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아들은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11/21)


    이 축일의 기원은 분명하지 않습니다. 8세기경 콘스탄티노플의 제르마노 주교의 강론에 이 축일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9세기경 니코메디아의 그레고리오 주교도 이 축일 전례가 있었던 것을 전하고 있습니다. 또한 9세기경에는 남부 이탈리아 수도원에서, 14세기경에는 영국에서도 이 축일을 기념하였습니다. 1472년 식스토 4세 교황에 의해 이 축일이 로마 전례의 모든 교회에 보편화되었습니다. 그 뒤 잠시 중단되었다가 식스토 5세 교황이 다시 도입하였습니다. 이 축일에는 복되신 동정녀의 영광을 찬양하며, 우리도 그분의 충만한 은총에 참여할 수 있게 전구를 청합니다.
    말씀의 초대
    예수님께서는, 키가 작아 나무에 올라가 당신의 모습을 보려는 자캐오를 보시고 구원을 약속하십니다.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다”(복음).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 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 주셨도다. ◎ 알렐루야.
    복음
    <사람의 아들은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9,1-10 그때에 예수님께서 예리코에 들어가시어 거리를 지나가고 계셨다. 마침 거기에 자캐오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세관장이고 또 부자였다. 그는 예수님께서 어떠한 분이신지 보려고 애썼지만 군중에 가려 볼 수가 없었다. 키가 작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앞질러 달려가 돌무화과나무로 올라갔다. 그곳을 지나시는 예수님을 보려는 것이었다. 예수님께서 거기에 이르러 위를 쳐다보시며 그에게 이르셨다.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 자캐오는 얼른 내려와 예수님을 기쁘게 맞아들였다. 그것을 보고 사람들은 모두 “저이가 죄인의 집에 들어가 묵는군.” 하고 투덜거렸다. 그러나 자캐오는 일어서서 주님께 말하였다. “보십시오, 주님!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른 사람 것을 횡령하였다면 네 곱절로 갚겠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아들은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외아드님께서 동정녀의 몸에서 태어나실 때에, 어머니의 순결을 온전히 보존하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셨으니, 저희 죄를 없애 주시어 주님의 뜻에 맞갖은 제사를 드리게 하소서. 우리 주…….
    영성체송
    영원하신 아버지의 아들을 잉태하신 동정 마리아의 모태는 복되도다.
    영성체 후 묵상
    많은 군중이 에워싸고 있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보려고 발돋움한 적이 있을 것입니다. 키가 작은 것이 안타깝게 느껴지겠지요. 예수님을 보려고 나무에 올라간 자캐오만 키가 작은 것일까요? 우리 곁을 지나가시는 주님을 보지 못하는 우리 역시 자캐오처럼 키가 작은 사람들일 수 있습니다. 아니, 어쩌면 예리코의 소경처럼 눈먼 사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눈이 멀었다 해도 예리코의 소경처럼 믿음과 용기가 있다면, 또 키가 작다 해도 자캐오처럼 나무에 오르려는 열성이 있다면 주님께서는 우리를 만나 주실 것이고, 또한 구원을 약속해 주실 것입니다.
    영성체후 기도
    인자하신 주님, 천상 성사를 받고 간절히 비오니, 저희가 동정 마리아를 본받아 주님을 충실히 섬기며 구원의 신비에 참여하게 하소서. 우리 주…….
 
저녁노을(모니카)



♬ 복되신 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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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아들은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11/21)


