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안나가 먼저 고통을 겪어야 한다구요?
그러면 겪어야 하는 그 고통은 누구를 위해서입니까?
당신을 위해서 입니까?
안나를 위해서 입니까?
고통을 위해서 입니까?
고통이란 그야말로 형언하기 어려운 상대입니다.
저항하면 할 수록 안나를 질식하게 하는 만만치 않는 상대입니다.
심한 파도가 밀려오면 무력해지는 자신입니다.
주님,
고통의 근저를 살펴 보았습니다.
고통을 느끼는 자신을 바라보며 왜 아파하는지 물었습니다.
하느님의 아픔을 함께 아파하는 거룩한 지향으로 일치하고 있음인가?
아니더이다.
거의가 자신의 자아를 다스리지 못한 욕구에서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이기적인 자아와, 만족을 추구하는 욕구에서 갈등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당신은 모두 버려야한다 하셨지요?
비우고 비우라 당부하셨으나 버리지 않고 움켜지는 이 죄인의 회개를 위해
당신은 날 위해 버림받게 해 주셨지요?
덕지덕지 껴입은 위선의 옷을 말끔히 벗어버리도록
고통을 허락하시며 버림 받게 하셨지요?
청정한 당신 기운으로 거룩해져라 안나에게 아픔을 허락하시는
당신의 지극한 사랑이여!
날 위해 아파하시며 십자가의 길도 마다하지 않으신 놀라운 겸손으로
당신 뜻 따르라 부르시는 소리에
이 몸 드리리이다.
그리하소서.
아파야 한다면 아프게 하소서.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소원하리이다.
낙타가 바늘 귀를 통과하는 의식이 아프지 않고는,
버림 받지 않고는
당신과의 합일에 이르지 못할 것을 깨닫게 하소서.
진리가 안나를 자유롭게 하는 날 까지 고통과 번민이여
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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