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 14,1.7-11:겸손한 사람과 교만한 사람

 

겸손한 사람과 교만한 사람

끝자리에 앉아라

1. 말씀읽기: 루카 14,1.7-11

1 예수님께서 어느 안식일에 바리사이들의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의 집에 가시어 음식을 잡수실 때 일이다. 그들이 예수님을 지켜보고 있는데,

7 예수님께서는 초대받은 이들이 윗자리를 고르는 모습을 바라보시며 그들에게 비유를 말씀하셨다.

8 “누가 너를 혼인 잔치에 초대하거든 윗자리에 앉지 마라. 너보다 귀한 이가 초대를 받았을 경우,

9 너와 그 사람을 초대한 이가 너에게 와서, ‘이분에게 자리를 내 드리게.’ 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너는 부끄러워하며 끝자리로 물러앉게 될 것이다.

10 초대를 받거든 끝자리에 가서 앉아라. 그러면 너를 초대한 이가 너에게 와서, ‘여보게, 더 앞 자리로 올라앉게.’ 할 것이다. 그때에 너는 함께 앉아 있는 모든 사람 앞에서 영광스럽게 될 것이다.

11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가난한 이들을 초대하여라



가난한 이들을 초대하여라

12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초대한 이에게도 말씀하셨다. “네가 점심이나 저녁 식사를 베풀 때, 네 친구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유한 이웃을 부르지 마라. 그러면 그들도 다시 너를 초대하여 네가 보답을 받게 된다.

13 네가 잔치를 베풀 때에는 오히려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저는 이들, 눈먼 이들을 초대하여라.

14 그들이 너에게 보답할 수 없기 때문에 너는 행복할 것이다.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네가 보답을 받을 것이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 말씀연구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도 곱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가는 말이 거칠어야  오는 말이 곱다고 합니다. 내가 상대방에게 반말을 해야 내 권위가 세워지는 것도 아니고, 말을 할 때 담배를 피우거나,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말해야만이 권위가 서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그런 것이 필요할 때도 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겸손한 사람을 겸손하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저 사람은 만만하니까 내가 함부로 해도 되겠다는 생각을 주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예수님 정신이 아니니 큰일입니다. 내가 존경 받고 싶으면 다른 이들도 존경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다른 이를 존경하는 것이 나를 낮추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볼 수 있는 사람만 보는 것이지요. 존경한다는 것은 그만큼 내 인격이 성숙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랍니다. 다른 사람들을 존경하면서 살아갑시다.



1 예수님께서 어느 안식일에 바리사이들의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의 집에 가시어 음식을 잡수실 때 일이다. 그들이 예수님을 지켜보고 있는데,

유대인들은 안식일에는 잔치를 벌이는 관습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평일에는 식사를 두 번 하였지만 안식일에는 세 번 하였습니다. 회당에서 예배가 끝난 후에 먹는 점심 식사가 가장 잘 차려진 식사였습니다. “축제일에 백성들은 먹고 마시든지 아니면 앉아서 공부를 해야 한다.” 축제를 함께 지내기 위해서 손님들이 초대되었고, 그들은 극진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가난한 이들과 고아들과 이방인들에게도 친절을 베풀어야 했으며, 그들의 허기를 채워 주어야 했습니다.

회당의 종교 의식에는 유명한 율법 교사들을 초청하여 강연을 듣고 점심 식사에 초대하는 것이 관례적인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참으로 멋지신 분이십니다. 바리사이들의 위선과 교만에 대해서 단호한 태도를 취하시고, 그들을 비난하심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초대하면 기꺼이 응해 주셨던 것 같습니다. 물론 그들은 예수님을 모셔다 놓고 자신들의 입장을 강조하고, 꼬투리 잡으려 할지라도 말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지켜보고 있었다.”는 말씀이 참 와 닿습니다. 마르타의 동생 마리아처럼 그분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있었다고 전해주지 않습니다. 뭔가 꼬투리를 잡을 것이고, 그것을 통해서 시비를 걸려고 할 것입니다.



7 예수님께서는 초대받은 이들이 윗자리를 고르는 모습을 바라보시며 그들에게 비유를 말씀하셨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율법에 정통해 있었고, 그들의 집에서 열리는 잔치 자리에서는 하느님께 대한 올바른 지식에 관한 대화가 곁들여졌습니다. 나름대로 자부심이 있는 것은 당연할 것이고 자신의 지식을 내세우고 싶은 마음도 컸을 것입니다. 고대에서는 나이가 아니라 위엄이나 직위에 따라 손님을 앉히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손님들은 각자 자신이 내세우는 서열에 따라 자리를 선택하였습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은 윗자리에 앉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아니 교만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손님들이 저마다 윗자리를 차지하려는 것을 보시고 식탁 자리에 관한 규칙에 대해서 말씀을 하십니다.



8 “누가 너를 혼인 잔치에 초대하거든 윗자리에 앉지 마라. 너보다 귀한 이가 초대를 받았을 경우,

예수님께서는  저마다 윗자리를 차지하려는 것을 보시고 “누가 너를 혼인 잔치에 초대하거든 윗자리에 앉지 마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그 이유는 “너보다 귀한 이가 초대를 받았을 경우” 때문입니다. 이 말은 “네가 최고가 아니다.”는 것입니다.

