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즉 주께서 몸소 징조를 보여 주시리니,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이사 7,14)
1. 이스라엘 백성의 배반
기원 전 13세기 경, 모세의 후계자인 여호수아의 손에 이끌려 가나안에 정착하게 된 이스라엘 민족은 하느님께서 약속해 주신 대로 크게 번성해 갔다.
이집트에서 또 광야에서 하느님의 권능과 은총을 뼈저리게 체험한 이스라엘 백성은 처음에는 야훼를 자기들의 유일한 하느님으로 섬겼다. 그러나 유목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은 농업을 주로 하며 정착생활을 하던 가나안 토착민들보다 문화적으로 훨씬 뒤떨어져 있었다. 가나안 토착민들의 높은 문화생활과 멋진 축제들은 오랫동안 고생하며 떠돌이 생활을 계속해 오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호화스럽고 신기하게만 보였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차츰 자기들을 인도하시고 보호하시는 야훼를 잊어버리고 가나안 토착민들이 믿고 있던 잡신들을 사랑하게 되었다(판관 2,13 참조).
이 때문에 하느님은 그들을 원수의 손에 넘기시는 벌을 주셨다. 그제서야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시 야훼께로 돌아서서 도와 주시기를 간청하였고, 이를 불쌍히 보신 하느님께서는 그들 가운데 ‘구원자’를 일으키셔서 -이를 판관이라고 불렀다- 그들을 참혹한 전쟁으로부터 구해 주셨다. 구약성경에 의하면 14명의 판관이 이스라엘에서 활동하였는데 그 중 유명한 사람들은 삼손, 사무엘 등이다. 이와 같은 흥망의 반복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느님의 권능만을 믿고 살아야 할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기들의 운명을 자신들의 손으로 개척해 나가려고 시도하였다. 즉 그들은 그들을 다스려 줄 정치적 지도자인 왕을 요구하였다. 이웃 나라들과 같이 강력한 왕을 세워 달라는 그들의 끈덕진 요구에 마지막 판관이었던 사무엘은 이스라엘의 신정제도를 세속적 왕정제도로 바꾸지 않을 수 없다고 하느님도 이를 허락하셨다(1사무 8,7 참조). 이렇게 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왕을 중심으로 한 정치체제를 이루고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자유를 그들 스스로 포기해 버렸다.
2. 이스라엘의 역대 왕들
백성들의 요구에 따라서 사무엘은 기원 전 1020년경 사우에게 기름을 부어 축성하고(1사무 10,1) 그를 왕으로 뽑았다. 사울은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주위의 작은 나라(아말렉)와 전쟁을 하여 승리를 거두었으나 많은 노획물들 중에서 가장 좋은 것들을 아/끼고 남겨 두었다. 이것은 이미 하느님께서 엄하게 금하셨던 것이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남겨 둔 전쟁 노획물에 대한 해명을 요구했을 때 사울은 그 책임을 백성에게 전가하였다. 그러자 하느님의 벌이 사울에게 떨어졌다. “그대가 야훼의 말씀을 거역하였으니 야훼께서는 그대를 왕의 자리에서 파면시키실 것이오”(1사무 15,23). 여기서 사울은 자기의 잘못을 깨닫고 용서를 청하나 용서받지 못하고 왕의 자리를 빼앗겼다(기원전 1010년).
두 번째 왕으로 선택된 사람은 양을 치던 목자 다윗(기원 전 1010-970 재위)이었다. “야훼의 영이 다윗에게 내려 그날부터 줄곧 그에게 머물러”(1사무 16,13) 계셨으므로 그는 팔레스티나를 정복하여 광대한 다윗 왕국을 건설하고, 수도를 예루살렘으로 정하여 결약의 궤를 그곳으로 모셔왔다. 이로써 이스라엘은 한 하느님, 한 백성, 한 왕으로서의 기틀이 잡히게 되었다. 그러나 다윗은 말년에 눈이 어두워져서 자기 신하의 아내와 불의의 관계를 맺는 잘못을 범하고 말았다.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 다윗은 즉시 진심으로 통회의 눈물을 흘렸다(시편 50편 참조). 하느님은 다윗의 진정한 통회를 굽어보시고 그를 용서해 주셨을 뿐만 아니라 그로 하여금 이스라엘 역사에 가장 빛나는 통치자의 자리에 앉게 하셨으며 구세주를 다윗의 가문에서 일으키실 것을 약속하셨다.
