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려라
듣지 못하는 사람과 보지 못하는 사람! 둘 중에 누가 더 갑갑할까요? 듣지 못하는 사람은 말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기가 본 것을 말할 수 없으니 오죽 갑갑할까? 또 보지 못하는 사람은 듣기는 하지만 그것을 보지 못하니 얼마나 답답할까?
만일 당신에게 하느님께서 “너는 노년에 귀가 먹거나 눈이 안보이는 병이 생긴다면 어떤 것을 택하겠느냐?” 뭐라고 답하시겠습니까? (저는 둘다 싫은디유….하고….)
보는 것에 대해서, 듣고 말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 감사해 보신 적 있으십니까?
그렇다면 오늘은 그것에 대해서 감사드렸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사람들이 귀먹은 반벙어리를 예수께 데리고 와서 그에게 손을 얹어 주시기를 청하였습니다. 예수께서는 그 사람을 군중 사이에서 따로 불러내어 손가락을 그의 귓 속에 넣으셨다가 침을 발라 그의 혀에 대시고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내쉰 다음 “에파타” 하고 말씀하십니다. “열려라” 라는 뜻 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앓는 기관을 만지고 침을 바르십니다. 이것은 히브리인이 병이나 액땜에 잘 쓰던 관습이었는데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사고방식에 자신을 맞춤으로써 당신께서 나쁜 병을 치유하고자 한다는 것을 확신케 해 주십니다.
하지만 이것은 단지 준비에 불과한 것입니다. 치유자체는 명령하시는 말씀에 이어 나타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 모습을 바라보면서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때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말씀으로 창조하시는 하느님, 예수님께서도 말씀으로, 명령으로 병을 고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에파타” 하고 말씀하십니다. “열려라” 라는 뜻 입니다.
이것은 병든 기관을 향한 것이 아니라 환자 전체를 향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관점에서 볼 때 그 사람 전체가 병든 것으로, 그가 건강해지면 그로써 그 병든 기관이 영향을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에 결과는 즉시 나타납니다. 귀가 열리고 혀가 풀렸습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께서는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쉬셨을까요? 어떤 사람은 하느님 아버지의 승인을 받기 위해서라고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느님 아버지와 예수님과의 교류인 듯 합니다. 병으로 신음하는 이들, 이들 모두를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이시기에 환자들을 바라보면서 느끼는 것은 가슴아픔 뿐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하느님께서는 분명 보시기 좋도록 창조하셨는데, 창조질서를 역행하다보니 이렇게 장애가 생겨 예수님 앞에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좋은 자동차를 망가뜨리고, 당신이 잘못 만들어서 이렇게 되었다고 우기면 얼마나 한숨이 나올까요? 하느님의 창조질서를 거스르는 나는 아닌지, 그래서 예수님께서 나를 향해 한숨을 짓고 계시지는 않은지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함께 생각해 보아요>
1. 장애인들을 바라보는 당신의 시각은 어떻습니까? 그리고 당신이 장애를 얻어 사람들의 시선을 받게 된다면 어떤 시선을 받고 싶습니까?
2.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보시기 좋도록 창조하셨습니다. 당신께서 보시기에도 세상은 아름답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