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수요일 아침에 성당에서 기도하려고 갔습니다. 보통 때 같으면 주임 신부님께서 먼저 자리에 앉아서 기도하시거나, 아니면 혼자 있을 만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성당이 어두워서 불 하나를 켜서 보았더니 어떤 젊은 자매님 한 분이 성모상 옆 쪽에서 기도하고 계시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저 열심한 분이 일찍도 오셨다고만 생각하고 그냥 가운데쯤에 앉아서 성무일도를 바쳤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갑자기 일어서더니 제 주위를 서성이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제 옆에 턱하니 앉으시는 것입니다. “아이고, 이 사람 왜 이러지?” 무척 놀랬습니다. 그런데 아침부터 괜히 그런 내색을 하기도 그렇고 해서 그냥 무시했습니다.
일단 바치던 기도는 마저 바쳐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다 바쳤습니다. 기도가 될리 있겠습니까? 분심 중에 얼른 바치고 나서 성당 마당에서 묵주기도를 한 3단 정도 바쳤습니다. 눈은 여전히 성당 안을 관찰하면서 말이지요. 그 자매님은 성당 뒤에 앉았다가 본래 자리에 앉았다가 뭐.. 그러는 겁니다! “아하.. 정상이 아닌 분이구나!”
그때서 확실히 깨달은 저는 성당 안에 다시 들어가서 그 사람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자매님, 왜 아까 제 옆에 앉으셨나요?” “예???”
“왜 제 옆에 앉으셨냐구요? 좀 전에 말이지요?” “아… 그냥… 기도해주고 싶어서요..”
“음.. 제가요.. 기도하는데에 말이지요. 방해가 되거든요.. 그래서 다시 제옆에 오지 마세요.”
그렇게 떼어 놓고는 다시 다른 기도를 마저 바쳤습니다. 그날 복음 묵상도 해야 하는 판인데 영 기도가 제대로 될리 만무했습니다. 그래도 일단은 바칠 것은 바쳐야 한다고 생각하고 바쳤습니다. 그러던 중 그 자매님이 갑자기 가톨릭 성가 1번을 전혀 음에 맞지 않게, 그러나 가사는 정확하게 하면서 힘차게 부른 것입니다.
“에구.. 오늘 기도와 묵상은 다 글러 먹었다… 쩝”
결국 저는 남은 기도를 얼른 바치고 방에 들어와버렸습니다. 그리고 약간의 의사 표시 비슷하게 성당의 불을 꺼버리고 나왔습니다. 그리고선 방에서 그날 복음을 묵상하는데, 영 묵상이 제대로 되지가 않았습니다.
아침에 이런 사건이 있고 나서 어느 자매님께 이 이야기를 하면서 아침부터 기도도 안되었고, 복음 묵상도 힘들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우리 본당은 사람들이 많아서 이러는가 보다 하면서 말이지요.
그리고 주임 신부님께도 일종의 해프닝을 우스갯소리로 하듯이 이야기 했습니다. 그렇게 말씀드리니깐, 주임 신부님 왈…
“아.. 그분! 나도 전에 몇 번 만났었지. 자꾸 와서 기도하는 분이야. 내가 한번 앉으라고 해서 안수기도를 했었지.”
이런 일이 있고나서 어제 청년들과 성서 모임을 했습니다. 창세기를 이번 달에 끝내고 이제 출애급기를 하고 있습니다. 어제는 “이방인”에 대해서 서로 나눔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 자매가 생각이 나는 것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저에게 끝까지 이방인이었습니다. 저는 그 사람을 끝까지 이방인으로 취급하였습니다. 제 옆에 왔을 때도 그는 이방인이었고, 저를 떠난 뒤에도 이방인이었고, 주임 신부님께서 그 분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했다는 말씀을 들으면서도 저는 그 사람을 이방인으로 여겼습니다. 그리고 성서 모임을 하면서 저는 그 사람이 여전히 이방인이었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저를 이방인으로 취급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그리워서 그랬는지,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쨋거나 그 사람은 저를 위해 기도하고 싶어서 제 옆에 앉았고, 저를 불편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성당 안에 그냥 앉아서 기도하고 있는데,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것을 오히려 반겼습니다.
그게 못마땅해서 불을 꺼버린 제 자신을 보았습니다. 그를 위해 마음 속으로 기도해 주지 못할망정 오히려 제 기도를 방해했고, 제 묵상을 방해한 그 사람을 다른 사람에게 우스갯 거리로 팔아버린 저를 보았습니다. 참 부끄럽습니다.
여러분은 이방인이 되어 보신 적이 없습니까? 학교에서 친구들 사이에서 이방인이 되었던 기억, 집 안에서도 웬지 자기 자신은 이방인이 되어본 기억.. 뭔가 차별받고 소외당하는 그런 느낌…
외국인 노동자들도 우리나라에서 이방인으로 취급받습니다. 그들은 하루 10시간 넘게 일하고 때로는 일하는 중에 팔 다리를 잃어도 전혀 보상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길거리를 지나가다가 동남아에서 온 사람들이나 흑인들을 보면 괜히 가까이 하고 싶지 않아 합니다. 그들은 이방인들입니다.
장애인들도 이방인이 될 경우가 많습니다. 지난 번에 TV에서 인권 프로그램을 보았습니다. 어느 장애인 변호사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분이 미국에서 대학을 다닐 때에는 전혀 사람들이 자기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 보지 않았답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있었던 그곳에는 워낙 어렸을 때부터 장애인들을 극장에서, 식당에서, 길거리에서, 전철에서 만났기 때문에 그들을 굳이 바라 볼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분 말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여전히 장애인들은 뭔가 특별하고, 불쌍하고, 불편을 주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길거리를 지나다닐 때, 버스에 자기가 탈 때 어김없이 버스가 출발하는 시간이 지체되는 그 순간에 자기를 쳐다 보는 것이 만만치가 않다는 것입니다. 자기들은 여전히 이 사회에서 이방인으로 남는다는 것이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이라고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우리도 때로는 이방인 취급을 받고 있다는 느낌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뭔가 함께 공유하지도, 공감하지도, 이야기를 나누지도 못하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자기만 제외하고서 다른 사람들끼리 쑥덕 쑥덕 대는 것 같아 영 속이 편치가 않습니다. 심지어는 집안에서도 이방인 대접을 받게 된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어느새 다른 사람들을 이방인 취급 할 때가 있습니다. 외국인 노동자, 아까 말씀드렸던 장애우들, 걸인들, 술집 아가씨들.. 이런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이 부담스럽고, 그들이 우리 삶에 끼어 든다는 것이 불편하다고 은연중에 느끼는 것이지요.
어제 복사반 회의 때 복음 묵상 나눔을 했는데, 친구들 대부분이 한결 같이 묵상한 구절이 있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같은 하늘을 두고 살면서도, 같은 지붕안에서 살면서도 결코 같은 세상 사람이 아닌 사람들.. 정말이지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들입니다. 바로 이 사람.. 이 사람이 사실은 세상의 왕입니다. 예수님입니다. 때로는 우리 자신이 그런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그렇게 보잘 것 없는 사람이 되었을 때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우리의 모습까지 낮추십니다. 그러면서 우리와 똑같은 모습을 취하십니다.
지금 우리가 이방인 취급하는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이방인과 이방인이 아닌 사람들을 구분하는 그 선이 과연 어디서 온 것입니까? 사실은 바로 그 이방인이 예수님입니다.
제주 교구 루가 신부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