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매춘의 역사 – 한국

 

한국사






한국에서의 매매춘 현상이 언제부터 있었는지, 더 정확하게는 한국 매매춘 사회사의 출발이 언제인지를 역사적으로 실증하고 증명할 만한 객관적인 사료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기록상으로는 고려시대부터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즉, “고려시대에 양수척(楊水尺)이라는 집단이 있었는데 이 집단은 표류하는 일족으로서, 자신들이 생산하는 수공업품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반면에 여자들은 윤락행위를 하였다”1)는 것이다. 그리고 “중국의 영향으로 생긴 기녀라는 계층이 있었는데, 이들은 본래 궁중내에서 의학, 침술, 가무등의 기예를 익혀서 봉사하였으나 시대의 변천에 따라 사대부나 변경지방 군사들의 위안부 역할을 맡았던 것으로 추측된다.”2) 이와같이 관청이 관리하는 기녀제도는 일본의 반식민지가 된 대한제국 말기까지 존재하였다.


한편 매매춘사회사를 본격적으로 추적할 수 있는것은 조선후기 사회로 본다. 이는 조선시대 이전에 매춘행위가 없었다는 말이 아니라 밀매음의 형태를 띠고 사회의 여러구석에서 행해졌을 매춘형태가 더욱 가시적인 형태로 변모하여 객관적으로 분석 가능한 사회현상으로 확산되던 결정적 시기를 19세기 말에서 찾을 수 있다는 뜻이다.


조선시대 말기에는 관청에서 관리하는 기녀, 즉 관기외에 갈보라고 불리우는 유녀(遊女)들이 증가하였으나 어디까지나 매춘행위는 관기들의 겸업업종이었고, 이것도 밀매음의 형태를 띠었다. 따라서 조선말기까지 매춘행위가 공인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3)


이후 우리나라의 매매춘 현상에 결정적인 변화를 주었던 것은 강화도 조약 체결이후 일본인들이 우리나라로 들어오면서 부터이다. 지금까지 공인된 적이없던 매매춘 행위, 즉 “불특정 다수인들을 상대로 성교를 하고 그 댓가를 지불받는”행위가 전문적인 직업으로서 공인된 것이 1904년 10월 10일, 일본공사관 산하 “경성영사관령” 제 3호에 의해서였다.4) 이후 일본은 1916년 3월 경무총감부령 제3호 예기작부치옥영업취체규칙, 그리고 제 4호 대좌부창기취체규칙등으로 우리나라에 소위 공창제도를 성공적으로 이식시키게 된다.5) 


1920년 전반기 이후에 공창이 쇠퇴하고 사창이 급속도로 증가하는데, 이는 일제의 토지조사사업, 토지겸병사업, 그리고 1차 세계대전 이후의 불경기로 일반 국민들의 생활고가 극심해져 매춘을 택하는 여성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6)


일제 패망 이후 미군정이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한국의 매춘현상은 또 한차례 큰 변화를 맞이한다. 미군정은 일본식 매춘 문화의 잔재인 공창제도를 없애기 위하여 1946년 5월 17일 법령 제 70호 “부녀자의 매매또는 그 매매계약의 금지”라는 법을 공포한다. 그리고 1947년 11월 14일 법률 제 7호로 공창제도 폐지령을 내린다.7) 그러나 이상의 것들은 부녀자들의 인신매매만을 금지하고, 공창지역안에서의 매춘행위를 금지하지는 않았다는 것과 공창의 폐지로 상당수의 매춘부들이 사창으로 이동하게 되었다는 부작용을 초래하였다.


한편, 여성계의 끊임없는 건의와 사회정화 차원에서 1961년 11월 9일에 윤락행위등방지법이 제정되었고, 1962년 4월에는 내무부, 보건사회부, 법무부 공동으로 전국 32개 지역을 기지촌 특정지역으로 설치한다.8) 이후 1970년대에는 관광산업과 의화획득이라는 미명아래 기생관광이라는 형태가 발전하고, 1972년에는 내무부에서 지역사회정화차원에서 1962년에 설치된 특정지역을 폐지한다.9) 1970년대 후반기에 들어서면서 소위 전통형 매춘이라고 불리우는 기지촌주변과 특정지역에서 집단을 이루어 매매춘이 이루어지던 형태가 쇠퇴하고, 향락업소의 종업원들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산업형 매춘, 혹은 겸업 매춘이 증가한다. 그리고 1980년대와 90년대를 지나면서 이 땅의 매춘현상은 더욱 다양하고 무차별적으로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이상으로 우리는 매매춘이 역사적으로 어떠한 형태를 띠고 있었는지 성서상에서는 이 행위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그리고 한국사회에서는 어떠한 변천과정을 거쳐왔는지 살펴보았다. 특히 한국의 경우에 있어서 부족하지만 매매춘의 기원을 밝혀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매매춘이 인간본성에 기인하는 본능적 이유에서 발생한다는 견해를 전제로 한다면, 매매춘의 구체적인 기원을 확인하기란 불가능하게 보인다. 그만큼 매매춘은 인류사에서 감추고 싶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행위로서 자연스럽게 인정되어 온 것이다. 따라서 더이상 매매춘의 기원문제를 전개시키는 것은 논지를 흐릴 위험이 있으므로 불명확하지만 존재해온 것이 분명한 매매춘 현상이 왜 일어날 수 밖에 없는지를 해명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매매춘의 기원이 불확실한 상태에서 매매춘 행위 전반에 대한 원인규명도 불확실해 질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매매춘 행위에 대한 전반적이고 본격적인 원인 규명이 아니라 역사적인 현실 안에서의 재평가만이 가치를 지닐것으로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부터 중심을 한국이라는 이 땅으로 좁혀서 매매춘의 발생원인과 지속되는 이유, 그리고 개선되지 못하는 이유를 알아보겠다. 여기에서 말하는 발생원인은 당연히 한국이라는 국가사회의 역사적 특수성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그래서 본격적이고 근원적인 의미에서의 원인규명이 아니라 매매춘 행위를 둘러싼 구조적 상황을 중심으로한 파악이 될 것이다. 이는 한국 사회에 대한 구조적인 파악, 자본주의로 대표되는 한국경제의 변화, 그리고 이 땅 사람들의 왜곡된 성관념과 성문화를 중심으로 매매춘이 지금의 상황까지 확산되고 심화된 원인을 규명해 본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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