살아가다보면 최면에 걸려서 “내가 최고”라고 생각을 하고, “나 중심”으로 생각하고, 행동합니다. 그런데 자신을 돌아보지 못해서입니다. 내 생각이 틀릴 수 있고, 내가 부족하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해서입니다.



9 너와 그 사람을 초대한 이가 너에게 와서, ‘이분에게 자리를 내 드리게.’ 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너는 부끄러워하며 끝자리로 물러앉게 될 것이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아마도 바리사이파 사람들이나 율법학자들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높은 사람 앞에서 내려가라는 말을 듣는 것보다는 ‘이리 올라오십시오.’하는 말을 듣는 편이 낫다는 것입니다(잠언25,6-7 참조). 그와 유사하게 율법 교사들에게도 신중함에 관한 규칙이 있었습니다. “네 자리보다 두세 자리 아래 앉아서 누군가가 네게 ‘이리 올라오십시오!’ 하고 말할 때까지 기다려라. 이것이 ‘내려가라, 내려가라!’ 하는 말을 듣는 것보다 낫다.”율법 교사들에게 있어서 이것은 경험에서 나온 것으로서, 낭패를 당하게 되는 경우를 막기 위한 규칙이었습니다.



10 초대를 받거든 끝자리에 가서 앉아라. 그러면 너를 초대한 이가 너에게 와서, ‘여보게, 더 앞  자리로 올라앉게.’ 할 것이다. 그때에 너는 함께 앉아 있는 모든 사람 앞에서 영광스럽게 될 것이다.

 예수님의 “식탁 자리에 관한 규칙”은 하느님 나라에 관한 한 가지 진리를 표현합니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려는 사람은 낮아져야 합니다. 자신을 낮추고, 의로운 체하는 그릇된 모든 주장을 피해야 합니다. 자신을 낮춤은 하느님 나라에 받아들여지는 첫 번째 조건입니다. 성전에서의 바리사이파 사람의 기도와 세리의 기도를 떠 올렸으면 좋겠습니다. 누가 더 의로운 사람으로 하느님께 인정되었습니까? 교만한 바리사이입니까? 죄인이지만 자신의 죄를 솔직하게 인정하는 세리였습니까? 하느님께서는 자신을 인정할 줄 아는 이를 너그럽게 보아 주시고 높여 주십니다.



11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가난한 이들을 초대하여라

 신앙인들에게 있어서 겸손은 매우 중요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간에도 누가 높은지 서로 이야기 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아주 간단했습니다.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높여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가끔 냉담하시는 분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 이유 중의 하나가 본당 신부님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아서라고 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우리 남편을 좀 어떻게 해 주세요. 전에는 참 열심히 다니시고 봉사도 하셨는데 지금은 신부님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성당에 안다니고 있습니다. 전화 한번만 해 주시면 나올텐데……, 신부님! 부탁드립니다.”



한 영혼의 구원을 위해서라면 그에게 전화를 해야 합니다. “형제님! 얼굴 뵙기가 왜 그리 힘듭니까? 성당에 나오세요……,”하지만 그가 그렇게 성당에 나왔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를 나오게 해서 바꿔놔야 하겠지요. 정말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자신을 낮추는 사람으로…

내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은 결코 아니라는 것. 그것만 기억한다면 좀더 겸손해지지 않을까요?



12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초대한 이에게도 말씀하셨다. “네가 점심이나 저녁 식사를 베풀 때, 네 친구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유한 이웃을 부르지 마라. 그러면 그들도 다시 너를 초대하여 네가 보답을 받게 된다.

이웃과의 관계를 맺을 때, 우리는 모든 이기심을 초월해야 합니다. “이 사람은 내가 이정도 해 주었으니 다음에 뭘 부탁해도 들어주겠지” “이 사람이랑 친해지면 도움이 되겠어.” 그런 생각으로 사람들을 만나지 말아야 합니다. 유혹이라는 것. 참으로 교묘하게 파고 들어옵니다. 있는 사람, 사회적 지위가 있는 사람에게는 정말 좋은 음식, 좋은 술을 대접해야 된다는 생각을 당연히 하고 있는 사회적 분위기에서 이 말씀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한 사람이 부하 직원들에게 “난 이런 술이 참 좋더라구.” 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그에게 그가 좋아하는 술을 선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또 자랑삼아 말했습니다. “내가 이렇게 말하니 사람들은 그  수준에 맞춰 주더라구!” 그런데 그게 선물일까요? 뇌물일까요?