      이 축일의 기원은 분명하지 않습니다. 8세기경 콘스탄티노플의 제르마노 주교의 강론에 이 축일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9세기경 니코메디아의 그레고리오 주교도 이 축일 전례가 있었던 것을 전하고 있습니다. 또한 9세기경에는 남부 이탈리아 수도원에서, 14세기경에는 영국에서도 이 축일을 기념하였습니다. 1472년 식스토 4세 교황에 의해 이 축일이 로마 전례의 모든 교회에 보편화되었습니다. 그 뒤 잠시 중단되었다가 식스토 5세 교황이 다시 도입하였습니다. 이 축일에는 복되신 동정녀의 영광을 찬양하며, 우리도 그분의 충만한 은총에 참여할 수 있게 전구를 청합니다.
      말씀의 초대
      예수님께서는, 키가 작아 나무에 올라가 당신의 모습을 보려는 자캐오를 보시고 구원을 약속하십니다.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다”(복음).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 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 주셨도다. ◎ 알렐루야.
      복음
      <사람의 아들은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9,1-10 그때에 예수님께서 예리코에 들어가시어 거리를 지나가고 계셨다. 마침 거기에 자캐오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세관장이고 또 부자였다. 그는 예수님께서 어떠한 분이신지 보려고 애썼지만 군중에 가려 볼 수가 없었다. 키가 작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앞질러 달려가 돌무화과나무로 올라갔다. 그곳을 지나시는 예수님을 보려는 것이었다. 예수님께서 거기에 이르러 위를 쳐다보시며 그에게 이르셨다.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 자캐오는 얼른 내려와 예수님을 기쁘게 맞아들였다. 그것을 보고 사람들은 모두 “저이가 죄인의 집에 들어가 묵는군.” 하고 투덜거렸다. 그러나 자캐오는 일어서서 주님께 말하였다. “보십시오, 주님!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른 사람 것을 횡령하였다면 네 곱절로 갚겠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아들은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외아드님께서 동정녀의 몸에서 태어나실 때에, 어머니의 순결을 온전히 보존하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셨으니, 저희 죄를 없애 주시어 주님의 뜻에 맞갖은 제사를 드리게 하소서. 우리 주…….
      영성체송
      영원하신 아버지의 아들을 잉태하신 동정 마리아의 모태는 복되도다.
      영성체 후 묵상
      많은 군중이 에워싸고 있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보려고 발돋움한 적이 있을 것입니다. 키가 작은 것이 안타깝게 느껴지겠지요. 예수님을 보려고 나무에 올라간 자캐오만 키가 작은 것일까요? 우리 곁을 지나가시는 주님을 보지 못하는 우리 역시 자캐오처럼 키가 작은 사람들일 수 있습니다. 아니, 어쩌면 예리코의 소경처럼 눈먼 사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눈이 멀었다 해도 예리코의 소경처럼 믿음과 용기가 있다면, 또 키가 작다 해도 자캐오처럼 나무에 오르려는 열성이 있다면 주님께서는 우리를 만나 주실 것이고, 또한 구원을 약속해 주실 것입니다.
      영성체후 기도
      인자하신 주님, 천상 성사를 받고 간절히 비오니, 저희가 동정 마리아를 본받아 주님을 충실히 섬기며 구원의 신비에 참여하게 하소서. 우리 주…….
     
    저녁노을(모니카)
    
    
    
    ♬ 복되신 마리아
    
    
    
    

  2. user#0 님의 말: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

    당신께서 세관장 자캐오 에게 하신 이 말씀을 저에게도 해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헬레나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

    하지만 주님!

    저는 불행하게도 세관장 자캐오처럼 당신을 사랑하지 못함을 고백합니다
    저는 불행하게도 세관장 자캐오처럼 믿음이 없음을 고백합니다
    아니!
    당신께서 저에게 오신다해도………
    저는 온갖 핑계를 대며 당신께서 저에게 오시는 것을 피하고 있습니다
    당신께서 그렇게 회개를 말씀하시지만…….
    저는 아직도 회개하지 못하고 당신을 사랑하지 못하고….
    그저 적당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주님!
    저 같이 당신을 진심으로 믿지 못하고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하지 못하고
    당신의 말씀을 진심으로 듣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고……
    제 멋대로 제 뜻대로 제가 하고 싶은대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은
    당신께 갈 자격이 없는 것이지요?

    주님!
    저는 아직도 남의 멸시나 주위의 냉대에 아랑곳하지 않으며 당신을
    사랑하는 자캐오의 믿음을 본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솔직히 말씀을 드린다면 저는 아직도 자캐오처럼 믿음이 없음을 고백합니다
    자캐오처럼…..
    당신을 저의 집에 모실 마음이 아직은 없음을 고백합니다
    아직은….
    저의 신앙이….
    저의 마음이…
    준비가 되어잇지 않음을 고백합니다
    아직은………
    당신을 온전히 사랑하지 못하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주님!
    아직은…..
    아직도….

    아흔아홉의 의인보다 죄인 하나를 구원하러 오신 당신의 사랑을 깨달아야하는데…..
    저는 아직도….

    당신의 사랑을 깊이 깨닫지 못하고 잇음을 고백합니다

    주님!

    당신께서 저에게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

    하실 때 “ 녜! 주님! ” 할수 있는 믿음을 주십시오
    언제나 어디서나 당신께서 오라고 하실 때….
    당신께서 저를 부르실 때 기쁘고 행복한 마음으로 갈수 있는 믿음을 주십시오

    아멘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

    묵상하며

     

  3. user#0 님의 말: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

    당신께서 세관장 자캐오 에게 하신 이 말씀을 저에게도 해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헬레나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

    하지만 주님!

