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으셔야 합니다


연중 제6주간 목요일(2/15)


    말씀의 초대
    예수님께서 진정 누구이신지 알아본다는 것은 그분을 따르는 우리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중요한 신앙 고백이다. 또한 예수님을 올바로 이해한다는 것은 십자가의 고통을 빼놓고서는 가능하지 않다(복음).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주님, 주님의 말씀은 영이며 생명이시옵니다.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나이다. ◎ 알렐루야.
    복음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으셔야 합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8,27-33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카이사리아 필리피 근처 마을을 향하여 길을 떠나셨다. 그리고 길에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베드로가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당신에 관하여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엄중히 이르셨다. 예수님께서는 그 뒤에, 사람의 아들이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으시고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명백히 하셨다. 그러자 베드로가 예수님을 꼭 붙들고 반박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제자들을 보신 다음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하며 꾸짖으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교회가 바치는 이 제사가 깨끗하고 거룩한 예물이 되게 하시고, 저희에게 주님의 자비를 충만하게 베풀어 주소서. 우리 주…….
    영성체송
    주님, 저에게 생명의 길을 가르치시니, 주님 면전에서 넘치는 기쁨을 누리리이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성체를 받아 모시고 힘을 얻은 저희에게 더욱 힘찬 능력을 드러내시어, 저희가 주님께서 약속하신 은혜를 얻게 하소서. 우리 주…….
    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는 카이사리아 필리피 근처 마을을 향하여 떠나시면서 동행한 제자들에게 당신을 누구라고 생각하는지 물어보십니다. 이 지역은 헤로데 임금과 클레오파트라 왕비 사이에 태어난 헤로데 필리피가 다스렸던 곳으로, 로마 제국의 첫 번째 황제인 아우구스투스 카이사르를 기려서 세운 도시였습니다. 또한 이교 신앙의 중심지였으며, 구약 시대에는 하느님 신앙의 적이었던 ‘바알’ 신의 예배 중심지이기도 하였습니다. 한마디로 이 지역은 이교도의 유산과 문화를 집대성해 놓은 도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러한 이방인의 도시에서 제자들에게 당신이 누구신지를 물어보시는 것은 당신의 정체성에 대한 물음이라기보다는, 바로 제자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물음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예수님께서는 아직 하느님의 나라가 도래하지 않은, 죄와 죽음이 가득 찬 이 세상에서 우리 자신이 당신을 진정한 메시아로 고백하는 참된 신앙인인지를 확인하시려고 계속해서 이 질문을 던지십니다. 우리는 주님의 이 질문에 어떤 대답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낼 것인지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저녁노을(모니카)





♬ 하늘로부터 키재기 - 민성기 신부님의 시/신상옥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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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으셔야 합니다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연중 제6주간 목요일(2/15)


      말씀의 초대
      예수님께서 진정 누구이신지 알아본다는 것은 그분을 따르는 우리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중요한 신앙 고백이다. 또한 예수님을 올바로 이해한다는 것은 십자가의 고통을 빼놓고서는 가능하지 않다(복음).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주님, 주님의 말씀은 영이며 생명이시옵니다.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나이다. ◎ 알렐루야.
      복음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으셔야 합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8,27-33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카이사리아 필리피 근처 마을을 향하여 길을 떠나셨다. 그리고 길에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베드로가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당신에 관하여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엄중히 이르셨다. 예수님께서는 그 뒤에, 사람의 아들이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으시고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명백히 하셨다. 그러자 베드로가 예수님을 꼭 붙들고 반박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제자들을 보신 다음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하며 꾸짖으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교회가 바치는 이 제사가 깨끗하고 거룩한 예물이 되게 하시고, 저희에게 주님의 자비를 충만하게 베풀어 주소서. 우리 주…….
      영성체송
      주님, 저에게 생명의 길을 가르치시니, 주님 면전에서 넘치는 기쁨을 누리리이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성체를 받아 모시고 힘을 얻은 저희에게 더욱 힘찬 능력을 드러내시어, 저희가 주님께서 약속하신 은혜를 얻게 하소서. 우리 주…….
      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는 카이사리아 필리피 근처 마을을 향하여 떠나시면서 동행한 제자들에게 당신을 누구라고 생각하는지 물어보십니다. 이 지역은 헤로데 임금과 클레오파트라 왕비 사이에 태어난 헤로데 필리피가 다스렸던 곳으로, 로마 제국의 첫 번째 황제인 아우구스투스 카이사르를 기려서 세운 도시였습니다. 또한 이교 신앙의 중심지였으며, 구약 시대에는 하느님 신앙의 적이었던 ‘바알’ 신의 예배 중심지이기도 하였습니다. 한마디로 이 지역은 이교도의 유산과 문화를 집대성해 놓은 도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러한 이방인의 도시에서 제자들에게 당신이 누구신지를 물어보시는 것은 당신의 정체성에 대한 물음이라기보다는, 바로 제자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물음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예수님께서는 아직 하느님의 나라가 도래하지 않은, 죄와 죽음이 가득 찬 이 세상에서 우리 자신이 당신을 진정한 메시아로 고백하는 참된 신앙인인지를 확인하시려고 계속해서 이 질문을 던지십니다. 우리는 주님의 이 질문에 어떤 대답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낼 것인지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저녁노을(모니카)
    