예수님께서는 친구나 부자를 초대하는 것은 세속에서 흔한 예절이지만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은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그렇게 하면 자기가 해 준 만큼 보상을 받게 되겠지만 하느님께로 부터는 아무 것도 받지 못할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비록 그들로부터는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고, 그들이 보답할 수도 없지만, 더 나아가 그들과 함께 식사한다는 것이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지만 그렇게 해야 한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13 네가 잔치를 베풀 때에는 오히려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저는 이들, 눈먼 이들을 초대하여라.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식사에 초대한 그 주인에게 구체적으로 말씀을 하십니다. 예의나, 보답받고자 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행동을 조심하라고. 정작 초대해야 할 사람들은 내 도움이 필요로 하는 사람들(소경, 절름발이, 불구자…)이라고……,

쿰란 공동체에는 팔 다리가 온전하지 못한 사람은 들어가지 못하였고, 불구자나 귀머거리, 벙어리도 제외되었습니다. 귀먹은 벙어리, 소경, 저능인들에게는 성전의 희생 제사에 제물로 바쳐지는 동물의 머리에 손을 얹는 일이 금지되었습니다. 그들은 공적인 성전 예배에 참여할 수 없었습니다.



 함께 밥을 먹는 다는 것은 관계가 있다든지, 서로 호감이 있는 경우에만 합니다. 모르는 사람과는 밥을 먹지 않으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불편하기 때문입니다. 식당에서도 서로 모르는 사람끼리는 함께 앉기를 꺼려합니다. 직장의 구내식당에서도 여기 저기서 혼자 먹는 사람들이 보이기도 합니다. 영어 회화에 보면 “여기 자리 있습니까? 앉아도 될까요?” 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즉 모르는 사람과도 앉아서 얘기할 수 있고, 밥도 먹을 수 있다는 이야기도 되겠지요. 그런데 한국말을 공부하는 외국인들도 이런 표현을 배우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더 나아가 밥을 사줄 때, 내가 좋아하는 사람만 밥 사주지 말고 관계가 아직 없는 사람들도 끼워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서로 사주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사주지 못할 형편에 있는 사람들도, 매일 얻어먹기만 하는 사람들도 외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돈이 없는 사람일 수도 없고, 마음의 여유가 없는 사람일 수도 없고, 사랑이 없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분명 그는 부족한 사람입니다. 인간적으로는 미워할 수밖에 없겠지만 그래도 함께 하는 것이 하느님 보시기 좋은 모습일 것입니다. 그가 안 하면 하느님께서 채워 주실 것입니다.



14 그들이 너에게 보답할 수 없기 때문에 너는 행복할 것이다.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네가 보답을 받을 것이다.”

“하느님께서 갚아 주실 것입니다”라는 말씀이 와 닿습니다.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져 주고, 베푼다는 것. 분명 쉬운 일은 아닙니다. 이들은 사랑을 받았지만 물질적으로는 다시 되돌려줄 능력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기뻐하는 것뿐입니다. 그 사람에게 미안해하는 것뿐입니다. 그리고 하느님께 감사하는 것뿐입니다. 이것을 보시고 하느님께서는 흐뭇해하시며 대신 갚아 주실 것입니다. 

친한 사람들, 있는 사람들을 멀리하라는 말씀이 결코 아닙니다. 우리의 사랑이 미움을 초월하고, 개인적인 이해에 좌우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보답을 바라지 않고 실행하는 사람은 하느님 나라에서 한 몫을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잔치에 관한 규칙은 이제 하느님 나라의 천상 잔치에 관한 규칙이 됩니다. 초대 교회는 이 규칙이 또한 주님의 만찬례에서도 준수된다는 것을 깊이 확신하였습니다. 바오로사도는 고린토 교회의 신자들이 주님의 만찬에 모여와서는 저마다 각자가 가져온 음식을 먼저 먹어 치웠기 때문에 술에 취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굶주린 채 돌아간 사람도 있었다고 말하면서 그곳 교회를 이렇게 꾸짖었습니다. “여러분은 하느님의 교회를 멸시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창피를 주려고 그러는 것입니까?”(1코린토11,20-22). 야고보 사도는 “가령 여러분의 회당에 금가락지를 끼고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과 남루한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왔다고 합시다. 그때 여러분이 화려한 옷차림을 한 사람에게 특별한 호의를 보이며 ‘여기 윗자리에 앉으십시오.’ 하고 가난한 사람에게는 ‘거기 서 있든지 밑바닥에 앉든지 하시오’하고 말한다면 여러분은 불순한 생각으로 사람들을 판단하여 차별대우를 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야고보서2,2-4).

하느님의 은총과 자비는 성찬례에서 가장 잘 드러납니다. 이 성찬에서 인간은 거지와 다름없지만 “죄의 용서를 위한”(마태26,28) 음식을 먹고 마십니다. 의인이나 죄인이나 모든 이는 부활합니다. 하지만 부활했을 때 받을 상은 각각 다르게 될 것입니다. 상을 받을 사람도 있고, 벌을 받을 사람도 있습니다. 나는 상을 받을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3. 나눔 및 묵상

1. 내가 함께 식사하고 선물을 주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 입니까? 내가 미워하는 사람, 꼴도 보기 싫은 사람과도 식사하십니까?



2. 다른 이들로부터 접대성의 식사나 선물을 받아 본 적이 있습니까? 있다면 어떤 느낌이 들었습니까? 그리고 내가 접대를 했다면 접대할 때의 내 마음은 어떤 마음이었습니까?



이 글은 카테고리: 미분류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