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을 좀 보여주시지요

 

<기적을 좀 보여주시지요>


<말씀연구>


가까이 할 수 없는 당신! 내 마음을 몰라주고 언제나 자기 잣대로 나를 판단하는 당신. 마음 열고 받아들이면 그만인 것을, 눈에 보이는 대로 판단하면 그만인 것을. 꼭 입으로 말해야만 알아듣고, 이것이 그것이라고 말해야만 알아듣는 당신! 무딘 마음에 한마디 하라면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제발 보시오. 그리고 알아차리시오.”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예수님의 속을 떠보려고 예수님께 시비를 겁니다.


11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와서 예수의 속을 떠보려고 하느님의 인정을 받는 표가 될 만한 기적을 보여 달라고 하면서 말을 걸어왔다.


유대인들은 어떤 표징, 즉 놀라운 기적을 통하여 자신에 대한 증거를 제시하는 예언자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예수님의 특별한 행위, “권위에 찬 가르침”, 율법에 대한 그분의 대담무쌍한 판결, 뿐만 아니라 치유하고 마귀들을 내쫓는 그분의 크나큰 위엄도 간접적으로는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분의 행동에는 비일상적인, 예언적인 어떤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의 능력이 하느님에게서 온다는 것을 의심하고 있는 것입니다(3,22 참조). 그들이 볼 때 하느님 자신이 마땅히 그를 인정하고 징표를 통하여 그를 증언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이를 성취하시지 않는다면 그분은 “거짓 예언자”로 폭로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들의 요구 뒤에 감추어져 있는 그들의 불신앙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믿어야 하고, 자신들의 능력으로 인정할 수 없는 것이라 할지라도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지만 불신은 보고도 보지 못하고, 듣고도 듣지 못하게 만듭니다.




예수님께서는 탄식하십니다.




12  예수께서는 마음 속으로 깊이 탄식하시며 “어찌하여 이 세대가 기적을 보여 달라고 하는가! 나는 분명히 말한다. 이 세대에 보여 줄 징조는 하나도 없다” 하시고는


예수님께서는 표징을 찾는 “이 세대”에 대해 탄식하십니다. 마르코 3,1-6에서 안식일에 회당에서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고쳐주셨을 때도 그들의 마음이 완고한 것을 탄식하셨습니다. 그들의 마음의 완고함에 대한 분노와 슬픔이 예수님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너무도 큰 불신에 대한 고통에 찬 탄식이지만, 그 같은 무딘 마음은 예수님을 향한 그분 당대 시대 사람들, 즉 “이 세대”의 특성입니다. 그런데 “이 세대”는 완고한 마음을 가진 오늘의 나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후에 “아! 이 세대가 왜 이다지도 믿음이 없을까! 내가 언제까지 너희와 함께 살며 이 성화를 받아야 한단 말이냐?”(9,19)라고 더욱 분명하게 표명하신다. 그리고 믿음이 없는 “이 세대”사람들을 향하여 “나는 분명히 말한다. 이 세대에 보여 줄 징표는 하나도 없다”라고 단호히 거절하신다. 그런데 이것은 맹서의 선언을 겸하고 있다. 이것은 하느님의 사람들 모두가 인간적인 욕구들에 맞서 대항하는 엄격함이다.




하느님은 강요받으실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그러한 표징을 보여주시기를 거절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분께 강요하고 있습니다.


“나를 믿게 하려거든 증거를 보여 주시오. 증거를…”




13  그들을 떠나 다시 배를 타고 바다 건너편으로 가셨다.


예수님의 재림 때에 가서 회개하고 믿기에는 너무 늦습니다. 그때에는 증명으로서 요구되었던 그 기적이 심판의 표징이 될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요구에 굴복하셨다면, 그분은 하느님께 순종하는 종의 길을 가야 하는 자신의 사명과 임무에 충실하지 못하게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분에게는 이러한 요구 역시 “유혹”에 속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그것을 이겨 내셨습니다.


그런데 그분을 따르는 나는 나에 대해서 의심을 품은 사람들에게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그것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서 동서분주합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하느님께서는 알아주실 것임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떠나십니다. 이렇게 그분의 현존을 거두어들이시는 것 자체가 이미 하나의 심판인 것입니다.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믿음에는 조건이 없어야 합니다. 그런데 나는 예수님께 조건을 거는 경우는 없습니까? 예수님! 당신께서 이거 하나만 해주신다면. 예수님! 이번 로또복권 1등 당첨만 된다면 성전건립기금 1억 내겠습니다…내가 내 걸고 있는 조건은 어떤 것입니까?




2. 예수님께서는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증거를 제시하지 않으십니다. 가끔은 억울한 일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믿어주지 않는 그에게 어떻게 다가가십니까?




이 글은 카테고리: 지난 묵상 보기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