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오로의 매일묵상 [2004/2/24]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복음(마르코 9,30-37) 그때에 예수의 일행이 갈릴래아 지방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예수께서는 이 일이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으셨다. 그것은 예수께서 제자들을 따로 가르치고 계셨기 때문이다. 그는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이 잡혀 사람들의 손에 넘어가 그들에게 죽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다.” 하고 일러 주셨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 말씀을 깨닫지 못했고 묻기조차 두려워하였다. 그들은 가파르나움에 이르렀다. 예수께서는 집에 들어가시자 제자들에게 “길에서 무슨 일로 다투었느냐?” 하고 물으셨다. 제자들은 길에서 누가 제일 높은 사람이냐 하는 문제로 서로 다투었기 때문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였다. 예수께서는 자리에 앉아 열두 제자를 곁으로 부르셨다. 그리고 “첫째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꼴찌가 되어 모든 사람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하고 말씀하신 다음 어린이 하나를 데려다가 그들 앞에 세우시고 그를 안으시며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이 하나를 받아들이면 곧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고, 또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곧 나를 보내신 이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묵상 지난 새벽에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제주도에 사는 친구인데요, 너무나도 슬프게 울더군요. 사는게 너무 힘들어 바다에 빠져 죽으려고 나왔답니다. 그런데 막상 죽으려고 하니 그게 참 안된다는 거에요. 죽는다는 것이 살기보다 더 어렵다며 울더군요. 하느님께 기도하며 울고불고 통곡을 했는데도 하느님의 응답은 없다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제가 말했습니다. “네가 하느님께 기도한 내용이 진정코 하느님이 네게 원하시는 것이었니? 네가 기도할 내용을 하느님께 여쭤봐라.” 오늘 복음에서 볼 수 있듯이 예수님께서는 수난 당하시기 전까지는 제자들과 함께 계시려 합니다. 제자들에게 많은 것을 알려 주어야만 하시기 때문이었지요. 그래야만 당신 부활 후 승천하시고 남은 제자들이 사람들에게 많은 복음을 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은 안중에도 없고(이해도 못하고) 그저 세속적인 ‘누가 제일 더 높은가’라는 문제로 다투기만 합니다. 진정코 바라고 원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세속의 권력을 탐내는 모습들… 우리는 평소에 많은 소망을 가지고 기도를 합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그 기도를 다 들어주시지는 않죠? 그 이유는 하느님께서 아직 우리에게 주실 때가 아니라고 하시는 것이거나 우리에게 불필요거나 하느님의 섭리에 맞지 않는 것을 구하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의 생각(세속적인 욕심)으로 기도하기 때문이지요. 하느님께 기도할 때는 진정 낮아진 모습이 필요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사람에게 은총을 내리십니다. 내가 뭔가를 소망하며 기도하기 전에 과연 그 소망하는 것이 하느님 보시기에 마땅한 일일까를 되짚어봐야 합니다. 즉 내가 소망하기 전에 하느님께서 나에게 소망하시는 것이 뭔가를 묵상해 봐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리하면 내가 기도하며 소망해야할 것이 무엇인지가 생각납니다. 시간이 나시면 오늘 제1독서를 읽어보시길 권유합니다. ‘구해도 얻지 못한다면 그것은 잘못 구하기 때문입니다.’ 기도 하느님, 나의 모든 기도가 당신의 영광과 찬미를 드리기 위한 기도가 되게 하소서. Written by Paulus
바오로의 매일묵상 [2004/2/24]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복음(마르코 9,30-37) 그때에 예수의 일행이 갈릴래아 지방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예수께서는 이 일이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으셨다. 그것은 예수께서 제자들을 따로 가르치고 계셨기 때문이다. 그는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이 잡혀 사람들의 손에 넘어가 그들에게 죽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다.” 하고 일러 주셨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 말씀을 깨닫지 못했고 묻기조차 두려워하였다. 그들은 가파르나움에 이르렀다. 예수께서는 집에 들어가시자 제자들에게 “길에서 무슨 일로 다투었느냐?” 하고 물으셨다. 제자들은 길에서 누가 제일 높은 사람이냐 하는 문제로 서로 다투었기 때문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였다. 예수께서는 자리에 앉아 열두 제자를 곁으로 부르셨다. 그리고 “첫째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꼴찌가 되어 모든 사람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하고 말씀하신 다음 어린이 하나를 데려다가 그들 앞에 세우시고 그를 안으시며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이 하나를 받아들이면 곧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고, 또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곧 나를 보내신 이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묵상 지난 새벽에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제주도에 사는 친구인데요, 너무나도 슬프게 울더군요. 