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연중 제1주간 금요일(1/12)


    말씀의 초대
    자신의 힘으로는 예수님께 다가가지 못하는 중풍 병자를 사람들이 예수님께 데리고 와 치유의 기적을 체험하게 한다. 실로 인간 개개인의 힘으로는 얻을 수 없는 하느님의 은총이 있다 하더라도, 공동체가 함께 사랑으로 정성을 들인다면 하느님의 구원 은총은 반드시 우리에게 내려질 것이다(복음).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우리 가운데에 큰 예언자가 나타났도다.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찾아오셨도다. ◎ 알렐루야.
    복음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12 며칠 뒤에 예수님께서는 다시 카파르나움으로 들어가셨다. 그분께서 집에 계시다는 소문이 퍼지자, 문 앞까지 빈자리가 없을 만큼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복음 말씀을 전하셨다. 그때에 사람들이 어떤 중풍 병자를 그분께 데리고 왔다. 그 병자는 네 사람이 들것에 들고 있었는데, 군중 때문에 그분께 가까이 데려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분께서 계신 자리의 지붕을 벗기고 구멍을 내어, 중풍 병자가 누워 있는 들것을 달아 내려 보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얘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율법 학자 몇 사람이 거기에 앉아 있다가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였다. ‘이자가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하느님을 모독하는군. 하느님 한 분 외에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예수님께서는 곧바로 그들이 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는 것을 당신 영으로 아시고 말씀하셨다. “너희는 어찌하여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느냐? 중풍 병자에게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하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 네 들것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고 말하는 것 가운데에서 어느 쪽이 더 쉬우냐? 이제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해 주겠다.” 그러고 나서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 들것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거라.” 그러자 그는 일어나 곧바로 들것을 가지고,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밖으로 걸어 나갔다. 이에 모든 사람이 크게 놀라 하느님을 찬양하며 말하였다. “이런 일은 일찍이 본 적이 없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이 신비로운 제사를 정성껏 거행하며 간절히 청하오니,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봉헌하는 이 예물이 저희 구원에 도움이 되게 하소서. 우리 주…….
    영성체송
    주님의 기적들을 낱낱이 이야기하오리다. 지극히 높으신 분, 저는 주님 안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주님의 이름에 찬미 노래 바치나이다.
    영성체 후 기도
    전능하신 하느님, 이 거룩한 미사에서 저희가 성체로 구원의 보증을 받았으니, 실제로 그 구원을 얻게 하소서. 우리 주…….
    오늘의 묵상
    얼마 전 미국의 한 학자는 노인들의 생활 유형과 사망률의 관계에 대하여 20년 동안 조사한 결과를 발표하였습니다. 이 조사에 따르면, 다른 사람을 돕지 않는 노인들은, 친구나 친척, 이웃에게 직접적으로 도움을 많이 베풀어 준 노인들보다 사망률이 두 배가량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사회적 지원을 받은 노인과 그렇지 못한 노인의 사망률의 차이는 그리 크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연구 결과에 대해 그 학자는 “다른 사람을 돕는 것은 사람 사이의 인간관계에서 핵심적인 부분인 동시에 자신의 건강과 생명을 유지하는 데도 아주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음이 충분히 증명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동안 노인의 사망률에 관한 연구의 초점은 사회적 지원을 받는 사람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보다 얼마나 더 오래 살 수 있는지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연구 결과는 남을 도와주는 행위가 도움을 받는 사람보다는 오히려 도움을 주는 사람에게 더 큰 유익이 있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입증한 데에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을 의심하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에게는 다음과 같은 말로 이 연구 결과를 설명해 주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입니다. “집에서 우유를 받아 마시는 사람보다는 그 우유를 배달하는 사람이 더 건강한 법이다.” 중풍 병자를 고쳐 주신 예수님의 치유는 사실 중풍 병자 스스로의 힘으로는 얻을 수 없었던 은총이었습니다. 그를 도와주려는 네 사람의 이웃이 없었다면 그는 아마 예수님의 치유를 경험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치유의 기쁨과 행복을 체험한 사람들은 어쩌면 그 중풍 병자를 예수님께 데려온 이웃 사람들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주는 기쁨은 받는 기쁨보다 더욱 본질적이기 때문입니다.
 