세 번째 왕은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었다(기원전 970-931 재위). 그는 처음에 아버지 다윗의 정신을 본받아 야훼를 사랑하고 법률을 지켰다(1열왕 3,3 참조). 솔로몬은 특히 하느님께 지혜를 얻어 예루살렘에 성전을 짓고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부강하고 화려한 국가를 유지하였다. 그러나 그 역시 말년에는 자기 왕궁을 호화롭게 짓고 이교도 여인을 아내로 삼아, 끝내는 그 부인의 신인, 잡신을 인정하게까지 되었다. 그 때문에 솔로몬은 그의 아들 대에 가서 이스라엘이 멸망하리라는 하느님의 무서운 선고를 받아야 했다. “그러나 너의 아비 다윗을 보아서 네 생전에는 그렇게 하지 않겠고 너의 아들의 대에 가서 이 나라를 쪼개리라”(1열왕 11,12).
아버지 솔로몬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르호보암은 백성들을 학대하였으므로 한 형제인 여로보암과의 싸움은 피할 수 없었다. 그 결과 팔레스티나 지방은 남북으로 갈라져서 북쪽은 이스라엘, 남쪽은 유다 왕국이 되었고 그때까지 통일을 유지해 오던 종교도 분열하게 되었다. 결국 이스라엘의 방종과 타락은 하느님의 진노를 샀다. 북부 이스라엘은 아시리아인들에게 망하고(기원 전 722), 남부 이스라엘(유다 왕국)은 기원 전 587년에 망하여 백성들은 바빌론으로 사로잡혀 갔다.
그 후 페르시아가 바빌론을 점령하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형생활에서 해방되어 팔레스티나로 돌아왔으나 100년도 못되어 다시 타락하여 희랍의 알렉산더 대왕의 침입을 받았다. 그때 백성들은 하느님께 부르짖으며 마카베오 형제를 선두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기원 전 200-150년 경). 그 무렵에 로마제국이 전 유럽을 장악하고 세력이 커지자 이스라엘은 로마와 결탁하여 로마의 속국이 도고 말았다(기원 전 63년). 로마 정부는 헤로데를 팔레스티나 지방의 왕으로 임명하고 다스리게 했다. 수천 년을 애타게 기다려 오던 구세주는 바로 이때에 사람이 되시어 이 세상에 오셨다.
3. 예언자들의 사적
이스라엘에는 초창기부터 예언자들이 있었다. 그들의 임무는 백성들로 하여금 하느님의 계약을 거듭 회상시키고 그들을 하느님의 뜻에 따라 판단하며 장차 하느님이 하실 일을 미리 알려 주는 것이었다. 따라서 예언자들은 자기들과는 다른 환경에 처해 있는 미지의 사람들에게가 아니라 바로 그들의 눈 앞에 있는 청중을 상대로 설교하였다. 이스라엘의 초기 예언자들은 주로 말과 행동으로 당대의 사람들을 가르치는 데 그쳤다. 그러나 기원 전 8세기 경부터는 대부분의 예언자들의 설교 내용이 문헌으로 남게 되었는데 -구약성경의 예언서들- 이 책들은 예언자들 자신이나 혹은 그들의 제자들이 기록해 놓은 것이다.
예언자들은 어떤 특수층에 속해 있던 사람들이 아니었다. 엘리사는 농부였고, 아모스는 목자였으며, 이사야는 귀족, 예레미야와 에제키엘은 제관이었다. 또한 미리암, 데보라 등 여자 예언자도 있었다. 이스라엘 역사 초기에는 가나안의 바알신과 야훼가 혼합될 위험이 있었고 후기에는 임금들과 제관들이 타락했기 때문에 끊임없이 백성을 경고할 필요가 있었다. 엘리야와 엘리사는 북부 이스라엘의 배교를 막기 위하여 투쟁했다. 아모스는 북부 이스라엘의 도덕을 지키기 위하여 설교했고, 호세아는 야훼께만 드리는 참된 경신예배를 수호하기 위하여 외쳤다. 남부 이스라엘에서는 예레미야가 왕과 백성들의 탈선을 비난하고 민족의 올바른 진로를 강조하면서 장차 올 새 시대의 새로운 계약을 예고하였다. 이사야는 장차 다윗의 밑둥치에서 돋아날 새싹인 임마누엘을 예언하였고 미가는 새로운 다윗이 베들레헴 고을에서 탄생할 것을 예언하였다.
이 모든 예언자들의 주요 대상은 구세주 메시아에 의해서 실현될 속죄와 구원에 대한 것이었다. 그가 오면 이스라엘의 새로운 왕으로 군림할 것이다. 실로 구원은 이렇듯 오랜 세월에 걸쳐 준비된 것으로서 마침내 “때가 차서”(갈라 4,4) 구세주는 이스라엘 역사의 최종적인 목적으로 세상에 오시게 된 것이다.
