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자 요한의 출생 예고

 

세례자 요한의 출생 예고


<말씀연구>


5  헤로데가 유대의 왕으로 있을 때에


헤로데가 유대의 왕이었을 때는 기원전 40년부터 기원전 4년까지였습니다. 요한의 출생은 유대왕 헤로데의 통치 시대와 관련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탄생은 온 천하(2,1)를 휩쓴 아우구스토 황제의 통치 시대에 이루어집니다. 요한은 유대라는 좁은 지역 안에 머물러 있지만, 에수님은 온 세계에 구원을 알리십니다.




아비야 조에 즈가리야라는 제관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아내는 아론의 후예로서 이름은  엘리사벳이었다. 6  둘 다 하느님 앞에서 의로웠으며 주님의 모든 계명과 규율을 나무랄 데 없이 지켰다.


요한의 부모는 성덕으로 이름난 유대인들이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아비야 조의 사제였고, 그의 어머니의 선조는 첫 대사제인 아론이었습니다. 이 두 사람의 혼인은 사제들이 지켜야 할 율법의 신성한 의무에 합당한 것이었습니다. 사제는 반드시 사제의 딸과 결혼해야만 했고, 유대인들에게 있어 사제직은 친자식에게만 이양되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하느님을 섬기기 위해 봉헌된 거룩한 사제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하느님을 섬기는 일은 그의 아버지가 하느님을 섬기던 일과는 매우 다르게 될 것입니다.




7  그런데 그들에게는 자녀가 없었다. 엘리사벳이 석녀인데다가 둘 다 그 나이가 많았던 것이다.


구원사의 위대한 인물들 중 많은 이들의 어머니들은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들이었습니다. 이 인물들은 자연적으로는 이룰 수 없는 일을 하느님께서 개입하심으로써 이루어 주신, 지극히 거룩하신 하느님의 선물이었습니다. 이 인물들의 예를 들자면, 이사악(창세기 17,16), 판관 삼손(판관기 13,2), 사무엘(사무엘상 1-2장)등이 있습니다. 세례자 또한 이 위대한 인물들의 계열에 들게 될 것이니다.



8  즈가리야가 자기 조의 차례가 되어 하느님 앞에서 제관 직분을 봉행할 때에 있었던 일이다.


9  그는 제관직의 관례대로 제비를 뽑아 주님의 성소에 들어가서 분향하였다.


이곳은 사제들만이 들어갈 수 있었고, 백성들은 바깥에서 기도를 드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사제라 할지라도 제비를 뽑아 당첨된 사람만이 그 안에 들어가 하느님께 가까이 나아가서 거룩한 예식을 거행할 수 있었습니다. 하느님은 당신 성전에서 당신 백성 가까이에 계시지만 하느님 가까이 나아가는 일은 하느님께서 친히 선택하시어 제비뽑기를 통하여 부르시는 사람들에게만 맡겨져 있었던 것입니다.




10  이렇게 분향하는 시간에 백성의 무리는 모두 밖에서 기도하고 있었다.


11  이 때 주님의 천사가 즈가리야에게 나타나 분향 제단 오른쪽에서 있는 것이었다.


분향은 하느님께 올라가는 기도를 상징합니다(시편 141,2 참조). 사제 즈가리야는 제단 위에서 타오르고 있는 숯에 향 가루를 뿌리고 엎드려 경배하였습니다. 그러는 동안 백성들은 밖에서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구원사에서 중대한 의미를 차지하고 있는, 예수님의 생애의 위대한 순간들 역시 기도하는 동안에 일어났습니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셨을 때, 거룩한 변모 때, 사도들을 선택하실 때, 게쎄마니에서 수난을 받아들이셨을 때, 그리고 죽음의 때가 그러하였습니다.


  주님의 천사가 나타났다는 것은 그 기쁜 소식이 하늘에 기원을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천사는 분향 제단 오른쪽에 서 있었다고 전해주는데, 오른쪽은 구원을 의미합니다(마태오 25,33-34)




12  즈가리야는 (천사를) 보자 당황하여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하느님은 전적으로 “다른 분”, ‘가까이 할 수 없는 분“이십니다(이사야 6,5참조). 하느님의 사자는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하느님의 거룩함과 영광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요한의 출생 예고는 성전 성소라는 금지된 장소에서 이루어집니다. 그곳은 거룩한 예배에 관한 모든 규정들로 둘러싸여 있고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거룩한 힘으로 뒤덮은 곳으로서, 구약성서에서는 영의 세계에 속합니다.




13  그러자 천사는 그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시오,


놀래켜 놓고서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은 또 뭡니까?. 두려울 만 합니다. 하지만 하늘로부터 온 어떤 사람이나 신적 존재가 인간에게 말을 건넬 때면 언제나 용기를 북돋우는, “두려워하지 말라”라는 말을 먼저 합니다. 하느님은 인간을 짓누르려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일으켜 세워 주려 하십니다.


즈가리야! (하느님께서) 당신의 간구를 들어주셨으니 당신 아내 엘리사벳이 당신에게 아들을 낳아 줄 것입니다. 그의 이름을 요한이라 하시오.


