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대가 왜 그리도 악할까?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항상 그립고, 그를 생각하면 참으로 편안해 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만나기 싫은 사람도 있습니다. 나를 이용하려 들기만 하고, 뭔가를 요구하기만 하는 사람들은 만나기 싫습니다. 그리고 실망하게 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잘해주려고 노력했는데 전혀 관심이 없고, 다른 것을 요구하는 사람. 그런 사람에게는 한숨만 나올 것입니다. 한숨만…
예수님도 오늘 한숨 나오는 사람들을 만나십니다. 예수님도 만나기 싫은 사람들이 있었지 않았을까요?
군중이 모여들자 예수께서 말씀하시기 시작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왜 당신께로 모여오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세대는 악한 세대입니다. 표징을 찾지만 요나의 표징 밖에는 아무런 표징도 이 세대에게 주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악한 세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기적의 참된 의미를 이해하려 하지 않고, 좀더 자신들의 눈을 충족시켜 줄 수 있는 그들이 원하는 기적을 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요나의 기적을 말씀하십니다.
사실 요나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표징이 된 것처럼 인자도 이 세대에게 그렇게 될 것입니다.
요나는 니느웨 사람들을 위한 하나의 징표였습니다. 기적을 동반한 그의 선교는 그들을 회개하게 했습니다. 현대에 있어서도 예수님께서는 징표가 되시고 그분의 선교와 기적이 그분의 신적 사명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유다인들은 요나의 선교와 사명에 엉켜 있던 주요한 사건들을 모두 알고 있었습니다. 이교인에 대한 설교, 야훼를 거스렀기 때문에 빠져 죽게 된 선원들을 구하려고 한 그의 헌신, 그 기적적 구출, 회개한 사람들, 야훼께서 니느웨 사람에게 주신 용서등을 유다인들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니느웨 사람들은 받아들였지만 예수님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지금 우리들은 받아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요나의 설교를 듣고 니느웨 사람들은 단식을 선포하고 재를 뒤집어쓰고 속죄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요나보다 뛰어나신 분이십니다.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이 세대 사람들과 함께 일으켜져서 이들을 단죄할 것입니다. 그는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보시오, 여기 솔로몬보다 더 큰 사람을!
예수님께서는 두 가지 실례를 드셨습니다. 하나는 솔로몬 왕 당시의 일입니다. 남쪽 나라의 여왕은 이스라엘에서 명성이 높은 솔로몬 왕의 지혜를 배우려고 먼 여행을 했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의 지혜라 할지라도 예수님의 가르침과 비교한다면 별것이 아닙니다. 유다인들은 그분의 가르침을 듣기 위해 여행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바로 앞에 계시니 말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귀를 기울여 듣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모든 사람이 받은 선물에 대한 책임을 묻고 심판하실 그 날, 세바의 여왕이 그들이 일부러 눈을 감고 소경이 된 것을 죄라고 단정하기 위해 일어설 것입니다.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이 세대와 함께 부활하여 이 세대를 단죄할 것입니다. 그들은 요나의 선포로 회개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보시오, 여기 요나보다 더 큰 사람을!”
두 번째 실례는 니느웨 사람들입니다. 이 이방인들은 그들에게는 외국 사람에 지나지 않는 유다의 예언자 요나의 말을 듣고 회개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같은 아브라함의 자손이긴 하지만, 그의 사명, 그의 헤아릴 수 없는 기적이 그 얼마나 뛰어났습니까? 하지만 그들은 알아듣지 못하고, 또 보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심판날에 니느웨의 이방인에게 단죄될 것입니다.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예수님을 믿게 된 구체적인 체험이 있습니까? 그리고 신앙생활을 하면서 잘못된 기대를 예수님께 걸거나, 어떤 조건을 예수님께 제시한 적은 없습니까?
2. 세례를 받았다고 해서 구원을 보증 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교만입니다. 구원에 가까이 가 있지만 내가 그분께로 나아가기를 거부한다면 나는 구원에서 멀리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분의 말씀을 듣고 노력하고 배우려는 자세가 나에게는 필요합니다. 세바의 여왕이 솔로몬의 지혜를 배우려고 먼 곳에서 온 것처럼, 니느웨 사람들이 요나의 설교를 듣고 즉시 회개하고 단식을 선포하여 구원을 얻은 것처럼. 그렇다면 나는 그분의 음성을 듣고 어떻게 사순절을 보내고 있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