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지만 너희는 나를 받아 들이지 않는다
가끔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다른 이들에게 물어보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정중하게 부탁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형편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나의 장점을 조금이라도 찾아서 얘기해 달라고. 내가 알고 있는 나도 형편없는데 다른 사람이 알고 있는 나는 오죽하겠습니까?
그런데 내가 상대방을 잘못 알고 있을 때도 있습니다. 정말 멋진 사람인데 형편없는 사람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정말 형편 없는 사람인데도 정말 멋진 사람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유다인들은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아마도 예수님을 하느님을 모독하는 사람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질서를 어지럽히는 사람. 이 세상에서 없어져야 할 사람.
하지만 어디 예수님이 그런 분이십니까?
“나 자신의 일을 내 입으로 증언한다면 그것은 참된 증언이 못 된다. 그러나 나를 위하여 증언하는 이가 따로 있으니 그의 증언은 분명히 참된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다른 사람이 증거해 주지 않는 이상, 당신 스스로 내세우는 주장들이 유다인들에게 진실된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없다는 것을 일단 인정하신다. 예수님께서는 구약의 원칙을 상기시켜 주신다. 구약의 원칙은 어떤 사람이 고발을 당했을 경우 한 사람 이상의 증인이 필요하다고 했다.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적용시키시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요한을 증인으로 채택하신다.
너희가 요한에게 사람을 보냈을 때에 요한은 진리를 증언하였다.
유다인들은 세례자요한의 권위를 추호도 의심없이 받아들였다. 세례자 요한은 에수님을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실 하느님의 아들과 동일시하였다(요한1,19-34)
두 번째 증인은 바로 아버지 하느님이시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도 친히 나를 위하여 증언해 주셨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기적들에 대하여 언급하실 때 사용하시는 단어 “업적들(에르가)”은 구약성서에서 창조사업으로부터 시작하여 구원의 역사 전체를 통하여 지속되고 있는 당신 백성을 위하시는 하느님의 활동을 가리키는 단어이다. 그와 똑같은 표현을 사용하심으로써,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업적과 아버지의 업적 사이의 연속성을 지적하신다. 예수님의 기적들 자체가 구원과 생명을 주는 아버지 하느님의 업적들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은 진리를 계시해 주고 계시는 것이다.
세 번째 증인은 아버지의 내적 증거이다.
너희는 아버지의 음성을 들은 적도 없고 모습을 본 일도 없다. 더구나 아버지께서 보내신 이를 믿지 않으므로 마음 속에 아버지의 말씀이 들어 있지 않다.
내적증거란 사람들의 마음속에다 해 주시는 아버지의 말씀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구절은 당신을 믿는 사람들 마음속에는 하느님의 말씀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또한 아버지께서 보내신 당신을 믿지 않으므로 그들의 마음 속에는 하느님의 말씀이 들어 있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네 번째 증인은 하느님께로부터 오고 유다인 지도자들이 생명을 원천으로 받아들이는 성서이다.(신명4,1;30,15-20).
너희는 성서 속에 영원한 생명이 있는 것을 알고 파고 들거니와 그 성서는 바로 나를 증언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생애와 임무는 구약을 성취시키는 생애요 임무라고 매우 분명하게 말씀하셨고, 당신이 오실 것과 당신 사명의 본질과 당신 마지막 운명을 예고한 구약성서의 특별한 대목들에 대해서도 언급하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다인들은 예수님께로 와서 생명을 얻으려 하지 않았다. 말씀을 가까이 하고 있지 않는 나도 생명을 얻으려 노력하지 않는 것과 같다. 그리고 예수님께 대한 마음이 없기에 나는 예수님을 찬양하지도 않는다.
예수님의 이 말씀이 마음에 와 닿는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지만 너희는 나를 받아 들이지 않는다. 그러나 아마 딴 사람이 자기 이름을 내세우고 온다면 너희는 그를 맞아 들일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믿기를 바라시며, 당신께로 향하기를 바라시며, 당신의 생활방식을 택하도록 기대하셨다. 그러나 거절과 저항, 불신과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것은 결국 내 안에 예수님이 안 계시다는 것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우리는 또한 뭔가 특별한 것을 요구하기도 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가장 소중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가진 것을 하찮게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내 옆에 있는 사람이 가장 소중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그 소중함을 잊어 버리고 살아갈 때가 있다. 내 옆에 있는 사람의 정성스러운 말 한마디에는 그리 감동 받지 않으면서 생소한 사람의 말 한마디에는 많은 관심을 갖는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발하리라고 생각하지는 말라. 너희를 고발할 사람은 오히려 너희가 희망을 걸어 온 모세이다. 만일 너희가 모세를 믿는다면 나를 믿을 것이다. 모세가 기록한 것은 바로 나에게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너희가 모세의 글도 믿지 않으니 어떻게 내 말을 믿겠느냐?”
예수님께서는 당신께 대한 그들의 태도를 계약 및 아버지께 대한귿도의 불충실, 하느님의 말씀과 하느님의 사랑을 그들 속에서 내쫓는 극도의 불충실의 반영으로 간주하신다. 그래서 예수님을 배척하기로 한 그들의 결정은 사실상 그들을 아버지의 불충실한 제자들로 단정짓게 만든다. 이제 그들은 아브라함의 자녀가 아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의 자녀였다면 하느님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자신들끼리 우쭐거리다가 하느님은 생각안하고 모든 영광은 자신들에게 돌리는 그들에게는 모세가 대변인이 아니라 고발자로 등장한다. 그들은 진정한 모세의 제자들이라고 자부했지만 그들은 모세가 말씀한 그분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살아오면서 예수님을 증거한 사람들을 만난적이 있습니까? 그리고 나는 예수님을 증거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2. 신앙생활을 하면서 내가 본질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말씀입니까? 아니면 나의 느낌이나 판단입니까?
에디시: 정말,말씀 좋슴다..감사함다..*^^* 가슴이 꼬옥~찔리네염 [04/03-10: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