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증오와 용서


                         증오와 용서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저는 어른이 다 되어 매를 맞아본
     
     일이 두 번 있습니다. 한 번은 군복무 시절이고 또

     한 번은 신문사 논설위원을 하며 정보기관에 붙잡혀

     갔을 때입니다.

     정보기관의 매는 독재정권 시절이라 그렇다 치고,

     군대의 매는 아무리 조직의 횡포라 해도 너무했습니다.

     그날은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고 있었는데 우리 분대에

     떨어진 임무는 도랑을 치우는 일이었습니다.

     우리는 열심히 그 일을 해냈습니다. 일이 끝나고 나서

     저는 부지런히 내무반에 가서 젖은 옷을 마른 옷으로

     갈아입었습니다. 때마침 점호를 하는데 저의 마른 옷을

     본 소대장이 다짜고짜 때리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입에선 술냄새가 풍겼습니다. 참 어이없는

     매였습니다. 절 보고 도랑치는 일을 기피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제대 후 몇 년이 지나도 그때의 매는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신문사 기자이던 저는 수소문 끝에

     그 소위가 제대하고 어디서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아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그 사람을

     만나 분풀이를 할 수 있었습니다. 하루는 가까운

     신부님과 저녁식사를 하면서 그 얘기를 했습니다.

     “이봐, 용서를 받으려면 먼저 용서해야 돼. 용서는

     용기있는 사람이 하는 거야, 보복은 비겁한 사람이

     하는 일이고. 그 사람 만나면 용서한다고 그래.

     그러기 싫으면 잊어버려.”

     지금은 작고하신 예수회 김태관 신부님의 충고였습니다.

     몇십 년도 지난 오늘 저는 생각합니다. 상처와 증오는

     그 원인을 제공한 사람보다 그것을 담고 있는 사람에게

     더 치명적이라는 사실을 저는 비로소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사람을 용서합니다. 용서한 다음의

     후련함은 보복보다 더한 것이었습니다.

            -최종률(언론인. 서울대교구 방배4동 천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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