    
    
    
    
    ♬ 하늘로부터 키재기 - 민성기 신부님의 시/신상옥 노래
    
    
    
    
    

  2. user#0 님의 말:

    “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주님!

    친정아버지께서 돌아가신지 49일이 되는 오늘 형제들과 함께
    아버지의 영혼을 위한 연미사를 드려 기뻤습니다
    저를 더욱 행복하게 한 것은 장남인 남동생은 불교신자임에도
    누나인 저의 뜻대로 성당에서 미사를 드릴 수 있게 배려를 해주어
    형제들이 함께 모여 미사참례를 하였습니다
    더구나 ….

    장남인데도 출가외인인 누나가 원하는대로 배려를 해준 남동생의
    사랑에 감사한 마음이 들고 무엇보다 자신의 종교만을 고집하지 않고
    양보할줄 아는 마음 씀씀이에 당신의 자녀가 아님에도 누나를 위해
    사랑을 실천한 동생의 고운 마음씨를 보면서 신앙인으로써 당신의 자녀로써
    형제들에게 부끄럽지 않는 신앙인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신의 자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당신께서 언제나 말씀하신 베풀 줄 아는 신앙인
    자신을 희생할 줄 아는 신앙인
    봉사를 하는 신앙인
    사랑을 실천하는 신앙인의 마음씨를 가진 남동생의 고운 심성을
    본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이기적인 누나를 위해 자신의 생각만을 고집하지 않으며
    부모님을 위한 것이라는 생각으로 누나가 하자는 대로 바쁜 중에도
    멀리서 까지 와서 하루도 쉬지 못하고 밤에 떠난 동생의 사려깊은 마음 씨를
    본받아야겠다고………….
    동생만도 못한 밴댕이 속알 딱지 같은 누나를 변함없이 사랑해주는 동생들의
    사랑을 본받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를 더욱 행복하게 한 것은…

    아버지의 장례를 천주교식으로 하니 깨끗하고 경건한 것같고
    바쁜 중에도 아버지를 위해 연도와 봉사를 하는 신자들의 모습을 보니
    천주교를 믿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고백을 할 수 있는 믿음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당신께서 영생을 주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굳게 믿으며
    어떠한 고난이 닥친다해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깊은 신앙인이
    되고 싶은 마음입니다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아멘

    “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묵상하며

  3. user#0 님의 말:

    “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주님!

    친정아버지께서 돌아가신지 49일이 되는 오늘 형제들과 함께
    아버지의 영혼을 위한 연미사를 드려 기뻤습니다
    저를 더욱 행복하게 한 것은 장남인 남동생은 불교신자임에도
    누나인 저의 뜻대로 성당에서 미사를 드릴 수 있게 배려를 해주어
    형제들이 함께 모여 미사참례를 하였습니다
    더구나 ….

