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들


<말씀연구>


몇몇 여인들을 통하여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아직 부활을 믿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기다리지 않고 예루살렘을 떠나 엠마오로 가고 있었습니다.




13  마침 그들 가운데 두 사람이 그 날 예루살렘에서 육십 스타디온1) 떨어진 엠마오라는 마을로 가고 있었다.


이 두 제자는 여자들이 돌아왔을 때 사도들과 함께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과월절을 위해 예루살렘에 와 있다가 부활하신 그 날 엠마오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삼심리쯤 떨어진 곳이라고 했는데 원문에는 60스다지오(스타디온)이라고 했습니다. 1스다지오는 185미터이니 그들의 목적지는 예루살렘에서 11키로 떨어져 있는 곳이었습니다. 




이 두 사람은 걸어 가면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화재는 스승 예수님의 마지막 사건이었습니다.  그들은 무덤에서 돌아온 여자들의 이야기를 알고 있었습니다. 특히 그들의 마음을 들뜨게 했던 것은 그 빈 무덤이었습니다. 하지만 부활에 대한 믿음까지 인도되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이 빈 무덤 이야기를 듣고 부활을 믿게 되었다면 제자들과 함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길을 가다가 한 나그네를 만나게 됩니다. 그들은 눈이 가리워져서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분이 누구신지. 하지만 그분과 함께 동행을 하게 됩니다. 그분께서 물으셨습니다.


17  “걸어가면서 서로 주고받는 말들은 무슨 이야기입니까?”


제자들은 침통한 표정으로 멈추어 섰습니다. 생각 만해도 눈물이 나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글레오파는 마리아의 남편(요한 19,25)이라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는 당황을 해서 물었습니다.


18  “당신도 예루살렘에 머물고 있었는데 당신만이 이 며칠 동안에 거기서 일어난 일을 몰랐단 말입니까?”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물었습니다.


19  “무슨 일입니까?”


예수님께서는 몰라서 물으신 것이 아니라 그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듣고싶으셨던 것 같습니다. 글레오파는 예수님에 대해서 설명을 해 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하느님의 뜻을 가르치도록 파견을 받은 위대한 예언자의 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신 일과 말씀들은 예수님께서 하느님과 함께 계시고,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증명하고도 남았다고 설명했습니다. 백성들은 예수님을 예언자로 받아들였지만 대사제와 지도자들은 이분에게 사형선고를 내렸다고 설명을 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구세주로 생각하고 희망을 걸고 있었는데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벌써 사흘째가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여인들의 소식도 전해주고 있습니다.


22  그런데 우리 가운데 몇몇 여자들이 우리로 하여금 넋을 잃게 했습니다. 그들이 아침에 무덤에 갔다가 23  예수의 시신을 찾지 못하고 와서 하는 말이, 천사들의 발현을 보았는데 이들이 그분은 살아 계시다고 일러 주더랍니다. 24  그래서 우리 동료 가운데 몇 사람이 무덤에 가 보았더니 과연 여자들이 말한 대로였고 그분은 보지 못했습니다.”


글레오파의 말투에서는 불신이 엿보이고 있습니다. 무덤이 비어 있었다는 여자들의 말은 사실이었습니다. 다른 제자들이 자신들의 눈으로 확인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빈 무덤을 보고도, 천사들의 말을 듣고도 이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만일 다시 살아나셨다면 왜 자신들에게 그 모습을 나타내지 않으시는가?…이 두 사람은 희망을 잃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25 “참, 아둔하구려, 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믿는 마음이 그렇게도 굼뜬 사람들 같으니. 26  그리스도는 이런 고난을 겪고 자기 영광을 누리게 되어 있지 않습니까?” 27  그리고 모세와 모든 예언자들의 (기록)에서부터 시작하여 성경 전체에서 당신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 그들에게 설명해 주셨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꾸짖으십니다. 메시아에 대하여 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알아 듣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그 예언에 있어서 그들은 영광의 나라의 광채에만 눈이 어두어져 있었지, 그 참뜻과 가르침을 알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국가적인 야망에 집착하여 소경이 되어 있던 그들은 이 세상의 구원사업을 하시는 메시아의 인격을 이해하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메시아가 받아야 할 수난은 섭리적인 계획에 따른 것임을 말씀하시면서 지금 그 계획이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실현되었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서 전체를 연결시켜서 당신에 관한 말씀을 설명해 주셨습니다. 메시아의 수난, 치욕, 죽음이 그 영광을 전제조건으로 하여 기록되어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들이 찾아가던 마을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더 멀리 가시려는 듯이 보이자 그들은 예수님을 붙들었습니다.


