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체성사-교의사적인 전개(5)

 

3.7.    전례의 혁신과 교회 일치 운동


교회 역사를 보면 열심하다는 신자들이 영성체를 자주 하지 않는 경향이 있었다. 이미 5세기 경부터는 열심하다는 교우들이 주간에 한 번 영성체하엿고 대개는 연중 큰 축일이나 되어야 성체를 영하였다. 토마스 아퀴나스나 보나벤뚜라 같은 신학자들은 잦은 영성체를 권장하였고 트리엔트 공의회도 미사 참예할 때마다 영성체하기를 권장하였으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또한 17세기 이후 비천한 인간으로서 지존하신 성체를 자주 영함을 부당하다는 얀세니즘의 주장은 신자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이런 경향에 쐐기를 박고자 교황 비오 10세(1903-1914)는 자주, “가능하면 매일” (DS 3534)이라도 영성체를 하도록 강력히 권고하였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는 다른 주제들과 관련해서 여러 대목에서 성찬례에 대해서 언급하였다. 공의회는 그리스도께서 성찬례와 성찬의 음식에 현존하신다는 것을 재차 확인하면서 그외에도 다른 성사들에도, 선포되는 말씀에도 그리고 (마태 18,20를 명시적으로 관련지으면서) 신자들이 함께 모인 공동체 안에도 현존하신다고 말함으로써, 그리스도의 현존을 협소하게 생각하는 자세를 극복하였다 (참조: 전례헌장 7항).


또한 교회 전통에 따라서 미사가 희생제사라는 것을 확인하면서 트리엔트 공의회의 결정문을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리스도께서는 미사 성제에 있어서, 특히 성체 형상 안에 현존하시지만, 사제의 인격 안에도 현존하신다. 즉 ‘전에 십자가상에서 당신 자신을 제헌하신 같은 분이, 지금도 사제들의 봉사를 통하여 제사를 봉헌하고 계시는 것이다’”(전례헌장 7항). 십자가상 제사의 영속화에 대한 설명에서는 기억이란 개념을 강조한다. “우리 구세주께서는 팔리시던 날 밤 최후의 만찬 중에, 당신의 살과 피로써 감사의 제사(미사 성제)를 제정하셨으니, 이는 당신이 재림하시는 날까지 십자가의 제사를 세세에 영속화하고, 또한 사랑하는 당신의 정배인 성교회에 당신의 죽으심과 부활의 기념제를 위탁하시기 위함이었다. 이 제사는 자비의 성사요, 일치의 표징이요, 사랑의 맺음이며, 또한 그리스도를 받아 모시게 하며, 마음을 은총으로 충만케 하고, 우리에게 장래 영광의 보증을 주는 빠스카(즉 죽음에서 영광된 새 생명으로 건너가게 하는) 잔치이다”(전례헌장 47항). 또한 공의회는 신자들이 어떤 자세로 희생제사에 참여해야 하는가를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신자들은 티없는 제물을 사제의 손으로뿐 아니라, 사제와 함께 제헌하면서, 자기 자신을 제헌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전례헌장 48항).


그리고 공의회는 “모든 신자들이 능동적으로 완전히 참여”하는 것을 목표로 전례개혁을 시작하였다 (totius populi plena et actuosa participatio: 전례 14; 참조: 19. 41. 48. 50). 그래서 (처음에는 비록 조심스럽게 부분적으로나마) 모국어 사용(전례헌장 36. 54)과 평신도의 성혈배령 (전례헌장 55항)의 여지를 주었다. 공의회의 결과로 나타난 개혁은 모국어를 전례의 전체 영역에 사용 가능하도록 확대하였고, 성찬기도를 소리내어 읽도록 하였는데, 이로써 (종교 개혁자들의 요구가 있은지 사백년 후에!) 성찬례의 복음 선포적 성격이 분명하게 되었다. 그리고 사제는 공동체를 향하여 미사를 드리게 되고, 제단를 다시 초기 그리스도교의 식사 공동체의 형태를 지니도록 구성하게 하였다. 기회가 되는 대로 작은 규모로 식탁을 가운데로 모인 성찬례의 거행이 늘어나게 되고, 신자들은 이를 긍정적으로 체험하게 되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의거한 전례개혁과 함께 epiclesis, 성령이 오시기를 청하는 기도는 다시 로마의 미사전례 안에 자리하게 되었다. 새로된 세 가지 성찬 감사기도에는 성체성사 건립 기사 전에 성령이 오시기를 청하는 기도가 제물을 축성해주시기를 청원하는 형태로 위치하고 있다: “아버지, 간절히 청하오니 아버지께 봉헌하는 이 예물을 성령으로 거룩하게 하시어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되게 하소서“(감사기도 제3양식).