    장남인데도 출가외인인 누나가 원하는대로 배려를 해준 남동생의
    사랑에 감사한 마음이 들고 무엇보다 자신의 종교만을 고집하지 않고
    양보할줄 아는 마음 씀씀이에 당신의 자녀가 아님에도 누나를 위해
    사랑을 실천한 동생의 고운 마음씨를 보면서 신앙인으로써 당신의 자녀로써
    형제들에게 부끄럽지 않는 신앙인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신의 자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당신께서 언제나 말씀하신 베풀 줄 아는 신앙인
    자신을 희생할 줄 아는 신앙인
    봉사를 하는 신앙인
    사랑을 실천하는 신앙인의 마음씨를 가진 남동생의 고운 심성을
    본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이기적인 누나를 위해 자신의 생각만을 고집하지 않으며
    부모님을 위한 것이라는 생각으로 누나가 하자는 대로 바쁜 중에도
    멀리서 까지 와서 하루도 쉬지 못하고 밤에 떠난 동생의 사려깊은 마음 씨를
    본받아야겠다고………….
    동생만도 못한 밴댕이 속알 딱지 같은 누나를 변함없이 사랑해주는 동생들의
    사랑을 본받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를 더욱 행복하게 한 것은…

    아버지의 장례를 천주교식으로 하니 깨끗하고 경건한 것같고
    바쁜 중에도 아버지를 위해 연도와 봉사를 하는 신자들의 모습을 보니
    천주교를 믿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고백을 할 수 있는 믿음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당신께서 영생을 주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굳게 믿으며
    어떠한 고난이 닥친다해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깊은 신앙인이
    되고 싶은 마음입니다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아멘

    “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묵상하며

  4. user#0 님의 말: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더냐?

    오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삶으로 당신이 정치적인 메시아가 아님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렇게 오해할까봐 기적을 베풀고도 침묵하라고 말씀하실 때가 많았습니다. 제자들도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고난 받는 야훼의 종으로서, 세상 구원을 위해서 당신의 피를 흘려야 되시는 분이심을. 영화롭게 세상의 권좌에 앉으실 분이 아니심을. 오늘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알려 주십니다. 그런데 베드로 사도는 반대합니다. 그러시면 안 된다고. 사랑하시는 예수님이 그런 고통을 당하면 안 된다고, 내 삶의 전부인 예수님께서 그렇게 세상을 떠나시면 안 된다고…,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냉정하게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일과 사람의 일을 구분하라고. 나의 모든 일은 하느님의 일이어야 한다고……,


    오늘 예수님께서는 카이사리아 지방에 있는 마을들을 향하여 가시다가 제자들에게 묻습니다.

    27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카이사리아 필리피 근처 마을을 향하여 길을 떠나셨다. 그리고 길에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이 물음은 지금까지는 대개가 묘사를 통해서만 밝혀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권위 있는 활동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대부분 “놀라다. 경탄하다” 등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지금 제자들의 답변은 당시의 분분한 의견들과 거의 일치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기적들을 바라보면서도 그들의 생각은 변하지 않은 채로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그런데 예수님께서 하시고 싶은 말씀은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라는 것을 묻고 싶어서였을 것입니다.


    28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합니다.”

    여러 의견들이 나올 법도 합니다. 그렇게 놀라운 일을 하시는 분을 만났으니. 제자들은 예수님께 그들이 들은 내용들을 전합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자기들 마음대로 생각했습니다. 메시아가 오시기 전에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니 예수님을 엘리야로 보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엘리야는 벌써 왔습니다. 엘리야의 정신을 가지고 세례자 요한이 벌써 와서 길을 준비해 놓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보고도 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도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29 예수님께서 다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예수님께서는 대중들의 이런 저런 견해들에 대해서는 아무 말씀을 하시지 않고 제자들에게 직접 단호하게 질문하십니다. 중요한 것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제자들의 생각입니다. 어떻게 예수님을 따르고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해서 이런 저런 말을 했습니다. “저분은 세례자 요한이 다시 살아나신 분이여! 저분은 엘리야여. 아녀! 저분은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여!”사람들은 이렇게 예수님에 대해서 이야기 했습니다. 세례자 요한이 엘리야임을 모르는 군중들은 메시아보다 엘리야가 먼저 와야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예수님을 메시아로 고백하고 있지 못합니다. 자신의 틀에 사로 잡혀 있으면 눈앞에 두고도 보지 못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명백하고 솔직한 대답입니다. 진심으로 믿고 한 대답입니다. 베드로 사도가 메시아에 대하여 품은 생각이 아직은 정확하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그의 신앙은 단호한 것입니다.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당신은 나의 주님이십니다.