즈가리야의 기도, 아들을 얻고 메시아에 관한 약속이 성취되기를 바라는 그 기도가 응답을 받았던 것입니다. 마지막 때는 인류가 바라는 모든 희망과 갈망의 성취를 가져다 줍니다.


요한은 “하느님은 은혜로우시다”라는 뜻입니. 하느님께서 친히 그 아기의 이름을 지어 주시고 이와 아울러 그 아기에게 사명을 내려 주시며 능력을 부여하십니다.




14  당신은 기뻐하며 신명이 날 것이고 또한 많은 사람이 그의 탄생을 기뻐할 것입니다.


기뻐할 사람은 부모만이 아니다. 다른 많은 이들 곧 신앙을 가진 모든 사람들 역시 그들과의 기쁨을 함께 나누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세례자 요한의 삶을 바라본다면 결국 기뻐하는 사람은 정해져 있는 것 같습니다. 하느님을 받아들이는  사람. 하느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기뻐합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말씀을 거역하고자 하는 사람은 결코 세례자 요한을 반기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15  사실 그는 주님 앞에서 크게 될 것입니다. 그는 포도주나 (독한) 술을 마시지 않을 것이며1), 이미 제 어머니 태내에서부터 성령으로 가득 찰 터이니


세례자는 구원사에서 차지하는 그 위치로 인해, 구원사에 한 몫을 담당했던 다른 그 어느 위대한 인물보다 뛰어난 인물입니다. 다른 위대한 인물들은 하느님 나라와 하느님의 구원이 오기를 고대하였을 뿐이지만 요한은 그 문턱에서서 하느님 나라와 구원이 다가왔음을 선포하였기 때문입니다(루가 7,28참조).


세례자 요한의 생활양식에 있어서도 지난날의 위대한 인물들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습니다. 하느님께 봉헌된 사람들은 결코 독주를 마시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삼손(판관기 13,2-5.7)과 예언자 사무엘(사무엘 상 1,15-16)의 경우에서 알수 있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요한은 하느님의 말씀과 하느님의 거룩한 뜻을 드러내는 예언자였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어른이 되어서야 비로소 예언의 은사들을 받았지만 세례자는 생명의 첫 순간, 즉 어머니의 모태에서부터 예언자였습니다. 구원의 때는 구원과 함께 오는 성령의 풍부한 은사를 통하여 그 현존을 느끼게 합니다.




16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을 그들의 하느님이신 주님께로 돌아서게 할 것입니다.


17  그는 엘리야의 영과 능력을 지니고 주님보다 먼저 와서, 아비들의 마음을 자식들에게로 돌아서게 하고, 거역하는 자들을 의인들의 생각으로 돌아서게 하여, 주님을 맞아들일 백성을 마련할 것입니다.”


요한은 새로운 계약을 도입하기 위한 길을 준비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말라기가 마지막 때에 관해 한 다음과 같은 예언이 그에게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보아라. 나 이제 특사를 보내어 나의 행차 길을 닦으리라. 그는 어른들의 마음을 자식들에게, 자식들의 마음을 어른들에게 돌려 화목하게 하리라. 그래야 내가 와서 세상을 모조리 쳐부수지 아니하리라”(말라기 3,1.24)


  즉 요한은 죄에 떨어진 이스라엘을 회개시켜 하느님 백성의 참된 일원이 되게 하고 불경한 이들을 덕스럽게 하여 주님을 맞아들이기에 합당한 백성으로 준비시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18  그러자 즈가리야는 천사에게 “무엇으로 그것을 알 수 있겠습니까? 저는 늙었고 제 아내도 그 나이가 많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유대 역사상 위대한 인물들이 그러했듯이 즈가리야는 표징을 요구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유산으로 가나안 땅을 물려받으리라는 약속을 받은 후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내가 이 땅을 차지하게 되리라는 것을 무엇으로 알 수 있겠습니까?”(창세기 15,7-8). 기드온 역시 하느님께서 하신 약속에 대한 표징을 바랐으며(판관기 6,36), 히즈키야왕도 하느님께서 그의 생명을 연장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을 때 증거를 원했습니다(열왕기 하 20,8).


부족한 나이기에 표징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표징을 보여 주실 수도 있지만, 당신이 나를 위해 마련하신 표징을 보여 주실 때까지 내가 기다리기를 원하시며, 나아가 비록 표징이 없다 하더라도 기꺼이 믿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요한 20,29)


그러므로 하느님의 계시는 의심하는 자들에게는 멸망의 씨앗이 되고, 믿는 이들에게는 구원의 근원이 됩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나 또한 주님께 무슨 표징을 요구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당신께서 이것만 해 주시면 제가 그것을 하겠습니다”라고 너무도 많이 고백한 것 같습니다.




19  천사가 대답하여 그에게 말하였다. “나는 하느님을 모시고 있는 가브리엘입니다. 나는 당신에게 이것을 말하고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 파견되었습니다.


