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복되신 동정 마리아 모후 기념일(8/22)


    1900년경부터 마리아께 여왕의 영예가 주어져야 한다는 요청이 로마에 쇄도하였습니다. 1925년 그리스도 왕 대축일이 제정된 다음 이러한 요청은 더욱 증가하였습니다. 비오 12세 교황은 회칙 「하늘의 여왕께」 (Ad Coeli Reginam)를 통하여 마리아께서 여왕이심을 선언하고 5월 31일에 그 축일을 지내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나 로마 전례력의 개정에 따라 성모 승천 대축일 뒤로 축일을 옮겼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임금이신 만큼, 마리아께서는 그리스도의 어머니이시며 또한 여왕이십니다. 하늘의 임금님이신 하느님께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시고 중재하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축일은 성모 승천의 충만한 영광을 거듭 확인하고 강조하는 날입니다.
    말씀의 초대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린 사람들은 백 배로 보상받을 것이며 영원한 생명도 얻게 되리라고 선언하십니다(복음).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부유하시면서도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시어, 너희가 그 가난으로 부유해졌도다. ◎ 알렐루야.
    복음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9,23-30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부자는 하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려울 것이다. 내가 다시 너희에게 말한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제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몹시 놀라서, “그렇다면 누가 구원받을 수 있는가?”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눈여겨보며 이르셨다. “사람에게는 그것이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그때에 베드로가 그 말씀을 받아 예수님께 물었다.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 그러니 저희는 무엇을 받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러운 자기 옥좌에 앉게 되는 새 세상이 오면, 나를 따른 너희도 열두 옥좌에 앉아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심판할 것이다. 그리고 내 이름 때문에 집이나 형제나 자매, 아버지나 어머니,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모두 백 배로 받을 것이고 영원한 생명도 받을 것이다. 그런데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동정 마리아를 기념하여 예물을 드리며 간절히 청하오니, 십자가에서 당신 자신을 깨끗한 제물로 바치신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저희 구원이 이루어지게 하소서. 성자께서는…….
    영성체송
    행복하나이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믿으신 분!
    영성체 후 묵상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고 고통 가운데 번민에 싸여 계셨습니다. 그러나 결국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따르시기로 결심하셨습니다. 아버지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따른 아드님 그리스도께 부활의 영광을 준비하여 주셨습니다. 이제 주님께서는 십자가를 지고 당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영원한 생명과 영광스러운 옥좌를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 때문에 포기한 아버지나 어머니, 자녀나 토지 등을 오히려 백 배로 받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도 그 약속을 온전히 믿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영성체후 기도
    주님, 성체를 받아 모시고 간절히 비오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를 공경하며 기념하는 저희가 영원한 천상 잔치에 참여하게 하소서. 우리 주…….
 
저녁노을(모니카)





♬ Canto Gregoriano-Salve Regina[Solem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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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에 1개의 응답

  1. user#0 님의 말: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주님!
    어제에 이어 오늘복음에서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 귀로 빠져나가는 것보다 어렵다는 말씀이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자신의 것을 나누어 주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하지만 왜 그렇게 실천을 한다는 것이 어려운지………
    사실 저는 가진 것도 없지만 약간의 재물을 가지고 있으면서
    만족하기는커녕 언제나 당신께 더 달라고 안달을 합니다
    그러면서 언제나 미사 때마다 간절한 기도를 하는 저를 봅니다
    당신의 뜻에 따라 살겠노라고 무릎을 끓고 또 끓으면서 아주 애절하게……..
    하지만 미사가 끊나면 당신의 뜻에 따라 살겠다는 저의 마음이
    성당을 나가는 순간부터 까맣게 잊고 제 멋대로 제 뜻대로 욕심을 부리고
    재물을 갖고 싶어 안달을 합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저에게는 기본적인 사랑이 없음을 깨닫습니다
    저에게 사랑이 있다면 제 뜻이 아니라 당신의 뜻을 실천하며
    살려고 노력하면서 저보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 제가 가진 약간의 재물을
    나누는 사랑의 실천을 할텐데 언제나 저에게는 가진 것이 없다고 생각하며
    나눔에 인색한 저를 봅니다
    오히려 더 갖지 못해 안달하고 부러워하고 ……..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당신께서 원하시는 사랑이 나눔이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자신이 갖고 있는 것에 감사하며 자신의 것을 어려운 이웃을 위해
    나누며 사랑을 실천하야 하는데 실천을 한다는 것이 참 어렵습니다
    자신의 것을 나누기는커녕 더 갖지 못해 안달하고 어려운 이웃에게
    인색한 저를 보면서 참 신앙인이 되기에는 멀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참 신앙인이란……..
    자신의 것을 나누며 사랑을 실천해야 하는데…….
    육신의 다이어트를 위해서는 온갖 방법을 알고 싶어 하면서
    사랑의 실천을 하면 영혼의 다이어트를 하는 것인데…..
    그 길이 바로 당신께 가는 영생을 얻게 되는 것임을 머리로만
    깨닫는 오늘입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저의 머릿 속에는 육신의 다이어트를 위해 온갖 방법을 알고
    싶어하는 저를 봅니다
    언제나……
    영생을 위한 다이어트를 해야하는데 ……..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묵상하며