    저는 불행하게도 세관장 자캐오처럼 당신을 사랑하지 못함을 고백합니다
    저는 불행하게도 세관장 자캐오처럼 믿음이 없음을 고백합니다
    아니!
    당신께서 저에게 오신다해도………
    저는 온갖 핑계를 대며 당신께서 저에게 오시는 것을 피하고 있습니다
    당신께서 그렇게 회개를 말씀하시지만…….
    저는 아직도 회개하지 못하고 당신을 사랑하지 못하고….
    그저 적당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주님!
    저 같이 당신을 진심으로 믿지 못하고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하지 못하고
    당신의 말씀을 진심으로 듣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고……
    제 멋대로 제 뜻대로 제가 하고 싶은대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은
    당신께 갈 자격이 없는 것이지요?

    주님!
    저는 아직도 남의 멸시나 주위의 냉대에 아랑곳하지 않으며 당신을
    사랑하는 자캐오의 믿음을 본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솔직히 말씀을 드린다면 저는 아직도 자캐오처럼 믿음이 없음을 고백합니다
    자캐오처럼…..
    당신을 저의 집에 모실 마음이 아직은 없음을 고백합니다
    아직은….
    저의 신앙이….
    저의 마음이…
    준비가 되어잇지 않음을 고백합니다
    아직은………
    당신을 온전히 사랑하지 못하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주님!
    아직은…..
    아직도….

    아흔아홉의 의인보다 죄인 하나를 구원하러 오신 당신의 사랑을 깨달아야하는데…..
    저는 아직도….

    당신의 사랑을 깊이 깨닫지 못하고 잇음을 고백합니다

    주님!

    당신께서 저에게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

    하실 때 “ 녜! 주님! ” 할수 있는 믿음을 주십시오
    언제나 어디서나 당신께서 오라고 하실 때….
    당신께서 저를 부르실 때 기쁘고 행복한 마음으로 갈수 있는 믿음을 주십시오

    아멘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

    묵상하며

     

  4. user#0 님의 말:

    “사람의 아들은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

    참으로 좋으신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려니…..
    입으로만 당신을 사랑한다면서 당신의 뜻을 따르지 못한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자케오의 믿음이 부럽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언제나 공수표만 날립니다
    어쩌면 말도 그렇게 잘도 하는지 실천도 하지 못하면서…..
    언제나 입으로만…..
    아마 제가 죽어 당신의 곁에 갈 때는 입만 동동 뜰 것입니다
    그런데도 자캐오의 회개가 부러우면서도 솔직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캐오만은 못할지라도 반만이라도 실천을 하면 좋을텐데…..
    언제나…..
    입만 풍년입니다
    죄인들의 회개를 사랑으로 감싸 주시는 당신이 계신데도….

    세상의 모든 짐은 혼자 지고 있는 것처럼 수선을 피웁니다

    왜 그렇게 무거운 짐을 내려놓지 못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어깨가 무겁고 결리는데도…….

    복음을 묵상하면서 자신을 성찰해보니…….
    제가 무거운 짐을 내려놓지 못하는 원인은 저의 욕심과
    이기심때문이라는것을 깨닫습니다
    그런데도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내일이면 나아 질것이라고 스스로 위로를 하면서….
    세속의 욕심과 이기심을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좋으신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죄인인 헬레나를 언제나 감싸주시는 당신의 사랑을 생각하며
    자캐오처럼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며 당신의 뜻을 따라
    신앙생활을 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입으로만이 아닌 행동으로 실천하는 헬레나가 되도록
    죄인인 헬레나를 변함없이 사랑해주시는 당신의 사랑을 깨닫는 오늘입니다
    복음을 묵상하면서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도다

    아멘

    “사람의 아들은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

    묵상하며

  5. user#0 님의 말:

     


    자캐오의 구원

    1. 말씀읽기:루카19,1-10 예수님과 자캐오

    2. 말씀연구

    자캐오(히브리말 잣가이)라는 말은 “바르다, 혹은 깨끗하다”는 뜻입니다. 그는 죄 중에 있었지만 예수님을 만나서 그 이름처럼 깨끗하게 구원되었습니다. 자캐오가 회개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의 고백성사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스스로 보속을 하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고백성사를 보는 사람의 모범이 아닐까요?


    1 예수님께서 예리코에 들어가시어 거리를 지나가고 계셨다.

