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초대
예수님께서는 당시의 세대를,
서로 자신이 맡은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
놀이를 할 수 없는 어린이들과 같다고 한탄하십니다(복음).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주님, 주님의 말씀은 영이며 생명이시옵니다.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나이다.
◎ 알렐루야.
복음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울지 않았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7,31-35
그때에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세대 사람들을 무엇에 비기랴?
그들은 무엇과 같은가?
장터에 앉아 서로 부르며 이렇게 말하는 아이들과 같다.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울지 않았다.’
사실 세례자 요한이 와서 빵을 먹지도 않고
포도주를 마시지도 않자,
‘저자는 마귀가 들렸다.’ 하고 너희는 말한다.
그런데 사람의 아들이 와서 먹고 마시자,
‘보라,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다.’ 하고 너희는 말한다.
그러나 지혜가 옳다는 것을 지혜의 모든 자녀가 드러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아버지, 교회가 드리는 이 제사를 굽어보시고,
저희가 성자의 영광스러운 수난 신비에 믿음으로 참여하게 하소서.
우리 주…….
영성체송
주님은 나의 목자, 나는 아쉬울 것 없어라.
푸른 풀밭에 나를 쉬게 하시고, 잔잔한 물가로 나를 이끄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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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 24주간 수요일(9/20)
말씀의 초대
예수님께서는 당시의 세대를, 서로 자신이 맡은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 놀이를 할 수 없는 어린이들과 같다고 한탄하십니다(복음).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주님, 주님의 말씀은 영이며 생명이시옵니다.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나이다. ◎ 알렐루야.
복음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울지 않았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7,31-35 그때에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세대 사람들을 무엇에 비기랴? 그들은 무엇과 같은가? 장터에 앉아 서로 부르며 이렇게 말하는 아이들과 같다.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울지 않았다.’ 사실 세례자 요한이 와서 빵을 먹지도 않고 포도주를 마시지도 않자, ‘저자는 마귀가 들렸다.’ 하고 너희는 말한다. 그런데 사람의 아들이 와서 먹고 마시자, ‘보라,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다.’ 하고 너희는 말한다. 그러나 지혜가 옳다는 것을 지혜의 모든 자녀가 드러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아버지, 교회가 드리는 이 제사를 굽어보시고, 저희가 성자의 영광스러운 수난 신비에 믿음으로 참여하게 하소서. 우리 주…….
영성체송
주님은 나의 목자, 나는 아쉬울 것 없어라. 푸른 풀밭에 나를 쉬게 하시고, 잔잔한 물가로 나를 이끄시도다.
영성체 후 묵상
사랑에 관한 수많은 정의가 있습니다. 그러나 바오로 사도의 정의만큼 명확한 것이 없습니다. 사랑이란 참아 주는 것, 기다리는 것, 성내지 않는 것, 모든 것을 믿고, 바라고, 견디어 내는 것……. 내가 과연 누군가를 사랑하는지 알려고 하면 바오로 사도가 내린 이 정의에 자신을 대입하면 쉽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나름대로 참아 주었고, 기다렸고, 친절하였고, 모든 것을 믿고, 바라고, 견디어 내었습니다. 그 정도에 따라 우리의 사랑을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송두리째 당신의 생명을 우리를 위해 내놓으신 주님의 사랑에 비하면 아주 작은 것에 불과하지 않을까요? 사랑만이 사랑을 알 수 있을 뿐입니다. 사랑하는 정도만큼 알 수 있을 뿐입니다.
영성체후 기도
주님, 저희가 성체로 힘을 얻고 감사하며 자비를 바라오니, 성령의 힘으로 저희 삶을 변화시켜 주소서. 우리 주…….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울지 않았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향하여 꾸지람을 하십니다. 세례자 요한의 금욕적인 생활을 보고는 마귀가 들렸다고 하고, 예수님께서 모든 이들을 받아들이시고 함께 하시니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싶어 했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싶어 했기 때문입니다.
31 그러니 이 세대 사람들을 무엇에 비기랴? 그들은 무엇과 같은가?
세례자 요한을 비웃고, 예수님을 비웃는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을 향하여 예수님께서는 멋대로 놀아나는 아이들로 그들을 비유하시면서 꾸지람을 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어떤 모습으로 그들에게 다가갔어도, 그들은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나 또한 예수님님께서 어떤 모습으로 오셔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무딘 마음을 향하여 예수님께서는 꾸지람을 내리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 세대 사람들을 무엇에 비기랴? 그들은 무엇과 같은가?”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32 장터에 앉아 서로 부르며 이렇게 말하는 아이들과 같다.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울지 않았다.’