저녁노을(모니카)




♬ Christus Natus 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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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연중 제1주간 금요일(1/12)


      말씀의 초대
      자신의 힘으로는 예수님께 다가가지 못하는 중풍 병자를 사람들이 예수님께 데리고 와 치유의 기적을 체험하게 한다. 실로 인간 개개인의 힘으로는 얻을 수 없는 하느님의 은총이 있다 하더라도, 공동체가 함께 사랑으로 정성을 들인다면 하느님의 구원 은총은 반드시 우리에게 내려질 것이다(복음).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우리 가운데에 큰 예언자가 나타났도다.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찾아오셨도다. ◎ 알렐루야.
      복음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12 며칠 뒤에 예수님께서는 다시 카파르나움으로 들어가셨다. 그분께서 집에 계시다는 소문이 퍼지자, 문 앞까지 빈자리가 없을 만큼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복음 말씀을 전하셨다. 그때에 사람들이 어떤 중풍 병자를 그분께 데리고 왔다. 그 병자는 네 사람이 들것에 들고 있었는데, 군중 때문에 그분께 가까이 데려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분께서 계신 자리의 지붕을 벗기고 구멍을 내어, 중풍 병자가 누워 있는 들것을 달아 내려 보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얘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율법 학자 몇 사람이 거기에 앉아 있다가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였다. ‘이자가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하느님을 모독하는군. 하느님 한 분 외에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예수님께서는 곧바로 그들이 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는 것을 당신 영으로 아시고 말씀하셨다. “너희는 어찌하여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느냐? 중풍 병자에게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하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 네 들것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고 말하는 것 가운데에서 어느 쪽이 더 쉬우냐? 이제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해 주겠다.” 그러고 나서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 들것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거라.” 그러자 그는 일어나 곧바로 들것을 가지고,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밖으로 걸어 나갔다. 이에 모든 사람이 크게 놀라 하느님을 찬양하며 말하였다. “이런 일은 일찍이 본 적이 없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이 신비로운 제사를 정성껏 거행하며 간절히 청하오니,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봉헌하는 이 예물이 저희 구원에 도움이 되게 하소서. 우리 주…….
      영성체송
      주님의 기적들을 낱낱이 이야기하오리다. 지극히 높으신 분, 저는 주님 안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주님의 이름에 찬미 노래 바치나이다.
      영성체 후 기도
      전능하신 하느님, 이 거룩한 미사에서 저희가 성체로 구원의 보증을 받았으니, 실제로 그 구원을 얻게 하소서. 우리 주…….
      오늘의 묵상
      얼마 전 미국의 한 학자는 노인들의 생활 유형과 사망률의 관계에 대하여 20년 동안 조사한 결과를 발표하였습니다. 이 조사에 따르면, 다른 사람을 돕지 않는 노인들은, 친구나 친척, 이웃에게 직접적으로 도움을 많이 베풀어 준 노인들보다 사망률이 두 배가량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사회적 지원을 받은 노인과 그렇지 못한 노인의 사망률의 차이는 그리 크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연구 결과에 대해 그 학자는 “다른 사람을 돕는 것은 사람 사이의 인간관계에서 핵심적인 부분인 동시에 자신의 건강과 생명을 유지하는 데도 아주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음이 충분히 증명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동안 노인의 사망률에 관한 연구의 초점은 사회적 지원을 받는 사람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보다 얼마나 더 오래 살 수 있는지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연구 결과는 남을 도와주는 행위가 도움을 받는 사람보다는 오히려 도움을 주는 사람에게 더 큰 유익이 있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입증한 데에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을 의심하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에게는 다음과 같은 말로 이 연구 결과를 설명해 주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입니다. “집에서 우유를 받아 마시는 사람보다는 그 우유를 배달하는 사람이 더 건강한 법이다.” 중풍 병자를 고쳐 주신 예수님의 치유는 사실 중풍 병자 스스로의 힘으로는 얻을 수 없었던 은총이었습니다. 그를 도와주려는 네 사람의 이웃이 없었다면 그는 아마 예수님의 치유를 경험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치유의 기쁨과 행복을 체험한 사람들은 어쩌면 그 중풍 병자를 예수님께 데려온 이웃 사람들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주는 기쁨은 받는 기쁨보다 더욱 본질적이기 때문입니다.
     