방종, 타락으로 인한 하느님의 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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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즉 주께서 몸소 징조를 보여 주시리니,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이사 7,14)
1. 이스라엘 백성의 배반
기원 전 13세기 경, 모세의 후계자인 여호수아의 손에 이끌려 가나안에 정착하게 된 이스라엘 민족은 하느님께서 약속해 주신 대로 크게 번성해 갔다.
이집트에서 또 광야에서 하느님의 권능과 은총을 뼈저리게 체험한 이스라엘 백성은 처음에는 야훼를 자기들의 유일한 하느님으로 섬겼다. 그러나 유목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은 농업을 주로 하며 정착생활을 하던 가나안 토착민들보다 문화적으로 훨씬 뒤떨어져 있었다. 가나안 토착민들의 높은 문화생활과 멋진 축제들은 오랫동안 고생하며 떠돌이 생활을 계속해 오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호화스럽고 신기하게만 보였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차츰 자기들을 인도하시고 보호하시는 야훼를 잊어버리고 가나안 토착민들이 믿고 있던 잡신들을 사랑하게 되었다(판관 2,13 참조).
이 때문에 하느님은 그들을 원수의 손에 넘기시는 벌을 주셨다. 그제서야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시 야훼께로 돌아서서 도와 주시기를 간청하였고, 이를 불쌍히 보신 하느님께서는 그들 가운데 ‘구원자’를 일으키셔서 -이를 판관이라고 불렀다- 그들을 참혹한 전쟁으로부터 구해 주셨다. 구약성경에 의하면 14명의 판관이 이스라엘에서 활동하였는데 그 중 유명한 사람들은 삼손, 사무엘 등이다. 이와 같은 흥망의 반복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느님의 권능만을 믿고 살아야 할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기들의 운명을 자신들의 손으로 개척해 나가려고 시도하였다. 즉 그들은 그들을 다스려 줄 정치적 지도자인 왕을 요구하였다. 이웃 나라들과 같이 강력한 왕을 세워 달라는 그들의 끈덕진 요구에 마지막 판관이었던 사무엘은 이스라엘의 신정제도를 세속적 왕정제도로 바꾸지 않을 수 없다고 하느님도 이를 허락하셨다(1사무 8,7 참조). 이렇게 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왕을 중심으로 한 정치체제를 이루고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자유를 그들 스스로 포기해 버렸다.
2. 이스라엘의 역대 왕들
백성들의 요구에 따라서 사무엘은 기원 전 1020년경 사우에게 기름을 부어 축성하고(1사무 10,1) 그를 왕으로 뽑았다. 사울은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주위의 작은 나라(아말렉)와 전쟁을 하여 승리를 거두었으나 많은 노획물들 중에서 가장 좋은 것들을 아/끼고 남겨 두었다. 이것은 이미 하느님께서 엄하게 금하셨던 것이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남겨 둔 전쟁 노획물에 대한 해명을 요구했을 때 사울은 그 책임을 백성에게 전가하였다. 그러자 하느님의 벌이 사울에게 떨어졌다. “그대가 야훼의 말씀을 거역하였으니 야훼께서는 그대를 왕의 자리에서 파면시키실 것이오”(1사무 15,23). 여기서 사울은 자기의 잘못을 깨닫고 용서를 청하나 용서받지 못하고 왕의 자리를 빼앗겼다(기원전 1010년).
두 번째 왕으로 선택된 사람은 양을 치던 목자 다윗(기원 전 1010-970 재위)이었다. “야훼의 영이 다윗에게 내려 그날부터 줄곧 그에게 머물러”(1사무 16,13) 계셨으므로 그는 팔레스티나를 정복하여 광대한 다윗 왕국을 건설하고, 수도를 예루살렘으로 정하여 결약의 궤를 그곳으로 모셔왔다. 이로써 이스라엘은 한 하느님, 한 백성, 한 왕으로서의 기틀이 잡히게 되었다. 그러나 다윗은 말년에 눈이 어두워져서 자기 신하의 아내와 불의의 관계를 맺는 잘못을 범하고 말았다.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 다윗은 즉시 진심으로 통회의 눈물을 흘렸다(시편 50편 참조). 하느님은 다윗의 진정한 통회를 굽어보시고 그를 용서해 주셨을 뿐만 아니라 그로 하여금 이스라엘 역사에 가장 빛나는 통치자의 자리에 앉게 하셨으며 구세주를 다윗의 가문에서 일으키실 것을 약속하셨다.
