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 눈이 죄를 짓게 하거든 그 눈을 빼어 던져 버려라.
<말씀연구>
예수님 참 너무하시네요. 눈에 들어오는 것에 대해서는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즉각 반응이 일어나는데 그냥 생각만 한 것을 가지고도 죄라고 말씀하시니…
오늘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아내가 있는 사람은 아내에게 더 잘해야 겠다는 생각을 가졌으면 합니다. 남편이 있는 사람은 남편에게 더 잘해야 겠다는 생각을 가졌으면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이혼의 아픔을 겪지 않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27 “‘간음하지 말라’ 고 하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28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렇게 말한다. 누구든지 여자를 보고 음란한 생각을 품는 사람은 벌써 마음으로 그 여자를 범했다. 29 오른 눈이 죄를 짓게 하거든 그 눈을 빼어 던져 버려라. 몸의 한 부분을 잃는 것이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낫다. 30 또 오른손이 죄를 짓게 하거든 그 손을 찍어 던져 버려라. 몸의 한 부분을 잃는 것이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낫다.”
율법에서는 간음을 금하고 있었으나 예수님께서는 나쁜 생각, 음란한 생각까지도 엄하게 금하십니다. 구약의 십계명은 남자우대(간음죄를 여자에게만 적용시킴)사상이 짙었습니다. 결혼한 여인이 독신자나 비유다인과 성적으로 관계를 맺으면 간음하는 것이지만, 결혼한 남자가 같은 일을 하면 간음을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당시는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근동 지방도 여자는 귀중한 재산목록에 속해 있었습니다. 십계명에도 이런 영향이 미쳐 재산, 아내를 탐하지 말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문자 그대로 간음을 금하고 있던 모세의 율법은 단순한 간음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보충하십니다.
예수님의 의도는 신체 절단 보다는 악한 마음의 뿌리를 없애라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6계명을 거스르지 않기 위해 차라리 피를 흘리는 희생과 고통이 있더라도 죄의 기회를 피해야 한다고 가르치십니다. 재산, 건강, 친구, 친척까지도 만일 우리에게 죄를 짓게 할 원인이 된다면 그들과의 그런 관계도 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영원한 구원은 모든 재산, 온갖 사랑보다 윗자리에 두어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31 “또한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려면 그에게 이혼장을 써 주어라’ 고 하신 말씀이 있다. 32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한다. 누구든지 음행한 경우를 제외하고 아내를 버리면, 이것은 그 여자를 간음하게 하는 것이다. 또 그 버림받은 여자와 결혼하면 그것도 간음하는 것이다.”
예수님 시대 이스라엘의 혼인법과 이혼법을 살펴 보면 쿰란 종파만이 일부일처제를 주장하면서 이혼과 재혼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일부다처제를 묵인했을 뿐만 아니라 이혼과 재혼을 쉽사리 허락했습니다. 물론 여기서 이혼이란 언제나 남편이 아내를 소박하여 내보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구약에서는 아내에게 수치스러운 일이 있어야 그렇게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무엇이 수치스러운 일일까요? 남성 중심적인 사회 안에서 귀에 걸면 귀걸이고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바리사이계 율사들은 여러 가지 해석을 내렸는데 간음, 풍기문란, 음식을 태우는 것, 계명을 어기는 것, 남편 눈에 거슬리는 모습 따위를 수치스러운 일로 보았습니다. 남편이 아내에게서 이런 일을 발견하고 버릴 마음이 있으면, 이혼장을 만들어 아내에게 건네주면 그 순간부터 아내는 소박맞고 쫓겨난 여자가 됩니다. 이혼장에 소박 사유를 쓸 필요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아내가 무서워서 지붕위에 올라가서 아래에 있는 아내에게 이혼장을 던졌다고도 합니다.
■ 이혼장 ■
나 말자의 남편 말똥이는
아내 말자를 소박하니
다른 남자가 데려가도 무방합니다.
2003.6.13일
증인: 소똥이, 개똥이.
바리사이들의 이혼 관례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비판적 입장을 취하시어 이혼 불가를 선언 하셨습니다. “모세는 여러분의 완고한 마음 때문에 그 계명을 적어 여러분에게 남겼습니다.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창조의 시초부터 그들을 남성과 여성으로 만드셨습니다. 이 때문에 사람이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자기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은 한 몸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이미 둘이 아니고 한 몸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 놓아서는 안됩니다.”
더 나아가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자기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결혼하는 자는 그와 간음하는 것입니다. 또한 아내가 자기 남편을 버리고 다른 남자와 결혼해도 간음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계명 중 제6계명과 관련하여 이혼을 단죄하십니다. 당시 소박맞고 쫓겨난 여자는 홀로 살기는 거의 불가능하고 아무래도 재혼하게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초대 교회는 예수님이 이혼을 단죄한 말씀을 두고 여러 가지 해석을 내렸습니다. 유다교인들이 모세의 이혼법을 내세워 소박을 정당화하자,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의 원초적인 뜻(창세1,27;2,24)을 내세워 예수님의 말씀을 옹호하고 나섰습니다.
70년경 이방계 신도들은 남편이 아내를 내보낸 다음 재혼하면 간음하는 것처럼, 또한 아내가 자기 남편을 버리고 다른 남자와 결혼해도 간음하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말은 여자에게도 이혼하고 재혼할 권리를 인정한 로마와 그리스 사회에서나 할 수 있었습니다.
55년경 에페소에서 고린토 교회로 써 보낸 편지에서 바울로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이렇게 풀이했습니다. “이혼해서는 안되지만 부득이 이혼한 경우 재혼만은 하지 말아야 한다(1고린 7,10-11). 그리고 비신자 부부 가운데 한편만 그리스도인이 된 경우에는 신자편에서 이혼을 주장해서는 안되지만 비신자편에서 이혼하려고 하면 갈라서도 무방하다(1고린7,12-15)
예수님은 이혼하지 말라는 법을 제정하시려고 이런 말씀을 하신 것이 결코 아닙니다. 일방적으로 아내를 버리는 남편들에게 일대 회개를 부르짖는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유로 아내를 버릴 수 있을까를 따질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둘이 한 몸이 되는 비결을 익힐 수 있을까 궁리하라는 외침인 것입니다.
어떻게 아내를 사랑해야 할까? 어떻게 남편을 사랑해야 할까를 고민해야 하겠습니다.
함께 생각해 보아요
1. 보아야 할 것이 있고, 보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보면 득이 되는 것이 있고, 보면 손해만 보는 것도 있습니다. 어떤 것에 더 관심을 둬야 할까요?
2. 가끔은 살다보면 의견이 맞지 않는 경우도 있고, 화가 날 때도 있습니다. 부부들이 가정생활을 더욱 완만하게 하기 위해 조언을 해 준다면 어떤 말씀을 해 주시겠습니까?
마지아: 과분한 배우자를 허락해 주신 주님께 감사드리고부족한 나하고 살아주어 고마워 라고 말하며 [06/13-13: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