가브리엘은 “하느님은 전능하신 분이시다”라는 뜻입니다. 가브리엘은 하느님의 면전에 서 있는 일곱 천사들(토비트 12,15; 요한 묵시록 8,2)중의 하나였습니다. 이 천사는 다니엘이 저녁 제사 때에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를 올리자(다니엘 9,4-19), 칠십 주간이 지난 후에 그 약속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계시를 준 천사였습니다(다니엘 9,24).




20  그러나 보시오. 그 일이 일어날 그 날까지 당신은 벙어리가 되어 말을 못하게 될 것입니다. 제때가 되면 이루어질 내 말을 당신이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즈가리야는 믿음의 부족으로 표징을 요구하여 하느님을 시험함으로써 구원의 예고를 징벌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즈가리야가 갑자기 귀머거리가 되고 말을 하지 못하게 됨으로써 하느님께서 개입하셨다는 사실은 분명하게 드러났습니다. 그리고 즈가리야가 받은 벌은 또한 표징이었는데 이 것은 약속이 이루어졌을 때에 끝나게 될 것입니다.


    즈가리야의 주저함, 그리고 유대인들이 믿지 않고 표징을 요구하는 것,  그러나 그 어느 것도 구원의 다가옴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21  (그 동안) 백성은 즈가리야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가 성소안에서 너무 지체하기에 이상하게 여겼다. 22  드디어 그가 밖으로 나왔으나 그들에게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가 성소에서 어떤 발현을 보았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는 그들에게 (손짓으로) 시늉만 하였으며, 그러고는 줄곧 벙어리로 지냈다.


유대 제관들은 거룩한 제사를 결코 지체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염려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구약의 사람들은 하느님 가까이에 있는 것을 위험스러운 일로 여겼습니다. 사람들은 즈가리야가 벙어리가 된 것을 보고, 하느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셨다는 걸을 알았습니다.




23  그리고 복무 기간이 끝나자 자기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모든 사제들이 다 예루살렘에 살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많은 사제들은 팔레스티나의 여러 고을에 살고 있었습니다. 즈가리야는 한 주간의 사제 직무를 끝내고 그 거룩한 도시를 떠났습니다. 그는 엄청난 비밀, 자신의 꿈이 실현되리라는 것과 하느님께서 당신의 말씀을 지키시리라는 것에 대한 확실한 표징을 간직한 채 그곳을 떠났습니다. 비록 하느님께서 그를 벌하셨지만, 그는 하느님의 은혜로우심에 대한 확신으로 가득 차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24  그 뒤에 그의 아내 엘리사벳은 잉태하였는데 다섯 달 동안 숨어 지냈다.


엘리사벳은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역사상의 여인들 가운데 하나였지만 그녀는 하느님의 섭리하심에 의해 정상적으로 아기를 갖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여인들 중에는 이사악의 어머니가 된 사라(창세기 17,17), 삼손의 어머니인 마노아의 아내(판관기 13,2), 그리고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사무엘 상 1,2.5)가 있었다.


이것이 예수님의 탄생과 다른 점은 마리아는 인간적인 아무런 도움 없이 성령으로 잉태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느님께 바쳐진 요한의 어머니는 하느님께 바쳐진 사람으로 살아갑니다. 삼손의 어머니에 대한 하느님의 뜻이 그러하였습니다(판관기 13,6-7). 이렇게 봉헌된 삶은 은둔생활을 요구합니다.



엘리사벳은 말하기를


25  “주님이 나에게 이렇게까지 하시어, 이제는 내가 사람들 가운데서 당하는 치욕을 없애 주시기로 하셨구나” 하였다.


그녀는 하느님께 감사드렸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아기를 갖지 못하는 그녀의 부끄러움을 없애 주셨기 때문입니다. 엘리사벳은 자기 백성의 역사를 자신의 삶에서 체험하였습니다.


“너희는 지난 사십 년간 광야에서 너희 하느님 야훼께서 어떻게 너희를 인도해 주셨던가 더듬어 생각해 보아라. 하느님께서 너희를 고생시킨 것은 너희가 당신의 계명을 지킬 것인지 아닌지 시련을 주어 시험 해 보려고 하신 것이다….너희 하느님 야훼께서는 이제 너희를 기름지고 넓은 땅, 골짜기와 산에서 지하수가 솟아 샘이 되고 냇물이 흐르는 땅으로 이끌어 들이려고 하신다”(신명 8,2-7).




주님께서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당신 사랑을 베풀어 주십니다. 그런데 그 사랑이 어떤 때는 시련처럼 느껴질 수 있고, 그것이 사랑이라면 증거를 대라고 요구하기도 합니다. 그저 묵묵히 받아들이면서 감사했으면 좋겠습니다. “주시면 좋고, 안 주셔도 할 수 없지만 그래도 감사하는 자세.” 그것이 바로 나의 자세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즈가리야의 마음 변화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 해 봅시다.




2. 내가 하느님께 기도할 때 조건을 달 때가 있었습니까? 있었다면 어떤 조건을 달았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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