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선생님께서 가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 가겠습니다
<말씀연구>
예수님을 따르는 데 있어서 장애가 되는 것은 무엇이고, 조건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어떤 마음으로 예수님을 따라야 할까요?
18 예수께서는 둘러 서 있는 군중을 보시고 제자들에게 호수 건너편으로 가라고 하셨다.
한 율법학자가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비장한 각오를 말씀드립니다.
19 “선생님, 저는 선생님께서 가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 가겠습니다”
율법학자, 그는 신학자, 설교가인 동시에 학교의 선생님이기도 하였고, 공증인이기도 하였습니다. 대부분의 율법학자는 바리사이파 사람이며, 이스라엘의 스승으로서 백성들의 커다란 존경을 받고 있었습니다.
이 율법학자는 예수님의 제자가 될 것을 청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를 반기지 않으십니다. 아마도 그의 마음의 준비가 모자랐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사람들 앞에서 자기의 이 헌신을 광고하고 싶어서 그렇게 말했는지도 모릅니다. 좌우지간 그의 청은 일시적인 감정에서 나온 것이며 참된 희생과 진실한 따름의 각오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도 피정 때나 감정이 고조되는 모임 때 이런 서원을 자주 합니다. 내 모든 것을 주님께 드리겠다는 그런 서원. 앞으로는 매일 미사에 참례하고, 교무금은 어떻게 내고, 전교는 어떻게 하고….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내가 언제?”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20 그러나 예수께서는 “여우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 둘 곳조차 없다” 하고 말씀하셨다.
선교사로서 예수님이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온 생활을 완전히 바치신 삶을 묘사하는 진주와도 같은 말씀이십니다. 사람의 아들에게는 일정한 집이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양을 찾기 위해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험한 길을, 고단한 길을 걸으셔야만 했습니다. 조각배 뱃고물이 그분의 베개였으니(마르4,38) 예수님께서는 조금도 꾸밈없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율법학자도 그랬겠지만 저도 그랬을 것입니다. “진작 말씀하시지요. 그럴 줄 알았으면 말씀 안드리는 것인데…”
예수님을 따르는 데는 포기해야 할 것이 있고, 우선적으로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21 제자 중 한 사람이 와서 “주님, 먼저 집에 가서 아버지 장례를 치르게 해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22 그러나 예수께서는 “죽은 자들의 장례는 죽은 자들에게 맡겨 두고 너는 나를 따라라” 하고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따를 사람만을 사도직에 부르십니다. 그분은 만사에 앞서서 또 만사를 초월하여 사랑을 받고자 하십니다. 그 말씀에 따라서 아버지나 어머니, 재산, 모든 것을 버리지 않으면 결코 그분을 온전히 따를 수 없고, 그분은 그대로 떠나가 버리실 것입니다.
죽은 자들에게 맡기라는 말씀은 비유적으로 알아 들어야 합니다. 은총과 성직에 대한 부르심을 받지 못하는 것은 이미 초자연적인 의미로 보아 “죽은 자”입니다. 사도직에 부르심을 받는다는 것은 그렇게 단순하고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나를 따라라” 이 가르침은 “너의 부모를 사랑하라는 계명에 거슬리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본질적으로 더 높은 의무가 있다면 그 의무와 대립되는 다른 의무는 물리쳐야 한다는 것 입니다. 국가가 위태로울 때 부모 형제를 떠나서 용감히 전쟁터로 나가는 것은 확실히 더 큰 의무입니다. 그리고 율법에(민수6,6-7) 나지르인이 그 서원을 한 기간 동안은 어떠한 시체에도, 가령 그것이 어버이의 시체라 할지라도 가까이 가서는 안된다는 규정이 있었습니다.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예수님을 따른다고 하면서 입으로만 고백했던 내용들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2. 그 제자가 아버지의 장례를 단념하고 예수님을 따랐는지에 대해서는 기록이 없습니다. 하지만 “나를 따라라”는 말씀에 비추어 보면 예수님을 따랐다고 생각됩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앞서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이겠습니까? 내 삶 안에서 어떤 것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앞섰습니까?
요한신부: 아침에 바쁘게 올리고 갔다와서 다시 보니 이상하군요…넘 엉성해서요…지송 [06/30-11:4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