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보나롤라 Savonarola

 사보나롤라  Savonarola

  사보나롤라(Girolamo Savonarola)는 1491년 이래로 피렌체(Florenz)의 산마르코 도미니코 수도회의 원장으로 재직했었다. 그는 참회 설교가로 등장하여 교회의 개혁을 요구하였고, 이탈리아와 전 세계에 대해 하느님의 심판이 곧 도래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사보나롤라의 영향력은 피렌체 전 지역을 지배할 정도로 대단하였다. 사보나롤라와 교황 알렉산데르 6세 사이에 알력이 발생하였는데, 그 이면에는 정치적인 이유가 도사리고 있었다. 즉 피렌체는 – 물론 사보나롤라의 지원하에 – ꡐ거룩한 동맹ꡑ에 가담하기를 거부하였다. 이 ꡐ거룩한 동맹ꡑ은 터키로부터 그리스도교를 보호하고, 사도좌의 존엄성과 로마 제국의 권리를 수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베네치아(Venedig), 스페인의 페르디난도(Ferdinand)와 이사벨라(Isabella), 독일의 황제 막시밀리아노(Maximilian) 1세 그리고 교황 사이에 체결된 협약이었다. 사보나롤라는 교황의 정치적인 구상을 방해하였다. 그 밖에 많은 사람들은 교황을 교체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프랑스 국와에 의해 공의회가 소집될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 아래에서 사보나롤라와 피렌체 도시가 취한 정치적인 태도는 나름대로 수긍이 가는 측면을 포함하고 있었다. 1495년 7월 사보나롤라는 로마에 소환되었다. 사보나롤라는 설교를 금지당하는 처벌을 받았으나, 자신의 양심에 입각해서 설교 금지라는 처벌을 수용하기를 거부하였다. 그 결과 사보나롤라는 1497년 5월 3일 파문당하였다. 1498년 2월부터 사보나롤라는 설교와 선전지의 배포를 통해 교황 알렉산데르가 성직을 매매한다고 비난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는 공의회를 소집하여 교황을 퇴위시킬 것을 주장하였다.


  이러한 비난에 있어서 사보나롤라는 공의회 지상주의 사상에 의존하지 아니하고, 그 대신 교황을 옹호하는 신학자들에게 의존하였다. 그래서 여론은 사보나롤라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작용하였다. 사보나롤라는 자신이 하느님으로부터 파견되었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ꡐ불의 시험ꡑ을 시도하였으나, 이 시험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의 수도원은 민중의 공격을 받았고, 사보나롤라는 체포되어 고문을 받아 1498년 5월 31일 처형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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