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받을 때가 가까이 왔습니다.

 



구원받을 때가 가까이 왔습니다.


예루살렘 성의 멸망. 오늘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나의 멸망까지도 같이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예루살렘이 군대에 포위된 것을 보거든 그 때 여러분은 그 황폐의 (날이) 가까이 온 줄 아시오.”


기원후 70년 해방절부터 로마군은 예루살렘을 포위하다가 마침내 같은 해 8월 29일 예루살렘 시내를 완전히 점령하였습니다. “황폐의 상징인 흉측한 우상이 있어서는 안 될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유대에 있는 사람들은 산으로 도망가라”(마르코 13,14). 황폐의 상징인 흉측한 우상.


이 흉측한 우상은 다름 아닌 예루살렘을 포위한 로마군인들입니다.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사람들은 산으로 도망가고 성안에 있는 사람들은 빠져나가고 시골에 있는 사람들은 성안으로 들어가지 마시오.”


예루살렘은 본디 구원이 이룩된 장소였으나 70년에 복수의 심판을 받은 다음부터는 구원사적 위치를 상실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도시를 떠남으로써 그 운명을 모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허허벌판에 사는 사람들이 견고하게 구축된 그 도시로 피신하곤 했지만, 이제는 그것도 아무 소용이 없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할 수만 있다면 산으로 도망가라는 것입니다.




“그 때는 기록된 모든 것들이 이루어지는 보복의 날이기 때문입니다.”


징벌과 보복의 때가 그 도시에 닥쳐오고 있었고, 은총의 때가 가버렸습니다. 예루살렘의 파멸은 단순한 정치적 사건이 아니라 하느님의 심판인 것입니다.


하느님의 노여움과 여러 가지 재앙의 결과를 세 가지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칼날에 죽는 것, 포로가 되어 여러 나라에 끌려 가는 것, 예루살렘이 이방인 손에 넘어가는 것.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무조건 벌만을 내리시는 분은 아니십니다. 예루살렘이 이방인에게 넘어간 기간의 한계를 하느님께서는 설정하십니다. 이방인들에게 부여된 기간이 끝나면 대대적인 심판이 있게될 것이며, 하느님 나라가 결정적으로 시작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방인들에게 부여된 기간은 예루살렘 파괴부터 사람의 아들의 재림때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이 시기에 이방인들이 교회에 들어왔는데, 이것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약속하신 구원을 이방인들에게도 제공하시기 때문이고, 바로 지금이 그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무자비하신 분이 아니라는 것이 드러납니다.








“그리고 해와 달과 별들에 표징들이 나타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에는 분명 뭔가 표징들이 나타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랜 전통의 배경을 지닌 표징들로,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표징들로 그날을 표현하십니다. 바다의 파도와 풍랑, 해와 달과 별들….


지금이 바로 그 때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들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을 맞이할 수 있도록 나를 준비시켜야 할 것입니다.




“그 때에 사람들은 인자가 구름에 싸여 큰 권능과 영광을 갖추고 오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때에 사람들은 사람의 아들을 눈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의 아들의 출현은 전통적인 표상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사람 모습을 한 이가 하늘에서 구름을 타고 와서 태고적부터 계신 이(하느님) 앞으로 인도되어 나아갔다. 주권과 영화와 나라가 그에게 맡겨지고 인종과 말이 다른 뭇  백성들의 섬김을 받게 되었다. 그의 주권은 스러지지 아니하고 영원히 갈 것이며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하리라”(다니엘7,13-14). 사람의 아들은 구름을 타고 올 것입니다. 구름은 하느님의 전차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제 당신의 지상 생애를 특징지었던 “약함”중에 오시는 것이 아니라 당신 현양의 위엄과 영광에 싸여 오십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것을 어떻게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도 표현하시기 어려우셨을 것입니다.




“이런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허리를) 펴고 여러분의 머리를 드시오. 여러분의 속량이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무거운 짐을 진 사람처럼 몸을 구부린 채 나아갑니다. 미움 받고 박해당하고 모든 영예를 거부당한 사람처럼 그의 머리를 떨어뜨린 채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면서 살아갑니다. 하지만 이런 표징들이 나타나면 신자들은 용기를 내야 합니다. 왜냐하면 다른 이들에게는 그것이 멸망의 표징이겠지만 신자들에게는 구원의 표징이기 때문입니다.


하루 하루 신앙생활 하면서 많은 어려움들이 우리에게 밀려 옵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그렇게 시름에 젖어서 고개를 떨굴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나의 행동 하나 하나에 대해서 주님께서는 사랑으로 보답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가 예수님을 증거하기 위해 힘들어 했던 그 모든 수고와 땀방울을 예수님께서는 구원으로 갚아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두려움을 자극하는 말씀이 아니라 우리에게 희망을 주는 말씀, 더 힘을 내어 신앙생활 할 수 있도록 격려해 주시는 말씀인 것입니다.




<함께 생각해 보아요>


1. 신앙생활은 우리에게 굴레가 아닙니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그것이 굴레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우리 신앙 생활에 있어서 힘든 것이 무엇인지 함께 이야기 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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