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에 대한 논쟁

 

부활에 대한 논쟁


<말씀연구>




27  부활이 없다고 [반대] 주장을 하는 사두가이 몇 사람이 다가와서 예수께 질문하여


사두가이파는 당파라기보다는 오히려 정치적, 종교적 귀족 계급이었습니다. 그들의 이름은 레위 종족이던 사독의 자손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들은 귀족이었으나 이스라엘의 순수 종교와는 먼 거리를 두고 살아 왔습니다. 그들은 외적 신심에는 충실하였지만 종교적 교리를 업신여기고 전례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즉 그들은 성서만을 받아들였고, 조상들의 전통은 배격하였습니다. 그들은 부활도 천사도 영적 존재도 다 없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래서 죽은 이의 부활에 대한 부인으로 그들은 바리사이파와 그 밖의 랍비적 신심의 추종자들과 첨예하게 구별되었습니다. 그러니 부활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예수님을 비웃으며 성서의 수혼제를 빌려서 예수님을 공격하고 있는 것입니다.




28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모세가 기록하여 우리에게 남긴 바에 의하면, 어떤 사람의 형제가 부인을 데리고 살다가 죽고 자식이 없는 경우, 그 동기는 그 부인을 맞아 자기 형제에게 후사를 세워 주도록 해야 합니다. 29  그런데 칠 형제가 있었습니다. 첫째가 아내를 맞았으나 자식 없이 죽었습니다. 30  그래서 둘째, 31  이어서 셋째가 그 여인을 맞았고 이렇게 하여 일곱이 (모두) 자식을 남기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32  마침내 그 부인도 죽었습니다.33  그러면 부활 때에 그 부인은 그들 가운데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사실 일곱이 (모두) 그 여인을 아내로 삼았으니 말입니다.”


율법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여러 형제가 함께 살다가 그 중의 하나가아들 없이 죽었을 경우에 그 남은 과부는 일가 아닌 남과 결혼하지 못한다. 시동생이 그를 아내로 맞아 같이 살아서 시동생으로서의 의무를 감당해야 한다. 그래서 난 첫아들은 죽은 형의 이름을 이어받아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 가운데서 사라지지 않게 해야 한다”(신명25,5-6)


그런데 모세의 이 법은 두 형제가 같은 집에 살고 있을 때에만 적용이 되었는데, 사두가이파 사람들은 그것은 말하지 않았습니다.  사두가이파 사람들은 예수님께 이런 극단적인 이야기를 통하여 외통을 걸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들은 수혼제는 부활이 있을 수 없음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34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세상 사람들은 장가도 들고 시집도 갑니다. 35  그러나 저 세상, 곧 죽은 이들 가운데서의 부활에 참여할 자격을 얻은 사람들은 장가들지도 않고 시집가지도 않습니다. 36  사실 그들은 천사들과 같아서 죽는 법도 없습니다. 그들은 부활의 자녀들이므로 하느님의 자녀들입니다.


유다인들의 부활 신앙에는 부활 후에 다시 살아난 사람들은 현세에서의 삶과 비슷한 삶을 계속 누릴 것이라는 믿음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부활한 삶은 우리 현세 생활의 연장이 아닙니다. 만일 현세 생활의 고통을 그래도 갖고서 영생을 살아간다면 그것이 과연 천국이겠습니까? 어느 영화에서 천국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데, 자신을 죽인 이를 용서하지 못하고 있는 그에게 “어떻게 그런 마음으로 이곳에서 살겠습니까?”하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천국에서의 우리의 모습은  좀 달라질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제자들이 알아보지 못했던 것처럼 그렇게 우리도 변화되지 않을까요? 그리고 세상의 인연의 고리는 모두 끊겨 지지 않겠습니까? 좌우지간 천국에서의 삶은 다르긴 다를 것입니다.


그런데 나의 일도 아닌 것을 걱정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나는 지옥에 가려고 발버둥치고 있는데 천국 걱정은 해서 뭐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이 사두가이파 사람처럼 예수님과 논쟁하려 하지 말고,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의로운 사람만이 영광스러운 삶에 초대를 받게 될 것입니다.




37  그리고 죽은 이들이 일으켜진다는 것은 모세도 가시덤불 대목에서 밝혔는데, 그는 주님을 가리켜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 이라 하였습니다. 38  그분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살아 있는 이들의 하느님이십니다. 사실 모두 하느님으로 말미암아 삽니다.”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당신을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출애3,6).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당신 자신을 선조들이 숭배하고 있는 그 하느님으로 계시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선조들이 여전히 하느님을 자신들의 하느님으로 숭배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함이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이 죽었다면 결코 하느님을 숭배할 수 없습니다. 즉 그들의 육신은 이 세상에서 죽었지만 하느님을 믿고 따랐기에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충실히 섬긴 사람은 죽은 뒤에 가장 완전한 상을 받을 것인데 그것은 바로 부활입니다. 죽음은 영원한 죽음이 아니요 새로운 시작이니 하느님께서 나를 이 세상에 보내신 이유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시려 함입니다.




39  그러자 율사 몇 사람이 대답하여 “선생님, 옳은 말씀입니다” 하였다.


40  사실 그들은 예수께 감히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못했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물어봐야 합니다. 그 질문이 어디에서 나오던 간에 자신의 생각을 바로 잡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훌륭하게 가르치시는 스승이십니다. 율사들의 입을 통해 그것이 증명되고 있습니다. 우리도 신앙생활을 하면서 궁금한 것이 있으면 좀 물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가장 훌륭한 스승이신 예수님의 말씀도 항상 읽어 보아야 합니다. 그분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여 우리도 부활의 영광에 참여할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부활한 후의 내 모습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어떤 모습입니까?




2. 말씀을 읽으면서 궁금한 것들을 어떻게 해결하고 계십니까? 그냥 속만 앓고 있지는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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