    저녁노을(모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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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user#0 님의 말:

    “얘야 너는 죄를 용서 받았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려니
    구역자매님의 말씀이 생각이 납니다
    아들내외와 함께 사시는 자매님께 며느님께서 잘하세요?
    마음에 상처는 받지 않으시는지요? 하고 여쭈었더니
    그 자매님께서 그러셨습니다
    며느리가 마음에 들었다 안들었다 하신다구요
    하지만 자식이니 마음에 상처를 받아도 참고 그런다구요
    그 말씀을 듣는 순간 제가 그랫습니다
    아마 당신께서도 저희들이 마음에 들었다 안들었다 하실 것이라구요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려니 그 자매님의 말씀처럼 저도 당신의 마음에
    들었다 안 들었다 하실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신께서도 그런 저를 감싸 주시고 저에게 받으신 상처와 아품을
    삭히실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당신께 죄를 많이 지은 저를……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는 저를….
    가끔식은 (변덕이 날때) 당신을 믿는 저를…..
    사랑이신 당신께서 용서해주시리라고…..
    믿습니다!
    아니!
    믿고 싶습니다!

    “헬레나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하구요
    당신께서 제가 지은 죄를 용서해주시리라고 믿습니다
    아니!
    믿고 싶습니다
    당신은 사랑이시니까요
    그쵸?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정해 년 새해에 당신께 약속하고 다짐했던 모든 일들을
    지켜야겠다고 다짐해봅니다
    저의 정성과 저의 노력과 당신을 사랑하려는 그 가상한 마음을 보신
    당신께서 저에게 헬레나야 너의 죄를 용서해주겠다 하실 그날을 위해
    당신께 약속한 모든 것들을 지키도록 노력하겟습니다
    아니!
    설사 지키지 못한다 하더라도 사랑이신 당신께서는 저의 모든 잘못을
    용서해주시리라고 믿습니다
    주님!
    당신은 사랑이시니까요
    당신만을 믿습니다
    주님!
    사랑해요!
    아멘

    “얘야 너는 죄를 용서 받았다”

    묵상하며

  3. user#0 님의 말:

    “얘야 너는 죄를 용서 받았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려니
    구역자매님의 말씀이 생각이 납니다
    아들내외와 함께 사시는 자매님께 며느님께서 잘하세요?
    마음에 상처는 받지 않으시는지요? 하고 여쭈었더니
    그 자매님께서 그러셨습니다
    며느리가 마음에 들었다 안들었다 하신다구요
    하지만 자식이니 마음에 상처를 받아도 참고 그런다구요
    그 말씀을 듣는 순간 제가 그랫습니다
    아마 당신께서도 저희들이 마음에 들었다 안들었다 하실 것이라구요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려니 그 자매님의 말씀처럼 저도 당신의 마음에
    들었다 안 들었다 하실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신께서도 그런 저를 감싸 주시고 저에게 받으신 상처와 아품을
    삭히실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당신께 죄를 많이 지은 저를……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는 저를….
    가끔식은 (변덕이 날때) 당신을 믿는 저를…..
    사랑이신 당신께서 용서해주시리라고…..
    믿습니다!
    아니!
    믿고 싶습니다!

    “헬레나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하구요
    당신께서 제가 지은 죄를 용서해주시리라고 믿습니다
    아니!
    믿고 싶습니다
    당신은 사랑이시니까요
    그쵸?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정해 년 새해에 당신께 약속하고 다짐했던 모든 일들을
    지켜야겠다고 다짐해봅니다
    저의 정성과 저의 노력과 당신을 사랑하려는 그 가상한 마음을 보신
    당신께서 저에게 헬레나야 너의 죄를 용서해주겠다 하실 그날을 위해
    당신께 약속한 모든 것들을 지키도록 노력하겟습니다
    아니!
    설사 지키지 못한다 하더라도 사랑이신 당신께서는 저의 모든 잘못을
    용서해주시리라고 믿습니다
    주님!
    당신은 사랑이시니까요
    당신만을 믿습니다
    주님!
    사랑해요!
    아멘

    “얘야 너는 죄를 용서 받았다”

    묵상하며

  4. user#0 님의 말:

     

    친구인지, 가족인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 병자를 데리고 예수님 앞에 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너무 많으니 예수님 앞으로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께서 계신 곳의 지붕을 벗겨 내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를 침상에 뉘어서 내려 보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어떻게 하실까요?


