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죽기 전에 꼭 회개를…


죽기 전에 꼭 회개를 …

홍광철 신부·









반평생을 냉담하셨던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그리고 그 집안도 온통 냉담자들 뿐이었다. 그런데 연도를 마치고 나오는데 어떤 형제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신부님! 제가 연도를 하면서 계속 분심이 들었습니다. 이 할머니가 언제 주님만을 그렇게 간절히 찾고 믿었단 말입니까? 이 할머니는 오래 전부터 냉담하신 분인데 냉담한 사람은 결국 하느님을 부정하고 하느님께 등을 돌린 사람이 아닙니까? 그런데도 열심한 신앙생활을 한 것처럼 하느님께 기도한다는 것이 왠지 어색했습니다. 연도를 냉담자, 대세자, 열심한 신자로 나누어서 바치면 어떻겠습니까? 냉담자나 대세자들 한테는 어울리지 않는 기도문이 많이 있으니, 냉담자들 한테는 ‘이 불쌍한 영혼이 당신을 거부하고 찾지 않았으나 너그러이 자비를 베푸시어 천국문을 열어 주소서’하고 기도하고, 대세자 한테는‘비록 늦게 주님을 찾았지만 너그러이 받아 주소서’라고 기도해야 되지 않을까요? 그리고 지금의 연도 예규는 열심히 살다가 돌아가신 분들에게만 해주면 어떻겠습니까? 그렇게 한다면 적어도 신자들이 죽음 앞에서는 하느님을 더욱 간절히 찾지 않을까요? 죽음을 올바로 준비해서 죽기 전에 모든 자녀들이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고, 자신도 열심한 신앙을 되찾으려고 노력하지 않을까요? 성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가 520장을 노래하는데 문득 이런 분심이 들었습니다.‘오늘 이 세상 떠난 이 영혼 보소서. 주님을 믿고 살아온 그 보람 주소서. 이 세상 살 때 주님께 애원하였으니 주여 그 애원 들어 평안케 하소서.’그런데 이 냉담자가 언제 그렇게 믿고 살아왔단 말입니까? 그리고 대세자이건, 냉담자이건 간에 누구나 묵주를 가지고 가기를 원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묵주기도를 열심히 한 것도 아니고, 할 줄도 모를텐데 뭐하러 묵주를 관에 넣는지 모르겠어요. 오히려 하느님한테 가서 혼나지 않을까요?‘너 그게 뭔지 알어? 평생 묵주기도는 얼만큼 했지?’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면 할 말이 전혀 없잖아요.”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자기 평생 닳고 닳도록 돌린 묵주를 가지고 가는 것이 의미 있지 한번도 해보지 않은 묵주를 관에 넣어줄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묵주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입장권도 아니며 부적도 아니다. 그리고 그 사람의 신앙 정도에 따라서 연도를 바치고 장례예절을 바꾼다면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적어도 죽기 전에는 열심히 성당에 다니려고 하지 않을까?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 신앙인들은 하느님께서 자비로우신 것과 같이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 하느님께서 의인에게나 악인에게나 차별하지 않으시고 똑같이 비를 내려주시는 것처럼 우리 신앙인들도 그렇게 하느님의 사랑을 드러내야 한다. 죽은 사람의 영혼을 위해서 정성을 다해서 기도해 주어야 한다. 비록 그가 냉담자이건, 대세자이건 말이다. 그리고 남아있는 가족들을 위해서도 열심히 기도하고 이끌어 주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남아있는 사람들이 분심들지 않도록 적어도 죽기 전에는 회개하고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면 어떨까? 그리고 그날이 내일이 될지 모레가 될지 모르니 오늘 회개하고 하느님께 돌아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금 당장

이 글은 카테고리: 지난 묵상 보기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