    30 베드로가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당신에 관하여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엄중히 이르셨다.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께 이렇게 고백합니다. 스승님은 그리스도 이십니다. “선생님과 스승님”은 다릅니다. 스승은 자신을 선생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자신을 스승이라고 표현할 때 간혹 “교만”한 모습으로도 비칠 수 있습니다. 스승과 선생은 좀 다릅니다. 선생은 대가를 받고서 가르치는 사람인데, 자신의 삶으로 가르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삶으로, 자신의 행동으로 가르칠 때, 자신이 배운 것을 실천하고, 그 실천을 통해서 가르칠 때 그는 스승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나 또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합니다. 그렇다면 입으로만 그렇게 고백할 것이 아니라 내 행동도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해야 합니다. 먼저 인사하고, 서운해도 한 번 참고, 욕심 부리지 않고, 따뜻하게 손을 내 미는 것. 그리고 자주 미사에 참례하고 기도하는 것. 그것이 바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그것이 바로 스승을 따르는 제자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엄중히 이르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사도의 메시아 고백에서 잘못된 기대가 포함되어 있음을 알고 계신 것 같습니다. 제자들이 누가 제일 높은지 자리다툼을 한 것을 보면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어떤 메시아이신지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수난 예고에 베드로 사도가 안 된다고 펄쩍 뛰었던 것입니다.


    제자들은 세상적, 정치적인 메시아 왕국을 생각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사막에서 사탄의 유혹을 물리치신 이래 처음부터 줄곧 이것을 거부해 오셨고 그런 오해를 주지 않기 위해 치유가 있은 다음에도 침묵할 것을 요구하셨고, 빵의 기적 이후에도 사람들을 피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시나 영화를 누리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고난을 받으실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에 십자가 사건이 있기 전에는 당신 정체를 알리지 못하도록 함구령을 내리십니다.  

    그러나 베드로의 고백은 완전히 거짓된 것은 아니며, 단지 아직 맑게 정화되지 못한 것일 따름입니다. 하여튼 베드로는 군중 속에서 서로 다른 의견들을 내세우는 다른 사람들보다도 예수님에게서 더 많을 것을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31 예수님께서는 그 뒤에, 사람의 아들이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으시고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참 메시아이심을, 그리고 하느님의 명에 따라 수난 당하고 죽음을 겪어야 할 사람의 아들에 관한 비밀을 제자들에게 계시하기 시작하십니다. 당신의 수난을 예고하시는 것입니다. 3일 이라는 표현은 구약성서와 유대교에서 하느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이 전환점이 되어 뒤따르게 되는 짧은 기간의 고난과 시련으로서 자주 표현됩니다. “그분은 우리를 잡아 찢으시지만 아물게 해 주시고, 우리를 치시지만 싸매 주신다. 이틀이 멀다 하고 다시 살려 주시고 사흘이 멀다 하고 다시 일으켜 주시리니, 우리 다 그분 앞에서 복되게 살리라(호세아6,1). 또한 구약의 전통에 따르면 의인은 죽어서 3일 이상 고통을 당하지 않는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32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명백히 하셨다. 그러자 베드로가 예수님을 꼭 붙들고 반박하기 시작하였다.

      이 말씀을 듣고 베드로는 예수님을 붙들고 그래서는 안 된다고 펄쩍 뛰게 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 걸었던 모든 기대가 순식간에 무너지는 것을 체험합니다. 그리고 그가 사랑하는 스승이 그렇게 죽는 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진정으로 예수님을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33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제자들을 보신 다음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하며 꾸짖으셨다.

    아마 모두가 놀랐을 것입니다. 제자들의 마음도 베드로의 마음과 똑같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왜 베드로를 사탄이라고 하셨을까요? 그것은 예수님을 그 괴로운 사명에서 멀리 하게 하려고 유혹하기 때문입니다. 광야에서 유혹을 받으실 때의 모습을 생각해 본다면 베드로는 사탄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길을 가십니다. 광야에서 사탄을 물리치신 것처럼, 가장 가까운 제자의 달콤한 말도 물리치셨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하느님의 일을 하러 오셨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고는 있지만 그 사명에 대해서는 인간적인 편견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따라서 베드로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메시아 상과 예수님을 따름으로 인해 생기게 된 작은 사욕까지도 모두 버려야 했습니다. 그리고 자기 마음을 은총의 빛을 향하여 열어 놓고 십자가의 신비를 이해해야만 했습니다.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하느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을 생각하는 사람은 사탄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일만 생각하니 볼 것을 보지 못하고, 해야 할 것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내 눈으로 보기에는, 내 생각에는 “이건 아닌데…,”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좀 크게 생각해 보십시오. “바로 그것입니다.” 사탄은 나를 유혹하여 아닌 것을 옳게 보게 하고, 옳은 것을 틀리게 바라보게 합니다. 내 자신에게도 큰 소리로 외칩시다. “사탄아 물러가라!”

