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나를 보내신 분을 모르고 있다.

주님.
오늘 말씀에서 ‘세상에 속하지 않은 ‘
‘가려낸 사람’이란 무엇을 뜻하지요?
모든 이는 아버지의 창조된 백성인데 구분하시는 이유가 궁금해요.

안나는 불교 신자이든, 유대교 신자이든, 개신교 신자이든
모든 이는, 더불어 살아 가는 당신 백성으로 보았습니다.
비록 이념은 다르고 표상하는 교리는 다르다 하여도
근원은 아버지께 귀속된다 생각했습니다.

가르침의 으뜸인 모든 종교는 天에 근원을 두고 있지요?
안나가 다른 종교를 이해하는데 가장 지름길은
‘아! 저분들은 하느님을 또 다른 방법으로 사랑하시는거야.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저분들도 창조하셨으니 그들의 종교도 존중해 주자.’
당신이 말씀하신 사랑 안에서 바라보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없었습니다.

그들의 방법으로 표현하여도
하느님의 다양성 안에서 우리는 제 인연대로 삶을 꾸려 하느님께 사랑을 고백합니다.
당신이 안나에게는 그렇게 인식을 허락하셨습니다.

주님.
한번은 어떤 형제님이 물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을 하느님께서 창조하셨다면 왜 모든 사람들이 하느님을 모를까?”

안나는 이렇게 비유해 보았습니다.
“전쟁이 터지면 사람들은 제 각기 피난하느라 가족을 잃어 버립니다.
그러다 보면 가족을 찾는 사람도 있고
찾지 못하여 자신의 뿌리를 모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신이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고 각박하게 살다
어느 날 문득 자신을 바라보고는
자신이 누구인지 무얼 하고 있는지 찾는 사람은 부모님을 찾게 되겠지요?
물론 성령의 이끄심이지만 그는 그것을 인식하지 못합니다.”

그 전쟁은 아담과 에와의 실 낙원일 수도 있고,
바벨탑일 수도 있고,
소돔과 고모라의 참상일 수도 있고,
노아를 제외하시고 멸하시던 그 때일 수도 있겠지요?
그리고
자신의 내면 안에서도 수 없는 전쟁이 일어나지요?

주님.
때묻은 저희의 눈에는 당신이 보이지 않습니다.
아름다움의 본성은 변하지 않지만 가리워진 눈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구름으로 태양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념으로 당신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기심으로 당신이 보이지 않습니다.

주님!
당신을 기다리게 하고 당신을 아프게 하고 당신을 안타깝게한
안나의 무지한 마음을 용서하소서.
미아가 되어 무례한 삶을 사는 안나를 용서하소서.
사랑한다 말 하면서도 당신을 떠난 안나를 용서하소서.

당신을 몰랐나이다.
당신을 알았더라면 이렇게는 살지 않았을텐데,
말 뿐인 빈 말만 되뇌이며 사랑하노라 허공에 고백하는 안나로
자신에게도 이웃에게도 아버지를 찾아 드리지 못했음을
주여! 용서하소서.

다시 시작해 보겠습니다.
오늘 다시 시작하라 허락하신 이 거룩한 날,
경망스런 안나가 풀꽃들의 의연함으로
당신 앞에 앉겠습니다.
일곱번을 일흔번이라도 용서하시는 당신 자비에 청하오니
이 죄인 받아주소서.
살아나리이다.

211.229.166.246 푸른하늘: 아멘~~
좋은주말 되소서^^V [05/24-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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