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들어서면서 “시험관 아기” 문제가 떠들썩했다. 90년대 들어오면서 “인간복제”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었다. 여기에는 용어상의 함정이 있고 윤리문제가 크기 때문에 교회도 간과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선 시험관 아기란 용어는 비약된 표현이다. 한 생명이 태어나는 데는 부부의 결합과 임
신, 그리고 출산의 길을 따르게 된다. “시험관 아기”란 임신 과정에서 남녀의 육체적 결
합이 없이 정자와 난자를 합하여 수정란을 얻고 수정란을 배양하여 적합한 시기에 여성
의 자궁 내에 착상시켜 임신케 하여 출산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엄격히 말해서
“시험관 아기”는 아니다.
“인간복제”도 그 용어가 오해의 소지가 많다. “복제인간”이라기보다는 “유전인자 치환”
(遺傳因子置換)으로 얻게 된 배자(胚子)를 착상시켜 출산케 하거나 한 개의 수정란을 인
공적으로 1/2 또는 1/4, 1/8로 분할하여 복수로 착상시켜 출산케 하는 행위를 말한다. 특
히 큰 문제가 되는 것은 배수생식(倍數生殖 Dlploid), 곧 양성(兩性)의 합일로 얻어지는
생식이 아니고 무성생식(無性生生殖 cloning)으로 번식케 하는 기술을 의미한다. 현대는
과학이 발달하여 세포핵치환(細胞飛核置換)이 가능하게 되었다. 영국의 로스린 연구소가
발표한 복제양(複製羊)은 양의 난자(卵子)에서 세포핵을 제거하고 다른 양의 세포핵을 넣
어 핵치환(核置換)을 시킨 난자를 양의 자궁에 착상시켜 번식시키는 것으로 이론적으로
는 똑같은 유전인자를 가진 양을 다수 생산해 낼 수 있는 이야기다. 비슷한 원리로 기관
의 핵 세포를 배양하는 기술이 개발되어 인체의 부분도(예컨대 장기, 지체 등) 배양하여
“인체부품시대”를 열 수 있다고 하며 인간 유전자를 지닌 양(羊)도 출생케 하는데 이르고
있다.
자연과학의 발달로 인간의 능력은 증대되어 과거에는 생각도 하지 못했던 일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예컨대 우주개발, 장기이식수술, 인공 수정, 첨단 생명공학). 이제는 정말로
인간이 무엇을 할 수 있느냐만이 아니고 무엇을 해서 안된다는 확고한 윤리의식이 필요
한 때가 왔다.
예측을 불허하는 재앙이 준비되고 있는지 모르며 인간이 자멸하거나 비인간화되기 직전
에 놓일 수도 있게 되었다.
교회는 이상과 같은 행위들이 비윤리적이라고 단죄하였다. 단죄의 논거는 대략 다음과 같
다.
첫째, 생명의 존엄성에 위배된다. 생명은 하느님의 창조영역으로 인간은 경외심을 가지고
접근해야 하며 자연을 사용하고 가꾸며 보존할 책임을 가지고 있다. 생명에는 등급이 있
어 하위등급은 상위등급을 위한 존재이고 그 가장 위에는 인간이 있다. 인간은 피조물이
지만 하느님을 닮은 존재로서 하느님의 뜻을 따라 세상 모든 것을 활용하고 구원에 이르
도록 불린 존재다. 자연 과학도 자중하고 절제할 한계를 알아야 한다.
둘째, 창조질서는 하느님의 뜻으로 보존되어야 한다. 식물이나 동물은 자연질서 안에 변
화되고 성장하여 소멸된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으로서 세상을 다스리고 보호하며 남녀가
가정을 이루고 가정 안에서 태어나고 자라나며 성숙한 인간으로 그 소명을 다하게 된다.
혼인과 가정은 창조주의 뜻으로 부모의 의무와 권리, 자녀의 의무와 권리로 서로 연관되
어 있으며 좀더 인간적인 사회를 가꾸고 보존하게 된다. 인간의 생리·본능·사회성 및
종교성은 함께 고려되고 보호되어 참된 인간의 성장·성숙이 보장되어야 한다.
셋째, 인간은 현세를 통해서 구원에 이르게 된다. 곧 영원한 생명으로 불리었으므로 이
세상은 궁극적으로 나그네길이며 순례의 길이다. 하느님께 순응하며 구원에 이르든지 자
기중심과 욕심으로 자멸의 길로 가든지 하게 된다. 인간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에 초대받
은 존재다.
“시험관 아기”나 “복제인간”의 유혹은 기존 인간이 자기 욕망을 채우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불임 극복의 기쁜 소식이라고 예찬하는 “시험관 아기”는 근본적으로 부부의 존엄
성과 순결을 거역하는 현대판 씨받이와 씨내림의 형태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 다. 자녀들은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고 씨족의 전유물도 아니며 고유한 인격체로서 출
생·성장·성숙의 권리를 가진다. 곧 참된 공동선의 기초 안에 개인의 인격과 소명이 보
호되어야 한다.
“복제인간”의 가능성으로 인간기술의 개가, “인체부품시대의 도래”등 희망 찬 미래를 약
속하는 듯하나 현세는 지나가는 것이며 현 실 생활을 통해서 영원한 생명을 일구어내지
못한다면 인생은 허무하다. 요절한 사람이 반드시 불행한 사람이고 장수 자체가 행복도
아니다. “노인은 오래 살았다고 해서 영예를 누리는 것이 아니다. 현명이 곧 백발이고 티
없는 생활이 곧 노년기의 원숙한 결실이다. 인생은 산 햇수로 재는 것이 아니다. 그는 하
느님의 뜻대로 살아 하느님의 사랑을 받았다”(지혜 4.8-10). “주님을 두려워하여 섬기는
것이 생명의 샘이며”(잠언 14.27). “주님을 경외해야 살 길이 열려, 먹고 쉬는 데 아쉬움
없고 재앙을 면한다.”(잠언 19.23)라는 성서의 말씀에 귀기울일 필요가 있다.
복제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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