    1 며칠 뒤에 예수님께서는 다시 카파르나움으로 들어가셨다. 그분께서 집에 계시다는 소문이 퍼지자,

    나병 환자의 치유가 있었던 며칠 후에 예수님께서는 다시 카파르나움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셨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퍼져 나갔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려하셨던 일이 발생합니다. 어떤 틀을 가지고 예수님께 다가오는 사람들. 그들이 기다리던 메시아는 정치적인 메시아였으며, 자신들의 상황을 바꿔 줄 그런 메시아를 원했습니다.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셨을 때에도 군중들은 억지로라도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왕권은 그런 다스림의 권좌가 아닙니다. 자신을 내어 주고, 사랑하고 용서하는,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모든 것을 내어 놓은 그런 다스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시기 위해서 복음을 선포하십니다. 그런데 그런 욕심들이나, 편협한 생각들은 하느님 나라를 가로막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2 문 앞까지 빈자리가 없을 만큼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복음 말씀을 전하셨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소문도 그렇게 빨리 세상에 퍼졌습니다. 많은 이들은 예수님께로 몰려왔습니다. 그분의 기적을 바라는 사람들, 그분이 무슨 말을 하는지 꼬집으려고 벼르려고 온 사람들…많은 이들이 예수님을 찾아 왔기에 더 이상 사람들이 들어갈 틈이 없었습니다.


    문 앞까지 빈자기가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는 것으로 보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몰려 왔는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도 주님의 기쁜 소식을 온 세상에 전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성당에 몰려올 수 있도록, 그래서 성당 문 앞까지 빈자리가 없을 만큼 사람들이 몰려 올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


    3 그때에 사람들이 어떤 중풍 병자를 그분께 데리고 왔다. 그 병자는 네 사람이 들것에 들고 있었는데,

    중풍 걸린 사람의 가족인지 아니면 친구들인지 모르겠지만 남자 몇이 중풍에 걸린 어떤 사람을 평상에 누인 채 예수님께로 나아가려고 합니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만져주시거나, 한 말씀만 하시면 병이 낫는 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믿고 있었습니다. 나병 환자도 나았는데 중병평자는 더 쉬울 것입니다. 그들은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로 나아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4 군중 때문에 그분께 가까이 데려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분께서 계신 자리의 지붕을 벗기고 구멍을 내어, 중풍 병자가 누워 있는 들것을 달아내려 보냈다.

    지붕을 벗긴다는 것은 우리네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으나 당시 이스라엘의 가옥 구조를 감안하면 납득이 갑니다. 흔히 방 한 칸에 흙벽을 쳤는데 방바닥은 널찍하지만 흙벽은 올라갈수록 좁아져서 지붕 면적이래야 두 평방미터 남짓 했습니다. 밑은 넓고 위는 보은 나지막한 굴뚝같은 집입니다. 지붕에는 흔히 나무막대기를 걸쳐놓고 나뭇가지나 갈대 같은 것을 깔았습니다. 그러니 쉽게 벗길 수 있었습니다. 아울러 옥외에는 지붕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붙어 있었기 때문에 쉽게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루카복음의 독자는 그리스 사람들이었기에 루가복음사가는 “지붕을 벗기고”(마르2,4)를 “기와를 벗겨내고”로 고쳤습니다. 로마식, 그리스식 가옥에는 기와를 입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중풍병자를 내려 보내는 사람들의 믿음도 대단합니다. 내 믿음 또한 그런 믿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이들을 위해서 믿음을 보이고, 다른 형제자매들의 구원을 위해서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삶. 그 삶이 내 삶이었으면 좋겠습니다.


    5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얘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예수님께서는 사랑스럽게 그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십니다. “얘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아버지가 아들을 용서하듯이, 아버지가 어린 아이를 어루만져 주듯이 그렇게 치유는 이루어집니다.


