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캐오의 구원
자캐오(히브리말 잣가이)라는 말은 바르다, 혹은 깨끗하다는 뜻입니다. 그는 죄 중에 있었지만 예수님을 만나서 그 이름처럼 깨끗하게 구원되었습니다. 자캐오가 회개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우리의 고백성사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스스로 보속을 하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고백성사를 보는 사람의 모범이 아닐까요?
1 예수께서 예리고로 들어가 (거리를) 지나가고 계셨다. 2 그런데 마침 (거기에) 이름을 자캐오라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세관장이었고 또 부자였다.
세관장 자케오. 그는 로마인들을 위해 세금을 거둬들이는 일을 하였고, 그 세관의 장이였습니다.. 또한 예리고는 아라바 지역의 세관 도시였고 향 수출 도시였습니다. 그가 세리였기에 유대인들은 그를 죄인으로 여겼으며, 아마 자케오도 그의 직책을 이용하여 재산을 모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그가 예수님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자캐오는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서 나무 위에서 기다렸습니다.
3 그는 예수가 어떤 분인지 보려고 애썼으나 군중 때문에 볼 수가 없었다. 그는 키가 작았던 것이다. 4 그래서 그는 예수를 보려고 앞질러 달려가서는 돌무화과나무 위에 올라갔다. 예수께서 거기를 지나가실 참이었기 때문이다.
자캐오는 예수님을 만나 뵙게 싶어서 사람들이 모여든 군중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그는 키가 작아서 도저히 예수님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을 보고 싶은 열망에 앞서 달려가 무화과나무 위로 올라가서 예수님을 기다렸습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평평한 지붕 위에 올라가 지나가는 예수님을 바라보았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세리였던 자캐오는 유다인들이 죄인으로 여겼기에 그런 그를 자기의 집에 들여보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나무 위에 올라가있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남들이 모두 죄인이라고 손가락질하는 사람인데, 그런 그가 나무 위에 올라가 있는데 사람들은 고운 눈으로 그를 쳐다볼 리 없고, 부드러운 말을 건넬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자캐오는 전혀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마음에는 오직 예수님 밖에는 없고, 그의 귀에는 예수님의 소리밖에는 안 들리고, 그의 눈에는 오직 예수님밖에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5 예수께서 그곳에 와서는 쳐다보시고 그에게 “자캐오, 얼른 내려오시오. 오늘은 내가 당신 집에 머물러야 하겠습니다” 하고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 자캐오를 보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보통 사람들의 초대에 응하셨지만 이번에는 직접 자청하고 계십니다. 기다림에 응답을 받은 자케오. 얼마나 기쁜 마음으로 나무에서 내려왔을까요? 사람들의 야유와 자신의 신체적인 결함 등을 모두 이겨내고 기다렸던 그분께 응답을 받은 자캐오. 게다가 자신의 집에 머무시겠다고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 자캐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무엇 때문에 안돼….사람들의 눈도 있는데…내가 그것을 어떻게….”이런 모든 분심들을 없애 버려야 할 것입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청하면서 준비하고 기다린다면 주님께서는 꼭 들어주십니다. 꼭.
6 그러자 자캐오는 얼른 내려와 기뻐하며 그분을 (자기 집에) 모셔들였다. 7 이것을 보고 모두 투덜거리며 “저 사람이 죄인의 집에 들어가 묵다니” 하였다.
자케오는 예수님을 집에 모셔들였습니다. 암브로시오 성인은 이것을 “예수님께서 최초로 흔드시어 떨어진 새로운 시대의 잘 익은 무화과”였다고 표현하십니다. 경건한 유대인들은 세리나 공적인 죄인들과 한 식탁에 앉는 일이 결코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놀라서 불평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모습은 출애굽을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끊임없이 하느님께 불평하는 모습과 유사한 듯 합니다. 언제나 불평만 하는 사람들. 어쩌면 그 유다인의 모습이 바로 나의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8 그러나 자캐오는 일어서서 주님께 “보십시오, 주님, 저는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렵니다. 그리고 제가 남의 것을 등쳐먹은 일이 있다면 네 곱절로 갚아 주렵니다” 하고 말씀드렸다.자캐오는 변했습니다. 그렇게 욕 먹으면서 모아들였던 재산을 나눠 준다고 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회심을 확실하게 증명해 보이려고 합니다.
율법학자들은 회개가 참되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 일정한 금액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재산의 5분의 1을, 그 다음부터는 매년 수입 중 그에 상당하는 액수를 바쳐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민수기 5,6-7 참조). 자캐오는 율법이 정하는 바와 같이(레위기 5,20-26) 부정한 수입과 그 수입의 5분의 1에 해당하는 양을 보태어 배상하는 것으로만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재산의 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 주고, 등쳐먹은 일이 있다면 네 곱절로 갚아 주겠다고 했습니다. 자캐오는 이렇게 자신의 회심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주일학교 친구들이 성사를 보러오면 이렇게 묻습니다. “그럼 보속으로는 무엇을 할래?” “저기요. 앞으로는 동생 안 때리고요, 부모님 말씀 잘 듣고요, 친구들과도 사이좋게 지내고요….” 주일학교 친구들이 자신에게 주는 보속이 바로 오늘 자캐오가 한 것과 똑같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른들은 어떻게 말할까요? 혹시“주님의 기도 한번 하겠습니다….”
9 그러자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습니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10 사실 인자는 잃은 것을 찾아 구원하러 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캐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습니다.”
구원이 자캐오의 집에 왔습니다. 예수님의 탄생 때에, 경건한 유다인들이 죄인이라고 간주하던 목자들에게 선포된 내용이 이제 예수님의 말씀으로 세관장에게서 이루어졌습니다. 유다인들은 세리 자캐오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것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지만 그의 믿음과 그가 예수님께 드린 환대는 그가 아브라함의 참된 자손이라는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파괴가 아니라 구제를, 단죄가 아니라 구원을, 죽음이 아니라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오셨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1디모 1,15)
구원의 때에 관하여 예언자들이 예언한 내용이 예수님에게서 실현되었습니다. “헤매는 것은 찾아내고 길 잃은 것은 도로 데려오리라. 상처 입은 것은 싸매 주고 아픈 것은 힘 나도록 잘 먹여 주고 기름지고 튼튼한 것은 지켜 주겠다. 이렇게 나는 목자의 구실을 다 하리라”(에제키엘 34,16)
<함께 묵상해 보아요>
1. 자캐오처럼 예수님께로 다가가는데 어려움을 느낀 적이 있습니까? 그리고 그 어려움을 어떻게 이겨내셨습니까?
2. 자캐오를 바라보는 예수님의 마음과 자캐오를 바라보는 유다인의 마음은 다릅니다. 나는 어떻게 바라보고 있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