  2. user#0 님의 말: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주님!
    어제에 이어 오늘복음에서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 귀로 빠져나가는 것보다 어렵다는 말씀이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자신의 것을 나누어 주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하지만 왜 그렇게 실천을 한다는 것이 어려운지………
    사실 저는 가진 것도 없지만 약간의 재물을 가지고 있으면서
    만족하기는커녕 언제나 당신께 더 달라고 안달을 합니다
    그러면서 언제나 미사 때마다 간절한 기도를 하는 저를 봅니다
    당신의 뜻에 따라 살겠노라고 무릎을 끓고 또 끓으면서 아주 애절하게……..
    하지만 미사가 끊나면 당신의 뜻에 따라 살겠다는 저의 마음이
    성당을 나가는 순간부터 까맣게 잊고 제 멋대로 제 뜻대로 욕심을 부리고
    재물을 갖고 싶어 안달을 합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저에게는 기본적인 사랑이 없음을 깨닫습니다
    저에게 사랑이 있다면 제 뜻이 아니라 당신의 뜻을 실천하며
    살려고 노력하면서 저보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 제가 가진 약간의 재물을
    나누는 사랑의 실천을 할텐데 언제나 저에게는 가진 것이 없다고 생각하며
    나눔에 인색한 저를 봅니다
    오히려 더 갖지 못해 안달하고 부러워하고 ……..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당신께서 원하시는 사랑이 나눔이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자신이 갖고 있는 것에 감사하며 자신의 것을 어려운 이웃을 위해
    나누며 사랑을 실천하야 하는데 실천을 한다는 것이 참 어렵습니다
    자신의 것을 나누기는커녕 더 갖지 못해 안달하고 어려운 이웃에게
    인색한 저를 보면서 참 신앙인이 되기에는 멀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참 신앙인이란……..
    자신의 것을 나누며 사랑을 실천해야 하는데…….
    육신의 다이어트를 위해서는 온갖 방법을 알고 싶어 하면서
    사랑의 실천을 하면 영혼의 다이어트를 하는 것인데…..
    그 길이 바로 당신께 가는 영생을 얻게 되는 것임을 머리로만
    깨닫는 오늘입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저의 머릿 속에는 육신의 다이어트를 위해 온갖 방법을 알고
    싶어하는 저를 봅니다
    언제나……
    영생을 위한 다이어트를 해야하는데 ……..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묵상하며

  3. user#0 님의 말:

     

    풀이 죽어 떠나간 부자 청년. 그는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지 못하고 슬퍼하면서 떠나갑니다. 많은 재산에 대한 집착이 완덕의 이상과 선한 예수님께 대한 애정보다 강하였기 때문입니다. 예로니모 성인은 “가시와 넝쿨이 그의 마음에 예수님께서 뿌리신 씨를 덮어 버렸다”고 말씀하십니다. 만일 청년이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위대한 사도가 되지 않았을까요?


    23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부자는 하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려울 것이다.