      병자의 치유와 죄의 용서는 서로 관련되어 있습니다. 유대의 사고방식에는 인과적 연관성이 있는데, 그들은 위중한 병을 “죄의 결과”로 보았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용서의 말씀을 하실 때, 맨 먼저 악의 보다 깊은 뿌리가 제거되는 것입니다. 육체적인 질환으로부터의 해방은 치유의 완성을 의미하며, 동시에 인간의 죄가 용서받는다는 증거를 의미합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죄를 용서하는 권한이 예수님께 있다는 사실에 대한 증거는 유대의 사고방식, 즉 “큰 것으로부터 작은 것에로”라는 법칙에서 나온 결론에 따라 시도됩니다. 인간적인 차원에서 볼 때 중풍병자를 고친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중풍병자를 고치신다면 죄의 용서는 말할 것이 못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 만세!” 하고 외쳐야 하는데 한편에서는 불신의 목소리가 마음속에서 울려 퍼졌습니다.


    6 율법 학자 몇 사람이 거기에 앉아 있다가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였다.

    그들의 틀로 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하느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을 인간이 할 수 있단 말인가?”저 사람은 거짓말 장이임에 틀림이 없다. 하느님만이 죄를 용서하실 수 있는데, 인간이 죄를 용서한다는 그 말 자체로 그의 거짓이 들어나는 것이라고 그들은 생각합니다. 하지만 뒤집에서 예수님께서 죄를 용서하신다면 예수님께서 하느님이심을 알 수 있어야 합니다.


    7 ‘이자가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하느님을 모독하는군. 하느님 한 분 외에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예수님께서 죄를 용서하시면 예수님께서 바로 하느님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 입으로 이야기 했으니 이제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 한 분 외에 죄를 용서하실 수 있는 분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의 입으로 예수님께서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이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8 예수님께서는 곧바로 그들이 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는 것을 당신 영으로 아시고 말씀하셨다. “너희는 어찌하여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느냐?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읽으셨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느님을 모독하는 사람에게 하느님께서 중풍병자를 치유할 수 있는 힘을 주시겠는가?


    9 중풍 병자에게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하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 네 들것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고 말하는 것 가운데에서 어느 쪽이 더 쉬우냐?

    둘 다 쉽지 않습니다. 죄의 용서는 하느님의 자비에서 오는 것이니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하고, 기적적 치유는 하느님의 전능에서 오는 것이니 그것도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사람이 결과를 직접 체험할 수 있다는 면에서 보면, 중풍 병자에게 걸으라고 하기보다는 “네 죄를 용서받았다.”고 하는 편이 훨씬 쉽습니다. 왜냐하면 돌아가서 그 말씀대로 죄의 용서를 받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아무도 확인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을 명령을 했다면, 그 명령자는 웃음거리가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10 이제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해 주겠다.” 그러고 나서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11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 들것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거라.”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말씀하시면서 병자에게 말씀하십니다.“죄를 용서받았다.”는 말과 “일어나  걸어 가거라.”하는 이 두 가지 말을 같은 사람, 즉 예수님께서 하셨기에 체험할 수 있는 중풍의 치유가 이루어졌다면 체험할 수 없는 죄의 용서도 증명되는 것입니다.


    12 그러자 그는 일어나 곧바로 들것을 가지고,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밖으로 걸어 나갔다. 이에 모든 사람이 크게 놀라 하느님을 찬양하며 말하였다. “이런 일은 일찍이 본 적이 없다.”

    그러자 병자는 일어나 곧 침상을 들고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밖으로 나갔습니다. 모든 이들이 넋을 잃었습니다. 그들의 입에서는 하느님에 대한 찬양이 터져 나옵니다. 어떤 사람의 청도 예수님께서는 거절하지 않으십니다. 어느 병자의 청도 거절하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너무도 자비로우셔서, 너무도 사랑이 많으셔서 불쌍한 이들, 고통당하는 이들의 청을 외면하지 않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신기한 것을 보았다고 감탄만 하지 말고 나도 그렇게 예수님께 청해서 구원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3.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말을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아니면 행동을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남을 치유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아니면 남의 아픔을 외면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2. 말씀 한마디로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습니다. 중풍병자는 일어나 요를 걷어들고 집으로 갔습니다. 하느님을 찬양하면서. 그런데 주변 사람들이 중요합니다. 움직이지 못하는 그를 예수님 앞에 까지 데려다 준 사람들이 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나는 어떻습니까? 내 옆에 있는 사람을 예수님께로 데려다 주고 있습니까? 그리고 그 사람은 하느님을 찬미하고 있습니까?

