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성서적 기초
2.1. 종교사회학과의 관련점: 입문예식
종교사회학에서는 한 종교와 종족의 일원이 되는 과정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이 과정이란 친밀한 부족 공동체에로의 입문이나, 새로운 삶의 신분에로의 축성, 개인의 성숙, 神性과의 만남의 과정을 말하는데, 여기에는 대략 3가지 공통된 특징이 나타난다: 지금까지의 삶의 형태와의 결별, 위험과 고통, 중요한 언어의 습득, 속하고자 하는 집단의 생활 습관을 훈련하는 것 등을 특징으로 하는 과도기적인 기간, 그리고 마지막으로 새롭고 변화된 삶이 시작되는 공동체에로의 입문이다. 이 과정에는 실천적인 훈련과 상징적인 예식들이 섞여 있다.
2.2. 물의 상징
그리스도교의 입문예식인 세례성사에는 물이 사용되는데, 물은 물리적인 상태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물에 대한 인간의 근원적인 체험이 집약된 상징이다. 즉 물에는 (부분적으로는 대립되는) 세 가지 체험이 담겨져 있다. 이 체험들은 여러 종교들의 신화, 그리고 성서의 언어에도 깔려 있다.
(1) 물은 생명을 위협하는 혼돈의 세력으로 체험된다. 홍수의 체험은 물을 파국을 가져다주는 것으로, 난파선의 체험은 바다는 사람을 집어삼키는 괴물이라고 느끼게 한다. 이에 대해서 신적인 능력은 혼돈의 세력인 물을 제한함으로써 인류에게 삶의 기회가 부여한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구약성서에서는 삶을 가능케 하는 하느님의 창조의 업적이란 땅과 물을 갈라놓으신 것(창세 1,6-10), 혹은 바다나 바다의 괴물과의 투쟁(욥 7,12; 26,12; 시편 65,7; 74,13 이하; 77,17; 89,10 이하; 93,3 이하; 104,6 이하; 107,29)으로 표현한다. 갈대바다를 무사히 건너온 데에 대한 노래에는 이스라엘의 근본적인 구원체험에 대한 회상이 집약되어 있다(출애 15; 이사 51,10). 기도에서는 물이 죽음의 두려움에 대한 표상(2사무 22,5; 시편 42,8; 66,12; 69,2 이하. 15 이하; 요나 2,4-6)으로 나타난다. 하느님께서 “바다의 괴물”을 아주 해치우시고, “바다가 없어지게 되는 것”(묵시 21,1)은 종말의 희망에 속하는 사항이다.
(2) 물이 생명을 위협한다는 것 못지 않게 물이 생명의 원천이라는 체험도 인간의 근원적 체험에 속한다. 이는 특별히 사막 근처에 사는 유목 민족들에게 해당된다. 고대 에집트에서는 나일강을 선물로 인식했다. 유목민들에게 샘이나 오아시스는 삶을 의미했다. 바위에서 솟아나온 물은 광야의 백성들을 구해낸다(출애 17,1-7; 민수 20,1-11). “에덴에서 흘러나온 강”은 창조의 선업에 해당되고(창세 2, 10-14), “생명수의 강”과 그 강 양쪽에서 자라나며 열매를 맺는 “생명나무”는 미래의 메시아 왕국에 속한다(묵시 22,1 이하). 암사슴이 시냇물을 그리워한다는 말은 생명의 하느님께 대한 그리움을 표현한 것이다(시편 42,2 이하).
(3) 물은 정화하고 생기를 준다. 물의 주요 의미에는 마시는 행위만이 아니라 씻고 목욕하는 것도 속한다. 이는 더러움과 병과의 관련에서 나타나게 된다: 불결함으로 인해서 공동체에서 분리되고, 물로 씻음으로 해서 공동체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그 외에도 여러 문화권에서는 물로 목욕하는 것에 삶을 고양시키거나, 더 나아가서는 죽지 않게 하는 효과를 부여하였다. 고대 에집트에서는 나일강에 빠져 죽은 사람은 신이 된다는 생각이 존재했다. 이스라엘에서는 淨化의 관념이 전면에 위치하였다. 여기에서 정화란 육체적인 불결(병), 윤리적인 불결 (죄) 그리고 예식적인 불결1)을 모두 의미한다. 문둥병이 걸린 나아만은 요르단 강에서 목욕을 함으로써 다시 깨끗하게 된다(2열왕 5,14). 예식적으로 부정하게 된 사람은 공동체에 다 시 돌아가기 전에 예식적으로 정화되어야 한다(레위 11-15; 민수 19, 11-22). 인간을 죄에서 해방시키는 하느님의 행동도 물이라는 표상과 연결되어 있다: “정화수를 나에게 뿌리소서, 이 몸이 깨끗해지리이다. 나를 씻어 주소서, 눈보다 더 희게 되리이다”(시편 51,7). 그러나 “정화수”를 이스라엘 백성 위에 쏟아 붓는다는 표상은 치유나 정화 그리고 속죄의 의미를 넘어선다: 이는 새로운 마음을 수여, 하느님 영의 전달, 약속된 땅에서의 새로운 활력, 기쁨과 연결된다(에제 36,25-27; 이사 32,15-20; 44,3; 요엘 3,1 이하).
2.3. 이스라엘에서의 水洗
이스라엘에서는 정화수를 뿌리는 것(민수 19,17-22)에서부터 강물에 목욕하는 데(유딧 12,7)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정화예식이 생겨났다(레위 11-15; 민수 19). 정화예식의 의미는 유배 이후에서 예수 시대까지 계속 고조되었다. 자주 반복하고 온 몸을 물에 담그는 것이 의무로 되었다; 회당에서는 침례 예식이 생겨났다. 그밖에도 침례 예식은 이스라엘인과 비 이스라엘인, 그리고 이스라엘에서도 특정한 집단에 소속된 사람들(예를 들면 엣세느파)과 그 이외 사람들을 구분하는 표지가 되었다. 꿈란 공동체에서는 발견된 광대한 목욕시설은 두번째의 경우를 분명하게 드러내 준다.
개종자의 세례도 이런 맥락에서 고찰된다. 이방인이 이스라엘 신앙을 받아들일 때 입문예절의 일부로 거행되던 것이 개종자의 세례이다. 여기에서도 유대인의 다른 침례에서처럼 개종자 스스로가 물 속에 몸을 담근다; 다른 침례가 반복되던 것과는 달리 개종자의 세례는 단 한번에 그쳤다. 이 점에 있어서는 요한의 세례와 같다. 그러나 개종자의 세례가 이미 예수 시대에 시행되었는지는 역사적으로 불분명하다. 그래서 개종자의 세례가 요한의 세례와 그리스도교의 세례에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서는 단언할 수가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