    부자는 재물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재물을 자기 생활 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재물이란 인간을 노예화하려는 유혹의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재물을 떠나 완전히 하느님께 마음을 바치지 않는 한 결코 아무도 재물의 유혹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자라면 어느 누구도 하느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재물에 집착하는 이상 하느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재산에 대한 집착을 버린 다는 것은 선행과 공덕을 쌓아 올리는 기회가 되는 것이며 완덕으로 가는 길에 들어서는 것입니다.

     

    24 내가 다시 너희에게 말한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 나가는 것이 더 쉬울 것이다”라는 말씀을 들으면서 내가 얼마나 재물에 집착하고 있는지 느껴야 하겠습니다. 이 재물은 하느님보다 더 크게 생각하고, 집착하고 있는 것들입니다. 그 재물은 물질을 넘어서 자신의 고집일 수도 있고, 취미일 수도 있고, 직장일 일수도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신앙 모임에 못나가요”라는 소리를 듣습니다. 그것이 모두 핑계일 수도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구원에 대한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내가 어떤 선한 일을 해서 당연하게 구원을 요구하겠습니까? 그분께서 주시면 좋고 안주시면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구원을 안주실 리가 없습니다. 내가 해야 될 도리를 다하고 마지막에 “저는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라고 말하는 것. 그것이 바로 구원의 비결 아니겠습니까? 그저 해야 할 일을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의지하지 않고 하느님의 은총에 의지합니다.


    25 제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몹시 놀라서, “그렇다면 누가 구원받을 수 있는가?” 하고 말하였다.

    제자들은 깜짝 놀랍니다. 그렇게 구원이 어려워서야…“구원받을 사람이 아주 소수이거나 아니면 전혀 없단 말인가?” 그런데 구원을 받는 다는 것에 대해서 생각을 해야 합니다. 구원을 너무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서는 안됩니다. 인간은 정당하게 구원을 요구할 권리가 없으며 혼자 힘으로는 구원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도 없습니다.

    게다가 아무런 노력도 없이, 오직 물질에만 집착한다면 그가 구원받을 확률은 얼마나 될까요?


    26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눈여겨보며 이르셨다. “사람에게는 그것이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참된 신앙인은 모든 것을 하느님께 의지합니다. 하느님의 뜻을 찾아서 행동하고, 하느님을 뜻을 실현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노력하는 이들에게 하느님께서는 은총으로 그들을 이끌어 주십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잘못 알아들었습니다. 하느님은 감독관이나 폭군이 아니라 아버지와 같은 분이시라는 것을 전제하고 있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구원으로 이끌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하느님께로 돌아와 당신의 뜻을 알아주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이것을 안다는 것은 노예적인 두려움이나 잔혹한 자학을 유발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사랑의 마음을 낳게 만들어 줍니다. 즉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것들을 하게 만드는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세리였던 자캐오가 어떻게 했는지 생각해 봅시다. 그의 마음은 자발적으로 하느님을 향하여 열렸습니다.


    27 그때에 베드로가 그 말씀을 받아 예수님께 물었다.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 그러니 저희는 무엇을 받겠습니까?”

    부자 청년은 예수님의 부르심을 거절한 반면, 제자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의 부르심에 따랐습니다. 배와 그물을 버리고, 가족을 떠나서 예수님을 따르고 있습니다. 베드로의 이 말은 약간 이기적인 것처럼 들리지만 예수님께서 청년에게 그가 가지고 있는 재화 대신 줄 상으로서 하늘의 보화를 약속하였으니 예수님을 따르고 있는 제자들에게는 나름대로 보답이 있을 것임을 기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그물을 버리고, 배를 버리고, 가족을 버리고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이제 제자들이 버려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버렸다는 그 마음까지도 버려야 하지 않을까요?


    28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러운 자기 옥좌에 앉게 되는 새 세상이 오면, 나를 따른 너희도 열두 옥좌에 앉아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심판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커다란 것을 약속하십니다. “열 두 옥좌에 앉아 열 두 지파를 심판하게 될 권한” 이스라엘의 12지파는 보편성을 띤 교회를 말합니다. 즉 예수님에 의해 구원을 받은 새로운 이스라엘의 지파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새 세상을 말씀하시는데 이것은 사람의 아들이 오심으로써 시작될 것이며 심판과 더불어 이루어질 세상입니다. 그분은 영광스러운 왕좌에 앉아 판결을 내리실 것이고 열두 제자들은 예수님의 곁에 보좌관으로 앉아 예수님과 함께 판결을 내릴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너희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맞아들이는 사람이며 나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맞아들이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 수난과 죽음까지 함께 할 제자들에게 영광의 날을 줄 것임을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29 그리고 내 이름 때문에 집이나 형제나 자매, 아버지나 어머니,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모두 백 배로 받을 것이고 영원한 생명도 받을 것이다.