  5. user#0 님의 말: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더냐?

    오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삶으로 당신이 정치적인 메시아가 아님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렇게 오해할까봐 기적을 베풀고도 침묵하라고 말씀하실 때가 많았습니다. 제자들도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고난 받는 야훼의 종으로서, 세상 구원을 위해서 당신의 피를 흘려야 되시는 분이심을. 영화롭게 세상의 권좌에 앉으실 분이 아니심을. 오늘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알려 주십니다. 그런데 베드로 사도는 반대합니다. 그러시면 안 된다고. 사랑하시는 예수님이 그런 고통을 당하면 안 된다고, 내 삶의 전부인 예수님께서 그렇게 세상을 떠나시면 안 된다고…,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냉정하게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일과 사람의 일을 구분하라고. 나의 모든 일은 하느님의 일이어야 한다고……,


    오늘 예수님께서는 카이사리아 지방에 있는 마을들을 향하여 가시다가 제자들에게 묻습니다.

    27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카이사리아 필리피 근처 마을을 향하여 길을 떠나셨다. 그리고 길에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이 물음은 지금까지는 대개가 묘사를 통해서만 밝혀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권위 있는 활동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대부분 “놀라다. 경탄하다” 등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지금 제자들의 답변은 당시의 분분한 의견들과 거의 일치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기적들을 바라보면서도 그들의 생각은 변하지 않은 채로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그런데 예수님께서 하시고 싶은 말씀은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라는 것을 묻고 싶어서였을 것입니다.


    28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합니다.”

    여러 의견들이 나올 법도 합니다. 그렇게 놀라운 일을 하시는 분을 만났으니. 제자들은 예수님께 그들이 들은 내용들을 전합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자기들 마음대로 생각했습니다. 메시아가 오시기 전에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니 예수님을 엘리야로 보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엘리야는 벌써 왔습니다. 엘리야의 정신을 가지고 세례자 요한이 벌써 와서 길을 준비해 놓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보고도 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도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29 예수님께서 다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예수님께서는 대중들의 이런 저런 견해들에 대해서는 아무 말씀을 하시지 않고 제자들에게 직접 단호하게 질문하십니다. 중요한 것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제자들의 생각입니다. 어떻게 예수님을 따르고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해서 이런 저런 말을 했습니다. “저분은 세례자 요한이 다시 살아나신 분이여! 저분은 엘리야여. 아녀! 저분은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여!”사람들은 이렇게 예수님에 대해서 이야기 했습니다. 세례자 요한이 엘리야임을 모르는 군중들은 메시아보다 엘리야가 먼저 와야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예수님을 메시아로 고백하고 있지 못합니다. 자신의 틀에 사로 잡혀 있으면 눈앞에 두고도 보지 못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명백하고 솔직한 대답입니다. 진심으로 믿고 한 대답입니다. 베드로 사도가 메시아에 대하여 품은 생각이 아직은 정확하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그의 신앙은 단호한 것입니다.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당신은 나의 주님이십니다.


