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계명이 가장 큰 계명입니까?

 

어느 계명이 가장 큰 계명입니까?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


<말씀연구>


 


율법교사는 예수님의 속을 떠보려고 질문을 합니다. 그의 머릿속에는 “똑똑한 나도 풀지 못하는 문제를, 율법에만 전념하는 율법학자들도 못 푸는 문제는 어찌 당신이 풀겠는가? 어디 횡설수설하는 얘기나 들어볼까?”하는 생각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질문을 통해서 평생을 바쳐도 풀지 못할 숙제를 하게 됩니다. 그 많은 율법 조항들 중에서 어느 것이 가장 큰 것인지를 예수님을 통해서 알게 됩니다. 가끔은 교만한 생각들을 통해서 커다란 것을 배울 때가 있습니다. 내가 모르는 것을 남이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물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남을 놀리기 위해서 물어보지 말고, 내가 배우기 위해서 물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34  예수께서 사두가이파 사람들의 말문을 막아 버리셨다는 소문을 듣고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몰려 왔다. 35  그들 중 한 율법교사가 예수의 속을 떠보려고


사두가이파의 패배(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7형제와 한 여자와의 천국에서의 혼인 이야기를 꺼냈다가 완패당함)를 보고 기뻐한 사람들은 바리사이파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부활이 있다고 믿었는데 예수님께서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파 사람들의 말문을 막아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리사이파 사람들 중 하나인 율법교사가 예수님께 시비를 걸러 왔습니다. 예수님을 어려운 궁지 속으로 몰아 넣어 보려는 속셈입니다. 그런데 본전이나 찾을지 모르겠네요(마르코 복음에서는 하느님 나라에 가까이 와 있는 독실한 사람이 질문을 하고 칭찬을 받습니다)




36  “선생님, 율법서에서 어느 계명이 가장 큰 계명입니까?” 하고 물었다.




유다교의 계명에는 613개가 있었습니다. 248개는 명령(…을 하라)이고 365개는 금령(..을 하지 마라)입니다. 613가지는 가벼운 것과 무거운 것으로 나뉘고 있습니다. 가벼운 것은 보상을 하면 용서되지만, 무거운 것은 그것을 위반하게 되면 사형이 선고되었습니다. 유다인들은 그것을 큰 계명, 작은 계명이라고 부르고 있었습니다. 랍비들 사이에서도 어떤 계명이 첫째가는 계명인지에 대해서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37  예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님이신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라.’ 38  이것은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고,


이 말씀은 신명기 6장4절의 말씀을 인용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은 어른이 된 남자 유다인이 매일 아침 외우던 중대한 기도의 시작 말씀입니다. 하느님께 대한 사랑의 계명,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가진 사람에게는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랑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절대적으로 또 전체적으로 자기 자신을 바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가지고 하느님을 섬긴다는 것입니다. 마음은 히브리 사람들의 심리학에서 지혜가 담긴 자리였습니다. 목숨을 다하고는 정신을 다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과 물리적인 모든 열정을 가지고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39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는 둘째 계명도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


예수님께서는 레위기 19장 18절을 인용하여 둘째 계명을 가르치십니다. 유다인에게 있어서 이웃은 친구들, 동료들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포함하고 계십니다. 사마리아안과 이방인 그리고 유다인, 세리와 죄인 그리고 생활이 문란한 여인과 의인이라고 보여지는 바리사이파 사람들, 친구, 적 모두가 이웃입니다. 예수님의 이웃 개념 앞에서 우리는 우리의 사랑이 얼마나 보편적이어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아무런 구별 없이, 종교, 지위, 남녀노소 등을 떠나 모든 이가 이웃이고, 우리의 도움을 받을 권리가 있고, 필요한 경우 용서를 받을 의무가 있다는 것입니다.




40  이 두 계명이 모든 율법과 예언서의 골자이다.”


예수님께서는 유다교의 율법 규정을 십계명으로 환원하셨고, 십계명은 다시 이렇게 사랑의 이중계명으로 환원하셨습니다. 율법의 핵심은 결국 사랑의 이중계명, 곧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명쾌한 대답입니다. 유다의 라삐들은 율법의 헤아릴 수 없는 많은 계명을 명백한 말로 간추리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힐렐르(기원전 20년)는 “네가 좋아하지 않는 일을 남에게 하지 마랄. 이것이 율법의 전부이며 다른 계명은 그 해석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에 비추어서 보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 명쾌하십니다.


이제 인간은 랍비들이 말하는 248가지의 계명과 365조목의 금령들을 주의해서 준수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제 두 가지 계명만 지키면 되는 것입니다. 이 계명을 지키는 사람들은 모든 율법을 준수하는 것이며 하느님의 참된 뜻을 이루는 것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계명을 삶을 통하여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하셔서 하느님의 뜻을 이루셨고, 당신의 몸을 바쳐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기의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거짓말쟁이입니다.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가 어떻게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의 형제도 사랑해야 한다는 이 계명을 우리는 그리스도에게서 받았습니다“(1요한4,20-21)




이 말씀에 비추어서 내가 하느님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이웃과 형제들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에 대한 계명을 들으면서 내가 정말로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실천하기 어려웠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나눠 봅시다.




2. 사실 눈에 보이지 않는 대상을 사랑하는 것이 눈에 보이는 대상을 사랑하는 것보다 쉬울 때가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형제 자매나, 직장 동료들 때문에 고민하는 이들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경험에 비추어서 함께 나눠 주세요




211.194.124.5 루실라: 더운데 복음연구 하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항상 감사드려요. [08/22-07:54]
210.95.187.35 kjs58: 좋은 말씀 잘 묵상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무엇보다 하느님께서 이루시도록 기도하고 참고 인내하며 기다리는 일
일진대 그러지 못하는 것이 나의 삶인듯 싶습니다.
거저 내힘으로 모든것을 하려고 하는 어리석음, 착각에서 벗어나게 도와
주십시오. 성령님! [08/22-13:25]
218.236.236.93 요셉피나: 신부님께서 풀이해 주시는 복음말씀이 짧은 성서지식으로 복음 묵상을 하는 저에게는 성서를 이해하는데 커다
란 지침이 됩니다. 매일 연구하시기가 얼마나 어려우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고맙다는 인사를 드립니다. [08/22-15:20]

이 글은 카테고리: 지난 묵상 보기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