  5. user#0 님의 말:

     

    친구인지, 가족인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 병자를 데리고 예수님 앞에 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너무 많으니 예수님 앞으로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께서 계신 곳의 지붕을 벗겨 내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를 침상에 뉘어서 내려 보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어떻게 하실까요?


    1 며칠 뒤에 예수님께서는 다시 카파르나움으로 들어가셨다. 그분께서 집에 계시다는 소문이 퍼지자,

    나병 환자의 치유가 있었던 며칠 후에 예수님께서는 다시 카파르나움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셨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퍼져 나갔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려하셨던 일이 발생합니다. 어떤 틀을 가지고 예수님께 다가오는 사람들. 그들이 기다리던 메시아는 정치적인 메시아였으며, 자신들의 상황을 바꿔 줄 그런 메시아를 원했습니다.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셨을 때에도 군중들은 억지로라도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왕권은 그런 다스림의 권좌가 아닙니다. 자신을 내어 주고, 사랑하고 용서하는,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모든 것을 내어 놓은 그런 다스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시기 위해서 복음을 선포하십니다. 그런데 그런 욕심들이나, 편협한 생각들은 하느님 나라를 가로막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2 문 앞까지 빈자리가 없을 만큼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복음 말씀을 전하셨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소문도 그렇게 빨리 세상에 퍼졌습니다. 많은 이들은 예수님께로 몰려왔습니다. 그분의 기적을 바라는 사람들, 그분이 무슨 말을 하는지 꼬집으려고 벼르려고 온 사람들…많은 이들이 예수님을 찾아 왔기에 더 이상 사람들이 들어갈 틈이 없었습니다.


    문 앞까지 빈자기가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는 것으로 보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몰려 왔는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도 주님의 기쁜 소식을 온 세상에 전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성당에 몰려올 수 있도록, 그래서 성당 문 앞까지 빈자리가 없을 만큼 사람들이 몰려 올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


    3 그때에 사람들이 어떤 중풍 병자를 그분께 데리고 왔다. 그 병자는 네 사람이 들것에 들고 있었는데,

    중풍 걸린 사람의 가족인지 아니면 친구들인지 모르겠지만 남자 몇이 중풍에 걸린 어떤 사람을 평상에 누인 채 예수님께로 나아가려고 합니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만져주시거나, 한 말씀만 하시면 병이 낫는 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믿고 있었습니다. 나병 환자도 나았는데 중병평자는 더 쉬울 것입니다. 그들은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로 나아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4 군중 때문에 그분께 가까이 데려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분께서 계신 자리의 지붕을 벗기고 구멍을 내어, 중풍 병자가 누워 있는 들것을 달아내려 보냈다.

    지붕을 벗긴다는 것은 우리네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으나 당시 이스라엘의 가옥 구조를 감안하면 납득이 갑니다. 흔히 방 한 칸에 흙벽을 쳤는데 방바닥은 널찍하지만 흙벽은 올라갈수록 좁아져서 지붕 면적이래야 두 평방미터 남짓 했습니다. 밑은 넓고 위는 보은 나지막한 굴뚝같은 집입니다. 지붕에는 흔히 나무막대기를 걸쳐놓고 나뭇가지나 갈대 같은 것을 깔았습니다. 그러니 쉽게 벗길 수 있었습니다. 아울러 옥외에는 지붕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붙어 있었기 때문에 쉽게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루카복음의 독자는 그리스 사람들이었기에 루가복음사가는 “지붕을 벗기고”(마르2,4)를 “기와를 벗겨내고”로 고쳤습니다. 로마식, 그리스식 가옥에는 기와를 입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중풍병자를 내려 보내는 사람들의 믿음도 대단합니다. 내 믿음 또한 그런 믿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이들을 위해서 믿음을 보이고, 다른 형제자매들의 구원을 위해서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삶. 그 삶이 내 삶이었으면 좋겠습니다.


    5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얘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예수님께서는 사랑스럽게 그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십니다. “얘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아버지가 아들을 용서하듯이, 아버지가 어린 아이를 어루만져 주듯이 그렇게 치유는 이루어집니다.