성찬례의 epiclesis 특성를 재발견함으로써 동방 교회와의 연결이 가능하게 되었는데, 동방 교회의 전례에서 epiclesis는 본질적이고 불가분의 요소이다; 아울러 개신교의 성찬례 신학과도 새로운 공통점이 생겨났는데, 그 신학에서는 성찬례에서의 그리스도와의 일치를 우선적으로 성령의 업적으로 해석하였던 것이다. 리마문서에서는 성령의 역할을 “십자가에 처형되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성찬 회식 때 우리에게 실제로 현존토록 하시어, 성찬 제정의 말씀에 들어 있는 현존 약속을 실현”하는 데에서 보았다(14항). 이렇게 그리스도의 성찬 현존이 성령을 통한 것임을 밝히면서 성찬은 “주술적이거나 기계적인 의례가 아니고, 하느님 아버지께 드리는 기도”(14항 해설)라고 강조한다.


20세기에 들어서, 특히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가톨릭과 개신교와의 종교일치를 위한 대화가 활발히 진행되었고 서로의 의견 접근도 보았다.1) 예를 들어서 1978년 로마 가톨릭과 개신교-루터교의 공동 위원회에서는 “주님의 성찬”(Das Herrenmahl)이란 문서가 발표되었다. 1982년에는 리마(Lima)에서 성공회, 희랍정교회, 프로테스탄트, 로마 가톨릭 대표들로 구성된 세계교회협의회(WCC)의 신앙과 직제 위원회에서 “세례, 성찬, 직제”(Baptism, Eucharist and Ministry)를 발표하였다. “리마 문서” 혹은 “BEM” 문서”2)라고 하는 이 문헌은 교회일치운동의 상당히 중요한 결실로 평가받고 있다.


“BEM 연구는 수많은 가톨릭인들을 풍요롭게 하는 체험이 되었다. 가톨릭인들은 BEM 안에서 동조할 수 있는 부분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동시에 신앙과 직제 위원회가 제공하는 일치운동적 맥락 안에서 세례와 성찬과 직제와 관련된 중대한 요소들에 대하여 보다 깊은 연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본다. 우리는 일련의 의견 수렴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에 대해 기뻐하고 일치를 위한 한 단계 위에로의 성장을 기대한다”.3)




그러나 한국개신교의 대다수는 세계교회협의회(WCC)에 가입하고 있지 않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에 가입한 교단들마저도 전부가 WCC의 회원 교단은 아니다. 한국 개신교의 대부분은 그 동안 에큐메니즘과 WCC에 대하여 거부감을 가져 왔다. 이런 관계로 한국개신교에서는 “리마문서”를 별로 반기는 것 같지는 않다.


“우리는 일단[…] 개신교가 종교개혁 이후 말씀설교에 치중한 나머지 ‘성만찬 예배’를 소홀히 여겨 왔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동시에 19-20세기에 이르는 개신교의 역사 속에서 ‘성만찬 예배’가 강조되어 온 역사적 사실들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BEM 문서가 동방정교회와 성공회와 심지어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영향으로 성만찬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는 경향에 대해서 우려를 표명하면서 루터, 쯔빙글리, 칼빈의 ‘복음설교’에 대한 강조를 다시 한 번 상기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세 개혁자들은 세례와 성만찬을 필수적인 은총의 수단으로 보고 있지만 말이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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