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집에 돌아가라. 네 아들은 살 것이다. " (요한 4,43-54)
매 주 금요일이면 퇴근시간 서둘러 젊은 시절의 캠퍼스의 낭만을 찾는 여유
로움은 아니지만 열 다섯명이 모인 강의실에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모여서 늦
은밤 배움의 등불을 밝히고 있습니다. 시창작 강의를 듣는 학생들은 각자의 지
은 시 한편 씩을 낭독하고 서로 느낌과 상상력에 대해서 나누고 마지막으로 교
수님의 작품에 대한 총평이 있습니다.
지난 주는 자신의 기도시를 낭독하고 서로 느낌을 주고 받았는데 학생들은
불교, 개신교, 미신자등 다양하고 개성이 강하신 분들이 많이 모인 곳에서 하느
님의 사랑의 글이 모든이에게 닭살이 돋는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자신도 모르게
무척 황당하고 놀랐으며 씁쓸한 생각이 잠시 스쳤습니다. 하지만 신앙인으로서
제대로 살지 못하는 부끄러움보다는 체면과 형식에 마음이 묶이어 누가 어떻게
생각하고 보아주는 것에 더 마음을 쓰는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가나에 가셨을 때 가파르나움에서 달려와 아들
을 살려달라는 고관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애원하는 그에게 '집에 돌아가라
네 아들은 살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며 치유해주십니다. 가파르나움에서 가나
까지는 80리 길의 상당한 거리로 사회적으로 지위가 높은 고관이 목수에 불과
한 예수께 직접 찾아와서 자기 아들을 치유해 달라는 큰 믿음에 그만 머리가
숙여집니다.
오늘 제게 다가오는 고관의 믿음은 참으로 새롭게 다가옵니다. 쉬는 가족이나
형제들을 보면 그들을 위해 마음을 열고 다가가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해주
기 보다는 아이디어 반짝하는 주님의 기적을 보여주고 싶은 보잘 것 없는 저에
게 “너희는 기적을 보지 않고서는 믿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며 '보지 않고 믿는
자는 복되도다'라고 이야기하십니다.
나무와 풀은 잊어버리지도 않고 지난 해 꽃이 핀자리에 또 같은 종류의 꽃봉
오리를 맺고 또 연약한 새순을 티우는 것을 보면서 참으로 하느님의 돌보심이
느껴지는 아름다운 기적입니다. 고관의 굳센 믿음으로 가족 모두를 살리게 되
는 것처럼 자신을 통해서 가족과 이웃을 또 누군가를 생명의 삶으로 이끌어주
며 살지 못하는 자신은 아닌지 돌아보게 합니다.
과학이 발달하면서 현대의학으로는 불가능한 불치병을 냉동인간으로 보관했다
가 의술이 가능해지면 치유한다는 세상, 현재의 자원이 고갈되면 세상이 끝이
니 대체에너지를 개발하며 날로 변화하는 세상에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기적
이란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질런지요. 우리는 신앙인이기에 보이지 않는 것까지
볼 수 있음에 감사하며 지금 바로 이렇게 살아 숨쉬는 것이 바로 기적임을 깨
달으며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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