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과부의 헌금…

 

과부는 왜 자신의 생활비를 모두 바쳤는가?


① 삶을 포기해서


② 집에 돈이 또 있어서


③ 아무 생각없이 


④ 특별한 지향은 없지만 하느님을 위해서 온 마음으로 지극히 겸손하게 준비한 봉헌물(렙톤 2개)이기에, 즉 자기 자신을 바친다는 의미로…




물론 답은 4번 입니다.




그런데 이 과부의 행동은 과연 옳은 것인가?


문득 이 과부를 보니 예전에 본당에서 한 자매님이 생각이 납니다. 아이를 낳지 못해서 미쳐 버린 여인이었습니다. 아이를 낳지 못해서 꽃동네에 가서 기도를 했는데 그곳 수사님이 아이를 낳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여인은 아이를 낳지 못했고 결국 미쳐버렸습니다.


성당과 집만을 오가면서 살았던 그녀는 남에게 뭔가를 주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 같습니다.


가끔 제 방문을 두드리며 부끄럽게 봉투를 내밀고 가기도 했습니다. 그 봉투에는 오래된 주보, 종이 등이 담겨 있었습니다.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는 여인. 하지만 남에게 뭔가를 주고 싶은 여인. 무엇을 줄 것인가?


….


하느님께 무엇인가를 바치고 싶은 여인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늘 저녁 빵을 살 돈 밖에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하느님께 뭔가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녀는 그날 저녁을 굶기로 하고 그것을 하느님께 바칩니다….


눈물이 날 것만 같은 동전 2개…




성전에 마련된 여인들의 구역에는 어떤 특별한 지향 없이 자발적으로 헌납하는 기부를 포함하여 여러 목적으로 봉헌하는 돈을 모아들이는 나팔 모양을 한 열세 개의 헌금함이 있었습니다. 성전을 방문한 사람들은 오늘의 우리가 하듯이 헌금함에 직접 돈을 넣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사제에게 돈을 건네주면, 사제들이 기부자가 지정한 헌금함에 그것을 넣는 식이었다.




“에..김말똥 형제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1000만원을 봉헌하셨습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가난한 과부도 사제에게 그 액수와 헌금 목적을 일러 주었고, 예수님께서는 그녀가 하는 말을 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게 뭐야! 겨우 동전 두개?”


“죄송합니다. 사제님! 그것 밖에 없어서…”


“에..수산나..동전 두개”


이것을 보신 예수님께서는 그녀가 가장 많은 것을 봉헌했다고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과부는 렙톤 두 닢이라는 보잘 것 없는 액수를 헌금하였다. 궁핍한 가운데서 가진 것을 모두, 곧 생활비를 몽땅 던져 넣은 여인. 이 과부는 하느님을 빙자하여 자기를 높일 줄도, 더 많은 재물을 만들 줄도 몰랐다. 하느님에 대한 그의 믿음은 가진 것마저 내어주게 하였다. 이 과부는 하느님을 생각하면서 더 가난해졌다. 이 여인에게는 하느님을 젖혀두고 애착할 만한 것이 없었다. 하느님과 이 여인 사이를 가로막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즉 마태5장 1절 이하의 진복선언에서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바로 가난한 사람이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과부였던 것이다.




율사: 하느님에 대해 말하는 사람이지만 이 사람이 찾고 있는 것은 자기 자신이었다. 자기가 대우 받아야 하고 자기가 많이 가져야 한다. 그래서 율사들은 사람들의 존경과 가진 재물로 스스로를 단장했다. 율사에게 있어서 자기 자신 외에 소중한 것은 없었다.




과부: 받을 존경도 가진 재물도 없었다. 자기 자신을 소중히 생각하고, 자기 한 사람 잘되기 위한 행동을 하지 않는다. 그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하느님이다. 이 여인은 하느님을 생각하고 관대하게 행동했다. 하느님은 관대하신 분이기 때문이다.




오늘 복음은 헌금 많이 내라는 뜻이 아니다. 예수님은 유대인 회당의 헌금이 많아질 것을 바라는 분이 아니었다. 오히려 성전이나 회당의 헌금 강요에 대해 비판적인 분이셨다.


사람들은 자신의 미래를 자기 스스로 보장하려 한다. 그래서 저축하고 보험에도 가입한다. 그러한 맥락에서 본다면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칭찬하는 것은 자기 미래를 자기가 가진 것으로 보장하려 들지 않고, 자기의 손안에 있는 것을 선뜻 내어놓는 그 마음이다. 아무것에도 구애받지 않으면서 관대함을 실천하는 그 과부의 마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을 믿고 있는 그녀의 참 모습을 본 것이다.




그렇다면 신앙인이 된다는 것은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기고, 생계를 위한 노력도 하지 않고, 기도나 하고 사는 것을 의미하는가? 물론 아니다.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권고한다. 제 할 일은 하는 것 그리고 제 손으로 일하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시오(1데살 4,10-11). 누구든지 일하기 싫으면 먹지도 말라(2데살3,10)


신앙인은 자기가 할 일을 당연히 하는 사람이다. 하느님은 인간이 할 일을 대신해 주는 분이 아니시다. 인간은 자기가 처한 상황에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또 자기 생활 여건의 개선을 위해 노력한다. 그리스도 신앙인은 인간으로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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