놀이를 하려고 거리에 모인 아이들. 저마다 말을 주고받으며 모두 자기 마음에 드는 놀이를 하려고 하나 의견이 맞지 않습니다. 어떤 아이들은 결혼식 놀이를 하려 했고 다른 아이들은 장례식 놀이를 하려고 했습니다. 한편의 아이들이 피리를 불면서 상대편 아이들에게 춤을 추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고집을 부리면서 그냥 있기만 합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장례식 놀이를 하려고 슬퍼하며 곡을 하였지만 상대편 아이들은 이제 결혼식 놀이를 하려고 합니다. 누가 이렇게 고집 센 어린이들을 만족시켜 줄 것인가?
친구와 사이좋게 지내는 방법은 친구의 의견을 존중해 주는 것입니다. 내 뜻을 버리고 친구의 뜻을 받아들여 줄 때 나는 친구와 더 재미있게 놀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 입니다. 구원의 길은 자기 자신을 버리고 하느님께로 돌아가는 데 있습니다.
33 사실 세례자 요한이 와서 빵을 먹지도 않고 포도주를 마시지도 않자, ‘저자는 마귀가 들렸다.’ 하고 너희는 말한다.
세례자 요한이 광야에서 회개를 요구하며 금욕적인 생활을 했습니다. 자신들의 마음에 들지 않으니 어떻게 했겠습니까? 군중들이 보기에 백성의 지도자라고 불리는 자신들과 세례자 요한을 비교해 볼 때, 세례자 요한을 더 높이 평가할 것이라는 것은 뻔한 것입니다. 그러니 세례자 요한을 깎아 내림을 통해서 자신들의 위치가 보장된다고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을 마귀가 들렸다고 몰아 붙였던 것입니다.
34 그런데 사람의 아들이 와서 먹고 마시자, ‘보라,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다.’ 하고 너희는 말한다.
사람들의 완고함은 예수님과 세례자 요한을 비난하는데서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들은 세례자 요한을 너무 금욕적이라고 생각하여 미쳤다고 말했고, 예수님은 별로 거룩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여겼을 뿐 아니라 세리들이나 죄인들과 사귀는 세속적인 사람이라고 단정해 버렸습니다. 유다인들은 요한의 엄격한 생활, 혹은 예수님의 예사로운 생활, 그 어느 쪽도 받아들일 마음이 전혀 없는 것입니다.
본당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신부님들이 사람들과 잘 어울리면 “가볍다. 신부답지 않다”라고 단정해 버리고, 좀 무게를 잡으면 “거만하다. 저렇게 어려워서야 누가 다가갈 수 있겠는가?”하고 말해버립니다. 그런데 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아니라는 데서 희망을 찾을 수 있습니다.
35 그러나 지혜가 옳다는 것을 지혜의 모든 자녀가 드러냈다.”
지혜를 가진, 어린이와 같은 사람만이 하느님께서 하시는 그 모든 일들 가운데서 하느님의 지혜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지혜를 깨닫기 위해서는 지혜롭게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즉 인간은 지혜롭게 변화되어야 하고 지혜로 가득 차있어야 하며, 지혜가 생각하고 판단하듯이 생각하고 판단해야 합니다.
일반 대중이 요한을 메시아의 선구자로 알아보면서 예수님께 의심을 품지 않았을 대, 그것은 인간적인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선물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지혜를 그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아버지, 지혜롭다는 사람들과 똑똑하다는 사람들에게는 이 모든 것을 감추시고 오히려 보잘것없는 이들에게 나타내 보이시니 감사합니다.”(루가10,21)라고 기도하신 이유입니다. 인간적인 지혜로는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친히 우리에게 당신의 지혜와 계시를 주셔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린이와 같이 되어야 합니다. 자기 고집만을 피우는 그런 어린이가 아니라 어른들의 말씀에 순명하고, 가식 없이 대하며, 이해타산을 따지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어린이와 같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느님 자녀의 자세입니다. 그리고 그 삶은 하느님께서 옳다는 것을 드러낼 것입니다.
3.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상대방이 어떻게 나와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마음이 있습니다. 내 것 만을 고집하고 남의 것은 결코 귀 기울이지 않는 모습이 내 안에 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상대방의 주장을 무산시키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있습니다. 혹시 그렇게 하다가 오늘 바리사이파 사람들이나 율법학자들과 같이 당황하게 된 적은 없습니까?
