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를 행하는 이는 빛으로 나아 갑니다”

 



“진리를 행하는 이는 빛으로 나아 갑니다”


<말씀연구>


예수님! 그분이 왜 하늘에서 내려오셨을까? 예수님께서는 세례를 받고 복음을 믿어 새로운 생명을 얻어야 한다고 가르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당신께서 어떠한 값을 치르고 이 생명을 우리에게 주시는가에 대해서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는 것은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16 과연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을 이토록 사랑하시어 외아들을 주시기까지 하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이마다 모두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단죄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보내신 것이 아니라 구원하시기 위해서 당신의 외아드님을 보내셨습니다.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나를 극진히 사랑하셔서” 즉 사랑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심판자로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분은 우리를 심판하러 오시는 것이 아니라 구원하러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한 가지 조건이 있다.


18 그를 믿는 이는 심판을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이는 이미 심판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외아들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믿는 이들, 그리고 믿지 않는 이들. 구원을 얻기 위한 단 하나의 수단인데 그것을 얻을 것인가? 아니면 잃은 것인가는 나의 선택에 달린 것입니다.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의 각각의 입장은 이러합니다.


빛이 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들의 행실이 악하였기 때문입니다. 사실 악을 저지르는 자는 모두 빛을 미워하고 빛으로 나아가지 않습니다. 그것은 자기 행실이 폭로되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리를 행하는 이는 빛으로 나아갑니다. 그것은 자기 행실이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진) 일임을 드러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빛(예수님)에 대한 나의 태도가 구원을 결정합니다. 빛을 버린다는 것은 진리의 요구에 따라 사는 삶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리를 행하는 사람은 아무런 두려움 없이 빛을 향해 가까이 나아가고, 빛의 비추임 안에서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 빛 안에서 사는 삶….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예수님께서는 니고데모에게 당신의 수난과 죽음을 예고하십니다. 예수님을 믿는 다는 것. 그것은 먼저 예수님께서 왜 이 세상에 오셨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나를 위해 하신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2. 빛과 어두움. 참으로 좋은 표현입니다. 어두움에 있을 때는 빛 속으로 나아가길 거부하는 나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빛 속에 있을 때는 어두움 속으로 들어가길 원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나 자신에게 있어서 빛과 어두움의 경계는 어디입니까? 빛에 드러내기 싫은 부분은 어떤 부분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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