    보상을 바라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지는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다보니 물질적인 것들이나 인간적인 것들을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다보니 예수님께서는 더 많은 축복을 내려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이 말씀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성당 다닌다고 차례나 제사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심지어는 그런 것들을 피하기 위해 성당에 다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고, 차례를 지내지 않는다고…

    버린다는 것을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먼저 사도들의 시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모든 크리스챤들은 형제라고 불립니다. 하느님 안에 한 형제 자매인 것입니다. 믿지 않는 가족들을 떠나 믿는 신앙의 형제들 품으로 왔을 때 그는 신앙으로 맺어진 형제 자매들을 무수히 얻게 됩니다. 또 사랑 때문에 가난한 형제들에게 풍요한 은혜의 손길을 내밀었습니다(사도11,29-30;갈라2,10;2고린8,1-9,15). 그래서 이들은 세례를 받고 집과 밭도 얻었으며 수많은 형제 자매들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약속된 축복 속에는 박해도 감수해야 함을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예수님 때문에 가족을 버린다는 것은 어떤 뜻일까요?

    복음을 전하는 사제나 수도자들을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그들은 집을 떠나 주님께서 원하시는 곳으로 향합니다. 그렇다고 가족을 완전히 잊은 것은 아닙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과 가족에 대한 일이 서로 상충될 때 이들은 모두 복음을 전하는 일을 우선적으로 선택합니다.

    사실 우리가 가족을 완전히 버릴 수는 없습니다. 그들은 나를 낳아 주신 분이요, 키워 주신 분이요, 함께 피를 나눈 형제들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런 이유들이 복음을 전하는 데 방해가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30 그런데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첫째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사람을 말하고 꼴찌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부자청년이 지금은 모든 것을 잘 지키고 살아가고 있지만 재물에 연연하면서 살아간다면 그는 결국 구원에서 멀어질 것입니다. 사도들이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지만 엉뚱한 것에 집착하거나 잘못된 이상을 품는다면 그들 또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입니다.

    지금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주님 뜻대로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구원의 문에 바짝 다가가 있은 것입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 제자들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할 것입니다. 내가 그것을 차지할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주실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율법학자들을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아마도 바리사이파 사람들이나 율법학자들은 그들이 열두 옥좌에 앉게 될 것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백성들을 위해서 율법을 가르치고, 신앙의 모범을 보여 왔고, 나름대로 열심히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열정으로 하느님을 모독한다고 하느님을 박해하고, 마침내 메시아를 십자가에 못 박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첫째라고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결국 꼴찌가 될 것입니다.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재산을 버리라는 말씀 안에서 “내가 가진 기존의 낡은 신앙의 틀, 고정관념, 그리고 교만에 얼룩진 신앙”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어야 했는데 그들은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3. 함께 생각해 봅시다

    1.신앙생활하면서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성당에도 잘 나가고, 기도도 열심히 합니다. 그런데 막상 문제가 발생하면 그 신앙이 무너져 버립니다. 그렇게 부자청년처럼 돌아서 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모습이 나의 모습이라고 인정했으면 좋겠습니다. 이유를 달지 말고, 솔찍하게, “저는 재물에 대한 욕심을 버릴 수가 없는데요….저는 그것만큼은 어려운데요….”그런 경험들을 함께 나눠 봅시다


    2. 부자청년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생각나는 것들이 있으면 함께 나눠 봅시다.

  4. user#0 님의 말:

     

    풀이 죽어 떠나간 부자 청년. 그는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지 못하고 슬퍼하면서 떠나갑니다. 많은 재산에 대한 집착이 완덕의 이상과 선한 예수님께 대한 애정보다 강하였기 때문입니다. 예로니모 성인은 “가시와 넝쿨이 그의 마음에 예수님께서 뿌리신 씨를 덮어 버렸다”고 말씀하십니다. 만일 청년이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위대한 사도가 되지 않았을까요?


