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여인의 믿음>
예수께서는 제대로 쉬시지도 못하십니다. 아픈 사람들, 마귀들린 사람들…예수님의 도움을 원하는 사람들은 모두 예수님께로 모여들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만일 예수님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해 봅니다. 저는 이렇게 했을 것 같습니다. “다음에 와!…지금은 시간 없는데…”
한 여인이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달려왔습니다. 악령 들린 딸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분앞에 엎드린 그녀는 이방인이었습니다. 당시 종교적 입장에서 보면, 세계는 유다인과 이방인으로 갈라져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녀의 믿음을 시험하십니다. 그리고 종종 그러시는 것처럼 그분은 이해를 드러내 주는 은유를 창출해 내십니다.
“자녀들을 먼저 배불리 먹여야 한다. 자녀들이 먹는 빵을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좋지 않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예수님 자신이 먼저 이스라엘의 자녀들에게 보내졌으며 따라서 이방인들에게 우선권을 보여서는 안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이스라엘 백성 중의 길 잃은 양들을 찾아 가라(마태10,6). 많은 사람들은 유대인들이 자신들을 하느님의 자녀라 여기면서 때때로 이방인들을 멸시하여 “개”라고 불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이방인 여인을 그렇게 비하했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멸시 속에서 쫓겨 다니는 들개가 아니라, 사람 옆에서 가족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개를 가리키고 있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유다인과 이방인을 사람과 개로 표현하시는 것이 아니라 구원의 우선권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아직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선포할 때가 오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자 이방인 여인은 자신을 더욱 낮춥니다.
“선생님, 그렇긴 합니다만 상 밑에 있는 강아지도 아이들이 먹다 떨어뜨린 부스러기는 얻어 먹지 않습니까?”
자신은 그렇게 낮추고 끝까지 믿음을 보이는 여인은 그가 얻고자 하는 것을 얻게 됩니다. 예수님도 그 여인이 그 믿음을 끝까지 갖기를 원하셨을 것입니다. 저 같으면 어림 없었을 것입니다.
“싫으면 관둬유. 당신 같은 사람이 어떻게 하느님의 아들이유? 하느님의 아들이 죽어가는 사람을 바라만 보고 있데유? 난 그런 하느님 안 믿어유!”
예수님께서는 어머니의 믿음을 거부하지 않으십니다. 언젠가 백인대장의 종을 고쳐주셨던 것처럼 그렇게 그 여인의 청을 들어주십니다.
“옳은 말이다. 어서 돌아 가 보아라. 마귀는 이미 네 딸에게서 떠나 갔다”
이방인 여인을 바라보면서 기도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기도는 믿음과 겸손과 신뢰를 가지고 끈기있게 그분을 향하는 것입니다. 안들어주실 것 같음에도 불구하고 절망하지 않고 들어주시면 엄청 감사하고, 안들어주시면 들어 주실때까지 청하는 자세. 그것을 갖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함께 생각해 보아요
1. 자녀가 죽을 고비에 처한 부모의 마음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 해 봅시다.
2. 계속되는 거절 체험 속에서도 그분께 항구하게 매달리면서 청원 기도를 드릴 수 있을까요?
3. 내가 청원 기도를 드렸을때 그분은 어떻게 응답하여 주셨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