세 번째 왕은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었다(기원전 970-931 재위). 그는 처음에 아버지 다윗의 정신을 본받아 야훼를 사랑하고 법률을 지켰다(1열왕 3,3 참조). 솔로몬은 특히 하느님께 지혜를 얻어 예루살렘에 성전을 짓고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부강하고 화려한 국가를 유지하였다. 그러나 그 역시 말년에는 자기 왕궁을 호화롭게 짓고 이교도 여인을 아내로 삼아, 끝내는 그 부인의 신인, 잡신을 인정하게까지 되었다. 그 때문에 솔로몬은 그의 아들 대에 가서 이스라엘이 멸망하리라는 하느님의 무서운 선고를 받아야 했다. “그러나 너의 아비 다윗을 보아서 네 생전에는 그렇게 하지 않겠고 너의 아들의 대에 가서 이 나라를 쪼개리라”(1열왕 11,12).
아버지 솔로몬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르호보암은 백성들을 학대하였으므로 한 형제인 여로보암과의 싸움은 피할 수 없었다. 그 결과 팔레스티나 지방은 남북으로 갈라져서 북쪽은 이스라엘, 남쪽은 유다 왕국이 되었고 그때까지 통일을 유지해 오던 종교도 분열하게 되었다. 결국 이스라엘의 방종과 타락은 하느님의 진노를 샀다. 북부 이스라엘은 아시리아인들에게 망하고(기원 전 722), 남부 이스라엘(유다 왕국)은 기원 전 587년에 망하여 백성들은 바빌론으로 사로잡혀 갔다.
그 후 페르시아가 바빌론을 점령하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형생활에서 해방되어 팔레스티나로 돌아왔으나 100년도 못되어 다시 타락하여 희랍의 알렉산더 대왕의 침입을 받았다. 그때 백성들은 하느님께 부르짖으며 마카베오 형제를 선두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기원 전 200-150년 경). 그 무렵에 로마제국이 전 유럽을 장악하고 세력이 커지자 이스라엘은 로마와 결탁하여 로마의 속국이 도고 말았다(기원 전 63년). 로마 정부는 헤로데를 팔레스티나 지방의 왕으로 임명하고 다스리게 했다. 수천 년을 애타게 기다려 오던 구세주는 바로 이때에 사람이 되시어 이 세상에 오셨다.
3. 예언자들의 사적
이스라엘에는 초창기부터 예언자들이 있었다. 그들의 임무는 백성들로 하여금 하느님의 계약을 거듭 회상시키고 그들을 하느님의 뜻에 따라 판단하며 장차 하느님이 하실 일을 미리 알려 주는 것이었다. 따라서 예언자들은 자기들과는 다른 환경에 처해 있는 미지의 사람들에게가 아니라 바로 그들의 눈 앞에 있는 청중을 상대로 설교하였다. 이스라엘의 초기 예언자들은 주로 말과 행동으로 당대의 사람들을 가르치는 데 그쳤다. 그러나 기원 전 8세기 경부터는 대부분의 예언자들의 설교 내용이 문헌으로 남게 되었는데 -구약성경의 예언서들- 이 책들은 예언자들 자신이나 혹은 그들의 제자들이 기록해 놓은 것이다.
예언자들은 어떤 특수층에 속해 있던 사람들이 아니었다. 엘리사는 농부였고, 아모스는 목자였으며, 이사야는 귀족, 예레미야와 에제키엘은 제관이었다. 또한 미리암, 데보라 등 여자 예언자도 있었다. 이스라엘 역사 초기에는 가나안의 바알신과 야훼가 혼합될 위험이 있었고 후기에는 임금들과 제관들이 타락했기 때문에 끊임없이 백성을 경고할 필요가 있었다. 엘리야와 엘리사는 북부 이스라엘의 배교를 막기 위하여 투쟁했다. 아모스는 북부 이스라엘의 도덕을 지키기 위하여 설교했고, 호세아는 야훼께만 드리는 참된 경신예배를 수호하기 위하여 외쳤다. 남부 이스라엘에서는 예레미야가 왕과 백성들의 탈선을 비난하고 민족의 올바른 진로를 강조하면서 장차 올 새 시대의 새로운 계약을 예고하였다. 이사야는 장차 다윗의 밑둥치에서 돋아날 새싹인 임마누엘을 예언하였고 미가는 새로운 다윗이 베들레헴 고을에서 탄생할 것을 예언하였다.
이 모든 예언자들의 주요 대상은 구세주 메시아에 의해서 실현될 속죄와 구원에 대한 것이었다. 그가 오면 이스라엘의 새로운 왕으로 군림할 것이다. 실로 구원은 이렇듯 오랜 세월에 걸쳐 준비된 것으로서 마침내 “때가 차서”(갈라 4,4) 구세주는 이스라엘 역사의 최종적인 목적으로 세상에 오시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