29 “이미 날도 저물어 저녁이 되었으니 우리와 함께 머뭅시다”


예전 공동체 성가에 나와있던 “엠마우스”라는 성가가 생각납니다. “서산에 노을이 고우나 우리는 어둠에 잠겼사오니, 우리와 함께 주여 드시어. 이밤을 쉬어 가시옵소서. 주님의 길만을 재촉하시면 어느 세월에 또 뵈오리이까. 누추한 집이오나 따스하오니 이 밤을 쉬어 가시옵소서. 이 밤을 쉬어 가시옵소서.”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감동되었습니다. 어떤 분인지 알수 없으면서도 예수님의 가르침에 매료가 되어 예수님을 붙들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거절하지 않으십니다. 문득 제자들의 마음이 돋보입니다. 나보다 나은 신앙의 스승을 모시려는 마음, 자신들의 무지한 머리를 깨우쳐 주시는 분과 좀더 함께 있으려는 마음. 그분이 누구신지 모르지만 말입니다.


내 삶 안에서도 나보다 나은 스승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중요한 사건이 발생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뵌 것입니다.


30  예수께서는 그들과 함께 (식탁에) 자리잡으시자 빵을 드시고 찬양하신 다음 떼어서 그들에게 주셨다. 31  그제서야 그들은 눈이 열리어 예수를 알아보았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그들 (앞)에서 사라지셨다.


예수님께서는 자리에 앉자 빵을 들어 축복하시고 두 사람에게 나누어 주셨습니다. 이것이 성체성사를 의미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냥 평범한 보통 식사였습니다. 그런데 눈이 열려서 예수님을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빵을 들어 감사의 기도를 드리시고, 빵을 떼어 주시는 모습 안에서 예수님을 알아 보게 된 것입니다. 항상 하시던 동작을 보고서 그들의 눈이 열린 것입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항상 듣던 그분의 음성을 듣고 그분을 알아 뵌 것처럼 말입니다. 눈앞에 앉아 계신 분은 바로 예수님이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미 사라져 그들의 눈에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32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성경을 풀이해 주셨을 때에 [우리 안에서] 마음이 뜨거워지지 않았습니까?”


가끔은 말씀을 읽을 때 이렇게 마음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낍니다. 하지만 마음이 열리지 않으면 결코 뜨거움을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마음을 열어 말씀을 대해 보십시오. 그렇게 된다면 전에는 깨닫지 못한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 말씀이 살아 숨쉬기 때문에 마음이 뜨거워지는 것입니다. 말씀이 내 안에서 살아 숨쉴 수 있도록 하십시오.




34  “정말 주님은 부활하여 시몬에게 나타나셨다”


그들은 즉시 일어나서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 밤길을 걸었습니다. 기쁨에 넘쳐서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갔습니다. 예루살렘에 가보니 열한 제자와 동료들이 모여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만난 예수님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그 기쁨을 전해 주었습니다.


그곳에 가보니 시몬 베드로에게 주님께서 나타나셨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기쁨이 어떠했을까요? 그들은 기쁨에 넘쳐 있습니다. 기쁨에…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처럼 그렇게 예수님을 만난 적이 있으십니까?




2. 제자들은 예수님을 만나자 즉시 밤길을 달려 교회 공동체에게로 갔습니다. 그들은 기쁜 소식을 전했습니다. 우리는 어떤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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