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펠라지우스주의 Semipelagianismus

  세미펠라지우스주의 Semipelagianismus

  펠라지우스주의는 인간의 구원에 있어서 초자연적인 은총의 필요성을 부인한다. 그 대신 인간은 자기 스스로, 자력으로 구원에 도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아우구스티노는 은총의 필요성을 옹호하였다. 비슷한 시기에 프랑스 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해서 은총의 절대적인 필요성을 부인하는 움직임이 태동하였다. 일부 수도자들은 인간은 오로지 하느님의 은총의 주입을 통해 의화될 수 있으나 은총의 협력 없이도 신앙을 감지하고 그 결과 의화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의화된 후 구원의 상태에 머물기 위해 초자연적인 은총이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아우구스티노는 이러한 세미펠라지우스주의의 주장에 주목하였다. 아우구스티노는 428년 – 또는 429년 – 프랑스 지역에 확산되어 있던 이단을 겨냥하여 2권의 책을 저술하였다. 하지만 세미펠라지우스주의를 주장하던 수도자들을 침묵시키지는 못하였다. 아우구스티노의 사후 로마에서는 세미펠라지우스주의에 대한 판결이 시도되었다. 교황 첼레스티노(Coelestin) 1세는 프랑스의 주교들에게 보낸 서한을 통해 세미펠라지우스주의이 주장을 격렬하게 공격하였던 아우구스티노를 옹호하였다. 세미펠라지우스주의를 둘러싼 대결의 양상은 계속되었다. 세미펠라지우스주의를 변호하는 자들은 물론 그 적대자들도 여러 가지 저술을 통해 자신들의 견해를 밝혔다.


  마침내 529년 오랑주(Orange)에서 개최된 시노드에서 세미펠라지우스주의는 25개의 명제 – 이 명제의 대부분은 아우구스티노의 견해에 의존하고 있다 – 를 통해 단죄되었다. 530년 교황 보니파시오 2세는 시노드의 단죄를 승인하였다. 그 이후 세미펠라지우스주의를 변호하던 자들이 이 단죄에 승복함으로써 세미펠라지우스주의를 둘러싼 논쟁은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이 글은 카테고리: catholicdata2020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