      병자의 치유와 죄의 용서는 서로 관련되어 있습니다. 유대의 사고방식에는 인과적 연관성이 있는데, 그들은 위중한 병을 “죄의 결과”로 보았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용서의 말씀을 하실 때, 맨 먼저 악의 보다 깊은 뿌리가 제거되는 것입니다. 육체적인 질환으로부터의 해방은 치유의 완성을 의미하며, 동시에 인간의 죄가 용서받는다는 증거를 의미합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죄를 용서하는 권한이 예수님께 있다는 사실에 대한 증거는 유대의 사고방식, 즉 “큰 것으로부터 작은 것에로”라는 법칙에서 나온 결론에 따라 시도됩니다. 인간적인 차원에서 볼 때 중풍병자를 고친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중풍병자를 고치신다면 죄의 용서는 말할 것이 못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 만세!” 하고 외쳐야 하는데 한편에서는 불신의 목소리가 마음속에서 울려 퍼졌습니다.


    6 율법 학자 몇 사람이 거기에 앉아 있다가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였다.

    그들의 틀로 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하느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을 인간이 할 수 있단 말인가?”저 사람은 거짓말 장이임에 틀림이 없다. 하느님만이 죄를 용서하실 수 있는데, 인간이 죄를 용서한다는 그 말 자체로 그의 거짓이 들어나는 것이라고 그들은 생각합니다. 하지만 뒤집에서 예수님께서 죄를 용서하신다면 예수님께서 하느님이심을 알 수 있어야 합니다.


    7 ‘이자가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하느님을 모독하는군. 하느님 한 분 외에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예수님께서 죄를 용서하시면 예수님께서 바로 하느님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 입으로 이야기 했으니 이제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 한 분 외에 죄를 용서하실 수 있는 분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의 입으로 예수님께서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이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8 예수님께서는 곧바로 그들이 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는 것을 당신 영으로 아시고 말씀하셨다. “너희는 어찌하여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느냐?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읽으셨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느님을 모독하는 사람에게 하느님께서 중풍병자를 치유할 수 있는 힘을 주시겠는가?


    9 중풍 병자에게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하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 네 들것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고 말하는 것 가운데에서 어느 쪽이 더 쉬우냐?

    둘 다 쉽지 않습니다. 죄의 용서는 하느님의 자비에서 오는 것이니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하고, 기적적 치유는 하느님의 전능에서 오는 것이니 그것도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사람이 결과를 직접 체험할 수 있다는 면에서 보면, 중풍 병자에게 걸으라고 하기보다는 “네 죄를 용서받았다.”고 하는 편이 훨씬 쉽습니다. 왜냐하면 돌아가서 그 말씀대로 죄의 용서를 받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아무도 확인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을 명령을 했다면, 그 명령자는 웃음거리가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10 이제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해 주겠다.” 그러고 나서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11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 들것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거라.”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말씀하시면서 병자에게 말씀하십니다.“죄를 용서받았다.”는 말과 “일어나  걸어 가거라.”하는 이 두 가지 말을 같은 사람, 즉 예수님께서 하셨기에 체험할 수 있는 중풍의 치유가 이루어졌다면 체험할 수 없는 죄의 용서도 증명되는 것입니다.


    12 그러자 그는 일어나 곧바로 들것을 가지고,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밖으로 걸어 나갔다. 이에 모든 사람이 크게 놀라 하느님을 찬양하며 말하였다. “이런 일은 일찍이 본 적이 없다.”

    그러자 병자는 일어나 곧 침상을 들고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밖으로 나갔습니다. 모든 이들이 넋을 잃었습니다. 그들의 입에서는 하느님에 대한 찬양이 터져 나옵니다. 어떤 사람의 청도 예수님께서는 거절하지 않으십니다. 어느 병자의 청도 거절하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너무도 자비로우셔서, 너무도 사랑이 많으셔서 불쌍한 이들, 고통당하는 이들의 청을 외면하지 않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신기한 것을 보았다고 감탄만 하지 말고 나도 그렇게 예수님께 청해서 구원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3.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말을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아니면 행동을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남을 치유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아니면 남의 아픔을 외면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2. 말씀 한마디로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습니다. 중풍병자는 일어나 요를 걷어들고 집으로 갔습니다. 하느님을 찬양하면서. 그런데 주변 사람들이 중요합니다. 움직이지 못하는 그를 예수님 앞에 까지 데려다 준 사람들이 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나는 어떻습니까? 내 옆에 있는 사람을 예수님께로 데려다 주고 있습니까? 그리고 그 사람은 하느님을 찬미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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