    예리코는 유다 지방과 요르단 강 건너 베레아 지방간의 교역을 감시하는 세관이 있었습니다. 자캐오는 예리코의 세관장이었습니다.


    2 마침 거기에 자캐오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세관장이고 또 부자였다.

    세관장 자케오. 그는 로마인들을 위해 세금을 거둬들이는 일을 하였고, 그 세관의 장이였습니다. 세리는 세금을 거두어들이기에 으레 부정축재를 한다는 사회적 통념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무역을 담당하며 세금을 징수하는 세관원들은 외국인들과 자주 접촉하기 때문에 직업상 죄인 취급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세관의 장이 바로 자케오였습니다.


    3 그는 예수님께서 어떠한 분이신지 보려고 애썼지만 군중에 가려 볼 수가 없었다. 키가 작았기 때문이다.

    자캐오는 예수님에 대한 소식을 들었습니다. 세리도 제자로 뽑으시고, 그 누구도 차별대우 하지 않으시는 예수님의 소식을. 믿음을 보이기만 하면 예수님을 통해 구원받는다는 소식을 그는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궁금했습니다. 자캐오는 예수님을 만나 뵙게 싶어서 사람들이 모여든 군중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그는 키가 작아서 도저히 예수님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군중들은 죄인의 대명사인 세관장에게 어떠한 배려도 하지 않았습니다.


    4 그래서 앞질러 달려가 돌무화과나무로 올라갔다. 그곳을 지나시는 예수님을 보려는 것이었다.

    자캐오는 예수님을 보고 싶은 열망에 앞서 달려가 돌무화과나무 위로 올라가서 예수님을 기다렸습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은 평평한 지붕 위에 올라가 지나가는 예수님을 바라보았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세리였던 자캐오는 유다인들이 죄인으로 여겼기에 그런 그를 자기의 집에 들여보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나무 위에 올라가있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남들이 모두 죄인이라고 손가락질하는 사람인데, 그런 그가 나무 위에 올라가 있는데 사람들은 고운 눈으로 그를 쳐다볼 리 없고, 부드러운 말을 건넬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자캐오는 전혀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마음에는 오직 예수님 밖에는 없고, 그의 귀에는 예수님의 소리밖에는 안 들리고, 그의 눈에는 오직 예수님밖에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도 예수님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다른 것들, 주변의 시선 등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 열정은 모든 것을 이겨내게 만듭니다.


    5 예수님께서 거기에 이르러 위를 쳐다보시며 그에게 이르셨다.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

     예수님께서 자캐오를 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캐오의 그 마음도 보셨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축복을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캐오를 부르십니다.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 예수님께서는 보통 사람들의 초대에 응하셨지만 이번에는 직접 자청하고 계십니다. 기다림에 응답을 받은 자케오. 얼마나 기쁜 마음으로 나무에서 내려왔을까요? 사람들의 야유와 자신의 신체적인 결함 등을 모두 이겨내고 기다렸던 그분께 응답을 받은 자캐오. 게다가 자신의 집에 머무시겠다고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 자캐오는 행복이 충만합니다.



    6 자캐오는 얼른 내려와 예수님을 기쁘게 맞아들였다.

     자케오는 예수님을 집에 모셔 들였습니다. 암브로시오 성인은 이것을 “예수님께서 최초로 흔드시어 떨어진 새로운 시대의 잘 익은 무화과”였다고 표현하십니다. 경건한 유대인들은 세리나 공적인 죄인들과 한 식탁에 앉는 일이 결코 없었습니다.


     자캐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는 “무엇 때문에 안돼, 사람들의 눈도 있는데, 내가 그것을 어떻게,”이런 모든 분심들을 없애 버려야 할 것입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청하면서 준비하고 기다린다면 주님께서는 꼭 들어주십니다. 자캐오가 응답 받은 것처럼 그렇게 응답받게 됩니다.


    7 그것을 보고 사람들은 모두 “저이가 죄인의 집에 들어가 묵는군.” 하고 투덜거렸다.