    23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부자는 하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려울 것이다.

    부자는 재물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재물을 자기 생활 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재물이란 인간을 노예화하려는 유혹의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재물을 떠나 완전히 하느님께 마음을 바치지 않는 한 결코 아무도 재물의 유혹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자라면 어느 누구도 하느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재물에 집착하는 이상 하느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재산에 대한 집착을 버린 다는 것은 선행과 공덕을 쌓아 올리는 기회가 되는 것이며 완덕으로 가는 길에 들어서는 것입니다.

     

    24 내가 다시 너희에게 말한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 나가는 것이 더 쉬울 것이다”라는 말씀을 들으면서 내가 얼마나 재물에 집착하고 있는지 느껴야 하겠습니다. 이 재물은 하느님보다 더 크게 생각하고, 집착하고 있는 것들입니다. 그 재물은 물질을 넘어서 자신의 고집일 수도 있고, 취미일 수도 있고, 직장일 일수도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신앙 모임에 못나가요”라는 소리를 듣습니다. 그것이 모두 핑계일 수도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구원에 대한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내가 어떤 선한 일을 해서 당연하게 구원을 요구하겠습니까? 그분께서 주시면 좋고 안주시면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구원을 안주실 리가 없습니다. 내가 해야 될 도리를 다하고 마지막에 “저는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라고 말하는 것. 그것이 바로 구원의 비결 아니겠습니까? 그저 해야 할 일을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의지하지 않고 하느님의 은총에 의지합니다.


    25 제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몹시 놀라서, “그렇다면 누가 구원받을 수 있는가?” 하고 말하였다.

    제자들은 깜짝 놀랍니다. 그렇게 구원이 어려워서야…“구원받을 사람이 아주 소수이거나 아니면 전혀 없단 말인가?” 그런데 구원을 받는 다는 것에 대해서 생각을 해야 합니다. 구원을 너무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서는 안됩니다. 인간은 정당하게 구원을 요구할 권리가 없으며 혼자 힘으로는 구원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도 없습니다.

    게다가 아무런 노력도 없이, 오직 물질에만 집착한다면 그가 구원받을 확률은 얼마나 될까요?


    26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눈여겨보며 이르셨다. “사람에게는 그것이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참된 신앙인은 모든 것을 하느님께 의지합니다. 하느님의 뜻을 찾아서 행동하고, 하느님을 뜻을 실현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노력하는 이들에게 하느님께서는 은총으로 그들을 이끌어 주십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잘못 알아들었습니다. 하느님은 감독관이나 폭군이 아니라 아버지와 같은 분이시라는 것을 전제하고 있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구원으로 이끌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하느님께로 돌아와 당신의 뜻을 알아주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이것을 안다는 것은 노예적인 두려움이나 잔혹한 자학을 유발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사랑의 마음을 낳게 만들어 줍니다. 즉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것들을 하게 만드는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세리였던 자캐오가 어떻게 했는지 생각해 봅시다. 그의 마음은 자발적으로 하느님을 향하여 열렸습니다.


    27 그때에 베드로가 그 말씀을 받아 예수님께 물었다.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 그러니 저희는 무엇을 받겠습니까?”

    부자 청년은 예수님의 부르심을 거절한 반면, 제자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의 부르심에 따랐습니다. 배와 그물을 버리고, 가족을 떠나서 예수님을 따르고 있습니다. 베드로의 이 말은 약간 이기적인 것처럼 들리지만 예수님께서 청년에게 그가 가지고 있는 재화 대신 줄 상으로서 하늘의 보화를 약속하였으니 예수님을 따르고 있는 제자들에게는 나름대로 보답이 있을 것임을 기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그물을 버리고, 배를 버리고, 가족을 버리고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이제 제자들이 버려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버렸다는 그 마음까지도 버려야 하지 않을까요?