사는게 너무 힘들어 바다에 빠져 죽으려고 나왔답니다. 그런데 막상 죽으려고 하니 그게 참 안된다는 거에요. 죽는다는 것이 살기보다 더 어렵다며 울더군요. 하느님께 기도하며 울고불고 통곡을 했는데도 하느님의 응답은 없다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제가 말했습니다. “네가 하느님께 기도한 내용이 진정코 하느님이 네게 원하시는 것이었니? 네가 기도할 내용을 하느님께 여쭤봐라.” 오늘 복음에서 볼 수 있듯이 예수님께서는 수난 당하시기 전까지는 제자들과 함께 계시려 합니다. 제자들에게 많은 것을 알려 주어야만 하시기 때문이었지요. 그래야만 당신 부활 후 승천하시고 남은 제자들이 사람들에게 많은 복음을 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은 안중에도 없고(이해도 못하고) 그저 세속적인 ‘누가 제일 더 높은가’라는 문제로 다투기만 합니다. 진정코 바라고 원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세속의 권력을 탐내는 모습들… 우리는 평소에 많은 소망을 가지고 기도를 합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그 기도를 다 들어주시지는 않죠? 그 이유는 하느님께서 아직 우리에게 주실 때가 아니라고 하시는 것이거나 우리에게 불필요거나 하느님의 섭리에 맞지 않는 것을 구하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의 생각(세속적인 욕심)으로 기도하기 때문이지요. 하느님께 기도할 때는 진정 낮아진 모습이 필요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사람에게 은총을 내리십니다. 내가 뭔가를 소망하며 기도하기 전에 과연 그 소망하는 것이 하느님 보시기에 마땅한 일일까를 되짚어봐야 합니다. 즉 내가 소망하기 전에 하느님께서 나에게 소망하시는 것이 뭔가를 묵상해 봐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리하면 내가 기도하며 소망해야할 것이 무엇인지가 생각납니다. 시간이 나시면 오늘 제1독서를 읽어보시길 권유합니다. ‘구해도 얻지 못한다면 그것은 잘못 구하기 때문입니다.’ 기도 하느님, 나의 모든 기도가 당신의 영광과 찬미를 드리기 위한 기도가 되게 하소서. Written by Paulus
복음(마르코 9,30-37)
그때에 예수의 일행이 갈릴래아 지방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예수께서는 이 일이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으셨다. 그것은 예수께서 제자들을 따로 가르치고 계셨기 때문이다. 그는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이 잡혀 사람들의 손에 넘어가 그들에게 죽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다.” 하고 일러 주셨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 말씀을 깨닫지 못했고 묻기조차 두려워하였다. 그들은 가파르나움에 이르렀다. 예수께서는 집에 들어가시자 제자들에게 “길에서 무슨 일로 다투었느냐?” 하고 물으셨다. 제자들은 길에서 누가 제일 높은 사람이냐 하는 문제로 서로 다투었기 때문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였다. 예수께서는 자리에 앉아 열두 제자를 곁으로 부르셨다. 그리고 “첫째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꼴찌가 되어 모든 사람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하고 말씀하신 다음 어린이 하나를 데려다가 그들 앞에 세우시고 그를 안으시며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이 하나를 받아들이면 곧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고, 또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곧 나를 보내신 이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묵상
지난 새벽에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제주도에 사는 친구인데요, 너무나도 슬프게 울더군요. 사는게 너무 힘들어 바다에 빠져 죽으려고 나왔답니다. 그런데 막상 죽으려고 하니 그게 참 안된다는 거에요. 죽는다는 것이 살기보다 더 어렵다며 울더군요. 하느님께 기도하며 울고불고 통곡을 했는데도 하느님의 응답은 없다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제가 말했습니다. “네가 하느님께 기도한 내용이 진정코 하느님이 네게 원하시는 것이었니? 네가 기도할 내용을 하느님께 여쭤봐라.”
오늘 복음에서 볼 수 있듯이 예수님께서는 수난 당하시기 전까지는 제자들과 함께 계시려 합니다. 제자들에게 많은 것을 알려 주어야만 하시기 때문이었지요. 그래야만 당신 부활 후 승천하시고 남은 제자들이 사람들에게 많은 복음을 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은 안중에도 없고(이해도 못하고) 그저 세속적인 ‘누가 제일 더 높은가’라는 문제로 다투기만 합니다. 진정코 바라고 원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세속의 권력을 탐내는 모습들…
우리는 평소에 많은 소망을 가지고 기도를 합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그 기도를 다 들어주시지는 않죠? 그 이유는 하느님께서 아직 우리에게 주실 때가 아니라고 하시는 것이거나 우리에게 불필요거나 하느님의 섭리에 맞지 않는 것을 구하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의 생각(세속적인 욕심)으로 기도하기 때문이지요.
하느님께 기도할 때는 진정 낮아진 모습이 필요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사람에게 은총을 내리십니다. 내가 뭔가를 소망하며 기도하기 전에 과연 그 소망하는 것이 하느님 보시기에 마땅한 일일까를 되짚어봐야 합니다. 즉 내가 소망하기 전에 하느님께서 나에게 소망하시는 것이 뭔가를 묵상해 봐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리하면 내가 기도하며 소망해야할 것이 무엇인지가 생각납니다.
시간이 나시면 오늘 제1독서를 읽어보시길 권유합니다. ‘구해도 얻지 못한다면 그것은 잘못 구하기 때문입니다.’
기도
하느님, 나의 모든 기도가 당신의 영광과 찬미를 드리기 위한 기도가 되게 하소서.
Written by Paul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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