     사람들은 모두 놀라서 불평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모습은 출애굽을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끊임없이 하느님께 불평하는 모습과 유사한 듯 합니다. 언제나 불평만 하는 사람들. 어쩌면 그 유다인의 모습이 바로 나의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자캐오의 집에 들어가시는 예수님을 향하여 이렇게 투덜거립니다. “저이가 죄인의 집에 들어가 묵는군.” “저이가”라는 표현이 참 와 닿습니다. 예수님께 대한 존경이 사라지고 예수님을 죄인 취급 하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죄인의 집”은 누구의 집을 말할까요? 남을 판단하고, 남을 비웃고, 남을 모욕하는 사람들이 죄인 아니겠습니까? 내가 그런 사람이라면 내 집이 바로 죄인의 집이고, 내 집이 바로 구원에서 멀어진 집입니다. 그리고 자캐오의 집은 의인의 집입니다. 나의 집 또한 구원이 머무는 의인의 집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내가 내 가정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8 그러나 자캐오는 일어서서 주님께 말하였다. “보십시오, 주님!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른 사람 것을 횡령하였다면 네 곱절로 갚겠습니다.”

    자캐오는 변했습니다.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습니다.” 그렇게 욕먹으면서 모아들였던 재산을 나눠 준다고 했습니다. 또 “제가 다른 사람 것을 횡령하였다면 네 곱절로 갚겠습니다.”라고 고백을 합니다. 그는 자신의 회심을 확실하게 증명해 보이려고 합니다.


    율법학자들은 회개가 참되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 일정한 금액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재산의 5분의 1을, 그 다음부터는 매년 수입 중 그에 상당하는 액수를 바쳐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민수기 5,6-7 참조). 자캐오는 율법이 정하는 바와 같이(레위기 5,20-26) 부정한 수입과 그 수입의 5분의 1에 해당하는 양을 보태어 배상하는 것으로만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재산의 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 주고, 등쳐먹은 일이 있다면 네 곱절로 갚아 주겠다고 했습니다. 자캐오는 이렇게 자신의 회심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주일학교 친구들이 성사를 보러오면 이렇게 묻습니다. “그럼 보속으로는 무엇을 할래?” “저기요. 앞으로는 동생 안 때리고요, 부모님 말씀 잘 듣고요, 친구들과도 사이좋게 지내고요….” 주일학교 친구들이 자신에게 주는 보속이 바로 오늘 자캐오가 한 것과 똑같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른들은 어떻게 말할까요? 혹시“주님의 기도 한번 하겠습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참된 회개는 행위로 드러날 수밖에 없습니다. 자캐오처럼 성사를 봐야 만이 구원을 얻습니다.

    오상을 받으신 성 비오 신부님이 성사를 주는데 어떤 이가 제대로 죄를 고백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비오 신부님은 그를 꾸중하시며 내 보냈습니다. 그러나 그는 다시 돌아와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성사를 보았습니다. 성사를 보기 위해서는 ①성찰 ② 통회 ③ 정개 ④ 고백 이 꼭 필요합니다. 올바로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고, 제대로 뉘우치고, 제대로 마음 잡고, 정직하게 고백하는 것. 그것이 고백성사에서 필요한 것입니다.


    9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이다.

    진실하게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뉘우친 자캐오에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다.” 구원이 자캐오의 집에 왔습니다. 예수님의 탄생 때에, 경건한 유다인들이 죄인이라고 간주하던 목자들에게 선포된 내용이 이제 예수님의 말씀으로 세관장에게서 이루어졌습니다. 유다인들은 세리 자캐오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것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지만 그의 믿음과 그가 예수님께 드린 환대는 그가 아브라함의 참된 자손이라는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10 사람의 아들은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

     예수님께서는 파괴나 단죄가 아니라 구원을, 죽음이 아니라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오셨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1티모 1,15)


    구원의 때에 관하여 예언자들이 예언한 내용이 예수님에게서 실현되었습니다. “헤매는 것은 찾아내고 길 잃은 것은 도로 데려오리라. 상처 입은 것은 싸매 주고 아픈 것은 힘나도록 잘 먹여 주고 기름지고 튼튼한 것은 지켜 주겠다. 이렇게 나는 목자의 구실을 다 하리라”(에제키엘 34,16)


    예수님께서 나를 부르시면 “예”하고 달려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부르시는 이유는 구원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르심은 큰 축복이라는 것을 명심합시다.


    3. 나눔 및 묵상

    1. 나는 열심한 신앙생활을 하고자 하나 주변 상황이 어려워서 신앙생활을 못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자캐오처럼 예수님께로 다가가는데 어려움을 느낀 적이 있습니까? 자캐오는 나무위로 올라갔고, 예수님과 만나게 됩니다. 나는 나에게 주어진 어려움을 어떻게 이겨냈습니까?


    2. 자캐오는 진실한 마음으로 자신의 삶의 방향을 돌렸습니다. 참된 회개를 한 것입니다. 내가 자캐오라면 예수님께 어떻게 고백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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