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목자, 그리고 착한 당신!

 

한 마리 길 잃은 양을 찾아 길을 헤매는 목자! 그는 어떤 사람이기에 아흔 아홉 마리의 양을 놔두고 한 마리 양을 찾아 나설까요? 예수님께서는 길을 잃은 것과 망한 것을 구별하여 말씀을 해 주십니다.


“어떤 사람에게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길을 잃는다면 아흔 아홉 마리를 산에 놓아 둔 채 그 길 잃은 것을 찾으러 가지 않겠습니까?”


길을 잃은 양은 목자의 도움을 받으면 다시 공동체 안으로 들어올 수 있습니다. 길 잃은 그리스도인도 형제들의 도움을 받으면 다시 구원의 공동체 안으로 들어올 수 있습니다.


목자를 생각해 봅시다. 목자는 자기에게 위임된 많은 양떼를 책임지고 있습니다. 한 마리 양까지도 책임을 져야합니다. 그래서 만일 양 한 마리가 바위틈이나 가파른 비탈길에서 헤매고 있다면 자신의 의무를 소홀히 한 것이 됩니다. 목자는 양들을 위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사랑도 이와 똑같습니다.






“그는 길을 잃지 않은 아흔 아홉 마리보다 그 한 마리를 두고 더 기뻐합니다.”


길 잃은 양을 찾았을 때 목자는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냉담하는 형제를 다시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오게 했을 때 그 기쁨은 어떻겠습니까? 다른 형제들과 함께 기뻐하지 않겠습니까?




하느님 아버지의 뜻은 바로 이것입니다.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는 것은 하늘에 계신 여러분 아버지의 뜻이 아닙니다.”


이 말씀을 들으면서 우리는 형제들을 똑같은 마음으로 대해야 합니다. 길을 잃는 것은 자신의 부주의 때문인지, 죄악의 유혹과 같이 다른 사람의 탓 때문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하느님께서는 어느 누구도 길을 잃는 것을 원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길은 바로 구원에 이르는 길입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나는 내가 얼마나 다른 이들을 진리의 길로 인도했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이 길에서 벗어나게 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직장 내에서 나 때문에 신앙생활 하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고 나 때문에 신앙에로 불타오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나는 어떤 사람입니까?




그래서 우리가 실천해야 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당신의 형제가 [당신에게] 죄를 짓거든 가서 당신과 그만이 마주하여 그를 책망하시오. 만일 그가 당신의 말을 들으면 당신은 그 형제를 얻은 것입니다.”


길 잃은 사람을 찾기 위해 나는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까? 달면 삼키고 쓰면 뱉아 버리는 것이 내가 아닌가 합니다.


그럴때 우리는 착한 목자를 생각합시다. 길 잃은 양 한 마리 찾아 계곡을 헤매고, 가시덤불을 헤집고 다니고, 벼랑 끝까지 찾아 나서서 결국에는 그 양을 찾아 어깨에 매고 기뻐하면 집으로 돌아오는 목자.


원망과 분노와 격정의 마음으로 그 양을 대하는 것이 아니라 혼자 떨어져서 얼마나 두려움과 굶주림에 떨고 있었는지를 먼저 생각하는 목자.


그런 마음으로 옆에 있는 형제를 대해야 하겠습니다.








예전에 이런 노래가 있었습니다.


“세상을 바라보면 아파 오는 이 마음


가엾은 너의 모습 바라 보면서


오늘도 나는 너를 위해 기도를, 난 내일도 너를 위해 기도를


서로를 사랑하고 약한 자를 도와주면 서로를 이해하고 아끼고 존경하는


우리들 가슴속에 아름답고 진실된 꽃이 핍니다.


사랑하는 그대여! 내 말을 들어보소. 하얗고 착한 길을 걸어 새로운 젊은이가 되어


우리 모두 사랑하며 서로 위해 기도합시다.


햇살이 눈부시게 와서 환합니다. 하지만 빛을 찾지 못한 이 거리


돌아와 주오 돌아와 주오. 악에서 선으로 어둠에서 빛으로


밝은 태양이 비춰주고 있잖아요.


….


그렇게 걸어봐요. 영원한 이길


주님이 주신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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