    28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러운 자기 옥좌에 앉게 되는 새 세상이 오면, 나를 따른 너희도 열두 옥좌에 앉아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심판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커다란 것을 약속하십니다. “열 두 옥좌에 앉아 열 두 지파를 심판하게 될 권한” 이스라엘의 12지파는 보편성을 띤 교회를 말합니다. 즉 예수님에 의해 구원을 받은 새로운 이스라엘의 지파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새 세상을 말씀하시는데 이것은 사람의 아들이 오심으로써 시작될 것이며 심판과 더불어 이루어질 세상입니다. 그분은 영광스러운 왕좌에 앉아 판결을 내리실 것이고 열두 제자들은 예수님의 곁에 보좌관으로 앉아 예수님과 함께 판결을 내릴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너희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맞아들이는 사람이며 나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맞아들이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 수난과 죽음까지 함께 할 제자들에게 영광의 날을 줄 것임을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29 그리고 내 이름 때문에 집이나 형제나 자매, 아버지나 어머니,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모두 백 배로 받을 것이고 영원한 생명도 받을 것이다.

    보상을 바라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지는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다보니 물질적인 것들이나 인간적인 것들을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다보니 예수님께서는 더 많은 축복을 내려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이 말씀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성당 다닌다고 차례나 제사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심지어는 그런 것들을 피하기 위해 성당에 다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고, 차례를 지내지 않는다고…

    버린다는 것을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먼저 사도들의 시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모든 크리스챤들은 형제라고 불립니다. 하느님 안에 한 형제 자매인 것입니다. 믿지 않는 가족들을 떠나 믿는 신앙의 형제들 품으로 왔을 때 그는 신앙으로 맺어진 형제 자매들을 무수히 얻게 됩니다. 또 사랑 때문에 가난한 형제들에게 풍요한 은혜의 손길을 내밀었습니다(사도11,29-30;갈라2,10;2고린8,1-9,15). 그래서 이들은 세례를 받고 집과 밭도 얻었으며 수많은 형제 자매들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약속된 축복 속에는 박해도 감수해야 함을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예수님 때문에 가족을 버린다는 것은 어떤 뜻일까요?

    복음을 전하는 사제나 수도자들을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그들은 집을 떠나 주님께서 원하시는 곳으로 향합니다. 그렇다고 가족을 완전히 잊은 것은 아닙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과 가족에 대한 일이 서로 상충될 때 이들은 모두 복음을 전하는 일을 우선적으로 선택합니다.

    사실 우리가 가족을 완전히 버릴 수는 없습니다. 그들은 나를 낳아 주신 분이요, 키워 주신 분이요, 함께 피를 나눈 형제들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런 이유들이 복음을 전하는 데 방해가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30 그런데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첫째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사람을 말하고 꼴찌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부자청년이 지금은 모든 것을 잘 지키고 살아가고 있지만 재물에 연연하면서 살아간다면 그는 결국 구원에서 멀어질 것입니다. 사도들이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지만 엉뚱한 것에 집착하거나 잘못된 이상을 품는다면 그들 또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입니다.

    지금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주님 뜻대로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구원의 문에 바짝 다가가 있은 것입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 제자들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할 것입니다. 내가 그것을 차지할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주실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율법학자들을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아마도 바리사이파 사람들이나 율법학자들은 그들이 열두 옥좌에 앉게 될 것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백성들을 위해서 율법을 가르치고, 신앙의 모범을 보여 왔고, 나름대로 열심히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열정으로 하느님을 모독한다고 하느님을 박해하고, 마침내 메시아를 십자가에 못 박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첫째라고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결국 꼴찌가 될 것입니다.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재산을 버리라는 말씀 안에서 “내가 가진 기존의 낡은 신앙의 틀, 고정관념, 그리고 교만에 얼룩진 신앙”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어야 했는데 그들은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3. 함께 생각해 봅시다

    1.신앙생활하면서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성당에도 잘 나가고, 기도도 열심히 합니다. 그런데 막상 문제가 발생하면 그 신앙이 무너져 버립니다. 그렇게 부자청년처럼 돌아서 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모습이 나의 모습이라고 인정했으면 좋겠습니다. 이유를 달지 말고, 솔찍하게, “저는 재물에 대한 욕심을 버릴 수가 없는데요….저는 그것만큼은 어려운데요….”그런 경험들을 함께 나눠 봅시다


    2. 부자청년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생각나는 것들이 있으면 함께 나눠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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