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율법학자들이나 바리사이파 사람들보다 더 옳게 살지 못한다면

 

너희가 율법학자들이나 바리사이파 사람들보다 더 옳게 살지 못한다면


<말씀연구>


신앙생활을 하면서 부끄러울 때가 많이 있습니다. 신앙인임에도 불구하고 비신자들보다도 못하게 살 때가 많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성호를 그으면서 조금은 더 잘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해야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나에게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20  잘 들어라. 너희가 율법학자들이나 바리사이파 사람들보다 더 옳게 살지 못한다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 가지 못할 것이다.”


옳게 산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즐겨 받아 주시는 교리의 실천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세우려 하시는 나라에 들어 가기 위해서는 율법의 교사인 율법학자들과 같이 옳게 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율법을 그 세부사항까지 지키고 있노라고 자부하는 바리사이파 사람과 같이 사는 것으로도 부족하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즉 자칭 “의인”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행하는 것보다 정신의 올바름에 있습니다. 내가 예수님을 따름에 있어 어떤 마음으로 실천하고 있었는지 생각해 보아야 겠습니다.




21  “‘살인하지 말라. 살인하는 자는 누구든지 재판을 받아야 한다’ 고 옛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22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한다.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사람은 누구나 재판을 받아야 하며 자기 형제를 가리켜 바보라고 욕하는 사람은 중앙법정에 넘겨질 것이다. 또 자기 형제더러 미친놈이라고 하는 사람은 불붙는 지옥에 던져질 것이다.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살인은 말할 것도 없고 이웃에게 성내는 것도 살인하는 것입니다.


모세는 이웃에 대한 외부적인 범죄, 곧 살인, 약탈, 상해, 구타 등을 금지했을 뿐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분노 등에는 언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니 각자의 양심의 판결에 맡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양심은 점차로 마비되어 가고 실정법이 금지하지 않으면 범해도 상관없다는 생각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제 이 율법은 예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그 뜻을 찾아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율법의 완성자이신 것입니다.



















분노의 단계



➀단순한 내적인 분노(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사람)


지방 재판

화내는 것은 당연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성숙한 신앙인이라면 자신의 상한 감정을 적절하게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


➁멸시(자기 형제를 바보라고 욕하는 사람)


최고의회에 회부

자신의 감정을 행위로 표현할 때 그것은 죄가 된다.


➂매도(자기 형제더러 미친놈이라고 하는 사람)


지옥 불

이것은 하느님께 관계된 것으로 신앙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방해를 하거나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것을 매도할 때 받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비교이지 문자 그대로의 의미는 아닙니다. 분노 중에도 죄가 되지 않는 분노가 있습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도 분노하신 적이 있으십니다.


증오가 있는 악의, 마음이 부정한 노여움도 재판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재판은 이스라엘의 최고의회에서가 아니라, 사람을 지옥불로써 벌하실 수 있는 하느님의 대심판인 것입니다. 이것으로 말미암아 구율법의 계명은 완성되었습니다. 살인뿐 아니라 그 중대한 원인이 될 수 있는 분노라든가, 모욕이 근본적으로 금지되었기 때문입니다.


랍비들도 자기 이웃사람을 미워하는 것은 그들에게 피를 본 것과 똑같이 취급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즉 미워한다는 것은 피를 본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23  그러므로 제단에 예물을 드리려 할 때에 너에게 원한을 품고 있는 형제가 생각나거든 24  그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그를 찾아 가 화해하고 나서 돌아 와 예물을 드려라.


구약에서는 성전에 가는 도중이나 제사 도중에는 다른 어떤 일이거나 무시 되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제사보다는 화해가 더 급선무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유다인들은 하느님께 제사 드리는 행동이 가장 가치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하고 그 모든 것보다도 하느님께 제사 드리는 것을 중시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심화시켜서 말씀하십니다.


  이웃, 친구 등과 소소한 문제 하나 해결 못하고 드리는 제사는 헛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느님께 대한 공경이라는 것이 모든 것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웃 사람과 화해, 사랑 베푸는 바탕위에 하느님 공경이 성립 되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느님 공경하는 것이 절대로 자기 친구, 이웃 사람에 대한 사랑 베푸는 것 때문에 감소되지는 않습니다.






25  누가 너를 고소하여 그와 함께 법정으로 갈 때에는 도중에서 얼른 화해하여라. 그렇지 않으면 고소하는 사람이 너를 재판관에게 넘기고 재판관은 형리에게 내 주어 감옥에 가둘 것이다.


26  분명히 말해 둔다. 네가 마지막 한 푼까지 다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에서 풀려 나오지 못할 것이다.”


이 비유에서 불화의 원인은 금전문제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비유의 재료에 불과합니다. 상대방은 이웃으로부터 실제로 손해를 입은 사람이며, “도중”이란 이 세상을 말합니다. 이 세상에 있어서 사람은 모두가 나그네이며, 서로가 이해로써 결합되어 있는 이웃입니다. “재판관”은 하느님이시며, 하느님의 재판은 최후의 심판을 말합니다. “형리”는 하느님의 심판을 실행하는 자, 특히 영원한 벌을 집행하는 악마를 나타냅니다. “감옥”은 징벌을 받는 장소를 뜻합니다.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가까이 있는 사람은 물론이요, 옆에 없는 사람에게도 화를 내게 되는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일상 안에서 화나는 나의 모습을 바라보면 어떤 느낌이 듭니까? 그리고 나를 통해서 화나게 되는 사람의 마음은 어떨까요? 혹시 열심한 신앙인들을 향하여 어리석다고, 바보라고 욕하지는 않고 있는지요?






2. 미사에 갈 때 가족과 싸우고서 참례한 적이 있습니까? 함께 기도하다가 다툰 적은 없었는지요?










211.203.38.97 흑진주: 하얀세상을 마주하시는 시간에 따뜻한 차 한잔 하시고 행복한 시간되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혹 감기로 고생은 안하시는지요? 건강 챙기시는거 잊지마시구요^0^ [03/05-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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