2. 지혜로운 생활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가끔은 나태해 지고 싶은 유혹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의 신앙생활에 대해서 회의를 느끼게 됩니다. 이런 경우 어떻게 지혜롭게 이겨냈는지 함께 이야기해 봅시다.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울지 않았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향하여 꾸지람을 하십니다. 세례자 요한의 금욕적인 생활을 보고는 마귀가 들렸다고 하고, 예수님께서 모든 이들을 받아들이시고 함께 하시니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싶어 했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싶어 했기 때문입니다.
31 그러니 이 세대 사람들을 무엇에 비기랴? 그들은 무엇과 같은가?
세례자 요한을 비웃고, 예수님을 비웃는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을 향하여 예수님께서는 멋대로 놀아나는 아이들로 그들을 비유하시면서 꾸지람을 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어떤 모습으로 그들에게 다가갔어도, 그들은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나 또한 예수님님께서 어떤 모습으로 오셔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무딘 마음을 향하여 예수님께서는 꾸지람을 내리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 세대 사람들을 무엇에 비기랴? 그들은 무엇과 같은가?”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32 장터에 앉아 서로 부르며 이렇게 말하는 아이들과 같다.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울지 않았다.’
놀이를 하려고 거리에 모인 아이들. 저마다 말을 주고받으며 모두 자기 마음에 드는 놀이를 하려고 하나 의견이 맞지 않습니다. 어떤 아이들은 결혼식 놀이를 하려 했고 다른 아이들은 장례식 놀이를 하려고 했습니다. 한편의 아이들이 피리를 불면서 상대편 아이들에게 춤을 추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고집을 부리면서 그냥 있기만 합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장례식 놀이를 하려고 슬퍼하며 곡을 하였지만 상대편 아이들은 이제 결혼식 놀이를 하려고 합니다. 누가 이렇게 고집 센 어린이들을 만족시켜 줄 것인가?
친구와 사이좋게 지내는 방법은 친구의 의견을 존중해 주는 것입니다. 내 뜻을 버리고 친구의 뜻을 받아들여 줄 때 나는 친구와 더 재미있게 놀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 입니다. 구원의 길은 자기 자신을 버리고 하느님께로 돌아가는 데 있습니다.
33 사실 세례자 요한이 와서 빵을 먹지도 않고 포도주를 마시지도 않자, ‘저자는 마귀가 들렸다.’ 하고 너희는 말한다.
세례자 요한이 광야에서 회개를 요구하며 금욕적인 생활을 했습니다. 자신들의 마음에 들지 않으니 어떻게 했겠습니까? 군중들이 보기에 백성의 지도자라고 불리는 자신들과 세례자 요한을 비교해 볼 때, 세례자 요한을 더 높이 평가할 것이라는 것은 뻔한 것입니다. 그러니 세례자 요한을 깎아 내림을 통해서 자신들의 위치가 보장된다고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을 마귀가 들렸다고 몰아 붙였던 것입니다.
34 그런데 사람의 아들이 와서 먹고 마시자, ‘보라,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다.’ 하고 너희는 말한다.
사람들의 완고함은 예수님과 세례자 요한을 비난하는데서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들은 세례자 요한을 너무 금욕적이라고 생각하여 미쳤다고 말했고, 예수님은 별로 거룩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여겼을 뿐 아니라 세리들이나 죄인들과 사귀는 세속적인 사람이라고 단정해 버렸습니다. 유다인들은 요한의 엄격한 생활, 혹은 예수님의 예사로운 생활, 그 어느 쪽도 받아들일 마음이 전혀 없는 것입니다.
본당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신부님들이 사람들과 잘 어울리면 “가볍다. 신부답지 않다”라고 단정해 버리고, 좀 무게를 잡으면 “거만하다. 저렇게 어려워서야 누가 다가갈 수 있겠는가?”하고 말해버립니다. 그런데 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아니라는 데서 희망을 찾을 수 있습니다.
35 그러나 지혜가 옳다는 것을 지혜의 모든 자녀가 드러냈다.”
지혜를 가진, 어린이와 같은 사람만이 하느님께서 하시는 그 모든 일들 가운데서 하느님의 지혜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지혜를 깨닫기 위해서는 지혜롭게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즉 인간은 지혜롭게 변화되어야 하고 지혜로 가득 차있어야 하며, 지혜가 생각하고 판단하듯이 생각하고 판단해야 합니다.
