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에 나타난 마리아

 

성서에 나타난 마리아




    동정 마리아는 사도적 케리그마 안에서 언급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 언급들이 단지 몇몇 본문 안에서 국지적으로 발견된다 하더라도 동정 마리아에 관한 언급들은 신약 성서적인 틀 안에서 볼 때 부차적인 위치는 아니다. 마태오와 루가 복음의 예수의 유년 시절 이야기들은 분명히 여기서 주된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이야기들은 역사성의 관점에서 특별한 문제들을 제기하는데, 그 이유는 미드라쉬 전통에 속하는 그 문학 장르, 초자연적인 사건을 야기하는 부분, 구약 성서적인 몇몇 선례(불임 여인들의 아기 출산), 예수의 동정 잉태와 병행되는 이방인 신화들 때문이다1). 그러나 현대 연구들은 그 이야기들이, 역사의 관점에 있어서도, 조급한 몇몇 관점들이 생각하지 못할 만큼 훨씬 더 복합적이라는 사실을 제시한다. 고대 전통들과 선조들과 모세의 유년 시절을 기념하던 미드라쉼이 예수의 유년 시절 사화에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이 명백하다면, 그 차이점들이 샤를르 뻬로(Ch. Perrot)의 진단에 따라 충분히 드러난다 : “우리는 복음에 나타나는 사화들의 목록을 만들기 위해 미드라쉬에 대해 말할 수 없다. 복음의 문학 장르는 ‘자기 고유 장르’(sui generis)이며 이에 대해 말하기 위해 우리는 단순히 ‘예수 유년 시절 사화’라는 표현을 사용할 뿐이다2).” 또한 그는, 이야기된 사실의 선상에서, 마태오와 루가 복음의 두 사화 사이에 신학적인 주제들과 문학적인 선행 형태들의 수많은 일치점들을 강조한다. 이 일치점들은 두 사화 집필에 공통적이며 전해져 내려오는 구전 전통의 존재를 생각하도록 한다3). 쉬르만(H. Schürmann)은 여기서 유대-그리스도교적인 그리스도론의 아주 오래된 중심 요소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4).


    병행도 선례도 없고 성서 전통에도 팔레스티나의 유다이즘에도 없는 동정 잉태 선언의 유일한 독창성에 대해서도 말한다5). 동정 잉태는 불임이나 나이가 늙은 부모의 기적적인 아기 탄생과 관련하여 상당한 교감 요소가 있다. 비성서적인 대비들은 동정 잉태와는 전혀 다른 신과 인간의 혼인에 대해 말한다. 이는 출산에 대해 말하지 창조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다른 한편 마태오 복음 사화가 후에 다시 거론될 이야기이지만 마리아 측의 간음에 의한 잉태 소문에 대해 암시하는 것이 특이하다. 이러한 흔적은 예수가 요셉의 아이가 될 수 없다는 것이 의심의 여지없이 분명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는 마리아가 예수의 공생활 중 여러 장면에서도 소개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요한 복음은 가나의 혼인 잔치 장면과 십자가 수난 장면을 상기시키고 사도행전은 마리아가 초대 만찬 교회의 기도에 참여하고 있는 것을 그리고 있다.


    이 모든 본문들의 가르침을 집약하는 가장 중요한 자료는 마리아가 예수의 어머니라는 사실이다. 모든 것이 여기서 비롯되고 이리로 향한다. ‘예수의 어머니’라는 호칭이 마리아의 첫 번째 속성이며 어떤 의미에서 마리아의 ‘본성을 규정짓는 형용사구’이다. 이 호칭은 예수의 유년 시절 사화에서 반복되며, 공관 복음과 관련하여 예수의 형제들과 어머니에 대한 에피소드에서도 발견되며, 요한 복음에서는 가나의 혼인 잔치와 십자가 밑에서 그리고 만찬모임에서 발견된다 : “그의 어머니, 마리아”(마태 1,18 ; 2,11.13.14.20.21 ; 12,46 ; 13,55 ; 마르 3,31 ; 루가 2,34.48.51 ; 8,19 ; 요한 2,5.12 ; 19,25.26) ; “너의 어머니”(마태 12,47 ; 마르 3,32 ; 루가 8,20) ; “예수의 어머니”(요한 2,1.3 ; 사도 1,14) ; “마리아의 아들”(마르 6,3).


    마리아의 모성이 유년 시절 사화 안에서 동정 모성으로(마태 1,20 ; 루가 1,34) 강조되어 소개되고 70인역이 ‘동정녀’(parthenos)라는 용어를 끌어들인 엠마누엘 예언(이사 7,14)과 관련되어 나타난다. 이 동정 모성은 예수의 공생활 초기에 대해 말하는 루가 복음 사가의 통찰에 의해 전제된다 : 예수가 ‘요셉의 아들이라고 사람들은 믿는다’(루가 3,23). 그 모성은 전적으로 별도로 생물학적이며 동시에 인간적인 모성이다. 왜냐하면 마리아 편에서의 수락이 아브라함의 신앙과 이스라엘의 동정녀의 신앙 사이에 대비를 설정하는 신앙 행위이기 때문이다.


    신약 성서의 마리아에 대한 가르침은 물론 폭넓게 구약 성서를 상기하고 있다. 마리아는 ‘시온의 딸’이다(루가 1장과 스바 3,14-17 ; 즈가 2,14 ; 루가 1,36.43.56과 2 사무 6,1.9.11 등 참조) ; 그녀는 메시아적 기다림의 빛으로 기리어진다. 마니피깟은 성서적 표현들로 구성된 표절시이다.


    엘리사벳의 입을 통해 다시 한번 마리아의 모성이 초대 공동체의 신앙을 표명하는 표현으로 기리어진다 : 마리아가 ‘나의 주님의 어머니’(루가 1,43)로 고백된다. 이 말씀이 앞으로 다가올 발전을 알린다.


    예수의 동정 어머니 마리아에 대한 이러한 여러 언급에서, 우리는 이미 본질적인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다. 마리아는 신약성서 안에서 그녀가 자기 아들과 맺었던 유일한 이 관계 때문에 현존한다. 마리아는 전적으로 예수에게 관계지어져 있다. 이러한 관계로 마리아는 십자가와 만찬모임에 현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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