    30 베드로가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당신에 관하여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엄중히 이르셨다.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께 이렇게 고백합니다. 스승님은 그리스도 이십니다. “선생님과 스승님”은 다릅니다. 스승은 자신을 선생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자신을 스승이라고 표현할 때 간혹 “교만”한 모습으로도 비칠 수 있습니다. 스승과 선생은 좀 다릅니다. 선생은 대가를 받고서 가르치는 사람인데, 자신의 삶으로 가르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삶으로, 자신의 행동으로 가르칠 때, 자신이 배운 것을 실천하고, 그 실천을 통해서 가르칠 때 그는 스승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나 또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합니다. 그렇다면 입으로만 그렇게 고백할 것이 아니라 내 행동도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해야 합니다. 먼저 인사하고, 서운해도 한 번 참고, 욕심 부리지 않고, 따뜻하게 손을 내 미는 것. 그리고 자주 미사에 참례하고 기도하는 것. 그것이 바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그것이 바로 스승을 따르는 제자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엄중히 이르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사도의 메시아 고백에서 잘못된 기대가 포함되어 있음을 알고 계신 것 같습니다. 제자들이 누가 제일 높은지 자리다툼을 한 것을 보면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어떤 메시아이신지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수난 예고에 베드로 사도가 안 된다고 펄쩍 뛰었던 것입니다.


    제자들은 세상적, 정치적인 메시아 왕국을 생각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사막에서 사탄의 유혹을 물리치신 이래 처음부터 줄곧 이것을 거부해 오셨고 그런 오해를 주지 않기 위해 치유가 있은 다음에도 침묵할 것을 요구하셨고, 빵의 기적 이후에도 사람들을 피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시나 영화를 누리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고난을 받으실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에 십자가 사건이 있기 전에는 당신 정체를 알리지 못하도록 함구령을 내리십니다.  

    그러나 베드로의 고백은 완전히 거짓된 것은 아니며, 단지 아직 맑게 정화되지 못한 것일 따름입니다. 하여튼 베드로는 군중 속에서 서로 다른 의견들을 내세우는 다른 사람들보다도 예수님에게서 더 많을 것을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31 예수님께서는 그 뒤에, 사람의 아들이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으시고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참 메시아이심을, 그리고 하느님의 명에 따라 수난 당하고 죽음을 겪어야 할 사람의 아들에 관한 비밀을 제자들에게 계시하기 시작하십니다. 당신의 수난을 예고하시는 것입니다. 3일 이라는 표현은 구약성서와 유대교에서 하느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이 전환점이 되어 뒤따르게 되는 짧은 기간의 고난과 시련으로서 자주 표현됩니다. “그분은 우리를 잡아 찢으시지만 아물게 해 주시고, 우리를 치시지만 싸매 주신다. 이틀이 멀다 하고 다시 살려 주시고 사흘이 멀다 하고 다시 일으켜 주시리니, 우리 다 그분 앞에서 복되게 살리라(호세아6,1). 또한 구약의 전통에 따르면 의인은 죽어서 3일 이상 고통을 당하지 않는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32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명백히 하셨다. 그러자 베드로가 예수님을 꼭 붙들고 반박하기 시작하였다.

      이 말씀을 듣고 베드로는 예수님을 붙들고 그래서는 안 된다고 펄쩍 뛰게 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 걸었던 모든 기대가 순식간에 무너지는 것을 체험합니다. 그리고 그가 사랑하는 스승이 그렇게 죽는 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진정으로 예수님을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33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제자들을 보신 다음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하며 꾸짖으셨다.

    아마 모두가 놀랐을 것입니다. 제자들의 마음도 베드로의 마음과 똑같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왜 베드로를 사탄이라고 하셨을까요? 그것은 예수님을 그 괴로운 사명에서 멀리 하게 하려고 유혹하기 때문입니다. 광야에서 유혹을 받으실 때의 모습을 생각해 본다면 베드로는 사탄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길을 가십니다. 광야에서 사탄을 물리치신 것처럼, 가장 가까운 제자의 달콤한 말도 물리치셨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하느님의 일을 하러 오셨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고는 있지만 그 사명에 대해서는 인간적인 편견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따라서 베드로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메시아 상과 예수님을 따름으로 인해 생기게 된 작은 사욕까지도 모두 버려야 했습니다. 그리고 자기 마음을 은총의 빛을 향하여 열어 놓고 십자가의 신비를 이해해야만 했습니다.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하느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을 생각하는 사람은 사탄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일만 생각하니 볼 것을 보지 못하고, 해야 할 것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내 눈으로 보기에는, 내 생각에는 “이건 아닌데…,”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좀 크게 생각해 보십시오. “바로 그것입니다.” 사탄은 나를 유혹하여 아닌 것을 옳게 보게 하고, 옳은 것을 틀리게 바라보게 합니다. 내 자신에게도 큰 소리로 외칩시다. “사탄아 물러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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