일반 대중이 요한을 메시아의 선구자로 알아보면서 예수님께 의심을 품지 않았을 대, 그것은 인간적인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선물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지혜를 그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아버지, 지혜롭다는 사람들과 똑똑하다는 사람들에게는 이 모든 것을 감추시고 오히려 보잘것없는 이들에게 나타내 보이시니 감사합니다.”(루가10,21)라고 기도하신 이유입니다. 인간적인 지혜로는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친히 우리에게 당신의 지혜와 계시를 주셔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린이와 같이 되어야 합니다. 자기 고집만을 피우는 그런 어린이가 아니라 어른들의 말씀에 순명하고, 가식 없이 대하며, 이해타산을 따지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어린이와 같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느님 자녀의 자세입니다. 그리고 그 삶은 하느님께서 옳다는 것을 드러낼 것입니다.
3.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상대방이 어떻게 나와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마음이 있습니다. 내 것 만을 고집하고 남의 것은 결코 귀 기울이지 않는 모습이 내 안에 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상대방의 주장을 무산시키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있습니다. 혹시 그렇게 하다가 오늘 바리사이파 사람들이나 율법학자들과 같이 당황하게 된 적은 없습니까?
2. 지혜로운 생활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가끔은 나태해 지고 싶은 유혹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의 신앙생활에 대해서 회의를 느끼게 됩니다. 이런 경우 어떻게 지혜롭게 이겨냈는지 함께 이야기해 봅시다.
“지혜가 옳다는 것을 지혜의 모든 자녀가 드러났다”
맞아요 주님!
지혜가 옳다는 것을 지혜의 모든 자녀가 드러났다는 말씀에……
하지만 머리로는 저도 이해할 수 있는데……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행동은 그렇지 못할 때가 많음을 고백합니다
언제나 당신의 말씀을 따라 살아야한다고 머리로는 생각하고 또 생각하지만……
행동으로 옳긴다는 것이 쉽지가 않음을 느낍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신앙생활 역시 머리로 생각하는 것과 행동이 같지가 않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자신이 지혜롭지 않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남에게는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 잇습니다
저의 그런 생각모두가 위선인 줄도 알지만….
자신의 부족함을 감추기 위해 잔머리를 굴리며 잘난 척하는 자신이
얼마나 미련한 사람인지 ……
복음을 묵상하면서
“지혜가 옳다는 것을 지혜의 모든 자녀가 드러났다”
말씀을 새기며 남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부족함을 감추느라 안간힘을 쓰는
저의 미련함이 부끄러운 오늘입니다
신앙인은 정직해야 하는데………
당신의 말씀을 믿고 따르려 노력해야 하는데………
행동이 따르지 않으면서 언제나 머리로만 이해하고 생각하는 자신이
얼마나 미련한 사람인지를 깨닫습니다
신앙인은 언제나 정의로워야 하는데……………….
“지혜가 옳다는 것을 지혜의 모든 자녀가 드러났다”
묵상하며
“지혜가 옳다는 것을 지혜의 모든 자녀가 드러났다”
맞아요 주님!
지혜가 옳다는 것을 지혜의 모든 자녀가 드러났다는 말씀에……
하지만 머리로는 저도 이해할 수 있는데……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행동은 그렇지 못할 때가 많음을 고백합니다
언제나 당신의 말씀을 따라 살아야한다고 머리로는 생각하고 또 생각하지만……
행동으로 옳긴다는 것이 쉽지가 않음을 느낍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신앙생활 역시 머리로 생각하는 것과 행동이 같지가 않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자신이 지혜롭지 않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남에게는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 잇습니다
저의 그런 생각모두가 위선인 줄도 알지만….
자신의 부족함을 감추기 위해 잔머리를 굴리며 잘난 척하는 자신이
얼마나 미련한 사람인지 ……
복음을 묵상하면서
“지혜가 옳다는 것을 지혜의 모든 자녀가 드러났다”
말씀을 새기며 남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부족함을 감추느라 안간힘을 쓰는
저의 미련함이 부끄러운 오늘입니다
신앙인은 정직해야 하는데………
당신의 말씀을 믿고 따르려 노력해야 하는데………
행동이 따르지 않으면서 언제나 머리로만 이해하고 생각하는 자신이
얼마나 미련한 사람인지를 깨닫습니다
신앙인은 언제나 정의로워야 하는데……………….
“지혜가 옳다는 것을 지혜의 모든 자녀가 드러났다”
묵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