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나를 누구라고 생각합니까?

 

당신은 나를 누구라고 생각합니까?


예수님은 기도를 참 많이 하셨던 것 같습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뜻을 펼치지 않으시고 언제나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따랐습니다. 그리고 어떤 중대한 일을 결정하실 때는  꼭 기도를 하셨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무엇을 할 때 기도를 하고 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물으십니다.


“군중이 나를 누구라고 합디까?”


제자들은 자신들이 들은 소문을 예수님께 말씀드립니다.


“예수님! 사람들은 예수님을 세례자 요한이라고도 하고, 엘리야라고도 하며 또 다른 이들은 옛 예언자들 중 어느 예언자가 다시 살아났다고 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물으십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나를 누구라고 하겠습니까?”


참 어려운 질문을 하고 계십니다.


문득 예전 신학생 때 생각이 납니다. 본당 신부님께서 저녁 미사 강론 중에


“오늘 달이 어떤 모양이었습니까?”


무척 당황했습니다. 밤길을 걸어왔지만 달이 어떤지를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본당 신부님은 앞에 앉은 사람은 보통 안 시키셨습니다. 그래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 갑자기 저를 시키는 것이었습니다. 당황… 그래서 저는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저기 신부님! 몰라서 앞에 앉았는데요!”



어떤 질문을 받으면 당황하게 됩니다. 그것도 평상시에 어렵게 생각하고 있던 것을 질문을 하면 더욱 당황하게 됩니다.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만 우리 자신에게 “너는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니?”라고 물으면 갑자기 할 말이 없어질 수도 있습니다.


당신은 예수님을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 대답은 예수님께서는 바로 하느님께서 보내신 구세주시라는 뜻입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신앙을 고백합니다. 예수님께서 메시아라고…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아직 자신의 때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의 입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구세주시라는 것이 퍼져 나가는 것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아직 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먼저 많은 고난을 겪고 원로들과 대제관들과 율사들로부터 버림을 받아 죽임을 당했다가 사흘 만에 일으켜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야훼의 종이시기 때문이고, 그 말씀이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우리가 앓는 병을 앓아 주었으며 우리가 받을 고통을 겪어 주었구나..그는 사람들의 멸시를 당하고 퇴박을 맞았다. 그는 고통을 겪고 병고를 아는 사람, 사람들이 얼굴을 가리우고 피해갈 만큼 멸시만 당하였으므로 우리도 덩달아 그를 업신 여겼다…그가 억울한 재판을 받고 처형당하는데 그 신세를 걱정해 주는 자가 어디 있었느냐? 그렇다. 그는 인간 사회에서 끊기었다. 우리의 반역죄를 쓰고 사형을 당하였다.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은 속죄의 죽음입니다. 모든 사람을 대신해서 수난을 겪고 죽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사흘째 되는 날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의 대답 속에는 이것이 빠져 있습니다. 영광의 메시아로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여 왕위를 차지할 그런 메시아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의 대답속에는 종말론적인 구세주요 동시에 고난 받는 종의 모습의 메시아는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침묵을 요구하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당신은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고백하고 있습니까? 오직 당신을 위해서 존재하는, 나의 모든 청을 들어주시고, 나를 지켜주셔야만 하는 그런 분으로 고백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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